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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9.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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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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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



“형님.”


가주 집무실 안이었다.


시끄러운 소리로 사방이 요란했다. 전각 너머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하나같이 가벼운 것이 없었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 거대한 규모의 습격이다. 본디 이리 건물에 틀어박혀 버티고 있을 일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이름이 남궁이거늘.


“조용히 하거라.”

“......습격이라 하면, 저희가 검을 빼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궁유진은 말하면서도 입술을 깨물었다. 눈 앞에 앉아있는 남궁혁의 자세가 가관이었다. 반쯤 늘어진채로 술병을 걸치고 있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습격은 자신과 상관 없다는 태도. 실제로도 그러할 것이다. 저 습격이 노리고 있는 것이 뭔지 모르는 남궁유진이 아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리 말하고 있는 것은, 일말의 희망이었다.


그의 형님이 지금이라도 옳은 선택을 해줄지 모른다는.


“검! 검이라.”


갑자기 남궁혁의 시선이 번뜩였다. 고개를 홱 돌린 그가 남궁유진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이 사나웠다. 마치 그를 적대하듯이.


“네 검. 어디까지 성취를 이뤘느냐?”

“......제왕검형 말입니까?”

“그래. 그것 말이다.”


남궁혁이 삐뚜름한 웃음을 지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눈빛에 섞인 질시와 혐오가 진했는데, 여태까지 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백연이 말한대로.’


자신이 형님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직 초입 정도입니다. 제 오성이 미진하여.”

“흐음. 구결은?”

“......전부 익혔습니다. 적용은 부차적인 문제이니.”

“그래. 잘했다.”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듯이 술병을 쥐고 다시 자리에 기대는 남궁혁. 그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것은 커다란 근골의 무인. 남궁유진의 둘째 형인 남궁준이었다.


그를 보면서 남궁유진은 한차례 입술을 더 깨물었다. 어째서 둘째 형마저 이런 일에 찬동한 것인지.


‘......나 때문일까.’


조용히 다가와 남궁혁에게 무언가 종이를 건네는 모습. 그것을 펼쳐 살핀 남궁혁의 미간이 살풋 찌푸려졌다. 이윽고 그가 술병을 내던지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들여보내라.”


남궁혁이 말하자마자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직후 그곳으로 한 무인이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호리호리한 인영이었는데, 허리춤 뒤편으로 검을 길게 걸치듯 차고 있는 모습이 독특했다.


머리에 커다란 흑립을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옷을 포함한 모든 것이 진한 흑색이었다. 손마디 끝까지 칭칭 휘감긴 흑색 천이 손의 모양조차 알 수 없게 가리고 있는 모습. 눈에 보이는 곳에 드러난 부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복식을 제외하곤 겉으로 보아선 그다지 특출날게 없어보이는 무인. 그러나 남궁유진은 그를 보는 순간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그의 뇌리 한켠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뒤편으로 살짝 몸을 물린 남궁유진. 순간 그 기척을 인지했는지 흑립의 무인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찰나에 흑립 아래로 그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얼굴에도 천이 칭칭 감겨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것은 그의 눈밖에 없었다. 짧은 순간 스친 무인의 눈빛. 언뜻 흑자색에 가까운 빛이 스쳤다 느끼는 순간, 이미 무인의 시선은 다시 남궁혁에게 돌아가 있었다.


“그래. 놈들이 당신을 보냈다고?”


남궁혁의 물음에 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립 끝을 누르면서 고개를 느릿하게 숙이는 모습이 가벼웠다. 몸놀림 자체에서 묻어나오는 균형이 뛰어났다. 남궁유진 그 자신도 검을 연마했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눈앞의 흑립을 쓴 무인이 뛰어난 검객이라는 것을.


“솔직히, 나는 그리 과민하게 대비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대들이 준 약효가 확실한게 아닌가?”


팔짱을 끼고 말하는 남궁혁의 목소리에 불만이 섞여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무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의 모습. 그에 흑립을 쓴 무인이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대는. 그대의 부친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군.]

“......!”


남궁유진이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들려온 목소리. 기괴하고 차가운 음성이 그의 귀를 파고드는 순간 심상이 통째로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의 내공이 찰나지만 역류할 듯한 느낌이 일었다.


주화입마에 들뻔 한 것이다. 단순히 저자의 음성을 듣는 것 만으로.


‘목소리가.’


마치 억지로 입을 움직여 말을 만들어낸 듯한 기괴하고 뚝뚝 끊어지는 음성. 그 자신의 몸을 내공으로 움직여 작동하게 만들면 저러할까. 전음이나 육합전성도 아닌 목소리가 사이한 내공을 담은 듯이 온몸이 떨리게 만든다.


대체 뭐하는 자이길래.


미지의 공포가 남궁유진의 마음에 깃들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눈앞의 무인을 향해 내치고 싶은 것을 억눌렀다.


그것은 남궁혁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표정에서 불쾌함이 여실히 묻어나왔다.


“쯧. 여전히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모를 사람들이로군. 네놈들은 사방에서 낭인을 긁어모으나? 듣도보도 못한 것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흑립의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선 그때였다.


‘이건?’


남궁유진이 제일 먼저 고개를 쳐들었다. 그가 재빠르게 집무실의 한쪽 벽면을 응시했다. 직후 흑립의 무인 또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쿠웅.


대기가 떨려오는 충격이 사방을 뒤덮었다. 압도적인 기세. 강대한 내력이 세상을 찍어누르며 그 존재감을 발산했다.


단 한번의 호흡. 그 기파가 퍼져나가며 사방을 잠식해 자신의 발 아래 두고 내리찍는다.


넓이를 가늠할 수 조차 없는 광대한 크기의 권역이 장원을 넘어 일대의 대지를 아래에 가두며 대기중의 모든 기파를 통제하에 두었다.


제왕검형.


초월적인 위력의 신공이 마치 하나의 신호탄인 양 세상을 울렸다.


삽시간에 남궁혁의 표정이 굳어들었다. 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렸다.


“미, 미친. 말도 안되는 일이......!”

[결국 깨어났군.]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오!”


흑립의 무인이 남궁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없이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이었다.


“대저 창천(蒼天)은.”


쩌엉!


귀청을 찟는 소리가 울렸다. 대기중의 기파가 일제히 바스라지는 듯한 강대한 충격파. 허공을 북 치듯 울리는 소리가 사방을 뒤덮으며 몸에 실체화된 압력으로 가해졌다. 목소리 한마디에 담긴 의념이 더없이 거대했다.


“무궁(無窮)하니.”


단순한 육성이 의념을 담고 세상에 떨어졌다. 자신의 권역 안에 들어온 모든 이의 뇌리에 직접 목소리를 때려박는 듯한 감각. 초월적인 목소리가 뇌리를 강렬하게 울리고.


“그 무엇도 푸른 하늘을 묶어둘 수 없는 법이노라.”


서걱.


일순 남궁유진의 시야가 새파랗게 물들었다. 한순간 그의 눈 앞으로 더없이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구름 한점 없이 드높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 장포를 걸친 검객이 가벼이 한손을 뒷짐지고 검을 내뻗고 있었다.


“보고 기억하거라. 유진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찰나에 보인 푸른 하늘. 환상이 아니었다. 직전까지 하늘을 덮고 있던 건물의 위편이 사라져 있었다. 녹슨 검이 내뻗은 궤적을 따라 그 위에 자리한 모든 것이 지워진 것이다. 전각의 지붕을 포함해서.


동시에 뚫린 밤하늘이 일부분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암청색 밤하늘에 대낮의 창천이 강림한 것처럼.


“이것이, 남궁의 검이다.”


담담히 중얼거린 무인이 유진을 힐끗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초로의 검객이 더없이 평안한 표정으로 검을 쥐곤 유진의 앞에 서 있었다.


“......가주님.”

“아버지!”


상반된 목소리가 울렸다. 조용히 중얼거린 남궁유진과는 달리 악을 쓰듯 외치는 남궁혁의 목소리. 하지만 검왕은 그에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 잠시 잠이 들었기로서니, 이 무슨 짓인고.”


남궁혁에게 시선을 돌린 그가 중얼거렸다. 나직히 내려다보는 시선이 더없이 무거웠다. 검왕의 시선 끝에 걸린 남궁혁이 창백한 얼굴로 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남궁산.]


휘익.


흑립의 무인. 찰나에 신형이 이지러지듯 움직였다. 기분 나쁜 목소리가 허공을 점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이런......!’


찰나에 남궁유진의 뒤편으로 움직이는 기척. 반응해서 검을 꺼내려던 남궁유진이었으나 무인의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듯 움직인 신형이 삽시간에 남궁유진의 뒤를 점하고. 내뻗은 손이 가볍게 남궁유진의 목을 쥐려는 순간.


“무엄하구나.”


쩌엉!


일순 한점으로 모여든 압도적인 압력이 그대로 남궁유진의 뒤편에 떨어졌다. 찰나에 몸을 뒤튼 흑립의 무인이 위편으로 검격을 날렸다.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과 무형의 압력이 충돌하고.


콰앙!


무인의 신형이 그대로 뒤편을 향해 밀려났다. 검을 치켜든 채 주욱 밀려나는 모습. 허공을 향해 검을 들어 방어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팔이 살풋 떨리는 형상이 마치 거대한 주먹을 받아내고 있는 듯 했다.


[여전하군.]

“그대는 누구인고. 말하는 것이 이 늙은이를 아는 듯 한데.”

[알 것 없다.]


여전히 볼쾌한 음성이 귀를 긁고. 다음 순간, 그가 몸을 비틀었다. 그를 내리누르던 압력을 비껴 흘리며 옆으로 걸음을 내딛은 무인. 찰나에 남궁유진을 향해 짓쳐오는 듯한 모습에 검왕이 검을 뻗으려는 순간, 사라진 그의 신형이 다시 남궁혁의 곁에서 나타났다.


“뭐라도 해보시오! 지금 이 상황은 상정에 없었......”

[준비된 상황이다.]

“그게 무슨?”


푸욱.


되묻던 남궁혁의 눈이 커졌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궁유진을 보호하기 위해 기파를 펼치고 있던 검왕이 반응하려는 순간. 짙은 흑색의 단검이 남궁혁의 등을 파고들었다.


남궁혁의 부릅뜬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삽시간에 피어오르는 끈적한 기운. 둑을 터트린 듯이 흘러넘치는 흑색 마기가 남궁혁의 등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미친듯이 흘러나오는 기파가 사방을 점하며 대기를 잠식했다. 휘몰아치는 끈적한 기운의 양이 더없이 가득했다. 찰나에 남궁혁을 집어삼키고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꾸물거리며 남궁유진의 방향으로 쏟아지는 마기.


“......네놈.”


그러나 그 기파는 남궁유진에게 닿지 못했다. 그의 앞에 선 검왕. 나직히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을 뻗는다. 그의 손끝에서 발출된 거대한 기운이 한순간 일점으로 집중되었다. 휘몰아치는 제왕검형의 권역이 남궁혁을 주변으로 그대로 압축되고.


쿠웅.


마기로 가득한 영역이 제왕검형의 권역 안에 갇혀들었다. 검왕 자신과 남궁혁, 그리고 흑립의 무인을 안에 가둔채였다.


“가주님!”

“유진아. 벗어나거라. 힘을 좀 써야겠구나.”


검왕이 검을 치켜들며 앞을 응시했다. 그 시야 너머로 휘몰아치는 마기가 가득했다. 안개처럼 짙은 흑색의 기파, 그것은 더 이상 퍼져나가지 않고 한점으로 흘러들듯 모여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남궁혁의 신형이 자리했다. 마치 그의 몸이 마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모습.


이윽고 제왕검형의 권역 내에 가득한 마기가 서서히 잦아들며 시야가 드러났다.


그 가운데. 남궁혁이 서 있었다. 그의 등을 찌른 단검은 어디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는 모습. 곁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흑립의 무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 광경 앞에서 검왕이 입을 열었다.


“혁아.”

“아버지.”


시선을 들어올린 남궁혁. 검왕을 부르는 목소리가 전과 별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눈은 아니었다.


검왕을 쳐다보는 눈에 흰 부분이 없었다. 눈 전체가 흑색으로 뒤덮힌 기괴한 모습. 시선이 향하는 방향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동시에, 남궁혁의 호흡을 타고 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보며 검왕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녹슨 검끝이 살풋 흔들렸다.


“왜 그러셨습니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담긴 원망이 진했다. 악의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 그것을 마주한 검왕이 이윽고 천천히 눈을 떴다.


“미안하구나, 혁아. 미안하다......”


중얼거리는 음성이 탁했다. 한순간 이지를 잃은 듯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흑립의 무인이 검을 쥐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너를......”


우웅.


녹슨 검끝이 흔들리며 하늘을 향해 치켜올라갔다. 사방을 채우는 짙푸른 검기가 삽시간에 권역을 가득 채우며 푸른 빛을 발하고.


“베어야겠구나.”


직후. 세상이 푸르게 물들었다.



※※※



카가가각!


검이 얽혀드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전장을 내달리며 뻗어지는 권격이 강맹했다. 일격이라도 정면으로 맞으면 사지가 박살날 위력이었는데, 그 주먹은 결코 백연과 단휘에게 닿지 못했다.


“쥐새끼같은 놈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금원방주. 그의 권격 중 제대로 뻗어나가는 일격이 없었다. 내뻗으려는 순간마다 정확한 시점에 치고 들어오는 투창과 비도. 그 끝이 더없이 날카로웠다.


“감히!”


노호성이 울리는 순간, 네 무인의 신형이 재빠르게 퍼졌다. 직후 대지를 격하는 강대한 진각이 터져나왔다.


“당소하!”


잇따라 짧은 외침이 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소하가 즉시 손을 펼쳤다. 묵직한 흑색 비도가 대기에 짙은 선을 남기며 허공을 갈라 은령팔환과 맞부딪혔다. 전부터 몇번이나 반복된 공방.


“대단하군.”


그러나 당소하는 감탄할 뿐이었다. 지금 백연은 언제나 적재적소에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행동을 지시해주는 모습이 거의 예지에 가까웠다. 마치 금원방주가 무슨 공격을 날릴지 미리 다 읽고 있는 듯한 모습.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 넷이 힘을 합쳤다 하더라도 금원방주와 이리 맞서고 있는 것은 불가했을 것이다. 그만큼 강대한 적이었다. 단 한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직결될 수 있을만큼.


찰나에 백연의 신형이 스치듯 당소하의 옆을 지나갔다. 뒤편으로 길게 늘어지는 자색 안광이 선연했다.


“네놈이 문제로구나!”


휘익.


백연의 검을 타고 맹렬한 수기가 휘몰아쳤다. 묵직한 현음공의 기파를 두른 채로 검을 내친다. 그를 향해 짓쳐오는 권격. 이전과는 달리 금원방주는 그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지금 공방이 성립하게 만드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아챈 것이다.


‘흘려야 한다.’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금원방주의 검격을 방어할때마다 막대한 여파가 몸에 쌓여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그의 몸이 소모될 뿐이다. 힘을 몸으로 받지 않고 막아내는 방법.


‘받아치는 순간 팔꿈치 소해혈(小海穴)을 따라 기파를 흘리면.’


재차 권격과 부딪힐때마다 다른 방식을 통해 검을 연마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이어지는 싸움 속에서도 백연은 새로운 검식을 갈고 닦는 중이었다.


적양공의 적화검류와 대비될 현음공의 새로운 검식. 담금질 하기에 이보다 좋은 전장이 없었다. 아무도 시도하지 못할 미친 짓이었다. 싸움 도중에 스스로의 검식을 변화시켜 만들어내는 것은.


하지만 백연에게는 이 모든 공방이 전부 벼락불 같은 영감이자, 무공의 단초였다.


찰나 맞부딪히는 이 검격처럼-


쩌엉!


강대한 기파가 전에 몇번이나 반복했던 것처럼 그의 검을 타고 팔을 향해 파고든다. 그 순간 백연은 기파를 다른쪽으로 인도했다. 그의 몸안에 들어온 상대의 내공.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유도해 한쪽 혈도로 몰아낸다. 충격과 반탄력 모두 근맥을 따라 흘리는 모습. 체내에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으음?”

“이 방식이 맞나보네.”


본디 권격을 받아내자마자 주욱 밀려났어야 할 백연의 신형. 금원방주의 주먹과 검을 맞댄채로 우뚝 서 있었다. 강대한 기파가 연이어 그의 팔을 타고 흐르는데, 그것이 그의 몸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팔꿈치를 따라 내보내는 기파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일렁이며 허공으로 퍼져나간다.


어느정도 힘을 흘린 것이었다.


그것을 보는 금원방주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점차 급해지는 모습. 그의 얼굴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두려움을 보며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두렵나?”

“......애송이가 뚫린 입이라고.”

“도박을 걸었는데, 알고보니 그 판이 자신의 손에 놓여있지 않았나봐.”


중얼거리는 순간.


우웅!


대기가 뒤틀렸다. 시야 저편으로 한순간 푸르게 물든 하늘의 조각이 보였다. 신공의 끝자락. 심상세계에서 보았던 절세의 기파가 밤하늘을 푸르게 물들인다.


“젠장......!”


이를 악문 금원방주가 몸을 비틀었다. 그가 강대한 기파를 실어 그대로 진각을 밟았다. 백연이 몸을 훌쩍 날려 피하고, 권격을 거둔 금원방주가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의 거대한 신형이 가벼이 전각의 지붕 위에 착지했다.


그때였다.


“방주.”


갑자기 들려오는 여상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전각 위 지붕의 옆. 금원방주의 등 뒤에 한 인영이 서 있었다. 회백색 장포를 걸친 키 큰 인물이었는데,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네놈들! 확실하다 하지 않았나? 감히 나를 속인......”

“진정하시오. 달라진 건 없소. 대비는 해두었으니.”


분통을 터트리던 금원방주가 이를 갈았다. 그의 목소리에 서린 분노가 선연했다.


“대비?”

“그렇소.”

“그딴 것이 검왕을 막을 수 있나?”

“흐음. 그것은 검왕의 마음에 달린 것이오만.”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


그 순간.


강대한 기파가 하늘을 찢었다. 세상을 가르는 찬란한 푸른 기파가 대기를 물들이고 일순 하늘을 푸르게 뒤바꾸었다. 시야 저편에서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는 짙푸른 검기가 보였다.


그 아래. 일직선상에 놓인 모든 것이 지워졌다. 한순간 시야가 푸르게 점멸하며 소리가 먹먹하게 가라앉았다.


그것을 보며 백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심상세계에서 그가 맞섰던 검격이 저런 것이었나.


직후.


파앗-!


물속에 빠졌던 듯 먹먹해졌던 소리가 삽시간에 정상으로 돌아오고. 귀를 찢는 바람 소리가 휘몰아쳤다. 검격의 여파로 몰려나갔던 대기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강풍이 몰아쳤다.


그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모두의 얼이 빠져 있는 그때. 회백색 장포의 무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생각보다 시간을 못 끌었구려.”

“네놈들. 계획은 어떻게 된거지?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이냐!”

“여러 상황을 가정했는데. 가장 최악의 변수가 터져나왔구려. 누가 개입했는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회백색 장포의 무인. 동시에 그의 시선이 백연을 향했다. 날카로운 눈빛이 그를 찌르듯 노려보았다. 순간, 느껴졌다.


만금장 측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가 이번 일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뭐 그렇다 해도......”


이윽고 시선을 거둔 회백색 장포의 남자가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이 최악을 입에 담았다 하기에는 쓸데없이 즐거워 보이는 모습.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했으니.”

“뭣이?”

“방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만 물러나겠소. 그대들 금원방의 협력에 감사하는 마음이오.”

“네놈이......!”


금원방주가 눈을 부릅뜨며 권격을 날리려는 순간. 회백색 장포의 무인이 사라졌다. 그의 신형이 흔들리듯 이지러지며 흩어졌다. 백연 자신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움직임. 보법이나 신법이 아닌 다른 무언가였다.


직후, 그가 사라진 허공에서 옅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떠나면서 목소리를 뒤편에 흘리고 간 듯이.


“그나저나 방주. 만금장 안휘지부는 오늘로 철수이오만. 그곳에 그대가 처리해야할 물건이 있지 않소? 행운을 빌지. 으하하하......”


그 말에 금원방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순간 다채롭게 변하는 표정이 우스울 정도였다.


동시에 백연의 생각이 빠르게 굴러갔다. 만금장 안휘지부에 있을만한, 금원방주가 처리해야 할 물건이라 하면.


“젠장. 장부, 거래 장부만 제거하면 문주도 증거가 없으니......”


중얼거리는 금원방주. 일순 전장을 힐끗 응시한 그가 그대로 기파를 일으켰다. 즉시 보법을 내딛으려는 순간.


“같이 가지?”


콰앙!


경공을 일으키려던 금원방주의 옆구리로 백연의 검격이 짓쳐 들어갔다.


“애송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금원방주. 달려나가려는 그를 저지하며 백연이 보법을 일으켰다.


금원방과 만금장의 거래 장부. 확보해야 했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중에 하나였다. 백연은 지금 금원방주가 도주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한번 시작한 일, 이 자리에서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다. 이대로 남겨두면 훗날 후환이 될지 모르니.


“그 장부, 나도 구경 좀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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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네가 돌아올 곳(7) +7 23.10.27 4,683 91 20쪽
109 네가 돌아올 곳(6) +6 23.10.25 4,803 90 17쪽
108 네가 돌아올 곳(5) +7 23.10.23 4,873 99 16쪽
107 네가 돌아올 곳(4) +7 23.10.20 4,965 97 19쪽
106 네가 돌아올 곳(3) +9 23.10.18 4,931 100 20쪽
105 네가 돌아올 곳(2) +9 23.10.16 5,028 102 20쪽
104 네가 돌아올 곳 +6 23.10.13 5,193 105 16쪽
103 태청신공(太淸神功)(4) +8 23.10.11 5,258 102 18쪽
102 태청신공(太淸神功)(3) +8 23.10.09 5,052 111 16쪽
101 태청신공(太淸神功)(2) +8 23.10.06 5,129 116 16쪽
100 태청신공(太淸神功) +12 23.10.04 5,534 117 25쪽
99 네가 만든 마을(9) +7 23.10.02 5,205 107 24쪽
98 네가 만든 마을(8) +7 23.09.29 5,147 114 21쪽
97 네가 만든 마을(7) +7 23.09.27 5,134 108 20쪽
96 네가 만든 마을(6) +10 23.09.25 5,203 114 22쪽
95 네가 만든 마을(5) +8 23.09.22 5,292 107 19쪽
94 네가 만든 마을(4) +8 23.09.20 5,283 107 20쪽
93 네가 만든 마을(3) +7 23.09.18 5,520 105 24쪽
92 네가 만든 마을(2) +5 23.09.15 5,638 113 24쪽
91 네가 만든 마을 +5 23.09.13 5,891 106 18쪽
90 신강(4) +6 23.09.11 6,082 11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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