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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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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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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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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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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4화

DUMMY

“당장 외부에 지원요청 하세요. 대기 중인 S급 헌터까지 전부 다요!”


보스방에서 나온 이소은은 즉시 수정을 이용해 지원을 요청했다.

이대로 남은 공격대의 전열을 다듬어 다시 공략에 나서기에는 피해가 너무 심각했다.

석상의 기믹을 알아냈다고는 해도 파훼할 방법이 없으니 지금은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 마스터, S급 헌터님들은 계속 밖에서 대기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되겠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보스전만 끝나면 레이드도 끝나는데 대기는 무슨 대기!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전부 투입하라고 해!”


공직의 높은 자리에 앉은 양복쟁이들은 겉으로는 나라와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사실 그들이 신경 쓰는 1순위는 자신의 안위고 2순위는 자신의 재산이다.

남은 세 명의 S급 헌터를 대기 시키려는 것도 전략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보호를 요청하려는 일종의 보험개념일 뿐이고 그들의 그런 뻔한 속내에 성질이 난 이소은은 호통을 쳤다.


“쯧, 평생 던전 한 번 들어와 본 적 없는 인간들이 무슨 지휘를 한답시고 앉아서는.”

“진정해~ 왜 괜히 잘못 없는 네 길드원한테 성질을 내나.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안석혁은 씩씩대는 이소은을 말렸다.


“아저씨는 화도 안 나세요?! 던전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건 우린데 왜 지들이 부하 부리듯 판단하고 지시를 내리는 건데요?!”

“화나지, 네 말대로 던전 한 번 들어와 본 적 없는 인간들이 장관이니 위원회니 하면서 으스대는 것도 꼴 보기 싫고.”

“그런데 왜 정부를 옹호하듯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언제 옹호한다고 했어? 난 길드와 헌터가 지금보다 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권한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럼 아저씨도 진작에⋯!”


이소은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안석혁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방법으로는 말고,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법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좋아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파멸적인 경우가 많거든.”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정책 때문에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어요.”

“불합리와 비효율을 다른 불합리와 비효율로 덮어버리는 걸 해결이라고 부르진 않지.”


안석혁의 말에 뜨금한 이소은의 머리가 식었다.


“⋯죄송해요, 아저씨한테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이 문제로 헌터끼리 싸우게 되면 그거야말로 진짜 지는 거야. 놈들이 노리는 것도 우리끼리 싸우게 해서 정작 원인인 자기들한테는 관심을 끄게 만드는 거니까. S급이니 A급이니 하는 유치한 알파벳 놀이는 집어치워, 사회가 생기고 나라가 생겨난 이래 진짜 힘은 언제나 정치적인 힘이었어.”

“맞아요.”


이소은은 자신에게 지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이론과 지식이라도 외우고 이해하는데 단 한 번이면 족했다.

하지만 S급 헌터이자 S급 길드의 마스터로 살아가며 지혜는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천재지만 성인군자는 아니기에 감정과 욕구가 자신의 뛰어난 판단력을 흐렸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보다 저 석상을 어찌할 건지에 대한 해결책이나 생각하자고. 지원 병력이 온다고 해도 아까처럼 당해버리면 괜히 불러서 피해만 늘리는 꼴이니까 말이야.”

“⋯네.”


이소은은 요청한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마법사들과 회의를 열었다.

특정 무기에 반응해 강화되고 약화되는 석상의 기믹을 마법적인 방법으로 파훼할 방법이 있을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안석혁도 안석혁 나름대로 여러 길드의 헌터들과 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저 석상을 상대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을지, 어떤 진을 짜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전술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석상을 상대로 탱커를 앞세우는 방진은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소규모 분대 전술을 채택하는 건 어떨까요? 무예도보통지의 원앙진 같은 방법으로요.”


한양길드의 마스터가 그런 의견을 제시했다.

두정갑을 입은 모습이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무, 무예도 보통지⋯요?”

“그게 뭐죠⋯?”


한양길드 마스터의 의견에 다른 마스터들은 심히 당황스러워했다.

이 상황에 갑자기 조선시대 무예 교범을 언급하니 그럴 만도 했다.

대부분은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이 나날이 쏟아지는 21세기 현대사회에 누가 300년 전 조선의 무예 교범을 읽어봤겠는가.


“무예도 보통지가 아니라 무예 도보 통지입니다.”

“그, 그런데 원앙진이 무슨 진법인지⋯?”


안석혁의 물음에 한양길드의 마스터가 설명해주었다.


“간단히 설명해드리면 원앙진이란 6가지의 무기를 가진 병사들을 한 분대로 묶는 진법입니다. 그 6가지의 무기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고요. 현재 저희에게 필요한 진법이 그런 진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헌터들을 일률적으로 하나의 큰 부대로 묶는 게 아니라 작은 소부대로 나눠 소부대 안에 최대한 다양한 무기를 가진 헌터들을 배치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석상에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말에 다른 길드의 마스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석상은 같은 무기를 사용해 맞서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억지로 자리를 지키며 자신과 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석상에 맞서게 하는 것보다 소부대 내에서 석상과 같은 무기를 가진 사람이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견이 한양길드 마스터가 제시한 원앙진을 사용하는 쪽으로 모였다.

하지만 오리지널 원앙진을 그대로 쓸 수는 없기에 한 분대에 몇 명을, 어떤 무기를 가진 헌터를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한 회의가 길게 이어졌고 그것을 수많은 헌터들에게 전달하고 숙지시키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지원은 오는 데 얼마나 걸린대?”


- 그, 그게⋯ 모든 S급 헌터를 던전에 투입 시키는 걸 설득하는 게 좀 오래 걸려서 방금 막 출발했다고 합니다⋯.


“하⋯ 알았어, S급들만 따로라도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해.”


- 네!


여러 사람과 대화와 의견을 나누다보니 뭐라도 대응책과 준비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휴식하기로 하고 텐트에서 나와 안석혁을 찾아가던 이소은은 걸음을 멈춰 서글픈 눈으로 보스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시키겠어.’


이소은은 모두를 위해 용감히 보스방 안에 남아준 둘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레이드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굳게⋯.


- 덜컥! 쿠구구구구.


“⋯응?”


굳게 다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스방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마, 마스터! 마스터!”

“전투준비, 전원 전투준비!!!”


갑자기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공격대는 거의 뒤집어졌다.

대열도 무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금 전투가 벌어진다면 아까보다 더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뻔했다.

헌터들은 급하게 아무거나 집어든 뒤 임시로 대열을 갖췄고 각 길드의 마스터들은 고민했다.

여기서 싸우는 것보다 그냥 후퇴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 터벅, 터벅.


하지만 문 안에서 나온 것은 석상이 아니었다.


“어⋯ 난데.”


문 안에서 밖으로 나온 물체를 확인한 이소은은 수정으로 무전을 보냈다.


- 예, 마스터! 말씀하세요!


“그⋯ 지원 병력 있잖아.”


- 예! 최대한 빨리 오라고 계속 재촉 중⋯!


“아니, 다시 돌아가라고 해.”


- 예?!


보스방 안에서는 만신창이가 돼 절뚝거리는 아린이와 그녀를 부축한 준호가 제 발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




“하악⋯! 하악⋯! 하악⋯!”

“헉⋯! 헉⋯! 헉⋯!”


나와 아린이는 한참을 말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며 미소를 띤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분명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몇 마디를 나눈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흐흐흐흣⋯!”


아린이는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며 뒤로 벌러덩 넘어가 대자로 뻗었고 나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뒤로 드러누웠다.


“어때? 재밌었지?”


아린이가 물었다.


“응, 재밌었어.”


재밌긴 개뿔, 아주 뒤질 뻔했다.

하지만 그건 싸울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엔돌핀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며 끝없는 쾌락을 선사했다.


“이렇게 상쾌한 거⋯ 오래간만이야⋯ 몇 년 동안 쌓인 뭔가가⋯ 싹 씻겨나간 것 같아⋯!”


아린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행복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쌓인 건 없었는데 그냥 시원해⋯!”


그리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 후두둑⋯.


우린 부서진 석상의 산 위에 누워있었다.

단둘이서 석상을 모조리 격파하고 S급 던전의 보스방을 클리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린이는 전투의 끝까지 백화요란을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끝이 없어 보이던 석상을 끝은 보이는 정도까지 숫자를 줄이는데 성공했고 우린 남은 석상을 다시 하나하나 손수 격파했다.

그래서 아린이는 백화요란으로 마력을 쥐어짜 낸 뒤에도 다시 싸우느라, 나는 그냥 싸우느라 이렇게 지쳐 있었다.


“허억⋯ 허억⋯ 어떻게, 여기서 한숨 자고 갈래? 아니면 나가서 잘래?”

“나 좀⋯ 일으켜 줘⋯.”


겨우 몸을 일으킨 나는 누워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아린이를 일으켜 세워줬다.

아린이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예쁜 얼굴은 여기저기가 붓고 찢어져 있었고 비단 같은 머리카락은 마른 피와 먼지가 엉겨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그런 아린이의 모습이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불가능한 전투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불태워 끝내 승리로 이끈 전사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으⋯ 으윽⋯.”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일어난 아린이는 내게 몸을 맡겨야 겨우 걸을 수 있었다.


- 터벅, 터벅, 터벅.


우린 말없이 공격대를 향해 돌아갔다.

그저 걷고 있을 뿐이지만 아린이는 여러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느라 바빠 보여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준호야.”


그런데 의외로 아린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응.”

“나, 한 발 나간 것 같아.”

“응?”

“전에 말했잖아, 내가 나갈 수 있는 한 발자국이 남은 것 같다고.”

“아, 그랬지.”

“그거, 방금 나아간 것 같아.”


나는 그 한 발자국이 뭐였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백화요란을 사용하며 백여 개의 무기를 동시에 다루는 아린이의 모습에서, 표정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낌새가 나한테까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린이에게 필요했던 건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일 단 한 번의 전투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한 발자국 앞으로 와보니까 알겠어, 여기가 끝이 아니야. 이 앞에 뭐가 또 있어.”

“그만 가면 안 될까, 얼마나 강해지는 건지 슬슬 무서운데.”

“네가 그런 말 하면 곤란한데.”

“나? 나 왜?”

“네가 없으면 난 걷지도 못하는데 그 먼 길을 어떻게 혼자 가?”


아린이는 내게 부축받아 겨우 걷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 빗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뜻을 전했다.

와우, 꽤 로맨틱한데.


“⋯그래, 그럼 가고 싶은 데까지 한 번 가봐, 계속 부축해줄게.”


그 센스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아, 그리고⋯.”

“응?”

“그⋯ 아까 화내면서 때렸던 거 미안해⋯.”

“넌 이제 와서 뭐 그런 걸 다 사과하냐, 됐어. 신경 안 써.”


- 덜컥! 쿠구구구구.


보스방에 들어왔던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은 굳이 수정에 손을 대지 않아도 알아서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스스로 열리는 걸 보니 이번 던전이 진짜 끝났다는 느낌이었다.


“어.”


그리고 나는 열린 문틈 사이로 문 앞에 서 있던 이소은 헌터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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