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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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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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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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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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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검왕(3)

DUMMY

※※※



삼재(三才). 육합(六合).


모든 무인의 기초가 되는 무공이다. 드높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들 중에서는 아예 가르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초 무공을 만들어 익히기도 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 모든 무공의 근원이 삼재와 육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만은 분명하다.


그만큼 단순한 것이다. 검을 휘두르는 세가지 방법과 더불어 기본적인 여섯 방위를 격하는 수법. 달리 무공이라 일컫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예외가 있다.


마도의 길거리를 떠돌던 소년. 배울 무공이 없었다. 삼재조차도 그에게는 쉬이 허락되지 않는 무공이었다. 덕분에 어깨 너머로 익혀냈다. 남들이 수련하는 연무장이 내려다 보이는 나무 위에서.


소년에게 있어서는 삼재가, 육합이 곧 신공절학이었다.


그것들을 스스로 보고 연구하며 엮어내었다. 여러 무인의 몸짓을 마주하고, 싸워나가며 얻은 감각도도 함께였다.


때문에 검에 근본이 없었다. 일례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무공들은 그 의념이 더없이 드높기 마련이다. 뿌리가 깊은 거목인 것이다. 지금 그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처럼.


우웅.


울리는 소리가 인세를 벗어났다. 종이 울리는 것처럼 기파가 일어나는 소리가 유형화된 무언가로 나타나 천지를 울린다.


그 너머, 찢겨나간 바람 사이로 비치는 것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푸른 검기였다. 그야말로 하늘이 그에게 검을 휘두른다.


창궁무애. 남궁세가의 의념은 저렇게 드높다. 근본이 깊은 신공절학인 것이다.


백연은 입매를 비틀며 검파에 힘을 주었다. 짙은 기파를 머금은 묵령검이 바람을 찢어내며 울었다.


“근본, 의념.”


검귀의 검에는 복잡한 것이 없었다. 그의 검이 향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두가지 뿐이었다. 적을 격살하고 살아남는, 지독한 생(生)에 대한 본능.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의 검(劍)을 세상에 새기고자 하는 욕망.


그것들이 하나로 엮어져 이름없는 검을 만들었다.


달리 무명(無名)이다.


‘온다.’


흐릿하게 선으로 문대어진 시야 너머로 짓쳐오는 거대한 검기가 보였다. 막 그가 육합 참격으로 천풍검법을 베어내고 난 직후였다. 공중에 떠오른 몸이 찰나의 순간에 자유로웠는데, 허공에 발디딜 곳이 없었다.


‘천풍검법.’


남궁세가의 또다른 검법인데, 그 드높기가 하늘 같았다. 익히기 그리 어렵다던데. 검왕은 그런 것에 구애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손에 닿으면 삼재도 신공절학일테니.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


창궁무애검에서 천풍검법을 펼치고 다시 푸른 검기를 꺼내든다. 검법의 연격에 잠시도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없다. 구결의 완벽한 이해가 바탕이 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무공을 하나의 연격처럼 엮어낼 정도로.


사이에 남는 시간이 거의 없다. 자연히 백연이 반격초를 준비할 시간도 사라지는 것이다.


‘할만해.’


그의 검은 전장에서 다듬어졌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것도 그와 같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검왕만한 속도의 내공 수발력이 없다. 초월자들의 간합에 맞추기 위해서는 한움큼의 내공조차 아껴 다시 제 힘으로 회수하는 방법밖에.


피잇-!


그의 참격이 비틀렸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며 바람을 갈라낸 묵령검. 위에서부터 내려친 종격의 여파를 그대로 당겨왔다. 크게 도는 검의 궤적에 어깨가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는데, 익숙한 고통인지라 무시했다.


동시에, 백연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바람 사이로 묻힌 속삭임이 나직했다. 그러나 그 순간 검왕의 입꼬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말이 들리는 것 마냥.


“무명.”


그가 자아낸 무공. 초식 순서나 구결 방식이 가르침을 상정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 모든 무공이 즉흥적이고 강렬한 인상 아래 만들어져 있었다. 때문에 그의 검은 거의가 순간의 장면을 담아내었다. 지금 그의 검 안에 담기는, 노을처럼.


“만하(晩霞).”


우우웅.


귀가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검왕의 무공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횡격으로 베어낸 묵령검의 끝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기파가 허공을 점했다. 제왕검형의 기운이 집어삼킨 대기를 따라 백연의 기운이 파고들었다.


한순간, 푸른 하늘이 지워졌다.


불타는 듯한 진홍부터 부드러운 자색까지. 시각을 희롱하는 노을의 진기가 푸른 검기를 감싸낸다. 백연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한줄기 거대한 푸른 선을 막아내기 위해 수십겹 그물처럼 짜여진 그의 검격. 만하가 검왕의 기파를 파고들며 잠식하고 있었다. 일검에 수십의 연격이 섞여 들어간 것이다.


일순 얽혀든 검격 사이로 기파들이 서로를 집어삼키며 흩어지는 광경이 꽃잎 같았다.


허나 백연의 시선은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툭.


만하를 내치고 바닥에 착지한 백연은 그대로 발끝에 기파를 그러모았다. 그의 다리를 타고 기파가 미친듯이 쌓여갔다. 지금 현실의 몸이라면 시도하지 못할 무식한 방법과 기예.


‘이때는 잘도 이러고 살았군.’


검귀의 몸이 그 반탄력을 견뎌낼 수 있을만큼 단단하게 짜여졌기에 시도할 수 있던 방법.


쿠웅.


그가 진각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켜켜이 쌓인 기파가 몸속에서 역으로 충돌하며 혈맥을 찢어낼 듯이 요동쳤다. 그 힘을 그대로 이끌어내 발끝에 담았다.


검귀의 보법. 한순간 그의 신형이 누군가 손으로 잡아 늘인듯 주욱 길게 흩어지고. 다음 순간 대지를 박찬 그의 몸이 구름을 밟고 선 검왕에게 거대한 흑색의 화살마냥 쏘아졌다. 묵령검을 사선으로 베어내면서였다.


“무명. 벼락.”


쩌적. 가속한 그의 신형과 함께 대기를 긁어낸 검끝이 가공할 속도로 짓쳐들었다. 휘두르는 속도가 인지를 벗어났는데, 검왕의 눈은 그때 이미 정확히 그를 향하고 있었다.


쩌엉!


검이 맞부딪히며 굉음이 울렸다. 손아귀에 전해져 오는 반탄력이 강렬했는데, 백연은 그것을 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팔을 통해 짓쳐오는 경력 여파를 그대로 몸 반대로 이어내며 수도(手刀)를 날렸다. 상대의 공격에 실린 힘을 이용한 것이다.


터억.


검왕은 장법이었다. 당황한 기색 없이 펼쳐낸 손아귀에 실린 내력이 막대했다. 수도와 장법이 짧게 간합을 나누고, 그 자리에서 백연은 몸을 뒤틀었다. 허공에서 이연격.


쩡! 쩌저정!


묵직한 묵령검에 낡은 검이 맞닿으며 우레같은 소리가 퍼져나갔다. 귀청을 찢는 검격 속에서 백연은 점점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발톱이 예리하구나.”


검왕이 중얼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한순간 실린 막대한 진기. 그의 검끝에 실린 기파가 더없이 무겁다. 백연은 몸을 뒤틀며 온몸에 기파를 끌어올렸다. 호흡에 섞여나온 기운이 몸을 감싸고, 한순간 허공에 그를 비춰오던 햇살이 휘어지듯 비틀리며 그의 몸을 휘감았다.


호신강기.


이름없는 갑옷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극히 짧은 찰나에 이루어진 기예였는데, 그의 모든 출수와 마찬가지였다. 기이할 정도로 쾌속하게 그의 몸을 감싼 호신강기가 검왕의 검격을 대신 받아내었다.


콰앙!


삽시간에 뒤로 튕겨나간 백연의 신형이 산봉우리 위에 처박혔다. 바닥을 굴러 일어난 그가 옅은 기침을 흘렸다.


“......거, 너무한거 아닙니까?”


여전히 구름 자락을 밝고 고고하게 선 검왕을 보며 백연이 불평을 흘렸다. 발 디딜곳 없는 허공에 걸음을 대고 있는 것이 초월적이다. 그만한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그의 생전에도 보지 못했는데.


능공허도(凌空虛道). 전설로 알려진 경지인 것이다.


그에 검왕이 검을 치켜들었다.


“네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창공을 걸음의 발판으로 삼는 것은 대저 강호 무림의 몇 안되는 사람에게만 허락되었던 경지.”


그 말에 백연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능공허도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검왕의 걸음은 구름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허공을 자유로이 누비는 걸음이 아닌데, 그 모습이 능공허도와 차이가 있다.


“구름을 발판 삼는것도 그닥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만.”


헛웃음을 흘린 백연이 검을 쥐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검왕. 이윽고 그가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걸음이 산봉우리에 가벼이 닿자 주변의 기운이 가라앉는다. 구름에서 내려온 초월자의 기세가 더욱 강렬했다.


“네 검. 급하구나.”

“......”

“무엇이 급한고.”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는 질문입니다.”

“검끝에서 느껴지는 것이 가볍지 않다. 전장의 검이더냐. 그 끝에 흐른 핏물이 지천을 메우고도 남겠구나.”

“베어야 할 이들을 벤것이지요.”

“벤 것이냐, 지킨 것이냐.”


백연이 검왕을 쳐다보았다. 얼굴에 걸린 표정이 알기 어려웠다. 초로에 접어든 중년의 외양을 하고 있으나 그 나이가 얼마일지 짐작하기 어렵다. 물어오는 질문이 꼭 그를 꿰뚫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벤 것입니다.”

“어째서 벤 것이냐.”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때문에 저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흠칫 놀랄 정도였다. 묵령검을 쥔 그의 손아귀가 얼얼하게 저려오는 감각이 진했다.


“그것은 누구의 생각이더냐.”

“당연히 스스로지요. 타인의 시선이 무엇 중요합니까.”


선문답 같은 대화 속에서 물어오는 검왕의 말. 어째서인지 익숙한 감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번도 없거늘.


“아(我:자신)에게 가혹한 놈이로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검세가 그렇다. 네 몸을 돌보지 않는구나.”


검왕의 시선이 낮았다. 무겁게 그를 응시해오는 눈에서 옅은 감정이 섞여 있다. 초월적인 무인의 눈에 섞인 감정이 낯설다. 그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키고자 했는데도 실패했습니다. 더욱 나아가지 않으면 안될 일 아닙니까.”

“......실패했는가?”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검왕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네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는가?”

“그건......”


말문이 막혔다. 쉽게 그렇다 대답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건 그의 기준이다. 그들은 실패했다 결코 말하지 않겠지. 그런 놈들이었으니까.


입을 다문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검왕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이제 알겠도다.”


그의 시선이 느릿하게 백연을 훑어냈다.


“귀(鬼)야.”


백연은 흠칫 검왕과 눈을 마주쳤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무게감. 드높았다. 무엇을 알고 저리 말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초월자들의 눈에 담기는 것은 범인과 다르다 했다. 그 또한 경지에 올랐을 적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았다.


지금 검왕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둘이 아니구나. 하나가 두번째가 된 것이니.”

“무슨......”

“네 검. 지금도 같느냐?”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도 같냐고?


검귀의 검과 백연의 검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그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검왕이 눈을 내리깔았다.


“말로 하기엔 부족하구나. 검객은 그리 설명하는 이들이 아니니.”


짧은 중얼거림. 그 순간 백연은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언제부터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의 시야가 살풋 낮아지고 감각이 줄어들었다. 강철같던 전신 근맥이 아직 잘 단련된 수준인 소년의 몸이 되어 있었고, 간합이 짧아졌다.


그의 뺨 언저리를 따라 길게 휘날리는 흑단같은 머리칼. 아래로 길게 늘어진 백색 장포. 허리춤에 매인 검은 묵직한 흑색의 검신이 아니었다.


백연이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검왕을 쳐다보았다.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고 있었다.


“회한을 담아 새로 엮어내었을 것이다. 네 성정이 그러하다.”

“......”


검왕이 검을 치켜들어 그를 겨누었다.


“네 새로운 검. 직접 보여다오. 어디를 겨누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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