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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9.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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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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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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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검귀의 검, 곤륜의 검(5)

DUMMY

죽음(死).


금원방주임이 분명한 사내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담긴 글자였다.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온 단휘였다. 청해에서 살아남는 것이란 그러한 일이었다. 실제로 죽을뻔 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랐다.


곤륜의 검을 익혀낸지 반년 하고도 조금 더 지난 현재. 아무리 강적을 맞이하더라도 죽기 전에 발악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제가 엮어낸 무공이 그만큼 뛰어났기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수련했기에.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오만이었을까.


“소협. 빨리......!”

“안타깝지만 황산파의 값어치는 금원방의 저울에 올리기에는 너무 저렴하구려. 그대의 미모라면 모를까. 어디, 루(樓)에서 일해볼 생각 있소? 그럼 살려드릴지도 모르는 일이오만.”


능글맞게 웃는 얼굴. 금원방주가 피를 줄줄 흘리는 위소선을 보며 조롱했다. 그럼에도 위소선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단휘를 손으로 밀어냈다.


“가십시오!”

“생각이 없나 보구려. 거참 아쉽게 되었군.”


피잇.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는 순간, 단휘는 검을 내치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막으려는 움직임. 그러나 인지하지도 못하는 속도로 은빛 섬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퍼억!


허공으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울컥 피를 뱉어내는 위소선. 그녀의 가슴팍을 따라 뚫린 구멍이 늘어나 있었다. 후두둑 쏟아져 나온 핏물이 단휘의 옷자락을 적셨다. 단휘가 검을 채 뻗어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머리를 터트리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깝더군. 그래서 남겨 두었소.”


짤막하게 이어지던 호흡이 흩어졌다. 이윽고 위소선의 눈빛이 흐려졌다.


단휘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렸다.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웃고 있는 금원방주.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한순간 금원방주의 위압적인 기세 앞에서 느낀 공포가 씻은듯 사라질 만큼.


“......개자식이.”

“곤륜은 도가 문파라 알고 있소만, 그 언행이 마치 시정잡배 같구려.”


금원방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휘가 검파를 움켜쥐었다. 동시에 발끝에 바람을 걸었다. 운연동공으로 일으킨 기의 발출. 쾌속하게 바람이 그의 몸을 타고 풀려나왔다. 반 호흡에 운연동공이 극성으로 전개되며 그의 신형이 돌풍처럼 흩어졌다.


화신풍에 이은 삼원검.


유려하게 이어진 일보에 이은 사선 검격이 물 흐르듯 펼쳐졌다. 왼발로 진각을 딛는 순간 그 반탄력이 그대로 올라와 상체로 이어진다.


수없이 연습한 동작. 한치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그 자신이 지금까지 펼쳐낸 검격 중 가장 완벽하다 느껴진 일검.


‘베었......!’


바람을 휘감은 검이 금원방주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그어내리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검격이 금원방주에게 닿았다고 일순 착각한 그때.


“곤륜의 검이 이런 것이오? 재미있구려. 그 무학의 깊이가 얕으면서도 깊은데.”


찰나에 사고가 길쭉하게 늘어졌다. 그의 검이 마치 물속에 빠진 것처럼 느리게 허공을 베어가는 듯 한 감각. 그 사이를 비집고 금원방주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방주 자신을 향해 짓쳐오는 검격을 더없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응시하는 모습이다. 마치 그 값어치를 가늠하듯이.


그러던 그의 시선이 문득 단휘를 향했다. 두툼한 살 사이에 파묻힌 눈동자가 한번 더 빛났다.


“호오. 벌써 의식의 간극에 진입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오? 거참. 수련을 거듭하면 장차 비싼 값어치의 검객이 되겠소이다. 물론......”


휘익. 그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혼자서만 빠른 시간을 타고 움직이는 듯한 모습. 찰나에 휘릭 비틀린 그의 손아귀가 단휘의 검신을 움켜쥐었다. 손에 낀 반지가 검날과 부딪히며 쇳소리를 내었다.


“이곳에서 살아나간다면 말이오.”


쩌엉!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그의 검신이 산산조각났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은빛 조각들. 동시에 검에 실었던 내공이 그대로 역류하며 단휘의 속을 진탕 뒤집었다. 강렬한 충격이 그의 몸을 휩쓸었다. 한순간 눈앞이 까맣게 물드는 듯한 감각과 함께 속에서 핏물이 울컥 올라왔다.


일합.


아니, 이것을 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애초에 싸움이 성립되지조차 못한다. 순전히 그의 무공을 보기 위해 금원방주는 손속에 여유를 둔 것이었다.


죽은 위소선이 자신보다 분명 강했다.


지금 그가 살아있는 것은 금원방주의 흥미가 동하는 대상이었기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금원방주가 턱을 매만지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곤륜파. 무영방을 비롯한 떨거지들이 손을 잡았다 들었는데, 이유를 알 것도 같구려.”

“......쿨럭.”


핏물을 훔치는 단휘의 모습을 눈에 담는 금원방주. 그의 눈이 위험하게 일렁였다.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힌 문파인줄 알았건만. 새로운 대마(大馬)가 될 자질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하오문의 일원이 정파 무림을 건드리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하는거냐. 아무리 방주라 해도......”

“당연히.”


금원방주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얼굴에 드리운 섬뜩한 미소. 거대한 체구가 굽어지는 형상이 위압적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할 것이외다.”

“용봉지회에 모인 정파 무인이 기백에 달해. 그 일가 수행인들까지 합치면 천여명이다. 이 많은 눈을 한명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핏물을 닦아내며 금원방주를 노려보자 그가 웃었다. 단휘의 말이 우습다는 듯한 몸짓이 불쾌했다.


부서진 검을 꽉 움켜쥔 단휘가 기파를 느릿하게 끌어올렸다. 방심하고 있는 찰나에 검 조각이라도 몸에 꽂아넣을 수 있다면. 다른 무인들이 금원방주를 상대하기 조금이나마 수월해질지 모른다. 기습적인 일격으로 상처를 입힐 수 있을까.


“소협. 본 방주는 장사치외다. 누구보다 손익 계산이 빠르다 자부하지.”


하오문의 재력을 담당하고 있는 금원방이다. 금원방주는 그 자체로 뛰어난 무인이었으나 동시에 상리에 밝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직접 몸을 움직여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커다란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금원방주 본인으로써도 정파 무림과, 하오문주를 적대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기에.


이미 계산을 끝낸 것이다. 이번 일의 성공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그대들이 지닌 가장 무거운 저울추는 검왕인데, 그는 이곳에 없구려. 그렇지 않소이까?”


저울이 기울어져 있다. 검왕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곳에 자리한 만금장의 무인들은 몇이나 되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판단하기 조차 어렵다.


치밀하게 짜놓은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단휘가 입술을 베어물며 금원방주를 응시했다. 지금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있을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본디 검왕이 확실히 제거되고 움직이려 했건만. 중간에 끼어든 날파리 때문에 약간의 위험을 더 지고 말았구려.”


그때 금원방주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어느새 시선을 들어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금원방주. 그의 눈길이 저편에서 일어나는 불꽃을 눈에 담았다.


“암화라 했던가. 본인이 잠깐이나마 속아넘어가게 만드는 인물이 있을줄은 몰랐소. 만금장의 경고가 허언이 아니었구려. 일을 다 그르칠 뻔 했소이다.”


흘리는 말투가 아주 옅은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그것을 듣는 순간 단휘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쳤다. 지금 저들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은 존재. 본디 처음 계획을 시작했을 당시 판에 올라와 있지 않던 사람이 이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사제. 백연.


변수였다. 녀석이 움직인 것으로 인해 계획이 약간이나마 비틀렸다는 소리다. 한순간 금원방주의 저울이 움직일 정도로.


검왕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뒀을 것이다. 그런 녀석이었다. 만약 검왕이 깨어날 수 있다 하면, 지금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변수가 눈앞에 있었다. 전장의 정파 무인들을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괴물.


찰나에 단휘가 생각을 마쳤다. 그 또한 상회에서 일했던 몸이었다. 손익이 자연히 머릿속에서 계산되는 것이다.


금원방주의 저지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생각과 동시에 그의 기파가 비틀렸다. 느릿하게 끌어올리던 바람이 한줄기 선을 이루며 그의 몸을 휘감았다. 숨쉬듯 일으킨 기파. 걸음을 내딛으며 동시에 아직도 굳건히 서 있는 위소선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검이 자연스레 단휘의 손아귀로 넘어왔다.


화신풍 일보. 왼발이 사선으로 흐르며 걸음을 딛었다. 동시에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바람처럼 움직인 그의 신형. 금원방주의 앞에서 오른발로 진각을 찍어내린다.


오른손에 들린 부러진 검으로 삼원검을 펼치듯 크게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에 금원방주의 눈썹이 비틀리는 것이 보였다. 그의 행위가 흥미롭다는 듯이 응시하는 눈빛.


‘빈틈을.’


원형을 그리며 휘둘러진 손끝에 들린 부러진 검을 그대로 놓았다. 처음 백연을 보았을때 그가 던지던 돌맹이처럼. 기파를 실은 부러진 검이 그대로 금원방주를 향해 날았다.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에 잠깐 금원방주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손이 휘릭 비틀렸다. 부러진 검을 간단히 쳐내는 움직임이 지나치게 쾌속했다. 변칙적인 공격도 통하지 않는 압도적인 차이.


그러나 단휘는 이미 다음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보를 내딛은 기파를 그대로 낚아채 몸에 둘렀다. 자연스레 옆으로 회전하며 위소선의 검을 휘둘렀다.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유려했다. 틈새를 파고드는 움직임이다. 단휘가 던진 검을 방어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린 금원방주. 한순간 옆이 비었다.


압도적인 무공 고하의 차이에도 드러난 빈틈이다. 오히려 손가락 하나로도 짓눌러 죽일 수 있기에 방심한 것이었다.


단휘의 눈이 번뜩였다. 길게 늘어진 시야 속에서 문득 아까처럼 세상이 느려지는 감각이 그를 지배했다. 간극이라고 했던가. 사고가 시간 사이에서 가속한다. 물속을 헤치고 나가는 것처럼 느리게 느껴지는 손발.


‘이걸 넘어서야 하는건가.’


찰나에 머리를 스친 생각. 어떻게 해야 가속된 사고에 몸이 따라올 것인가.


숨쉬듯 무공을 펼치고 나날이 배로 강해지는 천재인 사제와는 달랐다. 그는 계속 고민해야 했다. 그 옷자락 끝이나마 따라가기 위해.


그런 끝에 마침내 문턱에 닿은 것이다. 한순간 깨달았다. 이 감각을 넘어서는 순간부터가 진짜 무인들의 세계라고.


‘기파를 격발시켜서. 몸을 억지로 움직인다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낚아챘다. 동시에 운연동공으로 일으킨 기파가 그의 팔다리에 휘감겼다. 내공 수발 속도만큼은 그의 사고와 일치했다. 전혀 느려지지 않은 것이다. 숨쉬듯 운연동공과 화신풍을 연마했기 때문일까.


찰나에 여러겹으로 휘감긴 바람이 그대로 폭발하듯 사지 혈맥을 따라 뿜어져 나오고.


그의 검격이 갑자기 가속했다. 근육이 찢어질 듯 잡아당겨지며 손에 쥔 검이 더없이 쾌속한 속도로 대기를 갈랐다. 찰나 금원방주가 눈을 크게 부릅뜨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가각!


귀를 긁어내는 소음이 날카로웠다. 쇳소리가 일며 불꽃이 허공에 튀어올랐다. 그와 같은 속도로 움직인 금원방주. 일순 몸을 비틀며 반대손을 내뻗은 것이다. 단단히 쥔 주먹이 단휘의 검과 맞닿아 있었다.


일합(一合)이었다.


기적에 가까운 검격.


그것을 받아낸 금원방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곤륜에는 위험한 재능이 많구려. 그대가 본 방주의 안이해진 심중에 경종을 울려주었소이다.”


금원방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제거해야겠다 생각이 들 만큼.”


후욱.


기파가 휘어졌다. 여태껏 여유롭기만 하던 금원방주의 몸에서 막대한 내공 기파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단휘는 맞대고 있던 검을 회수하며 보법을 밟았다. 등골이 섬짓해지는 살기가 온몸을 저몄다.


즉시 깨달았다. 지금까지 여유로이 그를 구경하던 금원방주가 이젠 진심으로 살의를 품었다는 것을.


‘상처 하나라도.’


단휘가 호흡을 가두며 생각했다. 직전에 닿았던 감각이 아직 손끝에 선연하게 남아있었다.


우득.


금원방주가 주먹을 움켜쥐는 모습이 보였다. 늘어진 사고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주먹. 그 끝에 모여든 기파가 일전의 금안나찰과도 차원이 달랐다.


그것을 응시하며 단휘는 조용히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저 권격 앞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죽음이라는 글자를 머릿속에서 지우며 그대로 화신풍 보법을 일으켰다. 사고가 일점에 집중된다. 한순간 닿았던 감각. 끝에서 재현할 생각이었다.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익히고 있는 것은 화신풍과 삼원검 뿐이었지만 문제없었다. 부족한 것은 무공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사형은 균형감각이 뛰어나. 남들은 시도하기 어려운 자세로 검을 내쳐도 그 힘이 충분히 실릴거야. 그러니까 검격에 언제나 보법을 함께 연계를......


사제의 잔소리를 머릿속에 다시 새기며 걸음을 내딛었다. 일보. 오른쪽 사선으로 딛는 형태다. 오른편에 늘어뜨린 검신의 끝은 아래를 향하게. 힘을 많이 실어 정면으로 부딪힐 생각이 없었기에 이리 했다. 목적은 금원방주의 몸에 자그마한 상처라도 내는 것.


“후우.”


쿠웅.


호흡을 내쉬는 순간. 그대로 진각을 밟은 단휘의 신형이 가속했다. 기이할 정도로 땅에 가까이 붙은 형태. 걸음의 균형을 잃기 쉬운 동작임에도 그의 보법은 흔들림이 없었다. 늘어진 사고 속에서 보법의 걸음이 그의 사고를 따라온다. 물속을 헤치는 것 같던 감각이 어느새 같은 시간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번뜩이며 허공을 갈랐다. 우하단에서 상단 사선으로 내지르는 검격. 찰나 일그러진 대기가 눈에 띈다. 금원방주의 권격을 마주하며 단휘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발악 정도는 할 수 있는건가.’


목숨을 내주고 검을 저 옆구리에 꽂아넣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압도적인 권격이 그대로 그를 향해 떨어지려 하는 순간.


터억.


그의 등허리에 무언가 부드러운 손길이 와 닿았다.


동시에 단휘의 귓가를 타고 맑은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자세는 좋아. 검 끝은 좀 더 아래로. 팔에 힘을 많이 줄 필요 없어. 내딛는 보법이 곧 검의 파괴력을 결정할거야.”


익숙한 목소리.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의 등허리 명문혈을 타고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전투 도중에 혈도에 기를 불어넣는 기예. 주화입마에 걸리기 딱 좋은 짓거리이건만, 그 내공은 이상하리만치 단휘의 몸에 잘 들어맞았다.


“걸음에 휘감은 바람을 불꽃으로. 머리는 차가운 바다처럼.”


중얼거리는 조언이 귀에 들어와 그대로 꽂힌다. 그의 자세와 습관을 하나하나 알고 있는 듯 정확히 짚어주는 목소리. 자연스레 단휘는 그 말대로 몸을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몸에 흘러들어온 기운이 혈맥을 따라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운연동공의 바람이 자연스레 그 기운과 동화된다. 뿌리가 같기 때문인가. 처음부터 그의 몸 안에 있었던 것 마냥 매끄럽다.


동시에.


그의 시야 곁으로 한 인영이 쇄도했다. 여전히 오른손은 단휘의 등허리에 짚고 있는 상태였다. 길다랗게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사이, 자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단휘를 향해 웃음지었다.


“그게, 사형의 검이야.”


왼손으로 가볍게 잡은 검. 휘두르는 검끝에 걸린 묵직하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자연스레 백연이 방어초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다.”


짧은 중얼거림. 단휘는 되묻지 않았다. 간극 속에서 두 소년이 나란히 앞으로 걸음을 내쳤다. 두개의 화신풍 보법. 제각기의 형태를 띄고 길다란 불꽃을 발끝에 남기며 두 신형이 질주했다.


그 순간. 금원방주의 주먹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단휘는 무시하며 그대로 검을 내뻗었다. 백연의 말대로 보법의 힘을 그대로 검신에 실으면서였다. 팔에 힘을 빼고, 발걸음의 기파를 상체에 실은 반동으로 검이 휘둘러진다.


시야 한켠에서 묵직한 수기를 휘감은 검격이 금원방주의 주먹을 저지하는 것이 느껴지고.


피잇-!


불꽃이 실린 검이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상단 사선으로 길쭉하게 이어지는 불꽃의 검격.


동시에 허공으로 점점이 흩뿌려지는 적색 핏물이 시야에 진하게 들어오고.


콰앙!


일대를 막대한 충격파가 휩쓸었다. 검격과 권격이 충돌한 여파. 한순간 일어난 거대한 파동에 단휘와 백연의 신형이 그대로 뒤편을 향해 날았다. 자연스레 구르며 착지한 백연이 단휘의 몸을 받았다.


“후우. 무지막지하게 무겁네.”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를 돌린 백연이 단휘를 보며 웃었다. 백연의 왼편 어깨를 따라 흘러내리는 기파가 육안으로도 보였다.


“......감히.”


그때 그들의 앞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금원방주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압도적인 기세. 하지만 더 이상 그의 화려한 옷은 전장과 거리가 멀어보이지 않았다. 핏물 한점 묻어있지 않던 그의 장포 위, 어깨 부근을 따라 짙은 적색 핏물이 느릿하게 베어나오고 있었다.


일격을 먹인 것이다. 단휘 자신이.


“찢어 죽여주마.”


분노 서린 목소리가 나직히 기파를 담고 울렸다. 그러나 그것을 마주한 백연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가능하겠어?”

“떨거지들이 둘이라 해서 달라질 것이 없으니.”


백연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모습. 사제의 등을 바라보며 단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놈은 대체 무슨 자신감이 저리 철철 흘러 넘치는지.


“내가 둘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뭐......?”


그 순간.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인영이 있었다. 섬전같은 일격. 대기를 찢는 창격이 쾌속하게 금원방주의 머리를 노리고 낙하했다.


“낙뢰(落雷).”


카앙!


황급히 몸을 돌린 금원방주가 위를 향해 권격을 날렸다. 잠시 주먹과 창격이 얽혀들었다가, 재빠르게 창을 회수한 악예린이 그대로 금원방주의 뒤편에 착지했다.


“감히 버러지들이!”


노호성과 함께 금원방주가 즉시 손을 휘둘렀다. 언뜻 권격처럼 보이는 움직임. 허나 손끝에서 튀어나오는 은빛 선이 단휘의 눈에 들어왔다. 위소선을 죽인 일격. 암기처럼 움직이는 반지가 삽시간에 대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그 순간.


캉! 카앙!


허공을 가른 묵직한 흑색의 선이 은빛 반지와 허공에서 충돌했다. 동시에 대기가 일그러지며 나타난 암녹색 장포가 시야를 뒤덮었다.


창백한 얼굴의 당소하가 단휘를 힐끗하며 웃음을 지었다.


“살아있었군. 다행이다.”

“......너네 다 늦었잖냐.”


단휘의 불평을 웃음으로 흘려넘긴 당소하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으로 재빠르게 날아들어오는 검은 비도들. 그가 양손에 여섯 자루의 비도를 들고 금원방주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다른 칠룡들은?”

“전장을 맡겨놨다. 여긴 우리가 막아야 해.”

“좋네. 너는 괜찮겠어?”


백연의 물음에 당소하가 픽 웃음을 흘렸다.


“안 괜찮으면 빼줄거냐?”

“아니.”


백연이 단휘를 향해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웠다. 그 앞에 선 금원방주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어깨를 파고든 통증. 상처를 입어본지가 대체 얼마만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 고통이 불같았다. 아픔에 비례해 그의 분노가 미친듯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꼬맹이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시체 조각 하나 남지 못하게......”


날려보냈던 여덟개의 은령팔환이 그의 손으로 회수되었다. 손마디 마다 끼워진 은빛 반지. 그 사이를 타고 유형화된 공력 파동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절세 권법의 기운이 지그시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찢어주마.”


나직이 중얼거린 한마디. 백연은 일순 터져나오는 기세를 마주하면서도 침착하게 시선을 고정했다.


소년의 눈동자를 따라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본디 흑색이던 눈동자. 지금은 아니었다. 자색으로 물든 눈이 금원방주를 지그시 응시했다.


안법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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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태청신공(太淸神功)(3) +8 23.10.09 5,052 111 16쪽
101 태청신공(太淸神功)(2) +8 23.10.06 5,129 116 16쪽
100 태청신공(太淸神功) +12 23.10.04 5,534 117 25쪽
99 네가 만든 마을(9) +7 23.10.02 5,205 107 24쪽
98 네가 만든 마을(8) +7 23.09.29 5,147 114 21쪽
97 네가 만든 마을(7) +7 23.09.27 5,134 108 20쪽
96 네가 만든 마을(6) +10 23.09.25 5,203 114 22쪽
95 네가 만든 마을(5) +8 23.09.22 5,292 107 19쪽
94 네가 만든 마을(4) +8 23.09.20 5,283 107 20쪽
93 네가 만든 마을(3) +7 23.09.18 5,520 105 24쪽
92 네가 만든 마을(2) +5 23.09.15 5,638 113 24쪽
91 네가 만든 마을 +5 23.09.13 5,891 106 18쪽
90 신강(4) +6 23.09.11 6,082 11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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