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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설용
작품등록일 :
2016.07.21 13:28
최근연재일 :
2021.02.19 00:41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0,491
추천수 :
988
글자수 :
182,335

작성
21.02.15 19:05
조회
79
추천
1
글자
7쪽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2)

DUMMY

진동. 그건 진동이었다. 성호가 떨림을 느꼈다고 생각한 순간, 땅이 울렸고 지축이 흔들렸다. 이윽고 거대한 그림자가 성호를 집어삼키고 숲의 그늘마저 지배해버렸다.

그 웅장한 형체에 놀람이나 감탄이 아닌, 순수한 공포를 느낀 성호는 뒷걸음질조차 치지 못했다.


[누구냐.]


기괴한 육성이었다. 짧은 물음인데도 불구하고 목소리 수십 개가 섞인 듯한 그 음성은 성호의 전신을 꿰뚫고 이리저리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신성한 목소리다. 성호는 고개를 올려다보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형체의 주인공은 사자 얼굴을 한 날개 달린 짐승이었다. 꼬리는 뱀이며, 개와 독수리의 다리를 가졌다. 영물일까. 괴물일까. 사실 그건 중요치 않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비할 따름이니까.


[멍청한 놈아, 내 친히 인간의 말로 하건만. 말을 못 알아듣는 게냐. 무슨 이유로 내 영역에 발을 디딘 거지?]


사자의 갈기가 휘날린다. 맹수의 안광이 번뜩였다.


띠링!


- 고대의 존재를 조우했습니다.

- 고대 사자 훌리카가 당신을 인식합니다.

- 공격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 방어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 깊은 산의 사신이 당신을 좋아합니다.


‘고대 사자 훌리카!’


성호는 알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등줄기가 차가워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뜻밖의 곳에서 퀘스트의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레이드 보스로만 인식한 몬스터인데, 혼자서 맨몸으로 맞닥뜨렸다.

거기다 놀랍게도 고대 사자 훌리카는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았다. 단순한 짐승이 아닌 지식과 지성이 있는 동물이란 뜻이다.

그런 훌리카는 성호를 벌레 보는 듯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답조차 못 하는 인간이, 감히 내 거처에 발을 내디딘 것이냐아아!]


훌리카가 큰소리쳤다. 유니콘의 깃털 달린 하얀 날개가 펄럭이며 세찬 바람을 동반한다.


‘윽.’


돌풍이 일자 성호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두 팔로 얼굴을 막고 다리에 힘을 줘 날아가지 않게 버텼다.


‘생명력이 벌써 반이나 떨어졌다고?’


한쪽 눈으로 체력바를 확인한 성호는 대경실색했다. 이건 공격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다. 그런데 시스템은 성호의 생명력을 반토막 내려버렸다.


“누, 누군가를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성호는 최대한 존대로 말했다. 다행히 성호의 말이 끝나자 바람이 멈췄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성호는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벼룩만도 못한 인간아. 그 미천한 목소리조차 역하구나. 감히 내 땅에서 누군가를 찾는다고?]

“그, 그렇습니다.”


성호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훌리카는 천천히 일어나 성큼성큼 성호 곁을 돌았다.


[여긴 지고한 영역이며, 신성한 공간이다. 그러니 여기에 누군가 왔다면 이미 내 이빨에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찾는다니. 이보다 역설적인 말이 어딨겠느냐.]

“전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하하,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치고는 현명한 대답이다. 허나 솔직한 건 죽음 앞에선 쓸모없는 것이지. 자아, 어떻게 죽길 바라느냐.]


성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훌리카의 모습이 보인다. 몸엔 뱀 가죽처럼 매끄러운 비늘이 씌어있다. 사자의 피부는 거친 돌처럼 딱딱해 보인다. 눈을 마주 보면 그대로 석상이 될 것 같다.

그보다 훌리카 위에 있는 생명력바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지만 회색바에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성호의 레벨로는 그 체력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성호는 침을 삼켰다.


“누군가를 찾고 죽겠습니다. 제가 여기를 조금만 수색할 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휙-하는 강풍과 함께 성호는 몸의 의지를 잃었다. 정말 엇-하는 순간이었다. 성호는 꼼짝없이 죽었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정확히는 독수리의 발톱에 매달려있었다.


[그게 네 최후의 대답이냐. 우둔하며, 아둔하고, 끝없는 욕망을 가진 멍청한 인간아. 정녕 그게 네 마지막 선택이냐?]


훌리카는 빛이 나는 안광으로 성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르릉-거리는 훌리카의 이빨이 보인다. 튀어나온 어금니에서 찐득찐득한 침이 흘러내렸다.


“살려, 살려주십···.”


성호는 본능적으로 살려달라는 말이 나왔다. 훌리카는 얼굴을 성호에게 들이밀었다. 뜨거운 콧김이 느껴질 정도였다.


[너 자신조차 지배하지 못하는 나약한 놈이 누굴 찾아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미약한 힘과 본능조차 이기지 못하는 정신으로 무얼 하겠다는 것이냐.]

“그건······.”

[인간의 아이야, 내 질문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너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구나.]


훌리카는 성호를 찬찬히 땅에 내려놓았다. 발에 땅을 딛는 감각이 느껴지자 성호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생사여탈권을 남이 쥐고 있단 건 끔찍한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발악조차 하지 않고 남에게 목숨을 건네는 건 더욱 끔찍한 일이다. 이제야 알겠느냐.]

“그렇습니다.”


전신에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게임인데, 분명 게임인데···. 게임 같지가 않다. 현실에 대입되기 때문이다. 너무 현실 같아서···.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리될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못 할 것만 같다.


[자아, 말해 보아라. 누굴 찾는다고?]


여전히 괴이하고 하늘을 긁는 목소리였지만, 아까보다 너그러운 음성이었다. 성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숨기며 의사를 전달했다.


“도적 학센의 부인과 딸을 찾고 있습니다.”


가만히 고민하던 훌리카는 긴 발톱으로 땅을 긁었다.


[얼마 전, 깊은 산 초입에 사악한 기운을 가진 벌레들이 침입했었지.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은 미물들이라 신경 쓰지 않았건만, 그들인가 보구나. 무슨 연유로 부인과 딸을 찾는 것이냐.]

“그들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훌리카는 긴 콧수염을 흔들었다.


[네 말은 진심이나. 네 마음은 거짓이구나.]

“네?”

[한 명은 나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딸은 아직 어리고 젊은 날이 창창하니 딸만은 살려달라.’라며 놈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대며 울었지. 다른 한 명은 어린 딸이었다. 딸은 ‘엄마는 늙고 힘이 없어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라고 손이 닳도록 빌었지. 딸은 ‘자신은 젊고 생생하니 본인은 죽어도 되니 엄마를 살려달라.’라는 말만 반복했었다.]

“······.”

[그런데 너는 지금도 그들을 구하고 나면 네게 돌아올 이득만 생각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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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부 완 마치며... 21.02.19 91 1 1쪽
50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4) 21.02.17 86 1 6쪽
49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3) 21.02.16 82 1 6쪽
»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2) 21.02.15 79 1 7쪽
47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1) +2 21.02.14 90 2 8쪽
46 6화 - 시련의 땅 (8) 21.02.13 89 1 9쪽
45 6화 - 시련의 땅 (7) 21.02.12 83 1 7쪽
44 6화 - 시련의 땅 (6) 21.02.11 83 1 7쪽
43 6화 - 시련의 땅 (5) 21.02.10 84 1 7쪽
42 6화 - 시련의 땅 (4) 21.02.09 80 1 7쪽
41 6화 - 시련의 땅 (3) 21.02.08 81 1 8쪽
40 6화 - 시련의 땅 (2) 21.02.07 83 1 9쪽
39 6화 - 시련의 땅 (1) 21.02.06 77 1 10쪽
38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8) 21.02.05 75 1 13쪽
37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7) 21.02.04 74 1 10쪽
36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6) 21.02.03 81 1 8쪽
35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5) 21.02.02 87 1 7쪽
34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4) 21.02.01 96 1 15쪽
33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3) 21.01.31 96 1 8쪽
32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2) 21.01.30 106 1 12쪽
31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1) 21.01.29 97 1 8쪽
30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7) 21.01.28 104 1 7쪽
29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6) 21.01.27 99 1 9쪽
28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5) 21.01.26 100 1 7쪽
27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4) 21.01.25 94 1 7쪽
26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3) 21.01.22 101 1 8쪽
25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2) 21.01.21 114 1 9쪽
24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1) 21.01.20 110 0 11쪽
23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8) 21.01.19 118 2 9쪽
22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7) 21.01.18 121 2 8쪽
21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6) 21.01.15 125 2 8쪽
20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5) 21.01.14 118 2 8쪽
19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4) 21.01.13 121 2 8쪽
18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3) 21.01.12 125 2 7쪽
17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2) 21.01.11 129 2 8쪽
16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1) 21.01.08 131 1 6쪽
15 2화 - 프레 레이드 (7) 21.01.07 132 2 9쪽
14 2화 – 프레 레이드 (6) 21.01.06 131 2 8쪽
13 2화 - 프레 레이드 (5) 21.01.05 138 2 8쪽
12 2화 - 프레 레이드 (4) 21.01.04 157 2 8쪽
11 2화 – 프레 레이드 (3) 21.01.03 138 1 6쪽
10 2화 – 프레 레이드 (2) 21.01.02 143 2 10쪽
9 2화 – 프레 레이드 (1) 21.01.01 149 2 8쪽
8 1화 - 첫 디딤돌 (7) 21.01.01 158 2 8쪽
7 1화 - 첫 디딤돌 (6) 21.01.01 157 2 8쪽
6 1화 - 첫 디딤돌 (5) 21.01.01 151 2 8쪽
5 1화 - 첫 디딤돌 (4) 21.01.01 171 2 9쪽
4 1화 - 첫 디딤돌 (3) 21.01.01 172 2 9쪽
3 1화 - 첫 디딤돌 (2) 21.01.01 208 2 10쪽
2 1화 - 첫 디딤돌 (1) 21.01.01 260 3 7쪽
1 프롤로그 – 게임 중독 21.01.01 326 2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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