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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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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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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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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1,236

작성
23.03.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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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8)

DUMMY

“걱정이 많아 보이는구나.”

“......예.”


반쯤 무너진 성채에 걸터앉아 묻는 말에 팔레삭은 하고 싶은 말을 속에 내리누르며 작게 대답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항상 들어오고 그려오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조촐했다.


“조금 즐기시고 계실 뿐이다. 저런 존재들에게 이런 시간만큼 자극적인 시간은 없으니 말이다.”

“자극적인 건 모르지만 이런 시간만한 게 없다는 건 동감이야.”


팔레삭이 아닌 이의 대답에 퀜달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단장께서는 무사하셨나? 이렇게 보니 반가운 것 걸.”

“유언은 그것으로 끝이냐?”


퀜달렌의 느긋한 말에 싸늘하게 대답한 로앙 기사단 단장, 아니 이제는 로앙 생존자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알톤 그레이엄 로앙은 손에 든 무기를 들어 겨누었다.


“그리운 무기야.”

“네놈이 새긴 세월이나 품은 감상은 관심 없다. 저것이 어떤 일을 벌이는 것도 관심이 없어.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졌지.”

까득


이빨을 힘주어 악문 알톤은 그의 무기, 팔각 철봉 송곳을 꼬나 쥐고 바닥을 박찼다.


“남은 관심은 내 목이라고? 그것도 좋지. 하지만 나는 구세의 때를 보고자 하여서 말이야.”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퀜달렌은 가벼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그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런, 예상보다 빠르군.”

“여유가 넘치는구나!”


어느새 바로 앞에 쇄도한 알톤이 외치며 송곳을 찌르니 퀜달렌은 팔을 벌려서 오히려 그 공격을 받아냈다.


푸욱-


“무슨 짓이지?”


바라던 일이나 그 과정이 너무나도 쉬웠기에 송곳 철봉 끝을 잡은 알톤은 불신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 퀜달렌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웃었다.


“흐흐흐, 걱정하지 말라고. 예상보다 빨라서 당황했을 뿐이야.”

“예상보다 빠르다?”

“퀜달렌님!”


쉬싯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팔레삭이 그림자에서 뱀 마수를 꺼내 위협했다.


이에 알톤은 같잖다는 듯이 웃으며 퀜달렌에게 박은 철봉을 옆으로 비틀었다.


“쿨럭.”

“네놈이 감히! 불사자라고 한들 무적은 아니라는 걸 알......이, 이게 무슨!?”

이미 아비톨람에서 퀜달렌이 행한 것을 토대로 알톤과 같은 이를 상대하는 법을 백색 교단은 숙지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대로 행하려고 하니 팔레삭은 그제야 퀜달렌이 왜 저리 무력하게 공격을 허용했는지 깨달았다.


그들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던 힘, 위대한 야성이 그들에게 부여하였던 특유의 힘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마음대로 움직일 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고 주장하는 듯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공허함이었다.


“주인께서 일어나셨으니 가져가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제 우리에게 허락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소리에 팔레삭은 그제야 이해했다.


“그분께서 깨어나신 직후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지. 일부러 싸움을 즐기시기 위해 억지로 회수하지 않으셨으니까. 하지만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불편함을 생각하면 나도 마수 하나는 소환하여 둘 것을 그랬지만 말이다.”


느긋하게 말하면서도 그 행동이 몸에 좋은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퀜달렌의 입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처음에는 웃고 있던 알톤이었으나 이내에 이것이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네놈, 어째서 그렇게 침착하지?”


바라던 것을 이룬 사람은 의연해진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알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의 욕심에 끝이 없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로앙 기사단에 들어가길 바랐고, 진정한 로앙을 꿈꾸었으며, 전설을 재현하고 싶어 하던 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정점에 섰음에도 알톤은 만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너머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여 본 적이 없으며 그 형태나마 그린 것도 시술을 그가 온전히 재현했을 때가 처음이었다.


바라던 것을 이루었음에도 더 바라는 것이 생겼음을 이미 느낀 바 있는 알톤은 퀜달렌이 무엇을 바랐고 이루었던 간에 만족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일 거라 여기지 않았다.


동종은 동종을 알아본다고 하던가?


알톤의 이러한 간파는 확실하게 정답에 닿아 있었다.


“당연히 웃을 만하니까 웃지.”


퓨슉


퀜달렌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입과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몸을 타고 흐르던 피들이 그 섭리를 거부하고 알톤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황하였으나 로앙 기사단 단장이라는 직함, 그리고 역대 단장 가운데 초대에 가장 근접하였다고 평가받은 것이 그저 체면 세우기가 아님을 증명하듯 그는 자연스럽게 피들을 피해 물러났다.


“재빠르군. 날렵해. 제물로서 아주 적당하겠어.”

“제물? 날 다른 동지들과 같이 할 수는 없을 텐데? 나는 네놈들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되지 않았다.”


비웃듯이 알톤이 말하니 퀜달렌은 마치 촉수와도 같이 변한 피들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 걱정하지 말게. 그런 하찮은 제물하고는 격이 다르거든.”

“하찮다고? 감히,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알톤에게 있어서 진정한 로앙보다 귀한 존재들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신전도 그보다 귀하지 않았다.


하물며 대신전에서 섬기는 존재, 신조차도 위대한 기사를 재현하고자 하는 이들에 비하자면 가치가 없다고 내심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백색 교단의 수작으로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리고 이제는 그 짓을 벌인 놈에게 평가절하당하니 알톤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머리가 떨어지고도 지껄일 수 있는지 한번 보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미리 말하자면 할 수 있다네.”

“그래? 그러면 좋군. 네놈을 갈기갈기 찢는 걸 네놈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


알톤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달려들었다.


이에 대항하듯 퀜달렌의 피가 채찍처럼 휘둘러졌으나 그 위력은 몰라도 궤적은 대단히 단순하여 알톤이 보기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허술한 공격이었다.


가벼이 채찍을 피하고 파고들어 송곳 철봉을 내지르려는 순간, 알톤은 그의 몸이 더 움직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 어째서?”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잊었나?”


친절함을 가득 담아 대답하는 말에 알톤은 굳은 몸을 천천히 돌려서 뒤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제 손를 직접 돌로 내리찍어 상처를 낸 팔레삭이 피로 만든 길과 같은 것으로 그에게 닿아 있었다.


“팔레삭은 배우는 것이 매우 빠르고 충실하지. 혹여 이번에 내가 실패하였다면 다음은 저 친구에게 맡겼을 거야.”

“영광입니다, 퀜달렌님.”


공손하게 하는 말에 퀜달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야성께 고할 시간이로군. 네가 해보겠느냐?”

“감사합니다.”


퀜달렌의 양보에 팔레삭은 감격한 얼굴로 몸을 돌려서 거대한 믹카타스트로를 향해 외쳤다.


“위대한 야성이시여! 이곳에 새로운 제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외침에 응하듯 믹카타스트로의 시선이, 세 머리 가운데 상어의 얼굴이 그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들이 피로 잡아 구속하고 있는 알톤을 본 믹카타스트로는 바로 손을 들어서 그를 향했다.


[나만큼 오래된 게 아직 남았을 줄이야. 오래되었지만 새것이라, 아주 좋아.]



***



“놈이 대체 어디로 손을 움직이고 있는 거지?”


대치하며 그들을 온갖 마수로 상대하던 믹카타스트로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불꽃의 수호자 마티언 로앙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에 대답한 것은 시간의 수호자 팰론으로, 그는 확장된 다시간 시야로 성채 위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확인하며 안색을 어둡게 했다.


“......로앙 기사단 단장, 알톤 그레이엄 로앙이 저기에 잡혀 있습니다.”

“하, 그 미친놈이 저기에 있었나.”

“팰론, 뭘 보았길래 그러지?”


마티언이 못마땅한 얼굴로 그저 혀를 차는 것으로 그치는 것에 비해 강고한 자 아레타는 펠론의 얼굴에서 걱정을 읽어내며 물었다.


그에 펠론은 숨기지 않고 본 것을 입에 담았다.


“내 시야는 여러 곳을 보지만 같은 시각을 보진 않아. 조금씩 미세하게 시간 차이가 있는 시야지.”

“그건 알고 있어. 저들이 여기서 무얼 더 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면 조금 암담한데.”

“저들은 무얼 하지 못해.”


고개를 가로 저인 펠론은 그렇게 말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단지 그 잘못에 대한 대가가 이런 식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야.”



***



“커헉!”


괴로움에 알톤이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니 믹카타스트로의 기쁨이 담긴 목소리가 울렸다.


[저항, 저항이라. 좋지. 이런 즐거움은 얼마 되지 않으니 얼마든지 해라. 기왕이면 저놈들이 쓰러질 때까지 해도 괜찮아.]


한 손으로 알톤을 쥔 믹카타스트로는 그렇게 말하며 얼마든지 해도 좋다는 것이 그저 빈말에 불과했다고 하듯 그 손에 힘을 한층 더 주었다.


“끄아악!”


불사에 재생이 끊이지 않는 자.


그러나 고통은 있으니 지금 알톤은 마치 고통을 영원히 느껴야 할 거 같았다.


이에 항복할 법도 하건만 그는 아직 그 정도로 마음이 꺾이지 않았기에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양팔까지 잡히니 그 팔을 꺼내는 것도 힘겨워하는 중이니 그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에게 작은 위안이 되는 일이 있다면 그만 잡힌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너희도 마찬가지다.]


믹카타스트로는 늑대의 머리로 다른 곳을 보며 입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그들이 흘린 피에 구속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퀜달렌과 팔레삭이 있었다.


“구원의 때입니까?”

“이, 이것이 구원이라고요?”


퀜달렌이 덤덤히 묻는 말에 팔레삭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에 퀜달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력의 시대를 끝내고 나면 죽음과 고통에서 해방된 영원의 시대가 도래한다. 육신은 의미가 없는 세상이니 이로써 해방될 것이다.”

“.......따르겠습니다.”


혼란스러운 얼굴이나 그의 전부이자 가장 믿는 존재인 퀜달렌의 말에 팔레삭은 저항을 포기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믹카타스트로의 늑대 머리는 그 게걸스러운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 입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솔개의 머리가 입을 열었다.


[그 예언은 분명히 성취될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는 먼일이다.]


갑작스러운 말에 퀜달렌은 당황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 솔개의 머리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성력의 시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 어찌 네가 영원의 시대를 맞이하겠느냐?]


성력의 시대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 솔개의 머리는 다른 손을 움직여서 내리쳤다.


생각지도 못한 진실을 들은 퀜달렌과 그를 믿고 모든 걸 내려놓은 팔레삭은 그 내리치는 손길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구원을 당기고자 한 어리석은 자여. 이것이 내 자비다.]


무덤덤한 말, 감정이 일체 느껴지지 않는 솔개의 말은 퀜달렌과 팔레삭이었던 흔적을 향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이었던 피 웅덩이뿐이니 그 말이 닿았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특별한 제물 셋. 이제 즐기는 시간은 끝이다.]

[아쉬운 시간은 끝이다.]

[시련의 시대가 끝날지 돌아보라.]


솔개, 늑대, 상어 머리가 차례로 말하니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고 하듯 믹카타스트로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을 향해 솟았다.


이윽고 솟아난 검은 연기는 자신이 하늘을 대신하겠다고 하듯 새카맣게 모든 걸 물들이니 누구든 그것을 보았다면 말했을 것이다.


시대의 종말이 다가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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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종장 위대한 기사 (1) 23.05.22 26 1 13쪽
121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5) +1 23.05.15 30 1 13쪽
120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4) 23.05.08 32 1 12쪽
119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3) 23.05.01 38 1 13쪽
118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2) 23.04.24 32 1 11쪽
117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1) 23.04.17 35 1 12쪽
116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0) 23.04.10 39 1 12쪽
115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9) 23.04.03 37 1 12쪽
»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8) +1 23.03.27 43 1 12쪽
113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7) 23.03.20 40 1 11쪽
112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6) 23.03.13 46 2 11쪽
111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5) 23.03.06 39 2 12쪽
110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4) 23.02.27 37 2 12쪽
109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3) 23.02.20 42 2 11쪽
108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2) 23.02.13 39 2 11쪽
107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 23.02.06 43 2 11쪽
106 8장 로앙의 이름 (13) 23.01.30 50 3 11쪽
105 8장 로앙의 이름 (12) 23.01.23 47 3 11쪽
104 8장 로앙의 이름 (11) 23.01.16 47 3 11쪽
103 8장 로앙의 이름 (10) 23.01.09 54 3 11쪽
102 8장 로앙의 이름 (9) 23.01.02 61 3 11쪽
101 8장 로앙의 이름 (8) 22.12.26 61 3 12쪽
100 8장 로앙의 이름 (7) 22.12.19 65 3 12쪽
99 8장 로앙의 이름 (6) 22.12.12 6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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