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드 아웃

프롤로그 – 게임 중독

프롤로그 – 게임 중독

일정한 박자에 맞춰 들리는 터치음.

한 학생이 고개를 들어 교탁 앞에 서 있는 중년을 바라보았다.

중년은 머리가 희끗희끗할 정도로 교단에 오래 선 교수였다. 그는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학자였는데, 학생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저런 인간을 싫어했다. 고상한 척, 높은 자리에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 뚜렷한 주관도 없으면서 짖어대는 휘황찬란한 말들, 어떤 말을 해도 주름 하나 변하지 않는 여유로운 표정.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단조로운 종소리가 울리자 성호는 가방에 책을 집어넣었다.

학교를 자퇴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와 더불어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빚더미에 앉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자금을 빌려 대학을 다닐 수 없었다. 그나마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이 있었기에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었다.

‘어디 나가셨나.’

집 안은 썰렁했다.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바로 책상 위에 놓인 택배 상자를 뜯었다. 하얀 박스에 동봉된 물건은 은빛이 감도는 세련된 고글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컴퓨터를 켜고 고글을 연결하자 쿨럭이는 부팅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윽고 오래된 컴퓨터답게 먼지를 내뿜었다. 고글을 머리에 쓰자, 눈앞이 캄캄해지며 적갈색 토양으로 뒤덮인 고원이 드러났다.

붉은 늑대가 그려진 깃발 아래, 에메랄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반기고 있었다.

[와일드, 혹독한 야생에 온 걸 환영한다. 모험가여.]

그때였다. 게임 세계로 넘어가려는 도중, 거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삼촌 왔어! 나와서 과일 먹어!”

곧 명절이라 삼촌과 그의 딸이 미리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성호는 무시했다. 삼촌이라는 사람은 본 지 오래였고, 그의 딸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임 때문에 친척을 무시한다···. 얼마나 우스울까? 하지만 현실은 갈증의 연장선이었고, 가상은 그 갈증을 해소할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들이 성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성호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의말

게임 위주로 진행되는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나날되길 바랍니다!

추천, 댓글, 선작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