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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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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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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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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2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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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177화

DUMMY

“어어어⋯!”

“설마 저게 제일 얇은 끄트머리 부분이었던 거야?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사람들은 점점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탑을 구경하며 웅성거렸다.

뭐, 확실히 탑은 그 크기만으로도 모두의 입을 벌어지게 할 만큼 압권이었다.

처음에 모습을 드러낸 탑의 끄트머리 부분만 해도 엄청나게 크다고 느꼈는데 몸통 부분까지 모습을 드러낸 탑은 아주 지구를 관통할 기세였다.


‘쓰으읍⋯.’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탑에선 관심 끈 지 오래였다.


[???의 두 번째 초대장]


당장 탑보다 더 골칫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대체 뭔데 이거?

아니, 물론 메인 퀘스트 보상이 두 번째 초대장인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하필 이걸 이 타이밍에 줘버린다고?

나한테 왜 이러는데?


“허허허허⋯.”

“뭐, 뭐야⋯ 너 왜 그래, 괜찮아?”


막장으로 치닫는 현실에 뇌가 고장 났는지 짜증이나 공포보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날 지켜보던 미즈키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부드럽게, 하지만 꼭 쥔 미즈키의 손으로부터 두려움이 느껴졌다.

단순 이 사태에 대한 두려움보단 동료가 꺾여버리는, 동료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 응, 괜찮아. 안 미쳤어. 그보다 미즈키, 부탁이 있는데.”

“부탁? 나한테? 뭔데?”


평소 같으면 들어보지도 않고 싫다는 말부터 했을 텐데 지금의 미즈키는 오히려 자신에게 뭐라도 의지해줘서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하아~ 냄새 좋다~.”


미즈키는 내 부탁을 들어줬다.


“⋯진짜 부탁이 이게 다야? 아직 말 못한 거면 지금 말해도 되는데.”

“진짜 이게 다인데?”

“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가 미즈키에게 한 부탁은 별것 없었다.

그냥 맨날 자기 혼자 마시는 차 좀 같이 마시자고 한 것뿐이었다.


“그냥, 네가 차 우릴 때마다 향이 참 좋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 향이 갑자기 생각나서.”


미즈키는 차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차나 막 주워 마시지는 않는다.

미즈키는 일본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가져온 찻잎을 쓴 차만 마셨다.


“좋은 걸 알긴 아는구나?”

“원래 문외한도 좋은 건 딱 보면 아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거 무슨 차야?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이 나네.”


평생 차라고는 미용실에서 티백이나 타 먹어본 게 전부인 나다.

차에 대한 지식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글쎄, 딱히 이름은 없는데. 이거 내가 직접 블렌딩 한 거야. 녹차랑 현미, 재스민을 섞었어.”

“검밖에 모르는 바보인 줄 알았는데 너 의외로 고상한 데가 있구나?”

“헛소리하지 말고 마셔봐.”


- 쪼르륵.


미즈키는 딱 좋게 우러난 차를 내 앞의 잔에 따라주었다.

행동거지나 말투나 항상 우악스럽기만 하던 미즈키는 차를 따를 때만큼은 요조숙녀 같은 기품을 보였다.

언제 다도 같은 걸 배웠나 보다.


- 호로록.


나는 미즈키가 따라준 차를 가볍게 입에 머금고 그 향을 충분히 음미한 뒤 삼켰다.

좋았다.

아주 진하지만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는 않은 기분 좋은 향이 입을 통해 코와 머리까지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 후루룩.


그런 나와 반대로 서연은 펄펄 끓는 차를 원샷 때리곤 잔을 쾅 내려놓더니 미즈키를 빤히 보며 말했다.


“맛있다, 한 잔 더 줘.”

“⋯⋯⋯⋯.”


미즈키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한참 서연을 가만히 응시했지만 차 가지고 쩨쩨하게 구는 것도 체면이 안 선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한잔 더 따라주며 말했다.


“차는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니야, 이번엔 천천히 향을 음미하면서 마셔봐. 나 마실 것도 부족한데 그런 식으로 마시면 더는 못 줘.”

“응, 한번 해볼게.”


서연은 두 번째 잔은 미즈키가 말한 대로 조금씩 입에 머금으며 향을 느끼는 데 집중했다.

애가 상식이 없어 손이 많이 갈 뿐이지 그래도 한 번 가르치면 곧잘 따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안락한 고요 속에서 하늘에서 거꾸로 솟아오르는 탑을 배경 삼아 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가졌다.


“후우~.”


차를 마신 나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기운에 취한 듯 어지럽고 사리분별이 전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 뇌를 확실히 통제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차 한 잔의 여유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좋아, 사고 한 번 쳐볼까.”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사고? 무슨 사고를 치려고?”

“사실 나도 몰라, 사고가 아닐 수도 있고.”


두 번째 초대장을 사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첫 번째 초대장은 서울 한복판에 S급 던전을 생성하는 초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것도 그에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첫 번째 초대장이 S급 던전의 문을 여는 초대장이었으니 어쩌면 이건 저 탑의 문을 여는 초대장일 수도 있겠다~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계속 간만 보다가는 이 맛도 저 맛도 안 될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근거 없는 내 추측일 뿐 결국 초대장을 까보기 전까진 진실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제 와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동안 정우진을 막을 기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을 안 지는 한참 됐고 내가 만약 그때 정신 나간 척하고 아린이와 함께 다짜고짜 정우진을 족쳤다면 마법진을 작동이나 시킬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 모르니까,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라는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방패 뒤에 숨어 정우진이 하고 싶을 걸 마음대로 다 하도록 한참 방치했고 결국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왔다.


‘그래도 명색이 메인 퀘스트 보상이고 이름이 초대장인데 또 좆같은 거 튀어나오겠어?’


그렇다면 이번 한 번이라도 과감해 보자, 괜히 한참 가지고만 있다가 나중에 가서 아니, 이게 이런 거였다고~ 하지 말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냥 당장 일으켜보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지금 당장 두 번째 초대장을 열어보기로 했다.


[???의 두 번째 초대장]

- 열람하시겠습니까?

- [예] [아니오]


첫 번째 초대장은 뭐 열람 그런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있었다.

나는 괜히 또 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전 재산을 걸고 베팅하는 기분으로 예 버튼을 눌렀다.


“⋯⋯⋯⋯.”


내가 예 버튼을 누르자 초대장은 특별한 반응이나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시야에서 휙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장은 그렇게 보였다.

뭐, 첫 번째 초대장도 내가 있던 곳과는 한참 떨어진 서울에서 던전이 열렸으니 지금도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또 호들갑 떨면서 상황을 알려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메시지가 떠 있는 허공에서 찻잔으로 시야를 옮기는 순간이었다.


“⋯⋯⋯!!!”


시야 한쪽 구석에 있어선 안 될 무언가가 보였다.

파란빛으로 일렁이는 일종의 던전⋯같은 문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휙 돌려 그것을 정확히 확인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허리춤의 메이스를 뽑아 전투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서연과 미즈키 쪽도 한 번 살펴봤는데.


“⋯⋯뭐, 뭐야?”


서연과 미즈키는 내가 눈앞에서 엄청난 호들갑을 떨었지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차를 마시고 있는 그 상태로 둘의 행동이 뚝 굳어있었다.


“서, 서연아⋯? 미즈키⋯?”

나는 둘의 이름을 불러도 보고 볼도 툭툭 건드려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번엔 눈을 돌려 창밖을 살펴봤는데 창밖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창문 앞을 날아가던 비둘기가 공중에서 날개를 펼친 채 그대로 멈춰있었고 구름도, 거리의 사람도, 소환되던 탑도,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다.

정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저 던전⋯ 비슷한 것을 제외하고.


- 우우우웅.


던전은 마치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듯 파란 불빛을 일렁이며 내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


초대장을 깐 건 난데, 이런 상황이 닥치니 망설여졌다.

참⋯ 항상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놀라게 하는구나.


“좋아.”


가만히 서서 던전의 불빛과 눈싸움을 하던 나는 서연이 들고 있는 찻잔을 뺏어 남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멈춘 거라면 서연과 미즈키 입장에선 눈앞의 내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일 테니.


-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기다리지 말고 할 일 생기면 해.


그런 간단한 쪽지를 남긴 뒤 나는 던전을 향해 몸을 던졌다.




***




“⋯어두워.”


안에 들어와 보니 던전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사방이 캄캄한, 캄캄하지만 또 주변이 보이긴 보이는, 그런 우주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이거⋯ 전부 바닥이 있는 거지?”


나는 발밑을 내려다보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땅이 있긴 있는 건지 서 있을 순 있는데 그냥 공중에 투명한 막을 밟고 서 있는 기분이라 잘못해서 발을 헛디디면 저 무한한 어둠 속으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가 들었다.


- 사아악.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그래서 이제 어째야 하나.

주변을 둘러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나를 향해 비췄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고 안내하는 것 같았다.

그래, 보이는 거라곤 저거 하나인데 선택지가 있나.

나는 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빛은 점점 가까워지며 커지더니 이내.


- 드디어 만났구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 누구세요⋯?”


- 파아앗!


빛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더 밝게 빛나며 내 시야를 뒤덮더니 곧 사그라들었다.

그 눈부신 빛에 나는 눈을 감았다 떴고 그러자 내 앞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처럼 가벼운 하얀 천을 둘러싼 미형의 남성이 나를 향해 옅은 미소를 띠며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그렇게 사람의 모습을 갖춘 빛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다, 당신은 설마⋯ 신⋯ 같은 건가요?”


신.

우주를 다스리는 초월적 존재.

눈앞의 남자를 본 나는 그가 신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신? 아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신임을 부정했다.


“그, 그럼 당신은⋯ 뭔가요?”

“하하, 글쎄.”


내 멍청한 질문에 그는 잠시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더니 대답을 떠올렸다.


“일단 신은 아니야, 난 그저⋯ 그래, 그저 너희보다 조금 더 아는 게 많고 조금 더 할 수 있는 게 많은 존재. 딱 그 정도로 설명하면 적절하겠어.”


그게 신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신의 말씀에 반박했다가는 불경죄로 지옥에 떨어질까 입을 다물었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저를 여기로 부르신 게⋯ 맞을까요?”

“응? 아, 응! 맞아, 내가 널 여기로 인도했고, 넌 훌륭히 이곳에 당도했지.”


이번엔 초대장이 진짜 초대장으로의 기능을 했다.


“그럼 저는 어떤 이유로 부르신 건지⋯?”


난데 없이 초월적인 존재 앞에 선 내 머릿속엔 의문만이 가득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먼저 뭘 물어봐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머릿속이 각종 의문으로 소용돌이쳤다.


“너무 그렇게 본론부터 들어가려고 하지 마. 당연히 궁금한 게 많겠지, 나도 알아, 이해하고. 그래서 널 부른 거야. 이야기하려고.”


- 파아앗!


그가 손짓하자 허공에서 2인용 테이블이 생겨났다.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더니 내가 앉을 자리의 의자를 빼주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와서 앉아,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말이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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