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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28 07: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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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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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76화

DUMMY

나는, 우리는 말없이 땅에서 솟구치는 끝없는 빛의 장벽을 지켜봤다.

눈부시게 빛나는 빛을 한참 응시하고 있다 보니 눈앞으로 그동안의 일이 환상처럼 삭 스쳐 지나갔다.

물론 뭘 알고 행동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정우진과 이 마법진 때문에 겪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내가 넘겨온 그 긴 고난과 역경이 이렇게 전부 헛수고로 돌아가는 꼴을 직접 눈으로 보니 번아웃이라도 온 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의지가 나지 않았다.


“하아⋯ 절대 실패하지 말라고 했는데⋯.”


막판에 하은이가 거의 떠먹여 주다시피 하는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절대 실패하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는데 그 말을 뭘로 들은 건지 홀라당 실패해버렸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감히 내 입으로는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할 것 같았다.


“야! 너 뭐해! 계속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거야?!”


내가 한참 동안 내 생각 속에 갇혀있을 때 미즈키가 귀따갑게 소리쳤다.


“어⋯어?”

“계속 구경만 할 거냐고!”

“그, 그럼 뭘 어떡해?”

“나도 몰라! 그래도 뭐라도 하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미즈키는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다리를 질질 끌고 절뚝이며 아직 이 마법진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일단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여긴 무려 정우진과 그의 수하가 직접 지키고 있던 곳이다.

마법진의 핵심이 있다면 이곳에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미즈키처럼 특이한 게 느껴지거나 보이는 건 없지만 일단 무작정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 툭.


“응?”


그때, 발에 차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발밑을 내려다보자 나는 미즈키와 요원과의 전투로 생긴 구덩이 속에 있었고⋯ 매우 익숙한 무언가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엎드려 허겁지겁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확실했다.

그것은 이미 마력이 빠져나간 거대한 마석이었다.


“허어⋯.”


그리고 땅을 파면 팔수록 마석의 밑으로, 양옆으로 더 많은 양의 마석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내가 개처럼 땅을 파 마석을 발굴하는 모습을 본 미즈키는 밭의 옆 뙈기로 달려가서는 검을 땅에 푹 박은 뒤 마력을 폭발시켜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여, 여기도 있어⋯!”


그러자 그곳의 땅 밑에도 엄청난 양의 마석이 파묻혀있었다.


- 콰앙!


그리고 그 옆도.


- 콰앙!


그 앞도, 뒤도, 옆도, 전부 마력이 빠져나간 탁한 마석이 출토되었다.


“서, 설마 이 넓은 밭 전체에 마석이 묻혀있는 거야⋯?”


미즈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 파헤쳐 본 건 아니지만 대충 어림잡아도 수십만, 수백만 평은 될 것 같은 이 넓은 밭의 땅 밑에 대량의 마석에 묻혀있을 수도 있다니.

대체 어느 정도의 양일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

거기다 그 많은 양의 마석은, 이미 모두 마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 털썩.


자기도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희망과 의지를 쥐어짜 다시 앞으로 나섰던 미즈키는 이제 완전히 혼이 나가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준호 씨!”


우리가 거의 초상집 분위기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을 때 오주한과 김민주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도 빛의 장벽에 놀라긴 한 것 같지만 표정이 후련한 게 복수를 잘 마쳤나 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우진은⋯?!”


오주한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곱게 누워있는 정우진을 가리켰다.

하지만 나나 오주한이나 좋아할 수는 없었다.

마법진이 작동됐는데 저거 하나 죽인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주한은 몸에서 빛을 내며 어떤 마법을 사용해 다급히 상황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혹시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그래도 마법사니 우리와는 다른 뭔가를 발견해주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가져봤다.


“⋯아니요, 마법진은 이미 완전히 작동됐습니다. 작동을 멈추기 위해선 마법진에 담긴 마력과 비슷한 수준의 마력으로 찍어누르는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오주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론상의 방법을 말하긴 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방법이었고 그냥 정우진의 말대로 이건 더 이상 우리가 발버둥 친다고 어떻게 될 일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결과가 정해진 일이었던 것이다.




***




초대형 마법진은 초대형인 만큼 발동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마법진이 발동한 지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지만 계속 빛이 나는 것 외엔 아직까지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

“⋯⋯⋯⋯.”


그래서 우린 일단 헌터관리국 지부 회의실에 모였다.

마법진의 발동을 막을 수 없다면 마법진이 가져올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회의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말이 회의지 사실상 다 같이 낙담하기밖에 되지 않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모두 격한 전투를 겪어 기진맥진한 탓에 절반 이상이 앉은 채로 기절해있었다.

솔직히 나도 가만히 앉아있으니 몇 번이고 졸다 깼고 서연과 미즈키는 아예 입까지 벌리고 자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대체 뭐가 얼마나 소환되는 마법진인지나 알아야 대비를 하든가 말든가 하는데 뭐가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대책부터 세운다는 게 웃기는 소리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회의실 내에는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제대로 쉬기나 하죠.”

“그게 좋겠군요.”


그에 내가 참다 참다 한마디 하자 오주한도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했다.


“아니, 잠시만요, 아직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는데 그냥 이렇게 끝내시게요?”


그러자 정부 측에서 나온 사람이 태클을 걸었다.

회의를 나누고 아무 헛소리라도 윗선에 보고 해야 하는 그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런 입장까지 헤아려줄 여유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다들 한계입니다. 이렇게 괜히 사람 불러다 앉혀놓는 것보다 차라리 쉬게 하는 게 저 마법진에서 뭐가 튀어나오든 조금이라도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아⋯ 그건⋯ 그렇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자기도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순순히 물러섰다.

다 직무가 있고 입장이 있으니 그런 소리를 했지만 당연한 상식은 있는 사람이었다.


“일어나, 누워서 제대로 자.”

“으어⋯?”

“끄, 끝났어?”


나는 곯아떨어진 둘을 깨워 숙직실에 집어넣고 왔고 조용한 곳에서 따로 오주한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서울 쪽은 어떻대요?”

“초기에 비하면 공세가 많이 누그러든 편이라고 합니다.”

“그럼 지원을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아니요, 적이 줄어든 만큼 아군의 피해도 심각해서⋯ 여전히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선 유의미한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럼 전투는 언제 끝날 것 같은데요?”

“더 이상 추가적인 던전은 생성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현재 생성된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키고 그곳에서 나온 몬스터를 전부 소탕까지하려면⋯ 넉넉잡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진이 완전히 작동하는 데 그렇게까지 걸릴 리는 없겠죠?”

“⋯네.”


서울에 있는 S급들이 전부 이쪽으로 와준다고 하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을 텐데 그게 안 된다니 문제였다.


“그리고 이걸⋯.”

“이건⋯ 마법진 사진이잖아요?”


씁쓸함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오주한이 내게 프린트된 고화질의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법진이 발동되며 나온 빛을 찍은 사진이었다.

나도 직접 봐서 잘 알고 있는 건데 갑자기 이걸 왜 보여주는 건지 의문이었다.


“네, 그런데 한국에서 찍힌 사진이 아닙니다.”

“네?” “이건 미국, 이건 독일과 프랑스 국경에 걸친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마법진이 발동된 게 지금 여기만이 아니라 미국이랑 유럽도 포함이라는 건가요?”

“네, 대규모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 대부분의 헌터와 병력이 전장에 투입돼있는 혼란을 틈타 마법진을 작동시킨 수법 역시 거의 흡사합니다.”

“이걸 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저희만 마법진 작동을 못 막았으면 쪽팔릴 뻔했는데 다 못 막았네요.”

“하하하⋯ 오래전부터 아주 비밀리에 조직적으로 철저히 준비한 것 같으니까요⋯.”


그나저나 인류를 멸망시킬 작정이라도 한 건지 원,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큼지막한 대륙에 마법진을 하나씩 다 박아놨구만.

이쯤 되면 뭘 소환하려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하던 참이었다.


“티, 팀장님! 마법진이 소환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괜히 말했다.

이렇게 빨리 알려줄 필요는 없는데.

나는 누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서연과 미즈키를 두들겨 깨워 옥상으로 올라갔다.

마법진은 워낙 거대해 옥상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그 상태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 대체 뭐 소환하려고 이 지랄을 했는지 한 번 보기나 하자, 이미 인류 멸망까지 각오한 나는 그런 마음으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마법진이 일으키는 짓을 구경했다.


- 쿠우우우우⋯.


땅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이제 하늘을 향해 스멀스멀 상승했고 마치 구름처럼 어느 지점에서 뭉쳐들었다.

그 광경은 우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반인도 가던 길을 멈추고 거리에서, 옥상에서 미어캣처럼 올려다보고 있었다.


“⋯⋯⋯⋯.”


그렇게 얼마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을까, 하늘로 상승한 빛은 이제 어느 정도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은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마법진의 형태였다.

땅에서 하늘로 상승한 빛은 땅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형태의 마법진을 하늘에도 그렸다.


“와아⋯.”

“와아~는 무슨 와아~ 야, 공연 관람해?”


지도로 딱 봤을 때부터 마법진의 규모가 어마어마한 건 알았지만 하늘을 뒤덮는 마법진이 딱 펼쳐지자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모습에 감탄한 내가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자 미즈키가 쏘아붙였지만 멋진 건 멋진 거지 뭐 어쩌겠어⋯.


- 파아아앗!


땅에서 상승한 빛이 하늘에서 마법진을 그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 완전한 형체를 갖춘 마법진은 더 밝은 빛을 내며 동작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직접 보니까 마법진의 형태가 익숙한 게 하은이가 그려준 마법진 예상도 중에 저것과 거의 똑같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


어쨌든 나는 흥미진진하게 마법진이 작동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게 이런 건가,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딱히 절망적이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 쿠구구구구⋯!


“어어⋯!”

“뭔가 나온다!”


그 순간, 하늘에 비친 마법진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저게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소환이 계속될수록 우린 마법진에서 나오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저건⋯?”

“건물⋯ 같은데?”


그것은 아주아주 거대한 탑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물론 그 무엇과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해 마치 하늘에서 산봉우리가 솟아오르는 듯했지만 그것은 확실히 탑이었다.


“탑⋯ 탑이라니⋯?”


아주 거대한 몬스터나 혹은 몬스터 군단 같은 게 소환될 줄 알았는데 탑이 나오니 좀 의외였다.

예상에 전혀 없던 것이 튀어나오니 그냥 당황스러울 뿐이라 오히려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뇌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메인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 헌터관리국의 계획을 밝혀내시오.]


갑자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메인 퀘스트의 완료 조건은 헌터관리국의 계획을 밝혀내는 것.

헌터관리국이 그동안 벌인 모든 짓은 다 밑 작업에 불과했고 최종적인 계획은 결국 저 탑을 소환해내는 것이었나보다.

그나저나 지금 이 상황을 내가 밝혀냈다고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이제 헌터관리국의 최종 계획을 완전히 알긴 안 거니까.

이런 판정은 또 은근 널널하다.


뭐, 어쨌든 그동안 줄곧 신경 쓰이던 메인 퀘스트를 드디어 클리어했다.

궁금해 죽을 것 같던 것의 진실을 드디어 알아냈으니 속이 너무 시원했다.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지만 어쨌든 이거 하나라도 알아내서 참 다행이다.

혼자 그런 후련함을 느끼며 만족하고 있을 때였다.


[보상 - ???의 두 번째 초대장이 지급되었습니다!]


“허어어어⋯.”


그 메시지를 읽은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히드라도 아니고 골칫거리 하나가 사라지자 바로 더 큰 골칫거리가 새로 자라나 버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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