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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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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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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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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귀의 검, 곤륜의 검(6)

DUMMY

안법(眼法). 그대로 표현하면 보는 법이다.


무인들의 세계에서는 조금 달랐다. 무공을 익힌 이들은 모든 행동과 사고가 기존과는 달라지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숨쉬는 것부터, 걷는 법, 달리는 법 까지도.


그저 단순한 호흡이 심법으로 발전한 것처럼, 안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무인들이 어떻게 더욱 잘 보고, 올바르게 보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창안해낸 무공의 갈래다.


본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상대의 투로(鬪路)를 파악하고 반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세월을 따라 발전하며 그 이상의 공능을 제각기 가지게 되었다.


일례로 소림의 불심안(佛心眼)은 사마외도의 혼돈을 꿰뚫어보며 안법을 사용하는 이의 마음을 부동(不動)에 가깝게 만들어준다 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공능. 보는 것이라는 행위를 기반으로 뻗어나간 수백, 수천에 달하는 안법은 그 자체로 무공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저 고수들간의 싸움은 찰나에 결정되곤 하니. 보는 것이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행위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백연은 안법을 급히 만들려 하지 않았다.


고수들의 싸움에서 안법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은 반대로, 일정 이하의 수준에서는 안법보다 우선시 할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거기에 더불어 적당히 대충 만든 안법은 안 만드느니만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미뤄왔다.


스스로의 경지가 안법을 논하기에 부족하다 여겼기에. 그리고 아직 필요한 조각을 얻지 못했다 생각했기에.


그리고 조금 전의 시간.


-네게 창공의 눈을 보여주마.


산봉우리 끝자락을 밟고 선 검왕. 그의 손끝이 허공을 그어내릴 때였다.


안법 구결은 익히기 어렵다. 실제 눈앞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검법과, 직접 진기를 도인해 구결 흐름을 알려줄 수 있는 심법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눈이라는 섬세한 기관을 따라 기운을 흘려넣어야 하는 무공.


검왕은 그것을 아주 단순하게 해결했다. 자신의 권역에서 허공에 안법 구결을 그대로 그려넣는 신기를 보여주며.


손끝을 붓 삼아 허공에 사람의 눈을 그려낸 것이다. 자연히 찰나의 순간이지만 백연은 남궁세가의 안법 그 자체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었다.


보고 익히라 해서, 보고 익혔다.


그 감각이 아직도 선연히 남아 있었다.


일순 하늘에서 지천을 굽어보는 듯한 감각. 광활한 권역을 한번에 직시하는데, 처음부터 일대일을 상정하고 만들어지지 않은 안법이었다. 전장을 조율하는 무인의 눈. 그 높이가 비상하는 매의 시야와 같았다.


드넓은 사방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아주 용이했다. 기세와 흐름, 상황을 읽는 눈이다. 눈에 담는 순간 드높은 신공절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검왕이 이런 무공을 그에게 선뜻 넘겨주는 것이 이상하다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이 무공이 네게 맞지 않는 옷임을 안다. 멋대로 다듬어 취하라.


그 말대로였다. 무공이 신공절학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이 안법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안법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더 나아가, 곤륜의 검에 알맞지 않았다.


제왕의 검. 언제나 전장을 조율하고 가다듬는다. 이끄는 이의 시야인데, 아래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검을 휘두르는 그의 무공과는 맞지 않았다.


‘필요한 것만 취한다.’


때문에 백연은 정반대로 접근하기로 했다.


백연이 눈가를 매만졌다.


시야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 그러나 이전과는 달랐다. 동시에 눈 한켠을 점하는 차가운 감각이 있었다. 수기와 화기를 동시에 일으킨 것인데, 상충된 내공이 혈맥을 따라 회전하며 서로의 기운이 날뛰지 않게 지그시 내리누르고 있었다.


“칠룡이라 불린다 해서 네놈들이 무엇이라도 된 것 마냥 구는군!.”


휘익-!


일권(一拳)에 대기가 으깨지며 강대한 기파가 휘몰아친다. 그 덩치에서 나오는 속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민첩한 동작으로 돌진한 금원방주가 그대로 악예린의 머리 위로 주먹을 내리쳤다.


찰나.


백연의 눈에는 보였다.


“왼쪽!”


권격이 도달하기 직전, 내공이 실린 백연의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악예린은 즉시 반응했다. 그녀의 신형이 바람처럼 분절되며 왼쪽으로 움직였다. 직후, 금원방주의 주먹이 악예린이 서 있던 자리의 오른편을 찢었다.


콰아앙!


터져나오는 기파가 그대로 대지를 꿰뚫고 틀어박혔다. 단순히 권격을 내친 것 만으로 주변 전각의 기둥이 우지끈 비틀리며 뜯겨나갔다.


악예린은 침착했다. 그 사이에서도 몸을 비틀며 그대로 창격을 내질렀다. 회피 동작과 공격이 자연스레 연결되는데 망설임이 없다. 직전 죽음의 위기가 스쳐 지나간 것을 의식도 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창격. 우악스럽게 몸을 비튼 금원방주가 그대로 하늘을 향해 권격을 올려쳤다.


쩌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악예린의 창이 허공으로 날았다. 민첩하게 도약한 그녀가 창을 붙잡으려는 순간, 백연이 외쳤다.


“당소하!”


그의 말에 즉시 당소하가 반응했다. 그의 소매를 따라 발출된 묵직한 여섯 개의 흑색 선이 허공을 가르며 악예린의 옆으로 날아가고.


카가강!


어느 순간 악예린을 노리고 날아오던 은빛 선과 부딪히며 공격을 상쇄시켰다. 그 사이 창을 낚아챈 악예린이 그대로 땅에 착지하며 굴렀다. 찰나의 공방.


그러나 그 속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악예린이 백연을 돌아봤다. 눈에 담긴 의문이 선연했다. 그녀가 입술을 작게 달싹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백연은 말없이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보이며 검을 들었다. 눈앞의 금원방주. 헛되이 시간을 쓰지 않는다. 말없이 반지들을 회수한 그가 즉시 돌진해온다. 재차 악예린을 노리고 들어가는 권격.


가장 위험한 상대를 그녀라고 판단한 것이다. 칠룡 중에서도 그녀가 지닌 이름값은 드높았으니까.


“사형. 내공, 다룰만해?”


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전 적양공과 현음공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상황이었다. 명문혈을 따라 직접적으로 내공을 불어넣은 터라 적응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잘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가자. 내가 피하라고 하면 즉시 피하면 되는거야.”

“물론.”


대답을 들으면서 즉시 기파를 일으켰다. 보법 걸음을 따라 새어나오는 기운이 묵직했다.


시야 끄트머리에 악예린과 부딪히는 금원방주의 권격이 보였다. 짧게 이어지는 연격. 악예린은 피하지 않고 받아치고 있었는데, 언제 꺼내들었는지 등 뒤에 있던 좀 더 짧은 창 하나를 꺼내 권격 앞에 밀어넣고 있는 도중이었다.


잘 버티고 있으나 혼자 공방을 지속할 수는 없다. 악예린을 도와야 했다.


“간다.”


중얼거리며 걸음을 내딛는 순간.


피잇-.


세상의 소리가 먹먹하게 가라앉았다. 격렬하게 이어지는 전투의 소리가 침잠하는 것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감각이었다.


동시에, 시야가 줄어들었다.


사방 전장을 드넓게 관조하고 있던 오감. 전부 줄여 한곳으로 몰아넣었다. 일점을 응시하는 백연의 눈을 따라 자색 안광이 번뜩였다.


그 끝에 자리한 것은 금원방주. 그의 몸을 따라 흐르는 기파와 기세, 근맥의 움직임. 흐름. 일그러진 표정 속에서 움직이는 눈동자가 순간순간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까지.


전부 보인다.


단순히 남궁의 안법을 보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적양공과 현음공을 익히며 얻어낸 감각.


적양공은 불꽃이다. 예리한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어주는데, 전투의 흥분이 더해질수록 그의 시야가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금안나찰과 전투하며 얻어낸 불꽃의 감각. 본능에 가까운 예측을 선사해준다. 그만큼 몸이 생각에 앞서 멋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현음공. 차가운 수기를 담았는데, 대해의 물은 흐름을 다스린다. 적의 발을 묶고, 전장의 흐름을 조율하는 힘이다. 물의 감각은 느릿하게 관조하는 시선이다. 그만큼 감각이 가라앉는데, 무뎌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한점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무공. 혹자는 무아라고도 부르는 집중력이다.


거기에 귀안의 감각도를 더해냈다. 사용하는 순간 일반적인 시야가 사라지며 모든 것을 선으로 이루어진 기파로 인지하는 안법. 그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사방 공간의 공격을 가장 날카롭게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허초와 변초, 살수들의 공격에 속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검왕.’


한 조각을 채운 것이다. 전장의 흐름을 지배하는 드넓은 시선. 그 속에서 백연은 세상을 굽어보는 제왕의 눈을 보았다.


‘역으로 담아내면 어떨지.’


사방을 굽어보는 하늘의 눈을 한점에 집중시키기로 한 것이다. 시야의 범위를 줄이고 눈앞의 흐름에 집중한다. 기세와 흐름을 읽는 것은 그대로 가져오나 그 범위를 눈앞의 대상으로 한정시킨다.


아래를 굽어보는 하늘의 시선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승천에 도전하는 자의 눈으로.


하늘을 향해 도전하는 검이다. 도전자는 언제나 눈앞의 적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자신이 약자이니.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일련의 감각과 영감이 모였다.


눈에 깃든 감각이 독특하기 그지 없었다. 흐릿하게 일그러지는 시야 속에서 상대가 보이는데. 그 형상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쥐어낸 양주먹 위로 반짝이는 여덟개의 반지.


비틀리는 기파가 반지를 기준으로 회전하며 뭉친다. 오른손 주먹을 내칠듯 지켜든 금원방주. 하지만 정작 내력이 집중된 곳은 오른손이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백연이 걸음을 내딛으며 외치는 순간. 악예린과 사형이 반응했다. 두 사람의 신형이 일제히 금원방주의 오른편으로 움직인다. 동시에 비틀리는 감각도 속에서 백연은 한발 앞서 보았다.


내쳐지는 왼쪽 주먹을.


직후. 금원방주의 왼 주먹이 막대한 기파를 터트리며 권격을 펼치고.


콰아아앙!


전각 한채가 통째로 짓이겨졌다. 비산하는 나뭇조각과 장식들. 날아오르는 잔해 속으로 백연은 걸음을 내딛었다.


여휘검에 기파를 실은채였다. 찰나에 타오른 적양공 불꽃이 맹렬하게 일었다. 금원방주는 이미 주먹을 휘수하며 몸을 돌리고 있었다. 막대한 힘을 지닌 권격을 가볍게 연속해 날린다.


틈새가 없었다.


이어지는 권격의 형태가 날카로웠는데, 자신에게 짓쳐오는 백연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강맹하게 직선으로 이어져 오는 권격. 정면 일격이었다. 미리 인지했는데, 백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한순간 그의 검끝이 휘어지며 아홉번 허공을 격했다. 오른발로 진각을 내딛으면서였다. 충격으로 살풋 패이는 바닥이 느껴졌다. 비틀리며 피어난 불꽃의 선이 그대로 백연의 앞에서 꽃처럼 피어나고.


화아악!


거칠게 일어난 불꽃이 그대로 권격을 집어삼켰다. 벽처럼 휘몰아치는 화염. 금안나찰의 권격도 막아낸 검이다. 하지만 금원방주의 주먹을 막을만큼 단단하지는 못했다.


“놈!”


노호성과 함께 권격이 그대로 불꽃을 찢어냈다. 한순간 드러난 백연의 신형. 그러나 금원방주의 권격은 백연을 짓이기지 못했다. 찰나에 위에서 내리찍히는 걸음이 있었다. 암녹색 장포와 함께 떨어진 유려한 각법이 금원방주의 팔목을 그대로 즈려밟았다.


“내 상인이 천하다 생각하지는 않다만.”


터억.


짙은 기파가 대기를 잠식한다. 호흡 속에서 흩어져 나오는 독향. 당소하가 기파를 담아 각법을 내리찍으며 금원방주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네놈은 근본이 없군. 하오문의 배신자.”


콰앙!


일순 각법과 권격이 만나며 충격파가 일었다. 거칠게 일어난 기파의 반발력으로 당소하의 장포가 미친듯이 펄럭였는데, 금원방주의 손목을 밟은 그의 걸음은 미동도 없었다. 대체 무슨 보법을 익힌 것인지.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지껄이는 입을 찢어주면 천독(千毒)이 좋아하겠군. 소가주.”

“글쎄. 가주님은 실력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지라.”


이빨을 드러낸 금원방주가 손을 비틀었다. 그의 손목을 밟은 당소하의 다리를 낚아채려는 움직임. 기파를 실은 금나수법이 당소하의 다리를 붙잡아 박살내려는 순간, 금원방주의 양쪽에서 두 신형이 재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허공을 가르는 검격과 창격이 매서웠다. 섬전같이 쾌속한 검은 창과 불꽃을 매단 검신. 악예린과 단휘의 공격이 날카롭게 들어왔다.


양쪽에서 짓쳐오는 일격에 금원방주가 몸을 비틀었다.


“버러지들이!”


휘릭.


그가 진각을 딛으며 몸을 낮추었다. 짧은 순간 손목을 밟고 있는 당소하의 다리를 낚아채 그대로 한쪽에 집어 던지면서였다. 십수장을 날아간 독룡의 신형이 그대로 어느 전각의 벽에 처박히고.


우웅.


금원방주의 주먹을 따라 대기가 비틀렸다. 몸을 회전하며 기파를 주먹에 엮어내는 속도가 압도적이었다. 흐름을 뺏어가는 움직임이다. 막대한 양의 내공이 숨쉬듯 뿜어져 나오는데, 그 수발속도가 지극히 빨랐다.


금원방주의 권격이 향하는 방향 끝에 악예린이 있었다. 지금까지 집요하게 그녀를 노리던 금원방주였는데. 이번에 모여드는 기파는 정말로 위험했다. 방어를 하려 드는 순간 찢겨나갈지 모르는 수준의 일격.


하지만. 백연의 눈에 깃든 안법.


찰나에 보였다.


예지에 가까운 예측. 금원방주가 노리는 것은 악예린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전장을 거친 그의 경험과, 여러 무학들이 합쳐져 새로운 무공으로 태어났다. 자색 안광이 그의 눈을 따라 흘러내리듯 번뜩이고.


다음 순간 이지러진 백연의 신형이 그대로 진각을 내딛었다. 늘어진 간극 속에서 바람을 휘감은 몸이 그대로 단휘의 앞에 떨어지듯 나타났다.


“왼쪽으로 일보.”


중얼거리듯 말을 흘리며 기파를 일으켰다.


현음공의 수기가 올라오며 그의 검신 전체를 뒤덮었다. 동시에 다리를 따라 기파를 흘려넣었다. 천근추(千斤錘)의 느낌이 이럴까. 허벅지 대퇴근 양구혈(梁丘穴)을 따라 대해의 기운이 맺혔다. 묵직하게 버티고 선 걸음.


검법은 걸음에 영향을 깊이 받는다. 자연히 검끝이 무거워졌다. 일련의 변초를 넣지 않고 정직하게 검을 휘둘렀다. 짓쳐 들어가는 검이 아닌 받아치는 검.


공격 일변도를 추구하는 검에서 벗어난다.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지키는 검이다. 검끝이 파도의 벽이 되었다. 찰나에 종횡으로 그어지는 기파가 묵직하게 시야 전방을 뒤덮었다.


콰아앙!


그 순간 권격이 와 닿았다. 그가 검으로 방어초를 펼친 것과 동시라 봐도 좋았다. 쏟아지는 권격의 힘이 무지막지했다. 여휘검의 끝이 낭창하게 휘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막대한 기파가 그의 팔을 타고 미친듯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가만히 받아주고 있지 않았다.


‘받아내지 말고 흘려보낸다.’


생각하며 기파를 일으켰다. 손바닥 노궁혈(劳宫穴)을 따라 맺힌 기파가 바깥으로 흘렀다. 몸에 상대의 기파가 쌓이면 자연히 위험하다. 내가중수법을 받아내는 가장 기본인데, 중단전 심장을 지키는 것이다. 완벽한 방어초.


권격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그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강자의 무공을. 받아내는 것으로 어깨가 탈구될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이대로 지속되면 갈기갈기 찢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서 바람이 일었다. 단휘의 신형이 그의 몸을 타고 왼편으로 일보를 내딛었다. 말없이 이어진 걸음. 유려하게 늘어난 신형이 그대로 권격의 여파를 벗어나며 검과 함께 돌진했다. 찰나에 그어진 선이 백연의 눈에 보였다.


길쭉하게 뻗어나간 검격이 불꽃을 실은채로 허공을 가르고.


피잇-!


바람 소리가 귀를 찢었다. 금원방주도 그것을 인지했는지 권격을 거두려는 모습. 백연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안되지.”


중얼거리며 앞으로 보법을 내딛었다. 그의 안법이 미친듯이 경고를 보냈다. 시야 너머로 보이는 흐름. 금원방주가 스스로의 방어를 포기하고 권격을 내치면 그는 죽을지도 몰랐다.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검이, 일문(一門)의 검인고. 아니면 낭인의 검인고.


문득 스치는 목소리. 검왕의 물음이 재차 그의 머릿속을 뒤집었다. 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지금 내딛는 걸음에서 만큼은 확실히 답할 수 있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저벅.


걸음을 내딛으며 몸에 단단히 뿌리내렸던 현음공을 거두었다. 삽시간에 방어초를 회수하며 몸에 불꽃을 휘감았다. 사그라든 파도 사이를 찢어내며 불꽃의 폭풍이 전진했다.


그럼에도 금원방주의 권격은 그를 향해 짓쳐오지 않았다. 단휘의 공격. 충분히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금원방주가 황급히 몸을 돌려 방어를 하려 할 만큼.


“믿는 겁니다.”


타인의 검을. 나아가 곤륜의 검을.


화르르륵!


불꽃을 실은 백연의 검이 직진했다. 오른편 상단으로 들어가는 공격. 상단세를 취하며 회전을 걸었다. 손에 들린 여휘검의 검신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시야에 단휘의 검격이 들어왔다. 그가 조언한대로 일보 왼편으로 내딛은 상태. 자연히 백연 자신과 공격 방향이 양쪽으로 갈리게 되었다. 이중으로 짓쳐 들어오는 일격은 방어하기 어렵다.


그와 함께 저 뒤편에서 도약한 악예린의 모습이 보였다. 허리춤에서 창을 두 자루 빼들어 양손에 든 모습. 그녀의 팔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쾌속하게 휘둘러졌다.


피잇-!


허공을 찢는 맹렬한 두줄기 선율.


더불어 어느새 회복했는지 펄럭이는 암녹색 장포가 두 자루 암기를 들고 짓쳐오고 있었다. 한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겹쳐들었다.


표정을 일그러뜨린 금원방주. 그의 권격이 재빠르게 단휘를 향해 날아가려는 순간 악예린의 창 한자루가 그의 팔목을 격하고.


단휘가 그리는 검로와 경파가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정확히 금원방주의 어깻죽지를 노리고 들어가는 움직임이었다.


찰나에 간극이 스친다. 자리에 모여든 무인들. 이미 다른 시간을 걷는 이들이다. 재능의 그릇이 그랬다. 그 자리에 막 발끝이나마 걸친 단휘까지. 한순간에 모두의 인식이 겹치고. 늘어진 시간이 가속되는 순간.


파악!


허공으로 핏물이 튀어올랐다. 섞여든 투로의 사이에서 금원방주의 권격이 모조리 끊겨나갔다. 독룡과 뇌룡은 그만한 천재였다. 각 세가의 미래이자 현재라 칭해질 만큼.


그리고 그 끝에, 곤륜의 두 소년이 나란히 검을 거두고 있었다. 금원방주의 장포 사이로 깊게 새겨진 자상들. 너덜너덜해진 금원방주의 팔뚝과 옆구리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가볍지 않은 부상이었다.


백연이 천천히 금원방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색으로 번뜩이는 안광이 무심하게 금원방주를 응시했다.


“이곳이 정파 무림의 무덤이라 그러던데.”


여상한 목소리. 그러나 그것을 마주하는 금원방주의 표정은 더 이상 여유롭지 못했다.


“지금은 어때.”


담담한 어투로 내뱉은 말. 그에 금원방주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들어올리려는 순간.


쿠웅.


대기가 떨려오는 충격이 사방을 뒤덮었다. 삽시간에 금원방주의 표정이 굳어들었다.


“어, 어떻게!”


가히 압도적인 기세. 세상을 오시하며 찍어누르는 거대한 권역이 즉시 남궁의 장원을 뒤덮었다. 천주산 일대에 내리찍히는 강대한 기파가 초월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그 기운을 느끼며 백연이 검을 들어올려 금원방주를 겨누었다. 소년이 일렁이는 시선으로 금원방주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래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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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네가 만든 마을(4) +8 23.09.20 5,283 107 20쪽
93 네가 만든 마을(3) +7 23.09.18 5,520 105 24쪽
92 네가 만든 마을(2) +5 23.09.15 5,638 113 24쪽
91 네가 만든 마을 +5 23.09.13 5,891 106 18쪽
90 신강(4) +6 23.09.11 6,082 11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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