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lack

페이드 아웃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완결

설용
작품등록일 :
2016.07.21 13:28
최근연재일 :
2021.02.19 00:41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0,535
추천수 :
988
글자수 :
182,335

작성
21.02.08 19:05
조회
81
추천
1
글자
8쪽

6화 - 시련의 땅 (3)

DUMMY

황당함의 연속이다. 처음엔 여기사의 참견에 황당했고,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여기사의 말에 당황했다.


“지금 무슨······.”

“아이고, 안 됩니다. 기사님, 저런 은혜도 모르는 모험가랑 함께라뇨. 그냥 저희는 여기사님만 있으면 됩니다.”


상단 주인이 여기사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여기사는 단호했다.


“저 모험가분이 안 가면 저도 안 갑니다.”


상단 주인은 이마에 깊은 주름을 켜고 성호를 바라봤다. 마치, 성호가 모든 원흉이라는 듯. 하지만 그는 이내 어쩔 수 없이 성호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했다.


“부탁합니다, 모험가님. 저희랑 함께하실 수 없겠습니까? 스트링산만 넘게 도와주십시오. 사례는 두둑이 하겠습니다.”

“저희를 지켜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상단 식솔들과 경호원들도 부탁했다.


“잠시만요.”


성호는 더 참지 않았다. 여기사의 팔을 잡아 마차 뒤로 끌고 갔다. 여기사는 갑자기 끌려가자 꺅-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성호는 그보다 더 완강했다.

뒤까지 끌려온 그녀는 손목을 뿌리치며 말했다.


“왜 그래요?”

“당신 뭔데요?”

“그러면 당신은요?”

“뭘 ‘당신은’이야. 대체 왜 나한테 시비냐고요. 같은 유저라며.”


성호가 매몰차게 말했지만, 여기사는 더 까칠했다.


“제가 언제 시비를 걸었는데요?”

“물귀신이에요? 아니면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왜, 내가 당신한테 빌빌 기기라도 해야 합니까? 그게 아니면 서로 가던 길 곱게 가자고요.”

“당신 태도가 마음에 안 든 것도 있고요.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안 도와주고 그냥 가는 것도 문제예요.”


그렇게 말하는 여기사의 얼굴은 신념이 가득했다. 마음에 안 든다. 이 여자.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다. 확고한 의지에 찬 면상. 지독하다고 하면 할 수 있지만, 다른 의미에선 정의롭고 우뚝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요, 당신 말대로 이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칩시다. 근데 왜 내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까?”

“당신 도덕 교육도 안 받았어요? 왜 당연한 걸 물어요?”

“그건 당신의 기준인 거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잖아.”

“기준이 다른 것도 정도가 있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본적 도덕관념은 있을 거 아니에요.”


이대로면 끝이 나질 않는다. 성호는 이를 악물고 화를 냈다.


“이 사람들 도와줘봤자 얻는 게 뭔데? 무슨 가치가 있는데? 어떤 만족을 얻는데? 경험치? 아이템? 우호도? 죽을 수도 있는 마당에 내가 게임에서 왜 이딴 걸 따져야 하는데!”


게임은 게임이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아니면 끝이다. 얻어갈 수 있는 건 얻어가되, 아닌 건 아닌 거다.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달랐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예요! 당신의 그 생각! 그 태도! 모든 게! 결국, 당신이 말하는 가치와 만족이라는 게 모두 본인을 위한 거니까!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안 하니까! 그게 문제라고요!”


말을 끝낸 여기사는 씩씩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


성호는 침묵했다. 더 이상의 논쟁은 의미 없었다. 이 이상 화를 내봤자 힘이 드는 건 본인이고, 꺾이지 않는 건 이 사람이다.

길고 긴 침묵 끝에 성호는 백기를 들었다.


“좋아. 당신 말대로 이 사람들을 도와줄게요. 그런데 내가 얻는 것 하나 없이 그냥 죽는다면 모든 건 당신 책임입니다.”

“좋아요. 절 믿고 따라오세요.”

“그 말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겁니다.”


성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단 주인과 경호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



“전력은?”

“충분합니다. 기습으로 운 좋게 셋을 죽였습니다. 다음 기습에 무조건 무너질 겁니다.”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야영지에서 한 남자가 그루터기에 앉아있었다. 남자 앞에는 두건을 쓴 도적이 고개를 조아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작전은?”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잘 익은 생선을 뜯었다. 바사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닥불의 아지랑이가 타오르듯 춤을 췄다.

도적이 입을 열었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스트링산 입구를 지나 고들 산맥과 이어지는 기로에 도착했을 때 시작합니다. 먼저 마차에 불화살을 쏩니다. 당황한 그들은 뒤로 물러나려고 하겠지만, 고들 산맥으로 가는 길은 하나. 퇴로도 하나입니다. 미리 인원을 배치해 퇴로를 막고 양옆 나무 사이에서 기습합니다.”

“예정은?”

“오늘 기습으로 앞 마차가 반파됐으니 수리하고 출발한다 치더라도 내일 점심쯤에 출발할 겁니다. 그러면 스트링산까지 반나절. 내일 저녁쯤 스트링산 초입에 도착할 거고요. 그들이 스트링산 입구를 지난다고 하면 날을 새고 아침 일찍 출발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이틀 뒤, 최종 계획을 실행합니다.”

“변수는?”

“여기사가 한 명 있었는데, 아군의 사기를 증진하는 스킬을 쓰는 것 같습니다. 궁병 둘을 그녀에게 붙여서 쉽게 나서지 못하게 할 겁니다. 그녀만 주의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리 똑똑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좋아. 길드에 누가 되지 않게 하라고. 물건만 뺏으면 돼.”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돈 받은 만큼 합니다. 그리고 워낙 돈을 많이 주셔서.”


도적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비볐다. 남자는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부족하다는 말은 하지 마. 일 년은 놀고먹을 돈을 줬으니까. 그럼 마무리하고 이틀 뒤에 보자고. 참, 물건은 바로 가지고 와. 이상한 데로 가져가는 순간, 네 도적단도 그렇고 네 딸도 위험해질 테니까.”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도적은 잘 익은 벼 마냥 허리를 숙였다. 남자의 형체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



사건이 일단락된 후, 성호는 마차를 수리하는 인원을 빼고 상단 사람들과 함께 야영지를 꾸렸다.

그들은 가져온 재료로 요리하고, 잠잘 공간을 만들었다. 다행히 행낭이나 모포 같은 물건들은 모두 무사해 간이 야영지를 짓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요, 받아요. 안 먹어요?”


성호가 모닥불 앞에서 가만히 불을 쐬고 있자 여기사가 다가와 죽을 건넸다. 성호는 건성으로 그릇을 받았다. 여기사는 입맛을 다시며 성호 옆에 앉았다.


“아직도 삐져 있어요?”

“삐지긴 누가 삐졌답니까? 그리고 당신 몇 살이에요?”

“게임에서 나이가 중요해요?”


여기사가 피식 웃었다. 성호는 퉁명하게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은 건데요?”

“좋아요. 알려줄게요. 스물셋이에요.”

“좋을 때다. 젊네.”


여기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당신은요?”

“스물셋.”

“아니, 젊긴 뭘 젊어요! 동갑이면서!”


여기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입을 내밀었다.


“동갑이면 젊다고 못하나.”

“당신 계속 그렇게 나올 거예요?”

“뭐가요.”

“또, 또. 이봐. 이 자존심. 으휴, 남자들은 꼭 이렇다니까.”

“성차별적인 발언하지 말고, 귀찮으니까 다른 데 가세요.”

“아, 예. 저도 싫다는 사람 귀찮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참, 이름이 뭐예요?”


여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알아서 뭐하게요.”


그 대답에 여기사는 성호의 두 눈을 째려보았다. 성호는 대답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윌.”


그제야 여기사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기 전에 뒤돌아서 말했다.


“저는 레이첼이에요. 잘 부탁해요. 윌 씨.”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며 상단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다가갔다. 성호는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다시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페이드 아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공지 오후 7시 5분 21.01.02 89 0 -
51 1부 완 마치며... 21.02.19 92 1 1쪽
50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4) 21.02.17 87 1 6쪽
49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3) 21.02.16 82 1 6쪽
48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2) 21.02.15 81 1 7쪽
47 7화 - 고대 사자 훌리카 (1) +2 21.02.14 91 2 8쪽
46 6화 - 시련의 땅 (8) 21.02.13 89 1 9쪽
45 6화 - 시련의 땅 (7) 21.02.12 84 1 7쪽
44 6화 - 시련의 땅 (6) 21.02.11 84 1 7쪽
43 6화 - 시련의 땅 (5) 21.02.10 86 1 7쪽
42 6화 - 시련의 땅 (4) 21.02.09 80 1 7쪽
» 6화 - 시련의 땅 (3) 21.02.08 82 1 8쪽
40 6화 - 시련의 땅 (2) 21.02.07 83 1 9쪽
39 6화 - 시련의 땅 (1) 21.02.06 79 1 10쪽
38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8) 21.02.05 76 1 13쪽
37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7) 21.02.04 74 1 10쪽
36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6) 21.02.03 82 1 8쪽
35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5) 21.02.02 87 1 7쪽
34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4) 21.02.01 99 1 15쪽
33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3) 21.01.31 97 1 8쪽
32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2) 21.01.30 106 1 12쪽
31 5화 - 산적대장 카를로 (1) 21.01.29 99 1 8쪽
30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7) 21.01.28 106 1 7쪽
29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6) 21.01.27 99 1 9쪽
28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5) 21.01.26 101 1 7쪽
27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4) 21.01.25 96 1 7쪽
26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3) 21.01.22 102 1 8쪽
25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2) 21.01.21 114 1 9쪽
24 4화 – 약탈의 지방, 로톤 (1) 21.01.20 111 0 11쪽
23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8) 21.01.19 119 2 9쪽
22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7) 21.01.18 122 2 8쪽
21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6) 21.01.15 126 2 8쪽
20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5) 21.01.14 119 2 8쪽
19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4) 21.01.13 121 2 8쪽
18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3) 21.01.12 125 2 7쪽
17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2) 21.01.11 129 2 8쪽
16 3화 - 사라진 점성술사 (1) 21.01.08 131 1 6쪽
15 2화 - 프레 레이드 (7) 21.01.07 132 2 9쪽
14 2화 – 프레 레이드 (6) 21.01.06 132 2 8쪽
13 2화 - 프레 레이드 (5) 21.01.05 139 2 8쪽
12 2화 - 프레 레이드 (4) 21.01.04 158 2 8쪽
11 2화 – 프레 레이드 (3) 21.01.03 140 1 6쪽
10 2화 – 프레 레이드 (2) 21.01.02 143 2 10쪽
9 2화 – 프레 레이드 (1) 21.01.01 150 2 8쪽
8 1화 - 첫 디딤돌 (7) 21.01.01 159 2 8쪽
7 1화 - 첫 디딤돌 (6) 21.01.01 157 2 8쪽
6 1화 - 첫 디딤돌 (5) 21.01.01 151 2 8쪽
5 1화 - 첫 디딤돌 (4) 21.01.01 171 2 9쪽
4 1화 - 첫 디딤돌 (3) 21.01.01 174 2 9쪽
3 1화 - 첫 디딤돌 (2) 21.01.01 210 2 10쪽
2 1화 - 첫 디딤돌 (1) 21.01.01 260 3 7쪽
1 프롤로그 – 게임 중독 21.01.01 329 2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