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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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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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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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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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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장 로앙의 이름 (8)

DUMMY

렉스와 자르달이 본 것은 정확했다.


지금 리발은 서두르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난 이곳을 알고 있다.’


이유는 모르나 그런 직감과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어둡고 그저 길다. 재미없는 장소입니다.”


귓가에서 들리는 아레타의 말에 리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미없는 장소지. 사람 목숨이 빵 쪼가리 하나만도 못한 곳이니까.’


동시에 이곳에 대한 감상을 떠올린 리발은 흠칫 놀랐다.


‘내가 왜 이런 걸 알고 있지?’


방금 떠올린 생각은 추측 같은 게 아니었다. 명백하게 겪은 일이었고, 잊어버렸다 여긴 기억이었다.


“안색이 창백한데, 괜찮습니까?”

“뭐?”


아레타의 말에 리발은 무심코 양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마치 몸이 기억하여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차갑고 축축했다.


“괜한 참견이야.”


그러나 리발의 자존심은 걱정하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그것은 자존심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 본능이자 경계심이 가까웠다.


“그렇습니까.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 넘어가도록 하지요. 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아레타는 흥미로운 음성을 내며 철봉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척 보아도 무언가 있을 거 같은 문이네요.”


아레타의 말처럼 눈앞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거 같은 강철 문이 있었다.


피-잉


‘뭐, 뭐지?’


리발은 한순간 귓가에 이명이 들린다 싶더니 현기증이 돌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돌아선 이들이 무엇을 잊고 갔기에 다시 왔는지 확인해볼 시간이로군요.”


아레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손에 든 철봉을 가볍게 휘둘렀다.


콰앙!


“생각보다 약하군요.”


그대로 안쪽을 향해 날려진 철문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아레타는 누구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안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몇 걸음을 걸으니 안쪽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레타가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안쪽이 생각보다 넓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곳이 대체 뭐 하는 곳이었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유리관에 탁자들. 혹시 뭐 하는 곳인지 압니까?”

“그, 글쎄요?”


아레타의 물음에 이런 곳이 있는지 처음 알았던 미가로스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딱히 대답을 바란 게 아니었던 아레타는 곧 시선을 돌려서 주변 사방을 둘러보았다.


“기분 나쁘군요. 이유는 모르지만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신의 뜻을 따르는 기사단의 시설로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아요.”


아레타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나 한껏 답답하여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신전 기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래, 그렇지. 이런 걸 하는 놈들에게 어울리는 명칭은 기사가 아니라 미치광이가 어울려.”

“응?”


숨을 고르고 있자니 리발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그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아레타는 리발이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이것저것 살피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하나 사라지고, 그걸 보고, 단지 실패와 성공만 논하는 미치광이들이 여기에 있었어.”

“......여기에 있었다?”


무언가 걸리는 기분에 눈살을 찌푸린 아레타는 그 걸리는 것이 어디서 기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마치 여기에 와본 거 같은 말투인데?’


자연스레 아레타의 눈에서 리발을 향해서 의심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리발은 그걸 깨닫지 못하는지 아니면 알아도 신경 쓸 겨를이 없는지 이곳저곳에 있는 유리관들을 매만지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거 아나? 여기에 들어가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보는 일밖에는 할 수가 없어.”


리발은 그렇게 말하더니 근처에 가로로 쓰러져서 적당히 앉을 수 있는 유리관 위에 걸터앉았다.


“아, 물론 듣는 것도 가능하긴 해. 하지만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야. 그리고 생각은 계속 이어지지 않아서 어느 순간에는 보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생각 자체를 의심하게 되지. 그러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나?”

“......어떻게 됩니까?”

“멍해지고 부유하게 돼. 그리고 오로지 의심하고 의심하지. 현실 그 자체를 말이야.”


복잡함에는 어느새 멍함이 깃들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리발은 멍함 대신 그리움을 깃들이며 중얼거렸다.


“그거 아나? 난 위대한 기사들 가운데 레이한드로 발렌시아 로앙이 가장 좋았어. 그는 가장 위대하고 고결하여 기사 중에서도, 신전 기사 가운데서도 최고였지.”

“지금은 생각이 다른가 봅니다.”

“그럴지도. 선망하여 올라가길 바라며 들어온 훈련소는 날 깊은 나락으로 떨굴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지. 어렴풋이 기억이 나. 이 안에서 부모님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게 된 순간 모든 희망을 놓았어.”


통통


리발은 그렇게 말하며 한쪽 손으로 그가 앉은 유리관을 두드렸다.


“형님?”

“어이, 너 설마......”


그 말과 모습에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존재감을 숨기고 있던 렉스와 자르달이 놀란 얼굴로 입을 가렸다.


“기억이라는 건 이상하게 남는단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어디서 오고 어디서 어떻게 이런 괴상한 걸 얻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런데 여기 오니까 기억나.”


그렇게 말한 리발은 유리관에서 일어나더니 허리춤에 걸어둔 단검을 꺼내서 분노한 얼굴로 그걸 노려보았다.


“이 빌어먹을 관에 내가 들어가 있었던 것도 말이야!”


콰작


분노를 한껏 담아서 단검을 내리쳤음에도 유리관에는 그저 구멍이 하나 나는 것에 그쳤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화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차오르는지 리발은 연이어서 단검을 내리찍었다.


“으아아아!!!! 위대한 기사를 다시 탄생하게 하겠다고!”


콰직


“웃기지 마! 그러고 실패하니 아비톨람에 버려? 아비톨람에!”


쩌적


“그거 아나? 실패작이라던 나는 성공이었어! 성공이었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 곤죽이 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렇게 살았겠냐!”


파창


열댓 번은 내리친 후에야 유리관은 더 버티지 못하고 산산히 깨어졌다. 그 모습에 그제야 진정한 듯 리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린 리발의 얼굴과 손을 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가릴 거 없이 흠칫했는데, 분노와 슬픔 그리고 절망으로 물든 그 얼굴의 처연함은 절로 동정심이 들었다.


거기에 무리하게 내려친 탓에 피범벅이 된 손은 그 처연함을 한층 강하게 하고 있었다.


“수호자 양반.”

“뭡니까.”

“보이나?”


단검을 쥔 손을 들어올리며 묻는 말은 주어가 없었으나 아레타는 그 질문이 무엇을 묻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전에 당신의 머리를 깬 적이 있었죠. 전에도 생각했지만 참 기이하군요.”

“흐흐, 그렇지? 이게 다 초대 로앙을 되살리기 위한 실험의 결과야. 그리고 나는 그 성공작, 아니 가장 위대한 실패작이지.”

“위대한 실패작?”

“깨어나지 못했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 리발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버려졌지. 그리고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나 정신이 들었고, 정처 없이 방황했어. 장장 80년을 말이야.”

“그건......”


무어라 하기 힘든 말에 아레타는 말문이 막혔다.


“기억은 없었어. 그저 알고는 싶었지. 그래도 한 80년을 사니 암암리에 알려져서 인맥도 생기도 먹고사는 일은 해결했지. 아, 렉스 녀석은 만난지 그리 오래 안 되었어. 한 10년?”

“그거보다는 더 되지 않았을까요!”

“니 나이가 고작 서른 좀 넘었을 텐데 개뿔이다 인마.”


렉스의 항변에 웃으며 대답한 리발은 이제는 거의 다 치유된 손에서 피를 털어내며 한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 방향에 내가 기억하기로는 외부로 향하는 통로가 있어.”

“저쪽에요?”


고개를 돌려서 가리킨 방향을 보니 유리관 몇이 쓰러져 가로막고 있는 통로 같은 게 보였다.


“어디.”


그대로 발에 힘을 주어 뛰어오른 아레타는 떨어져 내리는 힘에 자신의 힘을 더해 철봉을 휘둘렀다.


콰창!


“호오.”


단번에 유리관 여럿이 박살 나며 가리고 있던 통로를 드러냈다.


만족스러움으로 고개를 끄덕인 순간, 아레타는 안쪽에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고 외쳤다.


“무언가 있다! 전투 준비!”


아레타의 외침에 신전병들은 물론이고 미가로스를 비롯한 견습들 역시 급히 무기를 치켜세웠다.


“이런, 여기가 생각보다 일찍 들켰었나. 기습은 글렀군그래.”


안쪽에서 아쉽다는 듯이 말했지만 말과 달리 말투에서는 아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아레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백색 교단인가.”

“그래. 마글리언이라고 하지. 그쪽은 아마도 날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잘 알아.”

“어디서 보았건 딱히 기억할 생각은 없어. 그저 부수고 처분할 뿐이다.”

“아, 정말 무식한 말이야. 그때 리가르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그립다는 듯이 말하는 마글리언의 말에 아레타는 눈앞에 있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리가르에서 어설프게 나와 강철 신전병대를 막았던 녀석인가? 그래, 이번에도 마수 기사를 데리고 왔나?”

“오, 물론이지. 수호자가 있는데 마수 기사를 대동하지 않다니, 자살 지망자가 아닌 한 그러지 않아.”


마글리언은 그렇게 말하며 보란 듯이 몸을 옆으로 돌리고 두 번 손뼉을 쳤다.


짝짝!


쉬릭


“소개하지. 한층 더 나아진 마수 기사, 기술형 뱀 마수 기사다.”

“기술형?”

“아, 대단한 건 아니고 일종의 협업으로 인한 성과야. 전보다 싸우는 기술이 좋아졌지. 그 수준은......뭐, 직접 확인해봐.”


웃으며 그렇게 말한 마글리언은 자신을 어둠으로 감싸고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를 대신하듯 사라진 자리를 지나 뱀 마수 기사가 아레타에게 달려들었는데, 그 속도는 과연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아레타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설픈 모습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분 나빠서 잘 안 하긴 해. 하지만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지.”


카앙


쉬릭!?


팔을 내밀어 물게 하니 갑옷이 없는 부분에 닿았음에도 뱀 마수 기사의 이빨이 아레타를 해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마수 기사를 보며 아레타는 아직 하지 못한 말을 마저 이었다.


“너희가 쓰는 괴물들은 우리 수호자들보다 약해.”



***



“이래서야 최종 결전에 도움이 되기 힘들겠군. 그 고생을 하고 여전히 시간끌기라니, 테펠리움 녀석이 있었으면 좀 더 나았으려나?”


뱀 마수 기사는 전과 달리 움직임이 더 기민하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알아채기 어려운 사실이나 여러 차례 마수 기자 제조에 손을 보탰던 마글리언은 그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는 로앙 기사단이 그토록 바라던 일, 로앙의 눈물을 사용한 강화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을 알려주며 그들의 기술을 마수 기사들에게 주입할 수 있게 된 덕이었다.


이제 마수 기사들은 실력 있는 신전 기사처럼 자신의 힘을 더 효율적으로, 더 파괴적으로 쓸 수 있었다.


전력으로 따지자면 분명히 말해 전보다 반배는 강해졌다.


그러나 수호자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퀜달렌님이 좋을 대로 하라고 하신 이유가 이거였나.’


직접 현실을 확인하니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의식 준비에만 몰두하던 퀜달렌이 왜 그랬는지 아주 잘 알 거 같았다.


“어쩔 수 없, 커헉!?”

“이봐, 숨는 게 어설프군?”

“어, 어떻게?”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단검의 날을 보며 마글리언은 믿기 힘든 얼굴로 물었다.


그에 단검의 주인, 리발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게 떡하니 서 있으면 누가 몰라? 고작 그늘에 숨겼다고 안 보일 거 같았어? 크악!”

“쿨럭, 제법이다만 마무리가 어설프군. 우리는 비상 수단이 여럿 있어서 말이야.”


바닥에서 일어난 검은 연기를 한순간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실체화시켜 역으로 꼬챙이로 만들어준 마글리언은 가슴을 문질렀다.


“빌어먹을 놈이 같으니라고.”

“그건 내가 할 말......이거 신기하군. 너, 뭐 하는 놈이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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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종장 위대한 기사 (1) 23.05.22 27 1 13쪽
121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5) +1 23.05.15 31 1 13쪽
120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4) 23.05.08 3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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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2) 23.04.24 34 1 11쪽
117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1) 23.04.17 36 1 12쪽
116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0) 23.04.10 40 1 12쪽
115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9) 23.04.03 38 1 12쪽
114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8) +1 23.03.27 44 1 12쪽
113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7) 23.03.20 41 1 11쪽
112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6) 23.03.13 47 2 11쪽
111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5) 23.03.06 40 2 12쪽
110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4) 23.02.27 39 2 12쪽
109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3) 23.02.20 43 2 11쪽
108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2) 23.02.13 40 2 11쪽
107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 23.02.06 45 2 11쪽
106 8장 로앙의 이름 (13) 23.01.30 52 3 11쪽
105 8장 로앙의 이름 (12) 23.01.23 48 3 11쪽
104 8장 로앙의 이름 (11) 23.01.16 48 3 11쪽
103 8장 로앙의 이름 (10) 23.01.09 55 3 11쪽
102 8장 로앙의 이름 (9) 23.01.02 63 3 11쪽
» 8장 로앙의 이름 (8) 22.12.26 63 3 12쪽
100 8장 로앙의 이름 (7) 22.12.19 66 3 12쪽
99 8장 로앙의 이름 (6) 22.12.12 6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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