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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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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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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0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3.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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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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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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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장 좋은 이야기(1)

DUMMY

어두운 밤.

달빛과 별빛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햇빛에 비할 수 없는 빛들은 길을 비추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길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기에 자칫하면 발을 잘못 디뎌 험한 꼴을 당하기 십상이었고, 길이 조금 복잡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엉뚱한 곳을 향해갈 수도 있었다.


등불 같은 것이 있다면 조금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해가 비추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등불을 들어보아도 보이는 거리가 대단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해가 지면 대다수 여행자는 길을 쉬어가기 마련이었다. 허나 매사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었고, 여기에도 그러한 예외에 속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제길, 생각보다 빨리 해가 졌잖아?”


끼릭

화악


투덜거리면서 허리에 걸어둔 등을 꺼내어 불을 붙인 사내, 아레타는 등을 높이 들어서 앞길을 비추었다. 그러자 등불이 작은 빛으로 적게나마 주변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있던 산행으로 인해 흙먼지가 가득 묻은 흉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어서 그가 발목에 찬 보호대가 눈에 들어왔다. 흉갑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상태의 보호대를 본 아레타는 미간을 찌푸리며 발끝부터 시작해서 그 앞으로 천천히 시선을 던졌다. 이윽고 좁고 거친 산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 이곳을 벗어나긴 글렀군. 그냥 충고를 들을 걸 그랬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은 아레타는 산을 오르기 전에 만났던 이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딸랑딸랑


“여행용 식량과 물을 한달치, 그리고 이 모포와 비슷한 걸로 하나 주시겠소?”

“알겠습니다.”


아레타의 말에 모포를 힐끗 쳐다본 가게 주인은 두말하지 않고 주문받은 물품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이 움직이는 걸 본 아레타는 잠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한 방책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의미 없음을 드러내던 눈은 곧 빛을 발하며 흥미를 드러냈다.


터억


“여기 있습니다. 이 모포는 처분해드릴까요? 그러시면 약간은 깎아드릴 수 있습니다만.”


어느새 주문받은 물건을 모두 준비해서 탁자에 올려둔 가게 주인은 아레타가 올려놓은 낡은 모포를 집어 들며 그리 물었다. 그에 아레타는 시선을 돌려서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주시오. 아, 그런데 하나 물어봅시다.”

“뭡니까?”

“칼레도 산길, 토사 붕괴로 막혔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레타가 말끝을 흐리며 곁눈질로 벽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에 가게 주인은 아레타가 무엇을 묻고 싶은 건지 금세 눈치 채고 입을 열었다.


“아아, 분명 2년 전에 있었던 사고로 막혔었죠. 다행히 지난달부터 다시 통행이 가능해졌습니다.”

‘운이 좋았군.’


기존에 생각했던 경로보다 조금 더 단축할 수 있을 거 같자 아레타는 내심 기뻐하며 좋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기쁨은 조금 일렀던 모양이었다.


“손님, 나쁜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쪽으로 넘어가실 거면 오늘은 마을에서 쉬고 가세요.”

“음?”

“산길이 열리기는 했지만 토사로 막히기 전과 비교하면 길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열린 길로 가시면 오늘이 가기 전에 산을 넘기 힘드실 겁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부근 영주가 보수를 했으면 적어도 전과 같은 수준은 되어야 정상일 텐데?”


가게 주인이 아레타에게 건넨 말은 그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길을 정비하는 건 보통 영주고, 영주가 손을 대었다는 말은 그 길이 영지에 유용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길을 만들며 전보다 못하게 만들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주요? 그 대단한 분이 그랬다면 그럴 리가 없겠죠. 저 길은 이 마을에서 남는 손을 모아서 다시 정비한 겁니다. 괜히 2년이나 걸렸겠습니까. 그나마도 신전에서 나오신 분들이 손과 머리를 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아.”


가게 주인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던 아레타는 그제야 전후사정을 깨닫고 탄식이 음성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영주는 칼레도 산길을 다시 뚫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2년이나 걸린 걸 보면 너무 뻔한 일이었군그래.’


고작 산길 하나 다시 정리하는 데 2년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걸렸다. 마을 단위라면 그것도 빨리했다고 할 수 있지만 영지 단위로 보면 터무니없이 오래 걸렸다 할 수 있었다.


“크흠, 미안합니다.”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에 아레타의 입에서 이유 모를 사과가 나왔다. 자연 가게 주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손님께서 미안해하실 일이 무어 있으십니까? 이렇게 대량으로 팔아주시는데요. 거기에 신전에서 오신 분이죠? 신전에는 감사할 뿐입니다. 길을 정비하는데 필요한 인력과 감독할 분도 따로 보내주셨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 곳도 이곳에서 일주일은 걸리는데 그래 주시다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크, 크흠. 그, 그렇군요.”


가게 주인의 말에 아레타는 그가 입은 흉갑에 왼쪽에 새겨진 천칭 문양을 슬쩍 내려다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신전에서 오신 분들이라면 이 마을 누구도 박대하지 않을 겁니다. 이곳에서 하루 쉬고, 내일 산길을 오르도록 하세요.”


재차 권하는 가게 주인의 말에 아레타는 두 눈이 흔들리며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열린 입에서 나온 말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 말은 고맙습니다만......”


입을 열기는 했지만 적당한 말을 떠올리지 못한 아레타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굳이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은 아레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성일까지 수도로 가야 합니다. 일정이 상당히 촉박하니 그러기 힘들 거 같네요.”

“성일까지요?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부디 길 조심하시고, 해가 지면 무리하게 가지 마시고 중간중간에 마련해둔 쉼터에서 하루 쉬고 가세요. 짐승들이 오지 않게 마련해둔 야영지 터가 몇 군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겠습니다.”

“예, 인연이 닿으면 뵙겠습니다.”



***



“넘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 비춰진 길을 보며 아레타는 안타까움을 가득 담아서 중얼거렸다. 걱정과 달리 토사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구간은 분명 걷기 수월했다. 때문에 지레 겁먹고 기다리거나 돌아가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건만, 그 판단은 일렀다고 하듯 곧 길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복구했다고 하지만 이래서야 그전에 있던 토사가 얼마나 심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결국 점점 느려지기 시작한 걸음은 본래 예정했던 일정,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벗어난다는 일정을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드러내며 그를 해진 산속에 놓아두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이 이상 진행하는 건 매우 위험했다. 전에도 한번 지난 적이 있는 길이지만 그건 길이 막히기 전이었기에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나아간다는 선택 매우 위험했다. 때문에 아레타는 아쉬워하면서도 가게 주인에게 들었던 야영지 터를 찾기 시작했다.


“으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야영지 터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껏 발견한 야영지 터에는 이미 선객이 있음을 알리는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산길을 가는 이가 멀찍이서 불빛을 보게 되면 어떠한 생각이 들까? 단순히 어두운 가운데 보인 빛이라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 빛이 왜 나오는지 따져보며 머리를 굴리며 경계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는 꺼릴 것 없는 이들이라면, 후자는 모종의 이유로 다른 이들을 경계해야 할 이들이었다. 그리고 보통 아레타는 전자에 속하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후자에 속하고 있었다.

‘별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신전장님이 말씀하신 걸 생각하면 주의해서 나쁠 건 없겠......지?’

“다른 곳을 찾아볼까. 선객에게 피해를 끼칠 수야 없지.”


아무도 없음에도 굳이 입 밖으로 말을 내어 중얼거린 아레타는 괜한 걱정이 아니라는 듯 두어 번 고개를 주억거린 후 천천히 불빛을 비켜나도록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어라, 저기서 안 쉬나?”

“이러면 점점 더 의심이 가는데요.”

“확률이 올랐으니 좋다고 하는 게 낫지 않겠냐?”

“이런 구린 일, 보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좋다고 하긴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적당히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 어둑어둑한 산길에서 용케 아레타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으며 주시하던 두 사람은 이내에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입을 닫고 아레타를 따라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 찾았.....! 크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야영지 터를 찾아낸 아레타는 지친 마음에 환성을 입에서 내다가 본인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급히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둑한 산길에 누군가가 있을 리는 없었지만 만에 하나를 고려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기대대로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며 그를 안도하게 했다.

“후우, 그럼 얼른 준비하고 쉬는 게 좋겠군.”


아직 갈 길이 멀었기에 내일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일어나서 이동할 생각이었기에 아레타는 빠르게 손을 움직여가며 야영을 준비했다. 바닥을 고르게 하고, 마른 풀을 깔고, 그 위에 모포를 덮는다. 그리고 간단하게 허기를 채운 아레타는 등불을 적당한 거리에 두고 자리에 누웠다.


“날이 그리 춥지도 않으니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음?”


바스락바스락


일찌감치 쉬려던 아레타의 귀에 누군가 나뭇잎을 밟으며 걷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소리에 아레타는 안색을 굳히며 몸을 일으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잘 때도 풀어두지 않았던 허리춤의 철봉에 손을 댄 아레타의 눈에 곧 소리를 낸 자, 아니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라, 선객이 있었군.”

“거, 불빛을 보고 이리로 오셨으면서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십니까.”

“마, 대화를 하는 법이라는 거지. 저 사람도 알고, 나도 알지만 본래 대화라는 건 시작이 다 아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거야.”

“보통은 모르는 사이니 자기소개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니가 공연히 딴지를 걸지 않았으면 그랬겠지.”

“커험.”

먼저 입을 열었던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뒤이어 말했던 이는 그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노려보던 이는 이내에 자신들만 이곳에 있는 게 아님을 떠올리고는 표정을 고치며 아레타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야, 이거 초면에 못난 꼴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


기껏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지만 아레타는 그저 묵묵부답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에 사내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조금 지쳐서 말입니다. 같이 좀 쉴 수 있겠습니까?”

“형님, 소개부터 하셔야......”

“좀 닥쳐줄래?”

“넵.”


표정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살짝 짜증이 느껴지는 얼굴로 옆에서 보충하려는 이의 입을 닫은 남성은 다시금 아레타에게 시선을 향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리발, 여기 덜떨어진 녀석은 렉스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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