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lack

페이드 아웃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완결

설용
작품등록일 :
2016.07.21 13:28
최근연재일 :
2021.02.19 00:41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0,522
추천수 :
988
글자수 :
182,335

작성
21.02.12 19:05
조회
83
추천
1
글자
7쪽

6화 - 시련의 땅 (7)

DUMMY

적에게 부탁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에게 더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성호는 검을 길게 늘어트렸다.


“부탁?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 내 딸과 아내의 안전을 지켜주겠나?”


도적은 복면을 내렸다. 자상 가득한 얼굴이 드러난다. 자잘한 상처와 뒤틀린 입술은 그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성호는 어이가 없었다.


“싫은데.”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이다. 그의 부탁을 들을 이유도, 지킬 의무도 없었다.


“내 딸만이라도 지켜주게.”

“난 당신 딸과 부인이 누군지도, 어딨는지도 몰라.”

“해골 골짜기에 잡혀있네. 둘을 구해주게.”

“벌써 어려운 부탁 같은데?”

“자네가 모험가라면 알겠지, BK길드라고.”

“BK길드?”


성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BK길드는 와일드에서 가장 큰 세력의 이름이다. BK길드의 이름이 왜 NPC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BK길드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네. 내가 다시 검을 잡은 것도 BK길드의 크라켄이라는 놈 때문이지. 그놈은 내 젊었을 때를 똑 닮았더군. 잔인하고 극악무도하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성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적은 무기를 땅에 버렸다.


“난 그놈을 막을 힘이 없네. 그놈은 죽어도 계속 부활해서 괴롭히네. 부디 내 딸과 부인을 지켜주게. 아니, 안전한 곳에만 데려다줘도 상관없네.”


크라켄이 유저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이다. 유저라는 특성을 이용한 잔인한 짓. 하지만 유저이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성호는 크라켄을 더럽지만 높게 평가했다.


“그렇게 말해도 난 듣지 않아. 너도 알잖아.”


부탁할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자신에게 부탁하겠는가. 하지만 성호는 차갑게 거절하고 검을 세웠다. 당장에라도 베어버릴 기세로.


“어떻게 안 되겠나?”


도적의 눈시울이 붉다. 볼이 파르르 떨린다. 성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보고 위험을 감수하란 소리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구한다 하더라도 나한테 돌아오는 게 없잖아. 거대 세력의 추격을 받으라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어떤가?”


도적은 주위를 둘러보라는 식으로 두 손을 펼쳤다. 성호는 의식하진 않았지만,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가고 싸움은 길어진다. 전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전투를 끝내지 않는 이상, 사상자는 끝없이 나올 게 극명했다.


“지면 지는 거지.”


하지만 성호는 전투가 패배로 막을 내리더라도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자신만 죽지 않으면 된다.


“그럼 자네가 바라는 건 뭐지?”

“돈.”


성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도적은 안타깝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돈은 과거를 청산해서 없네만, 비싼 물건을 구해주겠네. 아니, 어딨는지 알려주겠네.”

“부인과 딸을 구하는 것도 나고, 비싼 물건을 구하는 것도 나라면 이걸 보상이라 부르는 게 맞나?”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일세. 천하제일의 명검이지.”

“천하제일의 명검?”

“밑져야 본전 아닌가. 이 전투에서도 승리하고 좋은 검도 얻고.”

“당신은 얻는 게 뭐지?”


그 물음에 도적은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 성호는 미친 사람을 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도적은 성호를 신경 쓰지 않고 웃어 재꼈다.


“내 집사람과 딸의 안전이지. 그게 다네. 내 죽음으로 그게 가능하다면.”


한참을 웃던 도적은 피 묻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말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성호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왜 하필 나지?”

“왜 하필 자네냐고?”

“그래. 궁금해.”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우연일세. 우연히 자네와 싸웠고, 우연히 자네가 강했네. 그리고 우연히 내 아내와 딸이 위험에 빠진 상태네. 그러니 이 모든 게 우연 아니겠는가.”

“우연이라···. 그렇게 표현하는 당신은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운명이면 어떻고, 우연이면 어떤가. 뭐가 달라지나? 자, 자네의 선택만 남았네. 내 부탁을 들어줄 텐가.”


성호는 생각에 잠겼다. 도적의 부탁은 언어도단이다. 들어선 안 되는 퀘스트다. 받으면 곤란해지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갈등에 휩싸인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거절해야 옳지만,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이 불편한 마음. 더글라스에게도 느꼈던 감정이다.


‘젠장.’


입술을 깨물었다. 싫다. 이런 감정이 생각을 휘젓는 게 싫다. 짜증 난다. 단순히 게임인데, 사람의 감정까지 건드린다. ‘전쟁세대’였다면 느낄 리 없는 감정인데 말이다.


한참의 고민. 작고의 시간. 긴 침묵.


성호는 등을 돌렸다.


“천하제일의 명검이라는 말. 책임져야 할 거야.”


요즘 들어 책임지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일종의 회피기재이자 책임 전가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더라도 본인은 어쩔 수 없었다는 걸 합리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도적은 그저 웃었다.


“죽은 사람이 무슨 책임을 지겠나. 선택은 자네가 한 것을.”


도적의 몸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띠링!


- 서부의 도적, 학센을 처치하셨습니다.

- 알 수 없는 지도를 획득하셨습니다.

- 검은 학살자, 학센의 커틀라스를 획득하셨습니다.

-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아이템 확인.”


「알 수 없는 지도


명칭이 적히지 않은 지도다. 무슨 물건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지도 아래에는 ‘혼자서’라는 말이 적혀 있다.

수량 : 1

무게 : 0.1

옵션 : 무」


「검은 학살자 : 내구도 37/40. 공격력 35-36


흑요석 원석으로 만든 도검이다. 스트링산의 기운이 담겨있으며, 손잡이는 은을 사용해 광택이 오랜 기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 로톤의 대장장이 해머튼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도검으로 좋은 내구력과 높은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무게 : 20

추가 능력치 : 힘+15, 지능+15,

사용 제한 : 40레벨 이상, 힘 40 이상, 민첩 20 이상

옵션 : 적에게 피해를 줄 시 일정 확률로 출혈 상태를 일으킴.」


검은 학살자는 늑대 장검보다 좋은 도였다. 물론, 성호는 도를 사용해 본 적이 적었지만 그래도 무리해서 늑대 장검을 사용하는 것보다 나았다.


‘상황에 따라서 써야겠어.’


좁은 공간에서 싸울 땐, 검은 학살자가 좋았다. 성호는 아이템을 갈무리하고 전장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의 대장이 죽었다! 무기를 버려라!”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페이드 아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공지 오후 7시 5분 21.01.02 89 0 -
51 1부 완 마치며... 21.02.19 92 1 1쪽
50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4) 21.02.17 86 1 6쪽
49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3) 21.02.16 82 1 6쪽
48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2) 21.02.15 81 1 7쪽
47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1) +2 21.02.14 91 2 8쪽
46 6화 - 시련의 땅 (8) 21.02.13 89 1 9쪽
» 6화 - 시련의 땅 (7) 21.02.12 84 1 7쪽
44 6화 - 시련의 땅 (6) 21.02.11 84 1 7쪽
43 6화 - 시련의 땅 (5) 21.02.10 85 1 7쪽
42 6화 - 시련의 땅 (4) 21.02.09 80 1 7쪽
41 6화 - 시련의 땅 (3) 21.02.08 81 1 8쪽
40 6화 - 시련의 땅 (2) 21.02.07 83 1 9쪽
39 6화 - 시련의 땅 (1) 21.02.06 78 1 10쪽
38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8) 21.02.05 75 1 13쪽
37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7) 21.02.04 74 1 10쪽
36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6) 21.02.03 82 1 8쪽
35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5) 21.02.02 87 1 7쪽
34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4) 21.02.01 99 1 15쪽
33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3) 21.01.31 96 1 8쪽
32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2) 21.01.30 106 1 12쪽
31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1) 21.01.29 99 1 8쪽
30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7) 21.01.28 106 1 7쪽
29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6) 21.01.27 99 1 9쪽
28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5) 21.01.26 101 1 7쪽
27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4) 21.01.25 96 1 7쪽
26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3) 21.01.22 102 1 8쪽
25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2) 21.01.21 114 1 9쪽
24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1) 21.01.20 111 0 11쪽
23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8) 21.01.19 118 2 9쪽
22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7) 21.01.18 122 2 8쪽
21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6) 21.01.15 126 2 8쪽
20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5) 21.01.14 118 2 8쪽
19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4) 21.01.13 121 2 8쪽
18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3) 21.01.12 125 2 7쪽
17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2) 21.01.11 129 2 8쪽
16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1) 21.01.08 131 1 6쪽
15 2화 - 프레 레이드 (7) 21.01.07 132 2 9쪽
14 2화 – 프레 레이드 (6) 21.01.06 131 2 8쪽
13 2화 - 프레 레이드 (5) 21.01.05 138 2 8쪽
12 2화 - 프레 레이드 (4) 21.01.04 158 2 8쪽
11 2화 – 프레 레이드 (3) 21.01.03 139 1 6쪽
10 2화 – 프레 레이드 (2) 21.01.02 143 2 10쪽
9 2화 – 프레 레이드 (1) 21.01.01 149 2 8쪽
8 1화 - 첫 디딤돌 (7) 21.01.01 159 2 8쪽
7 1화 - 첫 디딤돌 (6) 21.01.01 157 2 8쪽
6 1화 - 첫 디딤돌 (5) 21.01.01 151 2 8쪽
5 1화 - 첫 디딤돌 (4) 21.01.01 171 2 9쪽
4 1화 - 첫 디딤돌 (3) 21.01.01 173 2 9쪽
3 1화 - 첫 디딤돌 (2) 21.01.01 210 2 10쪽
2 1화 - 첫 디딤돌 (1) 21.01.01 260 3 7쪽
1 프롤로그 – 게임 중독 21.01.01 329 2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