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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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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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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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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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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6화

DUMMY

“후우~.”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린이는 깊은 한숨을 연거푸 뱉으며 마른 세수만 했다.

마음이 정리되질 않나 보다.


“뭔가⋯ 내가 다 망친 것 같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듯 말했다.


“뭘 망쳐? 아무것도 망친 거 없는데.”

“네 말대로 좀 더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생각해 본 뒤에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했어, 너무 감정적으로 저질러버린 느낌이야.”

“어떻게 사람이 참고만 살아, 가끔은 성질대로 한 번씩 확 지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아.”

“확실히 속은 시원하네.”


아린이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런데 아까 누구였어? 그 이승호라는 사람. 너랑 꽤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뭐랄까⋯ 나를 키워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키워줬다고?”

“응, 워낙 어릴 때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랑 살던 때 아저씨가 찾아왔어, 나를 헌터로 키우고 싶다고.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설득했고 나도 한 번 해보겠다고 해서 여명길드에 왔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지.


생각보다 오래된 깊은 인연이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힘들었겠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 아저씨가 많이 신경 쓰고 돌봐주셨거든. 그래서 의지를 많이 했지, 의지할 곳이 아저씨밖에 없기도 했고.”

“⋯설마 그때부터 노린 건가?”


내 의심에 아린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그땐 정말 약하기도 했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 몇 년 동안은 던전에 들어가지도 못했거든.”

“근데 너는 갑자기 왜 찾아온 거야?”

“길드에서 진행하는 무슨 프로젝트라고 때문이라고 했어. 웨펀마스터 헌터를 육성하는 프로젝트. 그 대상으로 나를 골랐대.”


하긴, 어차피 웨펀마스터는 다 F급들이니 그 중에서 한 명만 고르라고 하면 나 같아도 6살이라는 말도 안 되게 이른 나이에 각성한 범상치 않은 아린이를 택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훈련으로 점점 바빠지고 아저씨도 일 때문에 바빠져서 언제부턴가 서로 연락도 하지 않게 됐지만 적어도 어렸을 때 아저씨가 나에게 보여준 호의는 진짜였다고 믿고 싶어. 언제부턴가 다른 마음을 먹은 것 같지만.”


그렇게 말한 아린이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더니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말했던 사진.”

“사진? 무슨 사진?”


아린이가 건넨 낡은 사진 속에는 말 더럽게 안 듣게 생긴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은 부분 염색이라도 한 듯 흑발과 은발이 섞여 있었다.


“이거⋯ 너야?”

“응, 예전에 어릴 때 검은 머리였던 사진 보여준다고 했잖아.”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럼 이 옆에는⋯.”


사진 속 아린이의 옆엔 밝게 웃고 있는 남성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게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응, 아저씨. 같이 놀이공원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거든. 자주 여기저기 데리고 가 주셨었어.”


사진 속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사이좋은 부녀의 사진이라고 해도 누구나 믿을 정도로.

나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아린이가 이승호를 단번에 쳐내지 못하고 왜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연고자 하나 없는 서울에서 헌터가 되기 위한 훈련만을 해온 아린이는 분명 이승호에게 아버지와 비슷한 존재감을 느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소홀한 관계가 됐을지라도 어렸을 때 한 번 각인된 인식은 잘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준호야, 넌 어떻게 생각해?”

“응?”

“아까는 큰소리쳤지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아니, 아무것도 모르겠어. 아저씨가 하려는 일이 정말 나쁜 일 같아?”

“흐음⋯.”


나는 일단은 한 번 상황과 생각을 정리해 입을 열었다.


“내 입장에서 바라본 기준으로만 말하자면 여명길드가 사람들과 헌터를 소모품 취급한다니, 그런 길드를 바꾸고 싶다니, 하는 건 잘 모르겠어. 어디까지가 진짜고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거니까. 진짜로 대의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없는 이야기 만들어서 너를 또 속이려고 하는 걸 수도 있겠지.”

“응.”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나한테 그 사람은 이미 악인이라는 거야. 그 사람이 하려는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한테 있어서 그 사람은 날 위협하고 죽이려고 든 사람일 뿐 다른 건 별로 안 중요해.”


내 말을 들은 아린이는 조금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렇네, 나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건 생각을 못 했어. 너한테 있어서 아저씨는 이미⋯ 내가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결국 나도 나만 생각했다는 거겠지⋯.”

“뭐, 사람마다 입장은 다른 거니까.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냥 눈감아주고 용서하고 예전 같은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아저씨는 반드시 너에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른 죄에 대해 처벌받아야 해. 내가 좋아하는 아저씨는 예전의 다정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지 자기 목적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변해버린 사람한테 옛정 때문에 매달릴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아.”


아린이는 꽤 단호히 부정했다.


“그럼 너랑 나랑 뜻이 맞네. 그건 그러면 됐어, 그런데⋯ 다른 것보다 너 돈 정말 괜찮겠어?”

“⋯역시 그냥 잃기엔 아까운 돈인 거야?”


아린이의 각오를 확인한 나는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솔직히 아까부터 이게 제일 신경 쓰였다.


“그냥 날리기엔 엄청 아까운 돈이지. 하지만 네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시 벌 수 있는 돈인 것도 맞고.”

“혹시⋯ 돌려받을 방법이 있을까?”

“원래 사기꾼한테 털린 돈은 못 돌려받는다고 생각해야 편해.”


내 말에 아린이는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혹시⋯ 그 돈을 받기 위해서 내가 아저씨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끝까지 돕는 편이 나을 수도 있을까? 그, 그러고 싶다는 건 아니야! 다만 나도 큰돈인 건 알겠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만약 너였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해서⋯.”

“으음⋯.”


속에 쌓여있던 걸 싹 쏟아내고 오더니 아린이는 이성을 되찾은 것 같았다.

돈을 위해 원수를 돕는다는 발상은 이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발상일 테니까.

그렇기에 나도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았다.

500억⋯ 정확히는 529억을 위해 이승호와 김지호를 돕는다라⋯.


“응, 충분히 할만한 것 같은데?”

“어, 어⋯?”


내 대답에 아린이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진짜 그 정도야?”

“솔직히 말해서 그게 내 돈이었으면 이것보다 조금 더 극단적인 일이 있었더라도 타협의 여지가 있었을 것 같아.”

“그, 그렇구나⋯.”


아린이는 처음부터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 같지만 너무 의외의 대답이 돌아와 더 혼란스러워했다.

그래서 선택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몇 마디를 추가해줬다.


“다만 그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야기고. 과연 네가 끝까지 그 사람들 곁에 남아서 목적달성을 돕는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너한테 돈을 돌려줄 생각이 있긴 있을까?”

“있지⋯ 않을까?”

“한 번 속여서 털어먹었는데 두 번 못 털어먹을까.”

“에이, 설마⋯ 아니, 설마가 아닌가?”

“설마가 아니지. 괜히 공범만 되고 돈은 못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

“으음⋯.”

“그리고 네가 뭘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느냐도 중요하지, 네가 돈을 원하고 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돈을 택해도 돼. 그런다고 해서 딱히 욕하거나 하지 않을게. 방금 말한 대로 그 돈은 이런 상황에서 타협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액수니까. 하지만 네가 원하는 게 뭐⋯ 좀 유치한 표현이지만 가령 정의 같은 거라면 돈을 포기해도 좋다고 봐, 왜냐면 똑같이 말했듯이 넌 그 정도의 돈을 다시 벌 능력이 충분히 있으니까. 결국 물욕이냐 명예욕이냐는 거지.”


내 말에 아린이는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답을 내놓았다.


“그래, 정했어. 역시 길드 탈퇴할래.”

“나중에 그때 왜 안 말렸냐고 멱살 잡지 마라?”

“응, 괜찮아.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많아봤자 딱히 쓸데가 떠오르지 않아, 내가 돈의 가치를 알고 났을 땐 이미 그 정도 돈을 다시 모아 뒀겠지 뭐, 당장 쓸모도 없는 것 때문에 이런 일의 공범이 될 바에는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끝내버리고 새로 시작할래.”

“쓸모없으면 나 줘. 나한테 절반만 줘도 진짜 잘 쓸 수 있어.”

“너 하는 거 봐서.”


마음을 확실히 정하자 조금은 편해졌는지 아린이는 어느새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다.

S급 던전은 아직도 완전히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워낙 넓은데다 비밀통로도 많아 실종자와 사망자 수색이 계속되고 있었고 또 마석과 부산물, 아이템의 수거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주요 토픽은 S급 던전이 아니라 여명길드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평생을 한 길드에서만 조용히 종사하던 S급 헌터가 아무런 입장 표명도 없이 갑자기 길드를 탈퇴한다고 하니 탈퇴 사유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며 대단히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기 딱 좋았다.


“진짜 세상 어디에나 눈 귀가 다 있구나⋯.”


뉴스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아린이는 아주 조용히 그리고 일방적으로 길드에 탈퇴 의사를 전달했는데 그로부터 30분도 되지 않아 그게 속보로 떴다.

방송국과 언론사 직원 중에 정보 수집 능력이 있는 각성자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 한편 여명길드는 경찰과 헌터관리국의 압수수색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으며⋯.


하지만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나 떠드는 뉴스를 내가 굳이 챙겨보는 건 또 다른 핫토픽인 여명길드의 압수수색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아린이가 길드에 탈퇴 의사를 전하고 바로 다음 날, 어떤 전조도 없이 여명길드는 갑자기 자연발화 하듯 초대형 스캔들이 터지며 경찰과 헌터관리국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었다.

스캔들의 주요 내용은 여명길드 내 일부 경영진과 직원의 수년에 걸친 횡령배임과 같은 비리와 일부 헌터들의 조직적인 범죄행위 등 심각한 일탈 등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게 부자연스러웠다.

여명길드 내부의 누군가와 경찰, 헌터관리국이 손을 잡고 각본을 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셋은 손발이 아주 잘 맞았고 또 거침없었다.


이 스캔들로 인해 여명길드는 큰 피해를 봤다.

길드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고 주가는 더 떨어졌다.

하지만 여명길드 내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면 그건 길드의 생명을 위해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고통스러운 수술처럼 보이기도 했다.

경찰과 헌터관리국은 이승호 전무이사와 그 휘하의 직원과 헌터들을 탈탈 털었다.


아니, 정확히는 터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정황과 증거를 쥐고 공격했다.

나는 이승호가 했던 말 중 적어도 아린이가 필요하다는 말만큼은 진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린이를 잃은 이승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입지는 돈 없고 인맥 없는 일개 회사원으로 순식간에 추락해 길드의 경영권 경쟁에서 도태당했고 반역에 실패한 반역자는 강력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축출당했다.


“뭐, 이 정도면 잘 끝난 건가.”


내가 힘들게 뭘 할 필요도 없이 이승호와 김지호는 한 발 삐끗한 것만으로 완전히 몰락했다.

이승호는 조사에 불응하고 잠적해 도주 중이라고 하는데 뭐, 혼자 새출발호라도 타러 갔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TV를 끄고 일어서려는데 화면 하단에 갑자기 속보 소식이 자막으로 들어왔다.


[이승호 여명길드 전무이사 경기도 인근 모텔서 숨진 채 발견, 경찰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


그리고 속보를 읽은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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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화 +3 24.01.21 3,786 65 14쪽
61 60화 +4 24.01.20 3,872 61 15쪽
60 59화 +2 24.01.19 3,850 62 13쪽
59 58화 +6 24.01.18 3,880 66 15쪽
58 57화 +4 24.01.17 3,965 67 14쪽
» 56화 +2 24.01.16 4,023 69 12쪽
56 55화 +1 24.01.15 4,118 69 20쪽
55 54화 +3 24.01.12 4,121 70 12쪽
54 53화 +2 24.01.11 4,106 67 14쪽
53 52화 24.01.10 4,143 63 14쪽
52 51화 +3 24.01.09 4,251 68 12쪽
51 50화 24.01.08 4,317 70 13쪽
50 49화 +2 24.01.07 4,284 6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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