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무릇 놀 줄 알아야 잘 사는 법!(2)
드디어 대망의 축제날.
황실 기사단의 총 훈련장은 모처럼 다 같이 모여든 기사들 덕에 엄청나게 시끌벅적했다. 특히나 오전을 자리 잡고 있는 요리 시간 덕분에 훈련장은 소리적인 시끄러움 뿐만 아니라 시각적 시끄러움도 함께 가져오고 있었다.
오죽 심했으면 보다 못한 레안이 기어코 이따 점심 때나 들른다며 집무실로 홱 피난을 갔을까.
그리고 역시나 가장 시끄러운 청룡단 덕분에 근처에 있던 다른 기사단 역시 짜증을 금치 못했다. 말을 한다고 들어먹을 종족이 있는 청룡단이 아닌 지라 뭐라 말은 못하고.
그들의 원망은 기어코 가장 만만한 1인, 리엔에게로 올곳이 향했다. 확실히 리엔이 제일 시끄럽기도 하고.
“으아악!!!”
이게 뭐야, 도대체 뭐야!
요리에 그닥 소질은 없지만 1등 못하면 지옥을 보게 될 거라는 살벌한 류의 협박에 열심히 요리를 행하던 리엔은 자신이 기껏 준비해놓은 탕 안에 이상한 괴생명체가 들어가있는 것을 보곤 소리를 질렀다. 공포의 비명이 아니라 충격의 비명이었다.
“도대체 이게!!”
리엔의 시선이 바로 류를 향했다. 보나마나 범인은 류일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저리 당당한 모습이라니.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리엔은 애써 참았다. 며칠 전 류에게 괴롭힘 받은 후유증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리엔의 시도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맛을 보기 위해 한 숟가락 떠서 먹은 리엔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꼭 그 표정은 전설에서 나오는 망각의 강을 건너다 강물을 먹은 망자의 표정 같았다.
그러다 이내 리엔은 격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물을 찾았다.
“자, 물.”
그런 리엔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류가 빠르게 리엔에게 물을 건넸고, 물을 마신 리엔은 또 한번 격통을 호소했다.
누가 뜨거운 물을 주는 거야!!! 거기다 물에다 누가 고추 넣었어!!!
단숨에 불을 뿜을 것 같은 리엔의 눈이 류를 향해 살기를 흩뿌렸다. 이건 정말 인간으로서 참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우선 탕부터 얘기해보자. 처음엔 꼭 흙을 부은 것 같았다. 잘 보니 묘하게 나무뿌리 같은 것이 둥둥 떠있는 것 같기도 하더니. 그 다음 찾아온 맛은 쇠맛이었다. 어떻게 멀쩡한 탕에서 쇠맛과 나무맛이 느껴지는 건지.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진 맛은 끔찍한 고통을 불러왔다.
이것은 전설의 매운 맛을 가지고 있다던 부트 졸로키아, 라는 고추를 그냥 생으로 먹은 것 보다, 정말 과장이 아니라 더 매운 거 같았다.
그런 자신의 입에 뜨거운 물을, 그것도 고추를 잘라 우려낸 물을 주다니.
이건 그냥 죽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차마 류에게 달려들 정신이 없었다. 제정신으로 눈 뜨고 있는 것도 버거운 데 싸울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쟨 왜 저러고 있냐?”
요리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시식을 하는 점심 시간이 올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리엔을 보며 레안이 뚱하니 물었다. 보나마나 류가 무슨 짓을 한 것이 분명했지만, 어째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원래 매운 음식을 못 먹는데, 좀 많이 매운 음식을 먹었습니다.”
과연 그게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만한 맛인가 싶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근데 이거 누가 만들었냐?”
쟤도 쟤지만 현재 자신의 앞에 있는 음식이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 레안이 앞에 있던 하륜에게 물었다. 그에 하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너냐?”
하. 어이없다는 레안의 한숨이 입 밖으로 토해졌다. 아니, 도대체 이건 먹으라는 건지, 버리라는 건지.
워낙 자신의 입맛이 고급인 탓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이건 진짜 아니었다. 정말 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맛이..없습니까?”
내가 먹었을 땐 괜찮았는데. 분명 자신의 입맛엔 멀쩡했던 것을 떠올리며 하륜이 조심스레 물었다.
“네가 한번 먹어봐.”
레안이 짜증을 가득 담아 직접 하륜의 입에 음식을 내밀었다.
“전 꽤 맛있습니다만?”
하륜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혀는 폼으로 달린 거냐?”
이건 아무리 먹어봐도 맛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은 정말 말 그대로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넣어야 이렇게 맛이 안 날 수가 있는 건지.
그런데 이게 맛있다고?
네 혀는 맛을 자체 제작 한다냐?
하지만 저 상태를 보아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할 것 같지 않아 바로 다음 시식 코너인 청룡단으로 향했다. 청룡단의 음식 앞에 선 레안은 잠깐 망설였다. 이미 그나마 현무단에서 혀가 고생했는데, 괜찮을까?
청룡단이라면, 그냥 그 이름만으로도 불길한데. 특히나 리엔이라는 사고뭉치 하나가 더 던져진 이후로는 더 불안했다.
그리고 역시나. 레안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리엔의 앞에 놓인 음식을 먹은 순간, 레안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지더니 음식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정말 이건 음식이 아니었다.
“죽어, 이 새끼야!”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레안의 화려한 발차기가 리엔의 복부에 꽂혀 들어갔다. 물론 뒤이어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하던 류 역시 레안의 팔꿈치에 얻어맞아 바닥을 굴러야 했다.
“하륜. 와서 먹어봐.”
이건 정말 인간이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이 아니었지만, 과연 하륜은 어떨지 궁금했다. 혹시 모르지. 너무 충격적인 맛에 드디어 혀가 감각을 찾을 지도.
그러나 이번만은 레안의 감이 틀렸다.
“꽤 맛있습니다만?”
네 혀는 진짜 병신이냐? 맛을 자체 제작하더니, 이제는 맛을 자체 왜곡 변형도 하는 거냐?그나마 하륜이 만든 음식은 맛이 없어서 문제지 못 먹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리엔이 만든 음식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잘 못 먹으면 제대로 병원 실려 가거나 정신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음식이었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이걸 무기로 만들어 적에게 먹이면 전쟁에서 바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맛있다고?
마룡 하트 받아 쳐 넣더니, 혀가 맛이 간 건가?
미묘하게 너 참 불쌍하구나, 라고 말하는 레안의 시선이 하륜을 향했다.
요리 대회에서 일등을 한 백호단의 부단장, 바론은 결코 기쁘지 않았다. 뭐랄까, 좀 힘겨운 그런 게 있어야 기쁘지. 이건 그냥 줄 사람 없어서 너 준다는 분위기였다. 실제 백호단의 음식은 그닥 맛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먹을 만한 수준이었다.
“하하. 그래도 저희는 좋아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나머지 팀들은 만든 음식 알아서 먹어서 없애랍니다.”
카엘의 위로하듯 건네는 말에 바론을 포함한 백호단의 시선이 슬쩍 옆을 향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1등을 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도대체 음식을 어떻게 만들면, 먹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할 수 있는 거지? 몇 명은 아예 눈이 풀린 것 같았다.
- 작가의말
좀 짧군요.. 거기다 늦었고..ㅠㅜㅜ
죄송합니다. 보통 늦을 것 같으면 예약을 하는데..ㅠㅜㅜ 오늘은 정말 정신이 없었나 봐요..ㅠㅜㅜㅜ
그래도 잇힝. 오늘 안에는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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