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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짧은 군대생활 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맘세하루
작품등록일 :
2015.07.16 12:01
최근연재일 :
2015.07.28 14:09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1,860
추천수 :
403
글자수 :
47,259

작성
15.07.21 07:23
조회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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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6. 승자와 패자

DUMMY

6. 승자와 패자



대대본부 행정 반은 인원이 20여명이다. 병장 3명에 나머지는 상병과 일병이다. 모두 대학 재학생이고 전공도 다양한 것 같다. 행정 반 사무실도 우리 중대본부 막사에서 30계단 위에 있고 상급부대니까, 하급부대 서무병을 낮춰보는 건 당연하다.


“아, 씨~ 별것도 아닌걸 꼬투리잡고 그러네. 나 참 더러워서..”


대대 행정 반에 결제 받으러 갔던 황일병이 서류철로 목덜미에 부채질을 하며 들어와 열 받은 얼굴로 책상 위에 탁, 하고 던져 놓는다.


“윤일병님이 또..브레이크 겁니까?”


황일병 눈치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출장 대원들 부식품을 원칙대로면 수령해서 싣고 가야 하지만, 몇 개월씩인데 매주 올 수도 없으니까 현금으로 수령하여 출장지에서 구입하고 있다. 품목별 수량과 금액 등은 대략 정해져 있지만 지역별로 차이도 있고 출장 인원과 기간도 들쭉날쭉 이다.


“박상병 고향이 인제라서 거기서 바로 휴가 갔다가 홍천으로 귀대했는데, 장부에 이틀 치 4끼 식사가 잡혀있다고 따지네!”


황일병 고향은 홍천 근처이고 황일병보다 2개월 빠른 행정 반 윤일병은 원주 근처다. 황일병이 신참으로 왔을 때 윤일병이 같은 강원도 출신이면서 봐주기는커녕, 홍천 촌놈이라고 놀리기만 했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제대만 해봐라, 내 친구들 불러서 똥 따블유 (집단폭행) 놔 버릴 테다.”


중대 서무병 핸디캡 때문에 꾹 참아 왔는데 반년이 넘도록 결제 때마다 깐족이니까 황일병 심사가 뒤틀릴 만도 하다.


윤일병은 체격도 훤칠하고 태권도 공인 2단이라서 오음 리 산골에서 데려 오려면, 서너 명도 부족할거 같다 싶어, 살짝 웃음을 지었다.


“심이병, 너 태권도 유단자지! 윤일병하고 한번 붙으면 안되겠냐?”


키는 나보다 약간 작지만 눈썹이 짙은 호남형으로, 턱에 ‘커크 다글라스’ 처럼 옴폭한 홈이 패인 황일병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네? 제가 어떻게요.. 저보다 고단자고 덩치도 훨씬 큰데요..”


사실 내무반 우물가에서 만나보는 윤일병은 별로 말수도 없고 특별히 남을 얕잡아서 놀리거나 할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도인 다운 어떤 절제력 같은 게 느껴져서, 가까이 하고 싶은 친근감 마저 드는 타입이다.


“야, 너 의리 없이 굴래? 사수가 핍박당하고 서러워하는데, 조수가 제 몸 단도리 만 하겠다 이거지!”


“아닙니다, 황일병님. 그기 아이고, 다짜고짜 선임한테 한판 붙읍시다,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황일병이 실망스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당황해서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그래? 음..좋아! 그러면 정식으로 시합이면 할 수 있는 거지?”


“정식 시합이요? 대련 말씀입니까?”


“그래! 대련 한판, 정식 시합으로 해 보는 거야. 응? 본부 행정 반 대 화포 수리반 대항전으로!”


웃으면서 얘기 하길래 설마 그러겠나 싶어서, 농담으로 라도 기분 푸시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네~ 그러 시지요. 아주, 박살을 내드릴게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행정 반에 땅끝마을 출신으로 황일병과 동기인 배일병이 있었다. 둥글둥글한 체격에 스마일 상 인데, 한 이틀 저녁 시간에 자주 만난다 싶더니, 일요일 아침에 황일병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를 내무반 앞 마당으로 불러냈다.


“심이병, 준비 됐냐? 10분 후에 윤일병하고 한판 붙는 거다!”


“네?···”


둘이서 무슨 작당 모의를 했는지, 화포수리반 도전을 본부 행정 반에서 수락했다는 것이다. 눈 앞이 캄캄해진다.


“여기서 워밍업하고 있어! 금방 나올게.”


황일병이 쪼르르 내무반으로 들어간다. 이거 뭔가 사태가 심각하다.

상황을 보니까 돌이킬 수 없고, 얼떨결에 윤일병과 대련을 붙게 생겼다.


펼친 열손가락에 힘을 주고 끝 마디를 꼬부린 채, 양팔을 크로스 시켜 천천히 머리위로 뻗어 올려 큰 숨을 들이 쉬었다. 머리 위에서 호흡을 멈추고 크게 원을 그려 기마자세 옆구리에 멈춘 뒤, 장풍으로 앞쪽으로 카~하고 내 뿜었다. 단전의 기가 전신으로 퍼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야~ 심이병, 잘했어! 져도 괜찮으니까 겁먹지 말고 해.”


동네반장 김상병이 어깨를 치며 격려하고 몰려나온 고참들이 대견한 듯 들러리를 서준다. 하급부대 신참이 감히 본부 행정 반에 도전을 했으니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행정 반에서도 배일병이 앞장서고, 윤일병이 마지못해 등 떠밀리 듯이 우르르 몰려 나온다.


“자~5분씩 3회전 하고 1분씩 휴식 합니다. 공격은..유단자 들이니까 알아서 하고, 너무 심하지 않게..그런다고 봐주지는 말고.”


김상병이 자청해서 심판으로 나섰다.

윤일병도 황망한 듯 이걸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174에 57인데 윤일병은 180에 62쯤 되어 보인다. 체격으로는 모든 게 불리하다.


‘1회전은 탐색만하고 넘기자!’


맨발로 흙을 밟으니 다리에 힘이 솟는다.

주먹 쥐어 예를 갖춘 다음 가볍게 움직이며 윤일병 허리에 시선을 꽂았다.

체격에 비해 움직임이 경쾌하다. 앞발을 들어 구부렸다 펴는 동작을 자주 하는 걸로 보아 긴 다리를 활용할 심산인 것 같다.


“상급 병이라고 봐주지 말고 공격해, 심이병!”


황일병이 치열한 복수전을 펼치라고 종용한다.


“하급 병이라고 봐주지 마십시오, 윤일병님!”


너구리 같은 배일병이 은근히 접전을 부추긴다. 자기도 사수한테 당한 게 있겠지.


휘~익, 눈 깜빡 할 사이 윤일병 오른발이 앞 돌려차기로 내 이마를 스친다.

착지하는 순간 허리 뒤쪽이 열렸는데, 급히 피하느라 찍으러 가다 멈췄다.


“와~잘한다. 윤일병, 봐주지 말고 해!”


본부 반 함성이 터지고 응원소리가 기를 죽인다.

거리감을 잡기 위해 왼발 앞차기와 오른발 옆차기로 연속공격을 했는데, 가볍게 피하고 오른발 돌려차기로 되받는다.

체격에 비해 날렵한 게 보통 수준이 아니다.

네댓 번 서로 좌우로 자세 바꿔가며 발차기 공격을 시도했다.


오른발 앞 자세로 들어오는 윤일병 목 차기를 시도하려는 순간, 윤일병의 오른쪽 발꿈치가 먼저 내려찍기로, 내 왼쪽 어깨위로 떨어진다.

본능적으로 양손 모아 제쳐 급히 피했지만 일격에 무너질 뻔 했다.


“우와~잘한다, 윤일병! 끝내버려~”


함성이 터지고 누가 봐도 내가 수세에 몰리는 게 분명해 보일 것이다.


1회전이 끝나고 엎어 놓은 양동이에 걸터앉은 내 얼굴을 황일병이 순수건 펼쳐 부채질하며 격려한다.


“잘하고 있어 심이병. 기죽지 말고 공격해. 괜찮아!”


“그럼, 그만하면 잘하는 거야. 아직 한대도 안 맞았잖아!”


김상병도 덩달아 등을 두드려주며 힘을 돋구어준다.

양쪽 고참들은 중간에 모여 담배 피워가며 내기 하자고 낄낄거린다.


‘그냥 발차기로는 안 된다. 근접 전 펴거나, 주특기를 살릴 수 밖에 없다.’


2회전이 시작되고 몇 번 서로 발차기 공격이 이어 졌는데, 윤일병이 연속 동작 공격이 없다.

윤일병이 봐주는 거라면 내가 먼저 시도하는 것이 예의다.

나보다 키 큰 상대일 때는, 공중 2단 돌려차기가 내 주특기 이다.


다짐하고 기회포착, 가볍게 뛰어 왼발 낮게 돌리고 힘껏 오른발 뻗어 돌려 옆머리를 가격했다.

퍽, 소리는 났는데 감촉이 머리가 아니고 손등이다.

낙법으로 굴러 방어자세를 취하자, 윤일병이 다리 들어 내려 찍으려다 멈춘다.


“우와~와~심이병 최고다! 이야~”


함성이 너무 컸고, 윤일병도 이외의 공격에 피하기는 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황일병은 좋아서 주먹 쥔 손으로 만세 부르며 폴짝폴짝 뛰고 내무반장 정중사까지 입이 헤벌쭉 벌어져 웃는다.


“야, 야, 시합이 끝난 것도 아닌데 왜 난리야? 계속 해야지!”


본부 반 고참이 나서서 윤일병 등을 두드리며 격려한다.

어느새 차량 수리중대 내무반 병사들까지 몰려와 구경꾼이 30~40명이나 되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되었고 빨리 끝내야 되겠다.

윤일병도 더 이상은 봐주지 않고 필살기로 나올 것이다.


‘분명히 돌려 찍기를 선택하겠지! 급소를 찌를까? 그건 심해서 안돼. 차라리 비겁한 방법으로 망신을 주는 게 이 상황에선 공평하겠다.’


김상병이 나서서 분위기 가라앉히고 다시 대련이 시작되었다.

나는 공격하는 시늉만 하면서 윤일병의 돌려 찍기가 나오기를 유도했다.


역시나, 지금이다 싶은 순간, 몸을 돌려 내려찍는 윤일병 오른쪽 다리를, 허리만 뒤로 제쳤다 앞으로 밀착하며 왼팔로 오금을 받혀 잡고, 오른손 간수찌르기로 명치급소에서 멈췄다.


왼발만 땅에 딛고 위태롭게 뒤뚱거리는 윤일병을 올려다 보며 ‘미안합니다’ 하는 눈짓으로, 윤일병 왼쪽 발등을 오른발로 꽈악 눌러 밟고, 잡았던 다리를 놓아 주었다.


풀려난 오른발로 땅을 짚던 윤일병은 왼발이 밟혀있어서, 뒤로 물러서지 못하고 풀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우와~이야~최고다, 우리 심이병!~”


황일병이 달려와 나를 부등 켜 올리며 난리를 친다.


“급소 맞고 즉사 했네! 케이오승이다, 완벽 승!”


수리중대 왕 고참 병장이 큼직한 손을 들어 박수 치며 한마디 하자, 구경하던 수리 중대 원 들도 덩달아 좋아하며 함께 손뼉을 쳐준다.


배일병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는 윤일병의 난감한 표정이 너무 안쓰러워 민망하다.


김상병이 눈치 빠르게 윤일병 엉덩이 흙을 털어주며 심판 판정을 내린다.


“자~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해서 시합했습니다. 박수부터 보내주시고요. 에~ 심이병이 급소공격은 좋았는데, 발등 밟아 넘어뜨린 건 좀 그러니까.. 심이병 반칙패, 윤일병 판정승!”


“그래 맞아! 무슨 씨름도 아니고 그게 뭐냐?”

본부 반 고참이 패배는 인정하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모두들 와글와글 흩어져 들어가고 윤일병이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죄송합니다, 윤일병님..”



윤일병이 나를 껴안으며 귓속말로 속삭인다.


“안 밟아도 되는데 그랬냐? 짜~식, 네가 이겼다."

흑백 실루엣-장풍에 날아감.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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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1 08:29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5.07.21 10:22
    No. 2

    아휴, Nuan 님 반갑습니다.
    저도 읽고도 발견 못한 부분을 찾아내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이리강
    작성일
    15.07.21 20:54
    No. 3

    군대 이야기에 액션도 있고. 히히. 저도 군대에서 3소대 4소대 터진 막사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3소대에 제대 날짜 받아놓은 병장이 있었죠. 점호 전에도 천정에 실로 종이를 매달아놓고 발로 차고 항상 틈만 나면 무술? 하여튼 연습하더군요. 그러다 지금은 왜 그런지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상병 막 진급했을 때인데.. 하여튼 뭐 막사 앞 마당에서 가볍게 대련. 아 맞다. 하여튼 맞았습니다. 하하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5.07.21 22:03
    No. 4

    네, 이리강 님 감사합니다.
    제가 있던 옆 내무반 대대본부 행정반 선임들이 다 양반 군인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량수리 중대는 군기가 좀 셌던 것 같았구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한켠
    작성일
    15.08.02 20:28
    No. 5

    검도에 태권도까지? 만능 무술인이셨군요. 게다가 글솜씨까지 뛰어나시니... 그야말로 문무양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5.08.03 08:40
    No. 6

    네 Nastivl 님,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 글처럼 손가락 오므려 큰 숨 들이마시며 양팔 크로스시켜 머리 위로 올리고
    호흡 멈추어, 큰 원 그리며 옆으로 내려 허리에 대고 손바닥 앞으로 뻗쳐
    푸~하, 장풍 내보내는 자세만 연습하셔도 좋을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고스테일
    작성일
    16.09.03 11:37
    No. 7

    와아.. 정말 긴장되게 읽은 거 같네요. 예전 일이라지만 생동감있게 잘읽은것 같습니다. 뭔가 사태가 생각보다 커져버렸을때나 구경꾼들이 몰려오거나 하는때의 긴장감이 직접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선임과의 대련은 져도 후임이니 져도 괜찮고 상황에 따라서 일부러 져주기도...해야하지만 사수에서 부대의 자존심까지 커져버린 대련에선 그런거 없이 최선을 다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악수도 청하고 안아주며 자신의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는걸 보면 윤일병도 무인(?)의 자세라던가 됨됨이가 괜찮아 보이는데... 황일병과는 개인적인 뭔가가 있어서 그런걸까 싶기도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6.09.03 12:29
    No. 8

    예, 고스테일님 정독 감사드립니다.
    그 때 윤일병님이 아주 젊잖은 무인이었습니다. 그 뒤로 오히려 본부반 사람들하고도 가까워지게 되었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강건한
    작성일
    19.01.20 22:28
    No. 9

    꺄아~~~ 멋져부려~ ٩(^‿^)۶

    진정한 사나이들이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sk******..
    작성일
    20.10.24 17:13
    No. 10

    재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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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논 산 +34 15.07.16 2,074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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