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8.01 18:10
연재수 :
325 회
조회수 :
1,661,016
추천수 :
32,962
글자수 :
2,449,554

작성
23.08.02 18:10
조회
8,153
추천
139
글자
19쪽

검귀의 검, 곤륜의 검(2)

DUMMY

※※※



“구름이 많군.”


문득 여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청년. 나무 끝자락에 걸터앉아 녹빛 도포를 늘어뜨린 채로 병을 입에 가져다 대고 있다.


그 어투가 지극히 태평했는데, 그저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누군가가 반응했다.


휘익.


나무 아래 연무장. 허공을 격하던 청광(淸光)이 우뚝 멈춰섰다. 빛살로 인지할 만큼 쾌속한 창술. 대기를 찢으며 연격을 이어가던 연환창식이 그 빛을 중간에 끊으며 멈춘 것이다.


새카만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시선을 들어올린 악예린. 그녀가 하늘을 힐끗 보고는 당소하에게 눈을 돌렸다.


“그렇군요.”

“달빛을 가렸어. 술 맛 떨어지게.”


툭.


나무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신형이 연무장에 착지했다. 당소하의 손에 가벼이 늘어뜨려진 술병이 찰랑였다.


구름이 많다. 달빛이 드리웠던 밤이다. 갑작스레 하늘이 어두워졌다. 자연히 주변에 내리쬐던 빛이 사라진 남궁의 장원은 어두워졌다.


“......어둡군.”


그러면 아니 될텐데, 하고 당소하가 중얼거렸다.


남궁세가의 장원인 것이다. 심지어 용봉지회가 열리는 중이다. 본 대회가 시작한 이후 불이 꺼지는 일이 없다. 하루 종일 등롱을 밝혀놓는 탓인데, 무인들이 수면을 취하는 곳을 제외하면 언제나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밝게 유지한다.


연무장은 무인들의 감각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곳 보단 어둡게 해놓는다지만, 지금은 정말로 빛 한점 없이 어두웠다. 그야말로 암야(暗夜).


매일 밤낮으로 백연의 부탁을 받아 장원을 감시하고 있는 당소하이다. 때모를 습격이 있을지 모른다고.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다. 그 또한 습격을 당해본 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그 성과가 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빛이 꺼졌군요.”


담담히 중얼거린 악예린. 그녀가 창을 바닥에 찍으며 어깨를 매만졌다. 직전까지 수련을 하고 있던 몸 상태.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만전의 상태이다. 그가 경고한대로 충실히 대비하고 있었다.


“아까 네 녀석하고 대련을 안해서 다행이군.”

“대련을 했으면 더 만전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네 창술에 두들겨 맞고? 아서라. 그러면 사흘은 앓아눕는다.”


악예린이 살풋 고개를 기울였다.


“당신은 그보단 훨씬 강합니다만.”

“하기 싫다고 돌려 말한거다. 좀 재깍재깍 알아먹어.”

“후훗.”

“......너.”


당소하가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악예린을 슬쩍 노려보려던 순간.


그들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직전까지 가벼이 대화를 나누던 기세는 어디가고 한순간에 날카로워진 시선이 허공을 주시했다.


기척이었다. 둔중한 울림이 사방을 채운다. 다른쪽으로 꺾어지는 일 없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강렬했다.


눈을 가늘게 뜬 당소하가 손을 매만졌다.


“하나.”


수를 가늠한 것이다. 악예린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윽고 그들의 시야에 커다란 덩치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쉬이 보기 어려운 거구. 누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당소하가 입을 열었다.


“팽악.”

“......소가주.”

“무슨 일인가요, 도룡.”

“악가 계집도 있었군. 좋은 일인가.”


평소에 비해 힘이 빠진 목소리. 그 기세가 팽악답지 못하다. 칠룡의 일원인 도룡 팽악. 당소하 본인이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는 이였으나, 그의 인간성과는 별개로 뛰어난 무인임은 확실했다. 저리 기백이 약해져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당소하가 천천히 손을 늘어뜨렸다. 소매 안쪽에서 번뜩이는 묵색 빛이 일었다.


“거기 멈춰라. 팽악.”


나직한 경고가 일고, 기척이 우뚝 멈춰섰다. 이윽고 지친 한숨이 흘러나왔다.


“독룡. 경계가 강하군.”

“이 밤에 연무장에는 무슨 일이지. 이미 용봉지회도 떨어지지 않았나. 팽가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그러려 했다만.”


쿨럭. 허공에 훌리는 기침 소리가 짧았다. 기척이 천천히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길게 드리워진 연무장의 그림자 바깥으로 벗어난 팽악. 그의 모습이 눈에 드러났다. 비도를 날리려던 당소하가 멈칫한 것은 팽악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너.”

“후. 좀 뻐근하군. 약이라도 있나. 정신 집중이 흩어져서 운공이 되질 않는다.”


곁의 악예린이 움찔할 정도로 큰 외상. 팽악의 복부를 따라 길게 이어진 자상이 깊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의 발치를 따라 흘러내린 피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양이었다.


팔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쪽 손에 도를 길게 늘어뜨린 팽악이 그들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고통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가 이랬지?”

“모르겠군. 정신없이 싸우다가 나왔다. 소리없이 습격이 이뤄졌는데.....쿨럭.”


핏물을 한움큼 뱉어낸 팽악이 도를 짚고 몸을 기울였다. 악예린이 앞서 걸어 그를 지탱해주려 가는 순간이었다. 당소하가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잠깐. 팽악. 확인할게 있다.”

“좋아. 모두를 의심하는 건 좋은 일이지.”

“너, 나와의 대련 전적이 어떻게 되지?”


그때까지 평이하던 팽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서 그걸?”

“답해라. 지금 널 사살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니까.”

“......후. 칠십이전 삼십오승 삼십칠패.”


중간에 이를 으득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당소하는 무시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팽악이 분명했다. 그제서야 팽악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그가 빠르게 손을 놀렸다.


“지혈이다. 혈도를 짚어놨으니 운공해.”

“약은 없나.”

“네게 줄건 없다.”

“흐.”


짧게 웃음을 흘린 팽악이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직후 그의 몸에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팽가의 심법. 그 기세가 자못 강렬하다.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낸 당소하가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그를 쳐다보던 악예린이 입을 열었다.


“전각들이 습격을 당했다 해도, 이미 시간이 조금 흘렀어요. 우리가 그쪽으로 가는건 위험해요. 미리 자리를 잡고 있을 터인데.”

“그렇긴 한데.”


당소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습격당했다 했다. 팽악이 먼저 급습 당한것을 보아 위험한 인물을 먼저 노리는 듯 한데, 거기서 끝날리가 없었다. 이곳에 모인 후기지수들. 지금 전부 위험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단휘도 존재한다.


“그래도 가야겠다.”

“......좋아요. 당신이 원하는대로.”

“고맙군.”


중얼거린 당소하가 눈을 감았다. 삽시간에 그의 기감이 펼쳐지며 주변을 훑었다. 강렬한 기파가 일어나며 그의 장포가 휘날렸다.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기세의 분출. 이윽고 특별히 기운이 운집된 지점을 특정한 그가 눈을 뜨곤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악예린에게 던졌다.


“먹어둬라.”


마침 짧게 운공을 마친 팽악에게도 하얀 약을 건네었다.


“이게 뭐지?”

“해독제다.”


담담히 중얼거린 그의 말. 그에 악예린과 팽악의 눈이 동시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때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움직였다. 셋 모두 뛰어난 기감을 지닌 무인들이다.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수십의 기척을 느끼지 못할리가 없었다.


“알아서 와주시는군. 더 편해지게.”


당소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시에, 장포의 소매를 걷어올린 그의 손을 따라 기운이 거세게 일었다. 황급히 한걸음 물러난 악예린과 팽악이 약을 씹어 삼키고.


“후.”


짧게 호흡을 내쉰 당소하의 피부 위로 천천히 기운이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독룡 당소하. 본래 뛰어난 암기술로 유명하다. 칠룡중에 그 무위가 중위에 드는데, 팽악과 거의 동수를 이룰 정도. 절세의 보법과 상대의 간합을 파고드는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도 명성이 자자한데, 그럼에도 칠룡의 머리는 되지 못한다.


허나, 그것은 대련과 무기를 다루는 실력에 한정된 이야기.


생사결로 간다 했을때, 독룡을 이길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별호가 다른 무엇도 아닌 독(毒)룡인 이유.


“만독(萬毒).”


투둑. 그의 손끝을 따라 기파가 일었다. 분명 무형에 가까웠을 그의 기운. 체내에서 피어오른 내공이 손끝에 이르는 것과 동시에 투명한 한방울의 액체가 생성되었다. 그것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연무장의 청강석 바닥을 따라 거친 치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일었다.


“개(開).”


호흡을 따라 흐르는 것은 독무(毒霧). 모든 체내의 기파가 일제히 극독으로 바뀐다. 발출되는 순간 그의 기감을 따라 조합되는데, 그 종류가 셀 수 없다. 당소하 자신의 오성만이 무공의 한계이니.


암기술의 정점인 만천(滿天)과 더불어 사천당가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신공. 지금 악예린과 팽악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알아서 피해라. 약도 줬으니까.”

“저 미친놈이......!”


욕지거리를 내뱉은 팽악이 즉시 뒤로 보법을 밟았다. 악예린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허공에서 속속들이 나타난 검은 인영이 당소하를 향해 쇄도했다. 소리 한점 없는 인영들. 검은 밤에 녹아든 살수들의 실력이 높았다. 십수개에 달하는 암기가 동시에 발출되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암기의 합공 한 가운데에 선 독룡. 그러나 짓쳐오는 암기 속에서 그는 보법을 밟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느릿하게 손을 들어올린 그가 허공에 손을 그어내며 중얼거리는 순간.


“녹린(綠燐).”


치이익-!


그에게 짓쳐오던 수십 암기가 삽시간에 짙은 녹빛에 휩싸이더니 녹아 흩어졌다. 암기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나 검을 찌르려던 살수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시체 한조각 남지 않은 핏물이 된 살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후두둑.


남은 살수들이 황급히 몸을 빼며 착지하는 소리가 울리고.


적막이 돌았다. 그 가운데에 선 당소하가 입매를 비틀었다.


“백연. 어딜 갔는지 모르겠지만.”


치익.


그의 손끝을 따라 독물이 투둑 떨어져내렸다. 맹렬하게 이는 기파가 진했다. 자신을 둘러싼 살수들을 응시하며 당소하가 손을 들어올렸다.


“돌아오면 이 값은 술 한병으로는 안되겠군.”



※※※



사방이 소란했다. 바깥에서 번갈아 울리는 소리들. 그 와중에 이곳으로 향하는 기척들이 적지 않았다. 백연은 기감을 펼쳐놓은 채로 남궁유진을 돌아봤다.


“유진. 네 형이 너한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여길 같이 벗어나는게 나을거야.”


어느새 검을 뽑아든 소년. 그를 쳐다보는 눈빛이 불안하게 일렁였다. 그의 무재가 뛰어나다 하나 아직은 성취가 높지 못하다. 전에 손을 겨뤘을때 파악한 바, 아직 남궁혁을 상대로도 승리를 가져오기 어려울 터.


“형님이 거기까지.”

“검왕을 죽이려 하고 있어. 네 앞에서 손속이 약해질 이유가 없잖아.”

“......그렇죠.”


입술을 깨문 남궁유진이 백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검왕은 걱정할 필요 없어. 애초에 우리가 걱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검왕 스스로 체내의 마기를 지워내기만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당장 이곳으로 향해 검왕의 목을 치려 하는 이들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검왕의 제왕검형 아래 다 짓눌려 죽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를 심상세계로 당겨내는 괴물이니.


그때,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 도련님!”


문을 힐끗한 백연이 유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두 소년의 발끝에 기파가 일었다. 맑게 퍼지는 남궁의 기운과 산들바람처럼 휘감긴 곤륜의 기운.


제각기 보법을 펼친 신형이 가볍게 정원의 위로 도약했다. 지붕에 한순간에 올라선 두 소년이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좀 불편한데.’


바람에 펄럭이는 궁장이 거추장스러웠지만, 벗어내거나 할 시간은 없었다.


그의 시야 저편에 일렁이는 불꽃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밝아지고 있었는데, 전각들 사이로 번지고 있는 듯 했다. 그 사이로 셀 수 없이 많은 기척이 부딪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전부 뒤섞여 있어서 가늠하기가 어려워.’


기척을 느끼기론 난전이다. 두 진영이 명확히 나뉜것이 아니라 검을 나누는 대상들이 전부 섞여 있었다. 어째서인지 알기 어려운 일이다.


정파 무인들이라면 암습이나 급습을 받았을때 최대한 협력해 전투하는 것이 대부분일텐데.


‘......그보다.’


머릿속에 자꾸만 걱정이 끼어든다. 저기 전각들. 무인들이 기거하는 장소이다. 당연히 백연이 머무는 전각도 저기에 존재한다. 단휘가 저 속에 있다는 말이다.


그가 평시 경고를 해두긴 했으나, 전투에 휘말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디 사형이 검감을 날카롭게 갈아뒀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쪽이에요.”


남궁유진의 말과 함께 두 소년의 걸음이 지붕을 박차고, 가벼이 몸을 날린 둘의 신형이 바닥에 착지했다. 세가 안쪽 건물들을 나가는 길목. 이곳으로 직진하면 그들이 들어온 방향이었다.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 그 가운데에 버티고 선 인영이 있었던 것이다.


“......아우야.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것이냐?”


뒷짐을 진 남궁혁. 허리춤에 매달린 검이 길었다. 그의 주위를 둘러싼 무인들이 많다. 하나같이 강한 기세를 흘리고 있다.


그것을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 백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실수했다.’


그의 기감은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감지하고 있었으나,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일일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까지 확인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미리 길을 틀지 못했다. 이쪽 근방에 모여있는 것 까지는 알았으나, 그것이 그들을 잡기 위해서였다니.


“......형님.”

“가주님을 뵈러 간다더니. 곁의 의녀가 지닌 의술이 신통치 못했느냐?”


그리 말하며 껄껄 웃는 남궁혁.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다.


남궁유진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바깥에 습격이 일어난 듯 하여 확인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습격! 습격이라. 지금 무뢰배들이 난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맞다. 허나 그것에 네가 관여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 다치면 어쩌려고.”


그리 말하며 웃음을 가장하는 얼굴에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동생아. 들어가서 기다리거라. 내 바깥을 정리하고 안전해지면 부를터이니.”

“......”


남궁유진의 시선이 백연을 힐끗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 망설이던 소년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하지만 이분은 내보내 주십시오.”

“흐음.”


남궁혁이 고개를 기울였다. 백연은 천천히 여휘검에 손을 가져갔다. 여기에서 이들을 쓸어버리고 가는게 맞을것인가.


하지만 전부가 만금장에 붙은게 아닐지 모른다. 남궁혁은 분명 배신자지만, 여기 모인 무인들은 남궁의 일원인 이들도 많을 터. 그 증거로 모든 무인이 기세를 피워올리고 있지는 않았다. 불안하게 움직이는 이부터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멍한 얼굴을 한 무인들까지.


그때, 남궁혁이 입을 열었다.


“좋다. 그대는 나가도록 하게.”


한순간 백연이 놀라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하지만 남궁혁의 표정은 여전했다. 그가 손을 펼치며 문을 가리켰다.


“평시라면 함께 지키겠지만, 지금 누가 침입한지 모르는 상황에서 외부인을 가문의 내에 들이기란 어려움이 있지. 다시 생각하니 그대는 나가줘야 하겠는데.”

“소가주님. 그래도 여인인데......”


옆에서 중얼거리는 남궁 무인의 목소리에 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 사람이 뭐라는거지.


그러나 남궁혁은 고개를 저었다.


“바깥에 용봉지회의 무인들이 있다. 구파의 검객이면 믿을만 할터.”


여휘검에서 손을 뗀 백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남궁유진에게 전음을 보내면서였다.


-괜찮겠어? 여기서 빠져나와야 해. 너도.


괜찮다는 듯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유진. 백연은 입술을 베어물곤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 네 편을 잘 가려. 남궁혁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전음을 남기고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여기서 검을 꺼내 남궁유진을 데려가는 방향도 있으나, 찰나의 고민 사이에 이쪽을 골랐다. 만일 여기서 검을 꺼내 남궁의 무인들과 충돌이 일어나면 바깥의 상황을 막아내기란 더욱 어려울 터.


남궁혁이 이 일의 주동자이라 하지만,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만금장이 남궁혁이 죽었다고 해서 습격을 멈출 일은 없으니.


“안녕히 가시게.”


남궁혁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가 고개를 살풋 숙이며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섞인 웃음이 진했다.


경계를 풀지 않고 문에 도달했으나 남궁의 무인들은 이미 남궁혁과 남궁유진을 호위해 둘러싸고는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째서지.’


그가 의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보내주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습격을 우선 막아야 하니.


백연은 호흡을 다잡고 밖으로 걸음했다.


남궁세가의 안쪽 전각들에서 조금 멀어지자마자 발끝에 기파를 일으켰다. 당장 습격 장소로 향해야 했다. 한시가 급한 마음에 보법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백연이 번쩍 시선을 돌리자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이 있었다. 티없이 맑은 기도의 무인들. 연푸른 도복이 밤의 어둠 아래에서도 잘 보였는데, 그 기도가 하나같이 강맹했다.


“......구파?”

“청성파의 도위라 합니다.”


가벼이 포권을 올리는 모습에 절도가 있었다. 이윽고 그가 말을 이었다.


“소저. 같이 가시죠. 지금 정체 불명의 습격이 일어났는데, 구파의 일원들이 지금 사방을 돌며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빠르게 도망쳐야 하니 따라오시지요.”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그를 바라보는 청성파의 검객. 더없이 맑은 웃음이 걸린 얼굴이다. 상황이 더없이 혼란스럽고 의심스러운 것과 별개로, 그 표정에서는 한치의 거짓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얼굴만 보면 백연도 믿어버릴 만큼.


하지만.


“......청성의 소협.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백연의 손이 찰나에 움직이고, 다음 순간 그의 궁장 오른편 옷자락을 찢어내며 은빛 검신이 쇄도했다. 일으키는 운연동공의 속도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쾌속했다. 동시에 펼쳐진 검격. 대기를 가르며 이어진 삼원검의 횡격이 청성의 무인을 향했다.


카앙!


밤하늘 아래 튀긴 불꽃이 잠시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검에 힘을 실으며 백연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속일거면, 이상한걸 받아서 들고 다니면 안되지.”


청성 검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뒤집어졌다. 직전까지 세상 호협을 가장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암화. 기감이 뛰어나다고는 들었지만, 대체 어떻게?”


백연이 가라앉은 눈으로 검객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그의 가슴팍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안에 자리한 비도. 붉게 타오르는 적양공의 기운을 머금은 비도를.


작가의말

연재 주기가 주 3일, 월수금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혹 공지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작가의 말에 추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0 신강(4) +6 23.09.11 5,825 110 23쪽
89 신강(3) +7 23.09.08 5,832 109 21쪽
88 신강(2) +5 23.09.06 6,097 113 21쪽
87 신강 +7 23.09.04 6,196 111 22쪽
86 설화(雪花)(4) +8 23.09.01 6,449 112 21쪽
85 설화(雪花)(3) +9 23.08.30 6,649 120 23쪽
84 설화(雪花)(2) +6 23.08.28 6,881 112 21쪽
83 설화(雪花) +8 23.08.25 7,179 121 17쪽
82 선택(5) +6 23.08.23 7,320 125 21쪽
81 선택(4) +5 23.08.21 7,115 126 20쪽
80 선택(3) +8 23.08.18 7,649 131 22쪽
79 선택(2) +6 23.08.16 7,603 125 24쪽
78 선택 +6 23.08.14 7,765 132 21쪽
77 검귀의 검, 곤륜의 검(6) +8 23.08.11 7,838 144 19쪽
76 검귀의 검, 곤륜의 검(5) +8 23.08.09 7,530 130 20쪽
75 검귀의 검, 곤륜의 검(4) +7 23.08.07 7,672 136 21쪽
74 검귀의 검, 곤륜의 검(3) +6 23.08.04 7,932 139 18쪽
» 검귀의 검, 곤륜의 검(2) +4 23.08.02 8,154 139 19쪽
72 검귀의 검, 곤륜의 검 +5 23.07.31 8,496 143 16쪽
71 검왕(4) +10 23.07.30 7,986 124 13쪽
70 검왕(3) +7 23.07.29 7,728 141 12쪽
69 검왕(2) +7 23.07.28 7,759 139 15쪽
68 검왕 +8 23.07.27 7,875 146 16쪽
67 마기 +5 23.07.26 7,881 138 14쪽
66 금원방(2) +5 23.07.24 8,036 146 16쪽
65 금원방 +4 23.07.23 8,519 142 17쪽
64 용봉지회(9) +6 23.07.22 8,513 146 20쪽
63 용봉지회(8) +4 23.07.21 8,224 141 15쪽
62 용봉지회(7) +6 23.07.20 8,290 146 16쪽
61 용봉지회(6) +5 23.07.19 8,275 148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