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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무적의 서재입니다

기사는 편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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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재무적
작품등록일 :
2023.05.10 11:07
최근연재일 :
2023.07.23 22:15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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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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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954

작성
23.05.1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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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글자
12쪽

005 오크가 몰려온다 (3)

DUMMY

바란은 구석 벽에 기대앉았다. 로빈도 더는 말하지 않고 바란의 옆에 함께 앉았다.


“살았다.”

“살았어. 살았어.”


천이 넘던 병사 중에 살아서 요새로 들어온 이는 채 삼백도 안 되었다.

고작 이백의 오크에게 천이 넘는 병사가 싸우지도 못하고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압도적인 오크의 무력은 공포 그 자체였다. 아마 여기로 돌아온 이들은 오크와 다시는 싸울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아직 기운이 팔팔한 인간이 남아있던 모양이었다.


“알레 자작은 어디 있소!”

“그렇게 자신있어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오!”

“내 당장 영지로 돌아갈 것이다! 문을 열어라!”


어제 태평한 말이나 내뱉던 귀족들은 백작에게 항의하고 있었고 문을 열라며 병사들에게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바란은 너무나도 한심한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들 어제 알레 자작의 작전에 동의하며 희희낙락하던 기억은 없는지. 그들은 패배의 원흉을 알레 자작에게 돌리고 있었다.


“한심하다. 한심해.”


자신이 다 부끄러웠다.


“그래도 요새 안으로 들어왔으니 다행이네요.”

“일단은.”

“아무리 오크라도 성을 무너트리지 못하겠죠?”

“무너트리지 못해도 넘긴 하겠지.”


로베 요새는 잠깐 오크들을 막아줄 수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숫자가 부족하기에 바로 넘지는 않겠지만, 로베 요새는 애초에 그렇게 단단한 곳이 아니었다.


“오크다!”

“오크들이 몰려온다!”


귀에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오크들이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요새로 밀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성벽을 기어오른다! 막아라!”

“당장 성벽으로 가라! 오크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다급한 음성과 함께 쉬고 있던 바란이 검을 잡았다.


“기사를 그만두든지 해야겠어.”


바란은 가까운 성벽으로 달려 나갔다. 이미 성벽을 넘은 오크들도 보였다.


“차압!”


바란은 막 성벽을 넘은 오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쿠에엑!”


미처 준비가 안 된 오크가 바란의 검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성벽 밖으로 떨어졌다.


“이인일조! 아니면 삼인일조! 무조건 모여서 오크를 밀어내!”


바란이 주변의 병사들에게 외치자 삼삼오오 모여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오크들에게 창을 뻗었다. 여기저기 창이 날아오자 오크들도 성벽을 기어오르는데 애를 먹었다.


“죽이지 못해도 된다! 그저 올라오지 못하게 밀어내기만 해!”


바란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오크가 성벽을 넘어오기 시작하면 끝이었다. 어떻게든 막아야만 하였다.


“로빈! 저기 가서 도와줘!”


로빈이 아슬아슬하게 오크를 막아내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로빈이 합세하자 그래도 다시 어느 정도 오크를 막아냈다.

바란은 검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으악!”


오크가 병사 하나를 베고서 성벽을 넘어왔다.


“으아악! 살려줘!”


남은 병사들이 겁에 질려 마구잡이로 창을 찔렀지만 오크에게 닿지는 않았다.


“차아압!”


바란이 병사 뒤에서 뛰어오르며 오크에게 검을 날렸다.


깡-.


오크가 바란의 공격을 막았다.


“잘 가라.”


쿵-.


바란의 몸통 박치기에 오크가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 다시 막아!”


바란이 병사들에게 명령하자 병사들이 창을 들고 방금 오크가 넘어온 성벽으로 달려왔다.

기사들이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오크가 성벽을 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운 좋게 성벽을 넘더라도 다른 기사들이 달려들어 오크을 베었다.


“오크들이 물러난다!”

“와아아!”

“살았다! 오크들이 도망간다!”


매섭게 성벽을 넘던 오크들이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살아남은 병사들이 그 모습에 환호하였다. 바란은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바란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바닥까지 끌어모아 마나를 사용한 탓에 심장이 박살 나는 고통이 밀려왔다.


“우웩.”


검붉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했다.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몸 여기저기는 부서질 듯 아팠다.


‘휴. 먹고 살기 힘들다.’


바란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얄밉게도 너무나도 맑았다.


* * *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로베 요새 곳곳에는 따스한 모닥불이 타올랐다. 삼삼오오 모닥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모랭에서 반나절 떨어져 있는 마을에서 온 벤이야.”

“난 가빈. 전에 살던 곳에서 목수였어.”


모닥불에 모인 병사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낮에 겪었던 공포를 이겨내려 하였다.

살던 곳도 가까운 모랭 인근부터 여기저기서 모였고 하던 일도 목수 농부를 비롯해 각양각색이었다.


“시끄럽지 않으세요?”


로빈이 바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혹시나 쉬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조용한 것보다 나아.”


바란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낮에 격렬히 싸운 탓에 피로가 가득했다. 특히 코를 자극하는 피 냄새에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기사님.”


쉬고 있는 바란에게 소년이 찾아왔다.

로빈이 ‘쫓을까요’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바란은 말없이 소년을 보았다.


“아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녀에게 고백하듯 소년이 수줍게 말을 하였다.

아마 아까 성벽에 있던 병사인 모양이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바란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기사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도 나중에 기사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노력하면 아마도?”


기사라는 게 뭐 쉬운 것은 아니니까.

노력 재능 운 모든 것이 잘 따라줘야 하는 거니까.


“쉬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고맙다는 인사 고마웠어.”


소년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사와 같이 높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경우는 없었다. 아마 소년에게는 여기서 살아난다면 평생 자랑할 일이었다.


타탁-. 타탁-.


이내 요새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다들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낮에 있었던 전투에 대한 충격과 혹시 오크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오크다! 오크가 나타났다.”


성벽에 있던 병사의 외침에 조용하던 요새가 시끌벅적해졌다.

바란은 옆에 세워둔 검을 집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힘도 좋아. 아주 좋아.”


바란이 투덜거렸다. 낮부터 계속된 싸움에도 지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득-. 우드득-.


뼈마디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겨우 달래놓은 마나 체인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성벽으로 가라! 오크를 막아라!”

“오크를 넘어오지 못하게 하라!”

“죽기 싫으면 빨리 움직여!”


기사들이 거칠게 병사들을 성벽으로 이끌었다. 쉬던 이들이 황급히 성벽으로 뛰어올라갔다.

바란도 로빈을 대동하고 성벽으로 향하였다.


“취에에엑!”

“아까처럼 창으로 성벽만 못 넘어오게 막아라!”


창을 든 병사들이 성벽을 넘으려는 오크를 향해 창을 밀어 넣었다. 위협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성벽을 타고 넘어야 하는 오크에게는 걸리적거렸다.


“오크가 아니다! 고블린이다! 고블린!”

“으악!”


초록색 인형 하나가 바란의 바로 옆 병사를 쓰러트리고 성벽을 넘었다. 인간보다 작은 키에 오크와 다른 의미에서 못생긴 얼굴.


“더럽게 못생긴 얼굴 치워!”

“큐에엑!”


오크가 무섭게 생긴 못난이라면 고블린 진짜 못생긴 얼굴이었다. 보는 것만으로 살의를 일으키는 얼굴에 바란이 그대로 고블린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가빈이라고 했나? 더 힘차게 못 막아?”

“네? 네넵!”


바란은 옆에서 다 죽은 얼굴로 창을 꼬나쥔 가빈에게 한마디를 하고서 다른 쪽으로 향하였다.

한참 성벽에 붙어 병사와 드잡이하는 고블린이 바란의 눈에 들어왔다.


“하압!”

“큐에엑!”


기합과 함께 달빛에 비친 검이 반짝이자 고블린이 피를 뿌리며 성벽에서 떨어졌다.


“취에엑!”


성벽을 넘은 고블린 하나가 포효하며 조잡한 도끼를 힘껏 내리찍고 있었다. 바란의 눈에는 참으로 조잡하고 볼품없는 도끼질이었다.

바란은 살짝 몸을 돌려 도끼를 피함과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검은 깔끔하게 고블린의 목을 관통하였다. 검을 회수하자 검에 찔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고블린이 뒤로 넘어갔다.


“체익!”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고블린 뒤로 다른 고블린이 모습을 보였다.

종족의 원수를 갚겠다는 듯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바란은 발을 살짝 뒤로 빼고 달려오는 속도에 맞춰 검을 횡으로 그대로 휘둘렀다.


부웅-.


무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른 검이 그대로 고블린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성벽을 넘어오는 고블린의 숫자가 제법 많았다.

숫자의 우위를 바탕으로 오크보다 몸놀림이 빠르다 보니 낮에 오크를 막을 때보다 더 어려웠다.

거기에 고블린이 약한 몬스터라고 하지만 그건 기사 기준이고 병사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아까 본 돼지머리보다 더 못생긴 놈들아! 꺼져라!”


로빈이 분노에 찬 일격을 고블린에게 선사하였다.

역시 기사의 종자다운 깔끔한 칼솜씨였다.

기사는 아니라지만 종자로서 노력한 결과가 나왔다.

바란은 로빈에 대한 걱정은 잠시 치우고 성벽을 둘러보았다.


‘오크라도 올라오면 대박이겠네.’


고블린으로 벅찬 상황. 아까 낮에 싸웠던 오크라도 참전하면 정말 큰 일일 것 같았다.

전장에 감도는 기운이 영 불안했다.

전장에서 기사의 감은 때로는 매우 무서웠다.


“오크다! 크악!”


오크의 등장에 바란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따라 자신의 안 좋은 생각이 너무나도 잘 맞고 있었다.

이 정도면 기사 말고 점쟁이 하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아라!”

“오크가 넘어오면 큰일이다!”


성벽에서 지휘하는 기사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고블린도 버거운데 오크까지 합세하자 죽을 맛이었다.


“오크만 확실하게 막아! 넘어오는 고블린은 내가 다 상대하겠다.”


바란이 주변 병사들에게 명령하고 막 성벽을 넘으려는 고블린 쪽으로 몸을 날렸다.


쾅-.


“케헤엥!”


일격에 고블린을 날려버린 바란은 멈추지 않고 다음 상대에게 몸을 날렸다.

몸속을 빠르게 누비고 있는 마나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활기차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고 들고 있는 검에 실린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크악!”

“살려줘! 으아아악!”


오크의 등장에 성의 수비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란을 비롯한 기사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였지만,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도망치지 마라! 어차피 도망갈 곳은 없다! 여기서 못 막으면 다 죽는 거야!”


죽는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에게 바란이 일침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무너져버린 병사들을 통제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쿠에엑!”


오크 하나가 성벽을 넘었다. 강한 기운에 이끌리듯이 주변의 병사들을 무시하고 바란에게 돌진해왔다.


“시바아아아아알!”


바란이 악에 마쳐 마나를 끌어올렸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밀려왔고 마나의 힘을 받은 팔에 근육은 아우성쳤다.


깡-.


바란의 검에 오크의 도끼로 뒤로 밀려났다. 동작이 큰 탓에 도끼가 밀려나자 빈틈이 노출되었다.


푸욱-.


바란의 검이 갈비뼈 사이를 지나 심장을 그대로 관통하였다.


“케헤엥-.”


오크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리고 바란의 몸도 함께 무너졌다.

쥐어짜도 나올 마나도 힘도 남지 않았다.

지금은 고블린이 아니라 개미가 와도 바란은 이길 자신이 없었다.

내 나이 25세.

결혼은 커넝 여자 손도 못 잡아보고 죽는구나.

네스가 뭐라고.

돈 모으겠다고 정말 바보처럼 살았구나.


뿌우우웅-.


“알레 자작이 지원군을 이끌고 왔다.”


바란은 작은 희망의 빛을 보았다.


“남문을 열어라!”

“백작님을 모셔라!”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정말 눈 두 번을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하였다.

요새의 남문이 열리자 백작을 필두로 귀족들이 정말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진짜 개놈들이네.’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는 뒷모습에 욕설이 절로 나왔다.

오크와 고블린은 뭐하냐?

저딴 개놈들 안 잡아가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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