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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짧은 군대생활 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맘세하루
작품등록일 :
2015.07.16 12:01
최근연재일 :
2015.07.28 14:0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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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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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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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 논 산

DUMMY

1. 논 산


1972년 2월초 서부 경남의 집결 지인 마산 역에 모인 친구들은 장발에서 갑자기 까까머리가 된 서로의 모습을 놀리고 웃으면서 입영열차에 올랐다. 뒤로만 멀어져 가는 산천 풍경에 아쉬운 미련을 실어 보내고 삼량진 역에서 북진한 열차는 눈발이 흩날리는 논산 벌판에 장정들을 우르르 쏟아 내렸다.


훈련소 입소 전에 대기하는 보충대에서 정신 없이 뺑뺑이 돌며 뒤죽박죽이 된 우리는 스텐 배식 판에 수채 물 냄새 나는 군대 밥을 받아 들고서야 더 이상 자유인이 아님이 실감났다. 국방색 훈련 복으로 갈아입고, 입고 간 옷과 신발을 포장하여 편지를 써 넣을 때, 갑자기 10년은 어려진 듯이 부모님의 따뜻한 품속을 그리워하게 된다.


“닷새는 더 있어야 훈련소로 넘어 간다는데, 돈 좀 모아서 일찍 가는 게 어떻겠노?”


한 동네 살던 기간병을 만나고 온 친구 둘이 역한 냄새 나는 화장실 똥통 나르기에 지쳤는지 제안을 한다.


“보충대 있어도 날자 계산은 될 건데, 나는 안 할란다. 돈도 아깝고..”


멘소레담(동상연고) 바닥에 반창고 붙여 감춰온 큰 돈 한 장을 꺼내어 잔돈 바꿀 데도 없고, 3일간 있었는데 그 정도야 싶어서 거절했다. 다음날 친구들은 보충대를 떠났고, 나중에 보니 춘천 포대에 배치되어 고생깨나 했다고 들었다.


불과 사흘 후에 나도 보충대를 떠나 멀지 않은 연무대로 4열 종대 열 지어 구보하며 입소하였다. 신발 문수도 없어 급하게 골라 신은 작업화가 좀 작다 싶었는데, 입소 첫날부터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터졌다.


“사회에서 운동한 병사 손 들어봐.”


23연대 4중대 4소대 내무반장 신참 이등병이 어설픈 폼으로, 키 큰 순서로 늘어선 36명 소대원들을 훑어본다. 복싱, 태권도, 했다는 3명과 함께 검도 한 나도 분대장에 선정되어 키 작은 도토리분대, 4분대장이 되었다.


“내무반에 쥐가 많다. 침상 밑에 들어가서 쥐를 잡는다. 실시!”


양쪽 침상 끝에 줄 서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내려가 침상 밑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20센티나 될까 싶은 틈새로 다들 몸통까지 용케도 쑤셔 넣는다.


“동작 봐라, 그래 가지고 쥐를 잡겠나? 빨리 안 들어가!”


덩치 큰 서너 명은 머리만 쳐 넣고 바둥거리며 용을 쓴다. 궁둥이 차여가며.



“돈은 분실위험이 있어 보관했다가 퇴소할 때 돌려준다. 자진해서 신고해라. 소지품을 모두 꺼내어 앞에 놓는다. 위생검열이 있으니까, 팬티를 무릎아래까지 내린다. 실시!”


일석점호 때 소대장이 한마디하고, 함께 온 마스크 낀 군의관을 안내한다.

차려 자세로 도열한 훈련병들의 물건을 검사 봉으로 들어올려 차례로 포경검사 하며 지나가고, 소대장은 사제품 속에 숨겨진 돈 찾기를 하며 뒤따른다. 군의관이 내 물건을 요리조리 제쳐 유심히 보며 묻는다.


“포경수술 했나?”

“예, 훈병 심삼일. 안 했습니다. 자연산 입니다.”


얼핏 보면 귀두가 덮여있지만 어릴 때 귀한 아들이라고 어머니가 많이 만져서 그런지 까보면 깨끗하다. 머뭇거리던 군의관은 통과하고, 소대장이 멘소레담 뚜껑을 열더니 볼펜으로 푹 찔러본다. 조마조마 해서 간 졸이고 있는데 쓱 쳐다보더니 그냥 지나간다.


일석점호가 끝나고 서로 힐끔거리며 내렸던 바지를 서둘러 입느라 소란스럽다. 다행히 의무대로 후송될 병사는 없고, 비누 쪽 속에 숨겨둔 돈을 두 명이 발각되었다.

내 멘소레담 바닥에 희미하지만 V자로 볼펜 자국이 남아있다.


“불시에 검열이 또 있을 거니까 내일 점호 전까지 신고한다. 이상!’


신고 안 했다가 들키면 압수된다는 엄포에 모두들 술렁거렸다. 그 때는 돈 숨겨 오는 게 최고의 관심사여서 별에 별 방법이 동원 됐을 것이다. 나는 망설이다가 다음날 저녁에 PX에서 잔돈 바꾸고 절반만 신고했다. 기간병도 출입하는 PX이지만 매일 훈련병으로 북적거렸고 막 출시된 사과넥타를 여러 개씩 사서 분대원들과 나눠먹었다.


“분대장, 좀 천천히 가라. 너무 무겁다!”


내무반 화로에 사용할 갈탄을, 가마니에 대나무 두 개를 꿰어 만든 들것에 실어 어깨에 메고, 4명이 함께 날랐는데 뒤따르는 분대원이 낑낑댄다.


“힘드니까 얼른 나르고, 푹 쉬는 게 낫지 않냐?”


키 큰 나는 도토리 분대원들을 종용하며 앞장서 날랐다.

(한참 뒤에야 깨달았지만, 무게 중심이 낮은 데로 쏠려서, 미안하게도 나는 거저 들고 날랐던 것이다.)


눈이 얼어 부스럭거리는 땅바닥에서 고된 제식훈련을 종일토록 마치고 돌아오면, 낮 동안은 꺼져 있어도 그나마 훈훈한 내무반의 온기가 최고의 안식처였다.


한번은 초저녁에 갈탄을 너무 많이 태웠는지 새벽녘에 탄이 떨어져 모두들 강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다. 담요를 돌돌 말아 새우가 되어 뒤척이다가 무심코 옆 친구와 등이 맞닿았는데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녀석도 처음 알았는지 놀라고, 전달 전달해서 추운 밤을 모두 용케 넘겼다. 간혹 불침번이 졸다가 탄불을 꺼트려도 크게 질책하지 않고 ‘새우 등대기’ 자세로 들어갔다.


“분대장은 명당자리라서 너무 좋겠다. 구석에는 등을 대도 추워!”


하나뿐인 난로는 내무반 가운데 3,4분대 쪽으로 치우쳐 놓이는데 3분대 막내와 4분대장인 내가 난로 옆자리라서 다들 부러워했다. 실상은 잠잘 때 머리 쪽은 차갑고 발쪽이 따뜻한 ‘두한 족열’ 이라야 맞는데 나는 반대로 머리맡이 화로라서, 탄불이 한창 셀 때는 너무 뜨거워 잠도 못 든다.


“알고 보면 다 공평 한 거야. 나만 왜 이럴까 하지 마라.”

상황 설명을 해주자 수긍하는 듯 끄덕이며 밝게 웃는다.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앞에총 자세로 드러누워 철조망 통과를 몇 번씩 되풀이 하고 오면 식사시간만큼 즐거운 건 없다. 분대 별로 1주일씩 당번이 되어 취사장에서 날라온 밥과 국, 반찬을 내무반 침상에 앉은 소대원 들에게 1분대부터 배식해 주었다. 밥은 분대장이 주걱으로 퍼서 식 판에 담아주는데 자칫하면 뒤에 가서 모자라거나 남게 마련이다. 모자라면 조용한데, 많이 남으면 앞쪽 분대원들이 난리 친다.


“야, 4분대만 배 터지고 우리는 뭐냐? 배식 좀 제대로 해라!”


앞 분대가 배식할 때는 항상 4분대가 모자랐으니까 나도 한마디 해준다.

“정 그러면 다음주부터 거꾸로 4분대부터 배식할래?”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 웃고 만다. 통일벼에 보리쌀 섞인 군대 밥이 뭐 그리 꿀맛이던지.


훈련 중간의 10분간 휴식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간식이 담배와 별 사탕 중에 지급되었는데 입대 전에 친구들한테 억지로 배워서 일주일에 한 갑도 안 피던 담배 대신에 별 사탕을 받아 먹었다.


“식후 불연이면, 삼 초 후 즉사라~”


2차 대전 때 사용하던 묵직한 M1총 들고 차가운 땅 위에서 뒹굴다, 총끼리 모아 세워 놓고 사람끼리 양달 쪽에 옹기종기 모여 앉으면, 대부분 담배를 맛있게 빨아댄다. 동그랗게 도넛처럼 퍼져나가는 연기 모양이 멋져 보여 나도 나중에는 사탕대신 담배로 바꿔서 피웠다. 그것이 평생 골초로 이어질 줄 그때는 몰랐다.


제일 힘들다는 화생방 훈련코스였다. 방독면을 쓰고 밀폐된 가스실에 들어가 쪼그려 뛰기를 하고 숨이 한창 가빠올 때 방독면을 벗게 했다. 숨을 들이쉬면 폐부를 찌르는 매운 독가스에 눈물, 콧물, 침까지 질질 흘리고 토할 듯이 꿱꿱거린다.

나는 처음부터 눈을 감고 입을 벌려 뱃속으로 조금씩 호흡을 했다. 문이 열려 모두들 침팬지처럼 아우성치며 몰려 나왔는데, 나는 눈물만 찔끔거리며 꼿꼿이 걸어 나왔다.


“저 자식 봐라! 한번 더 넣어야 되겠네.”

내무반장이 어이없다는 듯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손끝에 가늠쇠를 받쳐 팔을 뻗고 1분도 버티기 힘든 M1소총이 가볍게 몸에 착 달라붙을 무렵, 기대하던 사격훈련이 시작되었다.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을 하는데 개머리판이 어깨에 밀착되지 않으면 발사 때 총구가 흔들리고 탄피가 멀리로 흩어진다. 사격 대에 두 명씩 배치되어 뒤에 앉은 조수는 탄피를 눈 여겨 봤다가 주어 모아야 한다. 개인 지급된 총이 내무반에 보관되므로 총알이 유출되는걸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탄피가 오롯이 모이면 과녁 판의 탄착점도 제자리에 모여있다.


“이 자식, 볼펜으로 구멍내면 모를 줄 아나? 꼬라 박아!”


남의 과녁 판에 맞췄는지 3발의 영점사격 탄착 군이 하나도 없는 훈병이 원산폭격을 당한다. 사격 실시 전에 심한 PRI체조로 정신 집중을 시키지만, 막상 사대에 엎드려 옆에서 땅땅 총소리가 귓전을 때리면 난생처음 하는 사격이라 겁도 나고 제정신이 아니다.


이틀 뒤에 50미터 기록사격이 실시 되었다. 분대 별, 소대 별로 점수를 내고 꼴찌 하면 오리걸음으로 귀대한다는 엄포에 모두들 긴장했다. 사대에 엎드려 들이킨 호흡, 낼 숨 3분의 2에서 멈추고 정조준 방아쇠를 당겼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다급한 교관의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울려 퍼진다. 탕탕 두어 발 총소리 후에 사격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우르르 기관병들이 한곳으로 뛰어간다.

수군수군 사고 났다는 목소리가 전달되어온다. 80여명의 사수들은 웅크려 앉아 잔뜩 불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린다.


“자살했대! 목에 겨누고 댕겨서 즉사했대.”


사격은 중지되었고 20분쯤 지나서 사격 대 입구 쪽으로 나오니까, 사고지점 조수 자리에 선지피가 흥건히 고여있다. 어떻게 저리 많은 피가 흘렀을까?


사격장 밖에서 대열을 갖추는데 앰뷸런스는 요란스레 떠나고, 달려온 지프에서 내린 영관 급 장교가 위관급 사격장 교관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우리 중대 원 한 명의 자살로 그날 밤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밤새 어수선했다. 철학과 출신이라는 둥, 애인에게 쓴 편지가 있다는 둥 소문만 파다했고 중대장도 교체되었다.


아까운 젊은 동기 병사의 죽음도 쉽게 망각되고, 우리는 5주간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수료 식을 하게 되었다. 막대기 하나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모자와 군복, 가죽 군화를 신고 여벌과 보급품을 더플백에 담아 메고 내무반장과 작별인사를 했다.


“이 자식은 절뚝거리고 입소하더니, 아직도 절뚝거리며 퇴소하네!”


그 사이 일등병이 된 내무반장이 내 손을 꽉 쥐어주며 만족한 듯 웃는다.

모두들 논산 쪽으로 오줌도 안 눌 거라고 농담했지만, 나는 제대하면 꼭 한번 와 봐야지 하면서 운 좋게 후방인 103보충대에 차출되어 군용열차에 몸을 실었다.

11논산 육군훈련소 각개전투 돌격앞으로.png


작가의말

이  작품  “짧은 군대생활 긴이야기” 는  총 8회 분량 단편입니다.

매회 다른 소 제목과 내용으로 8번에 나누어 매일 올릴 예정입니다.

 

저의 군대생활에서 실제로 경험했던 잊지 못할 이야기들 입니다.

40여년 전의 이야기라서 지금의 군대생활과 좀 차이는 있겠습니다.

 

실화에 바탕한 글이라서, 다소 소설적인 재미가 덜하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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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4

  • 작성자
    Lv.41 강건한
    작성일
    19.01.20 22:04
    No. 31

    극사실주의 군대소설이네요. (o゚∀゚o)

    저는 공군 출신이라서 색다르게 느껴져 재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ch******..
    작성일
    20.06.27 16:46
    No. 32

    적당한 실화적인 글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천! 그런데 남자들은 군대 얘기를 즐기는 편이더라고요. 들어도 들어도 재미 있고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20.06.27 18:47
    No. 33

    아, 참솔님 군대얘기 보셨군요.
    이 글은 제 체험 소설이라서 한번 보시라고 권장해 드린 겁니다.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sk******..
    작성일
    20.10.24 17:05
    No. 34

    재밌습니다. 2000년 10월 30일 용인55사단 입대 한것이 기억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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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쿼바디스 +10 15.07.20 847 41 9쪽
4 4. 군인의 길 +12 15.07.19 1,074 50 7쪽
3 3. 달밤에 체조 +10 15.07.18 1,041 61 12쪽
2 2. 새끼 발가락 +12 15.07.17 1,263 60 6쪽
» 1. 논 산 +34 15.07.16 2,070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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