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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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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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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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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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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장 로앙의 이름 (13)

DUMMY

“안타깝군요.”


프레이뮬의 요청을 받고서 시신들을 살핀 대신관장은 여러 의미를 담아서 중얼거렸다.


이 말에 프레이뮬은 제가 생각했던 것이 맞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저 짐작하는 것과 확답을 받는 것은 차이가 있는 법이기에 프레이뮬은 구태여 입으로 소리내어 물었다.


“정확히 어떤 상태지?”

“그들은 이제 로앙의 후신이라 하기도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어긋나고 이교와 합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그는 한층 더 안타까움을 담아서 말을 덧붙였다.


“정도는 약하나 사실상 마수 기사, 아니 불사 기사라는 이름의 새로운 마물이 된 셈입니다.”

“정도가 약하다?”

“예. 약점이 생겼으나 그 약점은 오로지 수호자급에나 의미가 있을 겁니다.”


수호자급에나 의미 있는 약점.


이 말에 프레이뮬은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고도 그리 기뻐하기 어려웠다.


“강철, 불, 시간, 회개. 고작 넷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래, 그렇지.”


대신관장이 덧붙인 말에 프레이뮬은 동의했다.


수호자가 더 있으면 낫겠지만 신께서는 이번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듯 깨어남의 조짐이 없었다.


“시간 수호자에게 물어볼까?”

“알면 이미 알렸을 겁니다. 당신도 알듯, 그는 만능이 아닙니다.”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쉬며 프레이뮬은 적당히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그 모습에 대신관장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그런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에 봅니다. 마지막으로 본 그런 모습은 50년 전이던가요?”

“50년, 하. 고작 50년 만이지.”


대신관장의 말에 프레이뮬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괴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무 짧고 적어. 신께서 이제 더는 우리를 보살필 생각이 없으신 걸까?”

“오래 살았다고 신앙이 깊지는 않다. 당신이 내게 한 말이긴 하지만 굳이 이렇게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옛일을 들춰서 뭐 하게.”


대신관장이 하는 말에 프레이뮬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에 대신관장은 프레이뮬처럼 의자를 하나 끌어다가 마주 앉고는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이걸로 시대가 하나 끝난다, 그거죠.”

“그건 언제고 바라는 일이긴 하지만 그게 과연 지금일까? 무엇보다 나는 살아있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죠. 그런데 당신이 죽는 게 굳이 그 실현일 필요가 있습니까?”

“뭐?”


프레이뮬이 어울리지 않게 두 눈을 껌벅이며 되물으니 대신관장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신전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신관은 시대의 종말이 고해진 후에 내 곁으로 올 것이다’입니다. 당신이 죽어야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끝나야 당신이 불려 간다는 말일 수도 있지요.”

“그게 더 설득력 있다는 건 나도 알지. 하지만 난 이제 지쳤어. 예전 동기는 예언을 이루겠다고 이교에 투신하고 나는 남겨졌지. 아니, 그 녀석이 내 동기이던 그 녀석이 맞는지도 이제는 모르겠어.”


씁쓸함을 머금은 얼굴로 속내를 토로한 프레이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네 말이 맞기를 빌지. 적은 것은 그거면 충분하다 여기심이자 이것으로 정말 끝이라고.”



***



“수호자들이 이렇게 모이는 일은 드물지.”


수호자가 된 이들을 불러 모은 펠론의 말에 아레타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썩 좋은 말로 들리진 않는데.”

“그럼 제대로 느끼고 있군. 보통 수호자들이 모인다고 함은 결전이 다가왔음을 의미하지.”


아레타가 하는 말에 마티언이 끼어들어서 말을 보탰다. 이에 팰론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가장 말석이라 할 수 있는 회개의 수호자 아톨란은 불편한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


“결전이요? 고작 넷이지 않습니까?”

“아, 언제나 그렇듯 신께서는 지시하시고 우리는 따를 뿐이지.”


마티언이 느긋하게 대답하니 아톨란은 더욱 불안함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이에 아레타는 별말이 없었으나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펠론의 입에서 안심할 수 있는 말이 나왔다.


“레이한드로에서 우리만이 전부는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마.”

“시간의 계시인가?”

“계시이긴 하나 정확한 뜻은 몰라. 그저 레이한드로 성채에서 싸우는 우리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이들이 수도 없이 있는 걸 보았을 뿐이야.”

“전보다 말이 많아진 거 같은데.”


아레타가 말한 것처럼 펠론은 하는 말이 상당히 편하게 변했다.


전에 그를 보고 무게 잡았던 게 무엇인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미 내가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다 지나갔어. 네가 리가르에 다녀오는 일과 저들의 습격을 알고 프레이뮬 신관을 구하는 일까지 다 끝났지. 이제 남은 건 오로지 마지막 전투에 대한 것뿐이야.”

“마지막이라. 정말로 마지막 맞아?”


미덥지 않다는 어조로 말한 아레타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백색 교단 놈들은 끝났다 싶으면 언제나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고 다시 나타났지.”

“전에도 시간의 수호자가 이렇게 우리를 모은 적이 있었지. 그리고 그가 말한 것처럼 마지막 전투가 있었어. 그러니 믿어도 된다네.”


마티언이 끼어들어 말하니 아레타는 미간에 한층 더 주름을 잡았다.


“끝이라. 짧았지만 그래도 끝이라니 안도가 되네요.”


이에 눈알을 굴리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던 아톨란이 조심스럽게 말을 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곳에 챙겨온 방패와 채찍을 매만졌다.


“저에게 이건 너무나도 무겁고 과분합니다. 어서 내려놓고 제 속죄를 마치고 싶습니다.”

“회개의 수호자와 어울리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겸손한 말이군.”

“예?”


마티언의 말에 아톨란은 당황하며 그를 보았다. 그러자 마티언은 몸을 의자에 누이며 입을 열었다.


“회개의 수호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울리나 신은 자네가 할만하다 여겨서 그 짐을 내려주신 것이네. 회개의 수호자는 저번 성전에는 탄생하지 않았을 정도로 대단한 이야. 그 힘은 수호자들 가운데 상위에 위치한다고 하지.”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톨란은 그 가족과 집안으로 인해 조금 더 수호자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티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알지만 동시에 다른 것도 알고 있었다.


“제가 아는 바대로면 가장 상위는 여기에 계신 강철, 그 뒤를 잇는 게 두 분이 다루는 불과 시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4등이 못난 건 아니지만 1, 2, 3등 앞에서는 아무래도 빛이 좀 바래는 법이었다.


“사실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네가 그리 주눅들 이유는 되지 않아. 단 넷뿐인 수호자라고. 그것도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 평가받던 수호자가 넷이지 않나.”

“그, 그건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귀한 자리에 못난 짓을 벌인 자신이 있다는 걸 여전히 의문으로 여기고 있던 아톨란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아레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성전에서 벌어진 일, 네가 원인이라고 했었지.”

“......예.”


“이제 그런 일이 없게 되는 거다. 부족한지 아닌지는 나중에 생각해. 당장 우리에게 수호자가 하나 있고 없음은 중요한 문제다. 특히나 너의 능력은 마수 기사라는 귀찮은 것들을 상대할 때 아주 좋아.”

“가, 감사합니다.”


아레타의 말에 아톨란은 당황하며 감사했다.


“감사는 내가 아니라 신께 드려라.”


대충 대답한 아레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펠론과 마티언을 차례로 보며 입을 열었다.


“난 딱히 네게 별생각이 없어. 여기 이 녀석은 데면데면하나 본래 같은 기사단 출신이고 이쪽에 계신 분 역시 선배다. 그러니 우리 모두 로앙이지.”

“예?”

“그러니 로앙은 가장 명예로운 이름이라 해도 좋을 거야. 하지만 이제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짊어지고 책임져야 할 이름이지.”

“아......”


수호자라는 이가 셋.


그런 고귀한 전사들이 한 기사단에서 나왔으니 분명 로앙이라는 이름은 값지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기사단은 배교자였으니 동시에 땅에 떨어진 이름이기도 했다.


이를 새삼스럽게 자각하니 아톨란은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이런 말하면 어떨지 모르나 우리는 모두 같군요.”


툭하니 내뱉은 말에 자리에 정적이 감돌았다.


“시, 실례했습니다.”


정적을 불러온 아톨란이 금세 사과하며 얼굴을 붉혔다.


“틀린 말 아니니 사과할 거 없다. 우리 모두 너와 같다. 여러가지 의미로 말이지. 그리고 하나 더, 확실하게 말해서 로앙은 이번 세대로 끝이다.”

“끝이요?”


마티언이 하는 말에 되물으니 대답은 아레타에게서 들렸다.


“로앙 기사단은 공식적으로 해체, 지금 대신전에 남은 이들만 로앙 기사단으로 남게 된다. 견습들은 모두 다른 기사단으로 편입될 거다. 기존에 있는 이들도 원한다면 다른 기사단으로 편입될 예정이지.”

“선배님들도 그렇습니까?”

“나중에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눈에서 강렬한 빛을 내며 고개를 저은 아레타는 그 눈빛만큼이나 강한 감정을 담아서 말을 이었다.


“로랑을 저지하는 건 로앙이다. 그것이 이름을 짊어진 자의 책임이지.”



***



“말토로니가 실패한 거 같습니다.”

“같다?”


레이한드로 요새 안쪽 단장실에서 검을 손질하던 알톤은 부단장 페사알리의 보고에 손을 멈추었다.


관심이 돌아오니 페사알리는 곧장 말을 이었다.


“백색 교단에서 물어서 확인하니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러면 아직 모르는 일이군. 그 녀석처럼 로앙의 이름을 가장 숭배하는 자는 없었다. 그 마음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지.”

“단장님을 제하면 누구나 한발 물러설 훌륭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잡혔을 가능성 역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흐음.”


페사알리의 말에 알톤은 고민하더니 이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긴 어렵겠지. 전원이 완성된 기사들이라고 하지만 수호자라는 이들과 그들을 따르는 신전병도 만만하진 않아. 거기에 다른 신전 기사들이 있기라도 하면 저들에게 피해를 입히긴 해도 숫자에서 밀리겠지.”


안타깝다는 얼굴을 한 알톤은 멀리 창밖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붙여줄 것을 그랬나. 녀석이 원체 자신있어하긴 했지만 실패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지.”

“살아있을 테니 나중에 찾아오면 됩니다.”

“그래, 그렇겠지. 완성된 이들, 진정한 로앙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들이니 부끄럽지 않게 하고 있을 거야.”


스르릉


손을 몇 번 더 놀려서 검을 마저 손질한 알톤은 검을 검집에 넣고 몸을 돌렸다.


“페사알리, 대신전에서 이곳으로 올 거다. 백색 교단과 우리를 징치하기 위해서 말이지.”

“징치라, 그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페사알리가 비웃음을 머금고 자신 있게 물으니 알톤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지. 하지만 좋은 일이야.”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알톤은 창을 통해 바깥 풍경, 훈련하는 로앙 기사들을 내다보았다.


그와 비견되는 수준의 기술, 아무리 다쳐도 재생하는 몸과 인간을 넘어선 완력을 보여주는 기사들을 보며 알톤은 빙그레 웃었다.


“로앙이 정말 최강이자 대신전조차 넘는 이름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딱 좋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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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장 로앙의 이름 (13) 23.01.30 51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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