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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편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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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재무적
작품등록일 :
2023.05.10 11:07
최근연재일 :
2023.07.23 22:15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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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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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9,954

작성
23.05.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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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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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글자
12쪽

013 아르투아 공방전 (3)

DUMMY

사내의 허벅지보다 두꺼운 팔뚝을 자랑하며 오크가 다가왔다.

바란은 침을 삼키며 오크를 보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살의와 투지만 느껴졌다.


“크르르르.”


낮게 울며 오크 워리어가 바닥을 박찼다.

바란은 침착하게 자세를 고쳐잡았다.


“크아아앙!”


코앞까지 다가온 오크 워리어가 대검을 휘둘렀다.


부웅-.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바란을 두 동강 낼 것처럼 날아왔다.

바란은 망설이지 않고 바닥을 뒹굴었다.

아슬아슬하게 대검이 지나갔다. 휘날리는 머릿결까지 소름이 돋았다.

바란은 검을 휘둘렀다.


푹-.


상대를 베어낸 감각이 느껴졌다.

오크 워리어가 베인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았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게 상처가 제법 깊어 보였다.

험악한 표정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쿠헥!”


오크 워리어가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바란 정도의 몸은 맨손으로 찢어버릴 것 같은 근육 덩어리의 돌진에 바란이 주춤 물러났다.

오크와 닮은 무식한 대검이 다시 날아왔다.


“하압!”


바란은 검을 세우고 오크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마나 고리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이 수평으로 바뀌었다. 바란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꽉-.


검이 오크 워리어의 목에 박혔다.

단단하고 두꺼워 단번에 베어내지 못하였다.

바란은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검으로 그어버렸다.


“끄륵!”


오크 워리어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바란의 검에서는 오크의 피가 흘러내렸다.


“하압!”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오크 워리어 하나가 도끼를 휘둘렀다. 바란은 뒤로 잽싸게 물러났다. 도끼가 바로 앞을 지나갔다.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한 풍압이 밀려왔다.


“와아.”


깜짝 놀랐다.

자세를 바로잡고는 오크 워리어를 노려보았다. 오크 워리어도 상대가 운으로 동족을 잡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흉포한 기세와 다르게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이봐. 그냥 물러나면 살려는 드릴게.”

“인간. 재미있군.”


어색했지만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재미있으라고 한 말 아닌데?”

“내가 본 인간 중에 네가 제일 재밌다.”


정말 재미있는지 오크가 웃었다.

오크가 웃자 반쯤 숨어있던 어금니가 모습을 보였다.

달빛에 반짝 빛나는 오크의 송곳니는 인간인 바란에게 결코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쿠앙!”


거대한 덩치가 돌진하였다.

바란은 바쁘게 마나를 움직였다.


“크하아압!”


바란이 힘차게 검을 내질렀다.


깡-.


“우욱!”


오크의 도끼와 정면으로 맞부딪친 바란이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번 더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젠장.”


바란이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늑골이 욱신거리는 것이 어디 하나 부러졌나 싶었다.

자세를 잡은 바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검에는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그의 몸에서는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상대의 살기에 오크 워리어는 신이 났는지 투기가 피어올랐다.


“하아압!”


바란이 앞으로 나아가면 오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오크 워리어도 손에 들고 있는 무식한 도끼로 내려찍었다.


쾅-.


검과 도끼가 부딪혔는데 귀를 때리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우욱!”


속이 울렁거렸다.

아무래도 사제가 한 말보다 더 빨리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까처럼 밀려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바란은 부지런하게 검을 휘둘렀다.


깡-. 깡-.


마나의 힘이 아니었다면 정말 단 한방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바란은 마나를 익힌 기사였다.


“크아아아앙!”


인간에게 밀리는 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오크가 크게 소리쳤다.

팔에서 느껴지는 상대의 힘이 강해졌다. 바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싱글 체인의 기사가 전력을 다하는 오크 워리어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압!”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왔다.

날아오는 도끼를 피해냈다. 오크가 약이 올랐는지 우악스러운 손으로 바란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사각-.


바란이 몸을 비틀면서 검을 휘둘렀다.


“크아항!”


오크의 팔뚝에 검이 박혔다.


‘미친.’


검이 빠지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판금 갑옷을 믿고 바란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오크 워리어를 향해 몸통 박치기를 시도하였다.


쾅-.


정신이 아찔해지는 충격이 전해졌다.

바란은 머리를 흔들며 눈을 떴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높이에 있어야 할 오크의 얼굴이 바로 앞에 보였다.


“죽어랏!”


몸통 박치기의 충격으로 팔뚝에서 빠진 검을 역수로 쥐고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다.


“쿠에엥!”


푸욱-.


검이 오크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과 피부 사이의 작은 틈으로 피가 왈칵 쏟아져 흘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오크의 몸이 잠잠해졌다.

바란은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두 발로 밀어 검을 뽑았다.


“하악! 하악!”


뜨거운 열기가 목을 통해 입 밖으로 나왔다.

바란은 힘겹게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숨 쉴 때마다 아픈 게 늑골이 이번에 정말 부러진 것 같았다.

오크 워리어 두 기를 단신으로 해치웠다는 흥분이 밀려오는 고통 때문에 차갑게 식었다.


‘어떻게 되었지?’


바란은 전장을 상황을 보았다.

사십 명이 넘는 기사와 용병이 오크 워리어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백중세.

그러나 아주 작게나마 인간이 오크보다 우위에 있었다.


‘제길. 어찌 챙겨주는 사람이 하나 없군.’


모두 목숨을 걸고 전투 중이라 당연하지만 그래도 오크 워리어 둘을 베었는데 아무도 안 알아주니 서운했다.


비틀거리는 바란의 곁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단테스 경. 괜찮습니까?”


달자스가 걱정스럽게 바란을 보았다.


“아니. 당장에라도 쓰러져 자고 싶군.”


정신이 아득해졌다.

두 다리는 마치 추운 겨울 나뭇가지가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빠지며 검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단테스 경! 정신 차리십시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시간이 금이다. 지금 최대한 오크 워리어를 잡아야 했다. 공격 중인 몬스터가 되돌아오면 결사대는 꼼짝없이 몬스터에게 포위당한다.


“말에라도 오르십시오.”


달자스가 주변에 주인을 잃은 말을 끌고 왔다. 바란이 말에 쉽사리 오르지 못하자 달자스가 밑에서 힘껏 바란을 올렸다.

부드러운 말 털이 바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게 바란이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바란이 눈을 떴다.

익숙한 막사. 그리고 익숙한 사제가 눈에 들어왔다.


‘꿈인가?’


마치 오크 워리어를 베어낸 기억이 꿈처럼 느껴졌다.


‘회귀?’


홉고블린을 잡고 탈진하고 실려 왔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였다.

가끔 로브리아의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서적 중에 비운의 기사가 과거로 돌아가 최강의 기사가 되는 소설을 본 적이 있었다.

삼류 저질 소설이라고 비웃었는데 정말 내가 과거로 회귀할 걸까?

아마 저 사제는 대머리가 될 거라고 말하겠지?


“정말 죽습니다. 기사님.”


예상과는 다르게 잔소리가 귀에 박혔다.


“저번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대머리고 주름이고 그냥 당장 죽는다고요.”


사제의 말을 듣고 보니 꿈도 회귀도 아닌 모양이었다.


“기사님. 살아야 명예도 부도 있는 거예요. 오크 워리어 수십을 잡아도 죽으면 그냥 뛰어난 기사다. 이러고 끝나요.”


잔소리가 길어졌다.

안 그래도 정신을 잃었던 깨어난 직후라 상태가 멍멍한데 잔소리까지 귀에 박히자 숨이 턱하고 막힐 것만 같았다.


“기사님!”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바란의 눈동자가 사제의 옆으로 향하였다.

로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살았어?”

“네. 여기 사제님께서 밤새 고생하셨어요.”


바란의 시선이 사제에게 향하였다.

뿌듯한 표정이 사제의 얼굴에 묻어났다.


“저 정도니까 두 번 살린 겁니다.”


솔직히 사제의 능력이 출중하긴 하였다.


“신앙심 깊은 사제를 만난 걸 다행으로 여기세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사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위험해요. 늑골이 부러지지 않았지만, 금이라도 갔는지 멍이 심해요.”


부러진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내상은 약 따로 챙겨 드릴 테니 꼭 드세요. 마나 역류하면 그냥 소드 마스터도 병신 되는 겁니다.”


사제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일깨워주기에는 충분하였다.


“내일 또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벗어났다. 로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메르시 경이 반쯤 죽은 모습으로 말에 기사님을 실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아······.”


달자스가 생각났다.

그 와중에 자신을 챙겨서 진지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진짜 죽을 뻔했답니다.”


걱정이 묻어났다.


“그래?”

“안 어울리시게 왜 이렇게 위험하게 날뛰세요.”


에스딘 마을에서의 바란은 기사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좀 멀었다.

아침에 하는 수련이 아니었다면 한량이었다. 아니 아침에 바위를 드는 모습 때문에 더 한량 같아 보였다.


“그러게. 왜 그러지?”


바란이 웃었다.

로빈이 짠한 표정을 보았다. 모랭에서까지만 하더라도 의외의 모습에 놀랐다.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을 기사로 모실 수 있어서 종자로서 영광이었다.

그런데 어제 말에 실려 온 모습을 보는 순간 좀 기분이 이상하였다.


“단테스 경. 깨어나셨군요.”


어색한 분위기를 깨주는 이가 막사에 등장하였다.

달자스였다.

로빈의 말대로 정말 고생이 심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직도 전투를 치루는 전장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젠 고마웠네.”

“아닙니다. 혼자서 오크 둘을 처리하는 동안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거기서 데리고 오는 것보다 쉬운 일이지. 내가 언제 술 한 잔 사지.”


어지간히 고마웠나 보다.

천하의 구두쇠이자 술 사는 걸 제일 싫어하는 바란이 먼저 술을 사겠다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단테스 경의 무용에 작은 존경심을 표한 것이니 크게 염려치 마십시오.”


달자스의 말에 로빈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달자스가 고귀한 기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 몰랐다.


“무릇 기사란 자신의 행하는 행위에 대가를 바라면 안 되지요.”


조금 답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저 진실한 눈과 말에서는 마치 수십 년을 함께한 친구에게 느껴지는 신뢰감이 전해졌다.


“그럼 좋은 친구에게 술 한 잔 사는 거로 하지.”


바란이 미소를 지었다.

그깟 술 한 잔에 얼마나 한다고.

사람이 너무 아껴도 안 된다.


“그렇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지난번에 대접받았던 레임스 산 와인 어떻습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고 했으면서 저 값비싼 술을 말하다니.

바란이 메르시 가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저런 귀티와 레임산 와인을 사라고 말하는 박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좋은 가문의 자제일 것이다.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달자스가 웃으며 막사를 나갔다. 바란이 멍한 표정으로 달자스가 사라진 막사 입구를 허망하게 보았다.


“정말 레임스 산 와인 사시는 겁니까?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넌 맥주 사줄게.”

“왜요?!”


끔찍한 맥주 맛이 떠올랐는지 로빈이 인상을 썼다.


“넌 맥주가 어울려.”

“그런 말 오줌 같은 게 어울린다니요!”


술을 못 마시지만 그래도 입도 있고 미각이라는 것도 있다.

막사의 소란에 밖에 있던 이들이 들어왔다.


“대장!”

“정말 뒈지는 줄 알았다고요!”

“살아있으시네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압니까?!”


백인대의 조장들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는 바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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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2 아르투아 공방전 (2) +4 23.05.17 5,019 1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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