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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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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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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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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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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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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5)

DUMMY

이변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회개의 수호자 아톨란이었다.


‘우욱.’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부감에 아톨란은 저도 모르게 입을 움켜쥐었다.


‘이게 대체 뭐지?’


역겨움이, 거부감이 마치 끝도 없는 바다처럼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느끼면서도 좀처럼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강렬한 감각에 아톨란은 혹여 자신이 전장의 분위기에 취해 이상해졌나 여기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내에 그 감각은 다른 수호자들도 느끼게 되어 아톨란은 자신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마티언 경!”

“아아, 느껴지는 걸 보니 틀림없다. 이 심해와 같이 무겁고 늪지와 같이 무겁고 썩은 물과 같이 역겨운 느낌, 확실해.”


아톨란이 느끼던 것들을 비유로서 확실하게 입에 담은 마티언은 철봉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외쳤다.


“마하난 평원에서 본,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강림 전조다!”

“이, 이게 전조라고요?”


이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각이 경계할 존재가 온전히 세상에 내려선 것이 아니라 그저 전조에 불과한 일이라는 말에 아톨란은 크게 당황했다.


“전조다. 이 감각은, 이 형언할 수 없이 사람의 내면을 자극하는 감각은 점점 더 강해질 거다. 그리고......”


말끝을 흐린 마티언은 수호자들에게 숨길 일이 아니라 여기며 딱딱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사실상 우리만 나서서 싸울 수 있다.”

“전장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고작 우리 넷이라니, 조촐하네요.”


마티언이 하는 말에 팰론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에 아톨란은 저도 모르게 긴장의 끈을 살짝 놓았으나 그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톨란, 긴장해라. 예전에 난 너희보다 능숙하고 많은 수호자와 함꼐 어깨를 같이 했다. 그리고 마하난 평원에서 그 대다수를 잃었다.”


나직한 경고에 아톨란은 조금 전에 놓았던 긴장의 끈을 다시금 바짝 잡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티언이 말한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한층 진해졌다.


“읏!?”

“.......상당히 빠르군요. 원래 이렇습니까?”


몸을 휘청거린 아톨란에 이어서 팰론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며 물었다.


그러면서 마티언의 얼굴을 본 펠론은 대답을 듣지 않아도 돌아올 말을 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티언은 그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게 말을 꺼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이렇게 심각하게 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답한 마티언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레타는 어디에 있지?”

“귀환 중입니다. 신전 기사들이 생각보다 깊이 들어갔어요.”

“기다리지 않고 마주 나가야겠다.”


하나가 되어서 진입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합류하겠다는 말에 펠론은 상상 이상으로 상황이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위험합니까?”

“내가 경험한 것에 비하면 감각이 변하는 게 배는 빨라. 혹여 이게 강림 전조라면 순식간에 강림할 거다. 혹은......”

‘......마나한 평원에 내려앉으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가 내려오는 중이겠지.’


더 무서운 생각을 한 마티언은 차마 그 말을 입으로 내지 못하고 삼키며 말을 몰았다.


“아무튼 서두르자. 관망은 이제 득이 되지 않는 걸 넘어서 패배 선언이니.”

“마, 마티언 경!”


말을 몰던 마티언의 귀에 놀란 아톨란의 비명과 같은 음성이 들렸다.


그에 아톨란을 보려고 하던 마티언은 그가 보는 방향이 가려던 방향임을 알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톨란이 보고 놀란 것이 무엇인지 안 마티언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빨라.”


전방, 그들이 가려던 장소인 레이한드로 성채 앞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티언이 기억하는 광경 가운데 가장 지우고 싶은 광경이자 저들 백색 교단이 벌이는 일이 끝자락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마수들이 일제히 그 형체를 잃고 모든 것을 그들의 색으로 물들이는 광경이었다.



***



“.....본적이 있는 광경이군요.”

“이게 대체 뭡니까?”


네올 기사단 단장 시오르의 물음에 아레타는 예전 라렉시안 락번의 기억을 통해 본 것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최후의 결전이지요.”

“가슴을 들끓게 하는 말이군요.”


시오르가 즐겁다는 듯이 말하니 아레타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시오르가 당황하여 물었다.


“아레타 경?”

“이제부터 당신들은 나서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기부터는 온전히 수호자들의 몫입니다.”

“당신들에게만 맡기려고 먼길을 오고 각오를 다진 것이 아닙니다.”


시오르가 하는 항변에 아레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가능하다면 그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벌어지는 일이 라렉시안 락번의 기억에서 벌어진 것과 같다면 신전병이나 신전 기사들은 나서기 어렵다.


빌려주고 함께 하는 이적이 아니라 직접 이적을 몸에 품은 수호자들도 위험한 게 이제부터의 일이자 전장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레타는 전에 한 다짐을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희생을 줄이겠다는 다짐을 말이다.


“당신의 용기는 높이 삽니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나서는 게 허락되는 건 수호자들뿐입니다. 돌아가세요.”


아레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군영이 있는 곳과 반대로, 레이한드로 성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레타 경! 크읏!?”


후웅

히이잉!


돌연 주변에서 검은 연기가 그를 향해 몰려들며 전신을 압박했다.


분명히 이적을 빌리고 있건만 검은 연기가, 이제는 마수의 잔해라고 해야 마땅한 기운들이 그를 위협하고 말도 영향을 받았는지 돌연 날뛰려고 했다.


간신히 말을 진정하게 하고 조금 물러난 시오르는 어느새 아레타와 자신 사이에 거리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아레타 경!”

“다른 분들이 오면 안내를 부탁합니다.”


아레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검은 기운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시오르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머리를 돌렸다.


“비참하군.”



***



“생각보다 빠르군. 그럼 가속한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확인한 팔레삭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물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백색 교단 소속원들은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제 목에 단검을 꽂았다.


비명 하나 나지 않고 목에 꽂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사람이 본능적으로 꺼리게 만드는 느낌이 적지 않았는데 이어지는 광경은 그걸 한층 더 강렬하게 했다.


단검을 타고 흘러내린 피들이 사방으로 흐르며 성채를 감싸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감각으로 성채를 둘러싼 작은 피의 원이 그려진 것을 느낀 팔레삭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자, 그대들에게 힘을 빌려준 대가를 받아 가도록 하지.”



***



처음은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과 같은 물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의문으로 여기기도 전에 물은 손이 아니라 전신에서 흘러내렸다.


이윽고 전신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검은색으로 변해 일렁이기 시작하니 로앙 기사들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허둥거렸다.


“이, 이게 뭐야!?”

“땀? 피?”

“몸에서 흘러내리고, 아니 몸이 흘러내리고 있어!?”


어느 순간 누군가 자신의 몸이, 팔이 가느다랗게 변한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무슨 말도 하지 못했다.


뼈도 남기지 않고 걸친 옷만 남기고 녹아내린 자는 말을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한번 시작되니 사방에서 로앙 기사들이 그렇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끄억.”

“사, 살려......”

“대체 뭐......”


다수가 괴로움과 공포 속에서 그대로 흘러내렸다.


가장 마지막까지 버틴 것은 부단장 페사알리였는데, 그도 한계에 달한 것이 여실히 보이는 앙상한 얼굴이었다.


제 몸을 부둥켜 잡았던 페사알리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하듯 로앙 기사단 단장 알톤 그레이엄 로앙을 보았다.


“다, 단장님......”


이것이 페사알리의 유언이 되었다.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하나 같이 녹아서 그 몸에 걸친 것들만 남기고 사라졌다.


졸지에 혼자가 되어버린 알톤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흐흐흐, 흐하하하, 흐하하하하하!”


이제는 돌아서긴 했으나 역대 로앙 기사단 단장 가운데 초대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나다 평가받는 알톤이다.


그 뛰어남은 문무를 가리지 않았고, 덕분에 로앙은 초대의 비원은 9할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1할은 백색 교단의 힘을 빌림으로 채워졌다.


알톤 자신에게는 변함이 없으나 다른 이들은 그것으로 완성을 삼았고, 그 역시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마지막 1할, 그것은 모두가 초대 로앙 레이한드로 발렌시아 로앙의 의지와 기술이 담긴 로앙의 눈물을 사용해서 모두가 그와 같이 되는 것이었다.


사고, 전투 방식, 기술과 경험 등등을 초대와 똑같이 하는 것으로 그들은 하나이며 단체인 진정한 로앙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프레이뮬 신관과 수호자로 인해 틀어졌다.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그 틀어짐을 안 알톤을 비롯한 로앙 기사들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하나이며 단체.


이 조건을 위해 굳이 초대 로앙에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함은 아쉬우나 당장 완성을, 이상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일에 몰두한 그들은 대안을 실행했다.


바로 로앙의 의지와 기술을 알톤 그레이엄 로앙이라는 존재로 통일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그들은 백색 교단의 힘을 빌렸다.


기존에 그들이 준비한 것은 오로지 로앙의 눈물을 쓴다는 전제하에 준비되었기에 쓸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체된 방식은 훌륭했다.


완전한 하나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그에 가까워짐으로 그들은 수배 더 강해졌다.


누구나 똑같이 생각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하나 누구나 알톤의 기술과 경험을 얻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본래 생각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하나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감히, 감히 이딴 수작을 벌이다니!”


콰앙!


알톤이 분노를 담아 철봉을 휘두르니 큰 소리가 나며 벽에 금이 크게 갔다.


마치 거인이 주먹질한 것과 같은 모습이나 알톤은 개의치 않고 무릎 꿇었다.


“하, 하하. 그래, 내가 먼저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늙은이의 목 정도는 쉽게 딸 수 있다 여겼지. 아무래도 내가.......”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알톤은 이를 악물었다.


“......기다려라. 로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태초의 비보가 자신에게 담긴 힘을 다루는 것을 넘어 이제는 성채 전체를 아우르며 스스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이 모습은 퀜달렌에게 있어서 실로 감격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가장 강력한 위대한 야성께서 오신다. 마지막이 가깝구나, 구원이 가까워.”


이제 그 중얼거림에는 회한과 달성감이 함께 섞이고 있었다.


“퀜달렌님.”

“팔레삭이냐.”


뒤도 보지 않고 대답하는 퀜달렌의 물음에 팔레삭은 더욱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로앙 기사들을 사용했습니다.”

“벌써 말이냐? 너무 이른데.”


이르다고 하긴 했으나 딱히 잘못하였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저 생각보다 빠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말 그대로인 반응이었다.


“교단원들은?”

“남은 건 저뿐입니다.”


팔레삭이 그리 말하는 순간, 태초의 비보가 밝게 빛나더니 끈적거리는 열기가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달콤한 절망과 숭배하는 마음 그리고 뒤틀린 열정이 느껴지는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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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종장 위대한 기사 (3) 23.06.05 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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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종장 위대한 기사 (1) 23.05.22 27 1 13쪽
121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5) +1 23.05.15 31 1 13쪽
120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4) 23.05.08 33 1 12쪽
119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3) 23.05.01 39 1 13쪽
118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2) 23.04.24 34 1 11쪽
117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1) 23.04.17 36 1 12쪽
116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0) 23.04.10 40 1 12쪽
115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9) 23.04.03 38 1 12쪽
114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8) +1 23.03.27 44 1 12쪽
113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7) 23.03.20 41 1 11쪽
112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6) 23.03.13 47 2 11쪽
»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5) 23.03.06 41 2 12쪽
110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4) 23.02.27 39 2 12쪽
109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3) 23.02.20 43 2 11쪽
108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2) 23.02.13 40 2 11쪽
107 9장 시대의 종말과 시작 (1) 23.02.06 45 2 11쪽
106 8장 로앙의 이름 (13) 23.01.30 52 3 11쪽
105 8장 로앙의 이름 (12) 23.01.23 48 3 11쪽
104 8장 로앙의 이름 (11) 23.01.16 48 3 11쪽
103 8장 로앙의 이름 (10) 23.01.09 55 3 11쪽
102 8장 로앙의 이름 (9) 23.01.02 63 3 11쪽
101 8장 로앙의 이름 (8) 22.12.26 63 3 12쪽
100 8장 로앙의 이름 (7) 22.12.19 66 3 12쪽
99 8장 로앙의 이름 (6) 22.12.12 6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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