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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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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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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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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2.2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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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8화

DUMMY

“헥⋯ 헥⋯ 헥⋯ 아이고 힘들어⋯.”


전속력으로 달려 인천항 근처까지 갈 수 있는 1호선 전철에 탑승했다.

도로가 마비되어 차로는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전철은 아직 운행했다.

이 난리통에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시민의 발이 되어주자고 의기투합한 기관사들이 남은 덕분이었다.


“허억⋯ 허억⋯! 헉! 헉!”


중간에 한 번 더 내가 어디로 오면 되는지 상세한 위치가 담긴 문자가 왔다.

연안부두에 와서 새출발호를 찾으란다.

나는 전철에서 내려 또 미친 듯이 달려 2시간 만에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새출발호, 새출발호⋯.”


날도 어두운데 주차장처럼 수십 대의 배가 주르륵 늘어선 부두에서 배 한 척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새출발호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어느 배에선가 반짝하고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새출발하러 오셨어요?”


그 배에 가까이 다가가자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뜸 그렇게 물었다.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박명을 보니 새출발호가 맞긴 맞았다.


“뭐야, 짐도 하나도 없어요? 그러고 가시게? 진짜 급하신가 보네.”


선장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사장님. 예, 지금 막 왔습니다. 예? 예.”


그러곤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바꿔보라네요.”


나는 전화를 바꿔 받았다.


“누구십니까.”

“아이고~ 박준호 씨~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아니, 처음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는 쓸데없이 밝고 친근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전에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저 기억 나시죠? 뜨거워 죽는 줄 알았어.”


⋯⋯? 아, 왜 익숙한가 했더니 기억났다.

예전에 우리 가게를 점거했다가 나한테 뚝배기로 맞은 그 깡패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걱정하실 건 없어요,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냥 박준호 씨는 그 배에 타기만 하면 됩니다.”


배에 타기만 하면 된다니, 말이 쉽지 배를 탄다는 게 뭘 뜻하는 건지 그 의미는 무궁무진했다.


“뭐 드럼통에 시멘트 채워서 바다에 던지려고 그러십니까?”

“아이고! 무슨 그런 살벌한 말씀을! 그냥 공짜 크루저 여행이라고 생각하세요~ 한 5년 정도 대륙에서 어학연수도 하고 문화 체험도 하고 그러고 살면 됩니다. 거기 가면 우리 쪽 애들이 좋~은 호텔도 잡아줄 거고 일거리도 물어다 줄 테니 박준호 씨가 협조만 잘하시면 생활하는데 문제없을 겁니다. 배 이름대로 새 출발 하시는 거지!”


⋯그러니까 중국으로 밀항해서 한국에서 사라지라는 거네?


“참고로 몰래 한국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마시고. 당신 부모 곁에는 우리 애들이 항상 있을 거니까 중국에서 사라지는 즉시 가정방문 합니다.”

“⋯⋯⋯⋯.”


이미 모든 게 계획되고 준비된 판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씁⋯ 근데 얘네 과연 자기들이 얼마나 큰 변수를 떠안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딱 봐도 김지호네 부하들 같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높이까지 연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박준호 씨! 듣고 있죠? 걱정하실 것 아무것도 없어요! 저희 이 업계에서 소문 자자한 전문가입니다, 하하~ 이거 참 나라에서 밀항 자격증 같은 거 발급을 안 해주니 증명을 못 해서 참 답답하네! 아무튼! 중국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 받으면 부모님도 안전하게 모실 테니 편하게 타세요!”


말투를 보니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번 내가 가진 유일한 패를 써보기로 했다.


“⋯부모님과 통화하게 해주십쇼, 무사한지 확인하면 타겠습니다.”

“하하! 박준호 씨! 지금 당신 우리랑 협상할 처지 아니야~.”

“통화 안 시켜주면 안 타요. 이미 죽여서 어디 묻어놓고 타라고 하는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어이, 징얼거리지 말고 타라고. 부모 확 죽여버리기 전에. 지금 장난치는 걸로 보여?”


설렁설렁 웃으며 대화하던 그는 단번에 목소리를 깔더니 위협적으로 굴었다.


“바꾸라고. 나는 너 못 찾을 것 같아? 아, 딸내미 귀엽더라?”

“뭐, 뭐⋯! 그걸 어떻게⋯!”


예전에 가게에 와서 깽판을 치고 있을 때 슬쩍 그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본 기억이 났다.

어린 여자아이 사진이었다.

그래서 딸이겠거니 하고 해본 말인데 제대로 찔린 모양이다.

이런 놈도 제 자식 예쁘다고 배경화면을 딸로 해놓는구나.


“⋯⋯스피커폰으로 바꿨으니까 할 말 있으면 해봐.”


각성자가 자신의 가족을 노린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것이다.

결국 그는 꼬리를 내렸다.


“준호냐?!”

“아빠? 나야, 들려?”

“하하하하! 이야~ 우리 아들 많이 컸다, 부모 납치당할 일도 만들고.”


아빠는 이런 상황에서도 웃으며 칭찬했다.

아빠 성격상 이건 진짜 칭찬이다.


“야, 준호야. 내가 아무리 네 부모라지만 난 네가 밖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른다, 알려고 할 생각도 없고. 너도 성인이니까 네 앞가림은 네가 해야 하지 않겠냐.”


나는 가만히 아빠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하나만 묻자,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묻는다. 지금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든 네가 하고 있는 일, 그거 네가 생각하기에 떳떳할 수 있는 일이냐?”

“⋯⋯⋯⋯.”


아빠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망설이고 주춤한 적은 있지만 가고 있는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진 나는 당당히 대답했다.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조상님들 앞에서도 말할 수 있어.”

“⋯그러냐.”


내 대답을 들은 아빠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30분 뒤에 전화하마.”

“응.”


그 말과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




***




“저, 저한테 왜 그러세요⋯! 전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전 그냥 브로커가 있는 중국 어선까지만 데려다줄 뿐이라고요!”

“당신 대가리가 있을 거 아니야.”

“없다니까요! 자영업 비슷한 거라 저 혼자 하는 겁니다! 그냥 돈만 받으면 아무것도 안 물어보는 게 원칙이에요! 전 아저씨 이름도 모른다고요!”


30분 동안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나는 선장을 족쳐봤다.


“그냥 지금 말해, 나중에 들키면 일 커진다?”

“사실대로 다 말했는데 대체 뭘 더 말하라는 겁니까?! 제, 제가 거짓말로 아저씨 비위 맞출 순 없잖아요!”


사람 붙잡아두고 조사하는 것도 힘든 일이구만.

어휴, 기 빨려.


- 우우우우웅.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한 통 왔다.

이번엔 아빠 번호로 온 전화였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끝났어?”


나는 태평하게 물었다.

아빠는 일반인이다.

행정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연금을 받으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평범한 50대 중년 남성.

서류상으론 그러하다.


“뭐, 대충.”


하지만 아빠는 실제론 군에서 복무했다.

지금은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 특수전사령부 제20특전여단이라는 곳에서.


해병대가 귀신을 잡는다면 20특전여단은 범죄를 일으킨 각성자 잡는 특수부대였다.

지금 그 임무는 헌터관리국이 맡고 있지만 그런 게 없던 예전엔 각성자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무력 집단이 군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20특전여단은 최고의 엘리트 군인으로 편성된 정예부대였다.

부대명이 20특전여단인 이유도 창설 당시 전 군에서 테스트를 통과한 군인이 20명 밖에 없어서라고 하는데 아빠가 그 20명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반인의 몸과 일반적인 무기로 각성자를 제압하기란 극도로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기에 전사율이 매우 높았지만 아빠는 그런 특수부대에서 오랫동안 작전을 수행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그냥 인간 자체가 강한 그런 사람이었다.


“아직 현역이네.”

“이런 양아치들이랑 좀 놀았다고 벌써 그런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지 않나?”

“근데 대체 어쩌다 납치당한 거야?”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헌터관리국 요원을 사칭하더라고. 딱 봐도 각성자는 아닌 것 같아서 의심스럽긴 했는데 상황 파악이나 좀 하려고 가만히 있어 봤지.”


부모님을 금방 찾아내 납치한 걸 보니 사전에 뒷조사 좀 한 것 같은데 20특전여단은 부대원의 신상 자체가 군사 기밀이라 표면적으론 평범한 행정공무원으로 보이게 서류가 꾸며져 있어 군사 기밀에 접근할 정도의 연줄이 없으면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각성자인 나도 못 이기는 아빠를 그 어설픈 깡패 친구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혹시 뭐 알아낸 거 있어?”

“애기들이 까부는 방법이나 알지 입 다무는 방법을 알겠냐? 여명길드랑 김지호 부장이란 사람 이름이 술술 나오던데?”

“음~ 역시나~ 그럴 것 같더라.”

“내가 도와줄 건 없고?”

“혼자 해결해야지 뭐.”

“근데 너도 일단은 이쪽으로 안 올래? S급 던전 위험하잖아.”

“에이, 난 각성자잖아.”

“그래봤자 F급이면서 까불기는.”


할 말이 없네.


“난 할 일이 남은 것 같아서 그래.”

“⋯알았다, 몸조심하고 일 잘 마무리하고. 우린 걱정하지 마, 잘 숨어다닐게.”


그렇게 말한 아빠는 엄마를 바꿔주었고 나는 엄마와도 잠시 통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쓰읍~ 하아~.”


별짓을 다 하는구나.

진짜 지긋지긋하다.


“이 씹새를 어떻게 한담⋯.”


이제 그냥 넘어가기엔 빚을 너무 많이 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




“어떻게 됐어, 탔어?”


회의를 마친 이승호 전무이사가 뛰어들다시피 사무실에 들어와 물었다.


“그, 그게⋯!”


하지만 김지호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 이렇게 질긴 새끼는 살다살다 처음이네.”


온종일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며 회의에 시달리고 쏟아지는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하느라 성질낼 기운도 없는 이승호는 소파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은 채 차분히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충분히 생각을 마친 그는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죽이자.”

“예, 예?!”


그의 말을 들은 김지호는 더욱 식겁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죽이자고. 다른 방법 더 있어?”

“그, 그건 그렇지만⋯.”


이미 숱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둘이다.

하지만 그를 죽이는 건 지금까지의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저흰 끝장입니다.”

“이미 중간만 가는 방법은 없어, 죽느냐 죽이느냐야.”


그를 죽이기 위해선 각성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범죄행위에 각성자가 동원되는 순간 그때부턴 경, 검찰이 아닌 헌터관리국을 상대해야 하기에 이번 납치 건에도 일부러 각성자는 동원하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끝내 이승호는 최후의 방법을 택했다.


“차라리 잘 됐어. 던전 때문에 헌터관리국도 정신없을 테니 타이밍도 딱이지.”

“작업은⋯ 누구에게 맡길까요?”

“그건 내가 생각해둔 사람이 있어.”


평생을 설계하고 건설해온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인생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 이 한 번의 위기만 잘 넘기면 그는 여명길드의 왕이 될 수 있다.

이승호는 자신이 직접 나서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때라고 생각했다.


“넌 아린이 감시나 잘해. 걔가 뭘 알아서 그런 걸 물어볼 애는 아니니까 그 박준호만 잘 처리하면 아직 충분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넘어갈 수 있어.”

“알겠습니다, 작업 날짜는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레이드가 시작된 직후로 하지. 그때면 헌터관리국의 요원들도 예비공격대로 편성되니까 작업하기 훨씬 수월해질 거야. 일이 꼬여도 수습할 기회가 있을 거고.”

“⋯알겠습니다.”


잠시 사무실 안에 적막이 돌았다.

이승호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시선을 깔고 있는 김지호에게 다가가 턱을 들어 올렸다.


“이봐, 이보게! 고개 들어. 큰일 한다는 사람이 이래서 되겠어?”

“아, 그, 그게⋯.”

“마음 단단히 먹고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이 마지막이야. 자네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어? 고작 부장 달고 만족할 거야?”

“아, 아닙니다!”

“이번 S급 던전 레이드에 성공하면 아린이 앞으로 엄청난 액수가 정산될 거야. 그 돈만 있으면 확실하게 우리가 이 길드를 먹어버릴 수 있다고! 이제 자네가 저 자리에 앉아야 할 거 아니야!”


이승호는 전무이사 라는 명패가 올려져 있는 자신의 책상을 가리켰다.


“마, 맞습니다!”

“⋯좋아, 이제야 뭘 좀 하려는 사람 눈빛이구만. 다 잘 될 거야. 공들인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이승호는 흔들리는 김지호의 눈빛을 다잡아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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