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7.06 18:10
연재수 :
305 회
조회수 :
1,572,167
추천수 :
31,558
글자수 :
2,315,055

작성
23.07.27 18:10
조회
7,629
추천
143
글자
16쪽

검왕

DUMMY

※※※



“지금 형님께서 안에 계세요. 그냥 들어가긴 힘든데.”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걷는 걸음이 여유로웠다. 창궁무애. 직전까지 무공을 연마하다 온 남궁유진의 몸짓에서는 남궁세가 특유의 맑은 보법 기운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말투와 달리 급박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벼운 걸음이 세가의 공자다운 기세를 품고 있었다.


“도련님. 일찍 들어오셨군요? 다른 무인들과 검을 견주려 가신다더니.”

“하하. 그렇게 되었어.”


중간 중간 인사해오는 하인들의 표정에서 소년이 예쁨받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다들 쳐다보는 시선에 애정이 묻어있다. 가문 식솔들의 인심이 향해 있는 것이다.


“곁에 그분은 누굽니까?”

“아 여긴......”

“아무리 도련님이라 하셔도 지금 같은때에 아무나 들이시면 안됩니다.”


남궁유진이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의녀이셔.”

“의녀......말입니까?”

“응. 독룡께서 소개해주신 분이신데. 혹 도움이 될까 해서.”

“독룡께서 직접? 당가의 자제분이 추천하실 정도라면 믿을만 하겠군요.”


오가는 대화 사이에 백연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가벼운 몸짓. 뒤집어쓴 궁장(宮裝) 아래로 살풋 드러난 얼굴을 본 하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크, 크흠.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의녀님. 그럼 도련님 저는 이만......”


백연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린 하인이 바람같이 사라졌다. 신묘할 정도의 몸놀림. 남궁세가의 식솔들은 전부 무공을 익히기라도 한건가 싶을 정도였다. 미간을 좁힌 남궁유진이 이쪽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한명 홀리신것 같은데요.”

“......네가 이렇게 하자고 제안한거 아니야?”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 이곳, 남궁세가의 장원 안에 들어선 백연. 평시 입고 다니는 옷차림이 아니었다. 암화의 위명은 상당히 알려져 있었다. 더해 만금장 측에서 소가주 남궁혁에게 직접 경고까지 했다. 함부로 장원 안에 침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그는 지금 새하얀 궁장을 머리 끝까지 둘러쓰고 있었다. 여인의 옷이다. 길게 자라 대충 끝자락만 묶고 다니던 머리도 어느 정도 땋아 내렸다.


의녀로 위장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시면 안돼요. 목소리는 넘어가겠지만 어투가.”

“내 어투에 불만 있어?”

“그게 문제입니다.”


무인 이전에 남자로써 선호하지 않을 행위이다. 하지만 백연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방법을 따져가며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검왕을 직접 만나는 것. 가장 간편한 방법이 이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치료하러 온 것도 맞고.’


의원으로 위장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암화는 남자이고, 의녀는 여자이다. 의녀라고 위장한 순간부터 상대방의 머릿속에 암화라는 사람이 떠오를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심리적인 것이 그랬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보고 싶은것만 보고, 믿고 싶은것만 믿으니.


그렇다곤 해도 완벽히 안전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여유가 있었다면 기다렸을 텐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어디야?”

“저기 안쪽 전각이에요. 시비들이 오가는 건물. 보이시죠?”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유진이 가리킨 방향 안쪽에 자리한 커다란 전각.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의외로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그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인 것이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백연은 수없이 깔린 인기척을 느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 곳곳에 깔려 전각을 감시하고 있다. 쓰러진 남궁산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반대일지도.’


그렇게 남궁유진을 따라 담담한 걸음으로 전각을 향해 갈때였다.


“유진아? 거기서 무엇 하느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남궁유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옆이었다. 화려하게 불이 밝혀진 전각이었는데, 안쪽의 삼엄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가벼운 선율이 흘렀다.


그곳에서 걸어나온 한 남자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며 웃고 있었다.


“......형님.”


남궁유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벅.


성큼 성큼 내딛는 발걸음이 시원했다. 저번에 천장에서 내려다 봤을때는 몰랐는데, 키가 상당히 컸다. 곧게 뻗은 이목구비 또한 미형의 상이었다. 달리 타인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얼굴이다.


허리춤에 길쭉하게 늘여 걸친 검은 사선으로 걸려 있었는데, 뽑기가 용이하지 못한 자세였다. 느슨한 것이 그의 현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듯 했다.


소가주 남궁혁.


큰 보폭으로 다가온 그가 남궁유진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어때, 무공 수련은 잘 되어가고 있느냐?”

“예.”

“가주께서 쓰러지신 지금, 너만이 적법한 제왕검형의 후계이니라. 하루빨리 익혀 가문의 검을 보존해야 할 것이야.”


그렇게 말하며 남궁유진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자애로운 소가주이자, 형의 면모이다.


속으로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가식적인 입꼬리에 검을 꽂아넣으면 어떤 표정이 나올지 궁금했다. 지금 검을 뽑아서 내치면 어떻게 될까.


손이 저절로 궁장 아래 등 뒤에 숨겨진 여휘검을 향하려는 것을 멈추며 백연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남궁혁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호오. 헌데 우리 동생이 누구를 데려왔느냐? 내 미리 말해두건데, 아무나와 놀아나면 안된다. 무릇 남궁의 이름이 있거늘.”

“형님!”

“하하. 농이었다. 그래서 누구를 데려온 것인지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꾸나?”

“......의녀입니다.”


남궁혁이 고개를 갸웃 비틀었다. 그의 시선이 백연을 위아래로 훑었다. 헌데 그 눈이 그리 또렷하지 못했다.


“의녀, 의녀라.”

“예. 독룡께서 소개해주신 분입니다.”

“아하, 당가의 독룡. 그의 추천이라면 믿을만 하지. 당가의 의술은 천하일절이니. 헌데......”


후욱.


갑작스레 남궁혁의 신형이 가까워졌다. 일보에 보법을 담은 것이다. 한순간 검을 뽑아 내칠뻔 했으나 가만히 몸을 굳혔다. 순식간에 그의 앞에 다다른 소가주가 내려다보며 턱을 매만졌다.


“얼굴은 왜 가리고 있는가?”

“형님.”

“대 남궁세가의 장원 안에서 외양을 가리고 다녀야 할 이유라도 있는겐가? 의녀중에는 마마(媽媽)를 앓아 얼굴이 얽은 사람도 꽤 있다 들었는데. 혹 그런 이유로 가리고 다니는건가.”


남궁혁이 몸을 약간 굽히며 그를 응시했다.


코앞에 자리한 그의 가슴팍. 이대로 검을 꺼내 찌르면 즉살이다. 놓칠 수 없는 거리였다. 아직도 마기의 여파가 남았는지 순간 살심이 강하게 일었다.


‘안돼.’


참아야 했다. 여기서 남궁혁을 죽이는 순간 만금장 이전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즉살당한다. 오히려 만금장의 계획은 훨씬 수월하게 흘러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나도 좋을 점이 없었다.


“숨기는 것이 있나?”

“먼길 걸음해 오신 분입니다. 너무 실례되는 행동은.”

“동생아. 내가 남궁의 소가주다.”


남궁유진을 돌아본 남궁혁의 목소리가 웃음을 담고 울렸다.


“천하 아래에 내가 무례를 범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북경의 황상께서도 남궁에 친애를 표하시는 마당에.”


오만한 시선. 몸짓. 하나 하나가 그러했다.


말하는 바에 한치 틀림이 없다 스스로 믿는 듯 했다.


황실이 무림 세가와 연원을 유지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관으로 진출하는 세가의 자제들도 있었으니. 관무불가침이라 하지만 그것은 무(武)의 행사에 국한된 이야기. 관의 벼슬아치들 중에 세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했다.


“얼굴을 보여라.”


단호한 명령조의 말에 남궁유진이 미간을 좁혔다. 슬쩍 백연을 쳐다보는 시선에 당황섞인 질문이 묻어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눈길.


백연은 천천히 남궁혁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인 남궁혁의 숨결에서 옅은 주향이 흘러나왔다.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인가. 지금의 상황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손을 뻗어 가볍게 궁장의 위를 걷어올렸다. 늘어져 얼굴을 감추고 있던 천이 사라지자 주변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그의 얼굴을 마주한 남궁혁의 눈이 커졌다.


“......호오.”


손끝에 긴장이 흘렀다. 백연은 서서히 기파를 끌어올렸다. 만약 여기서 그를 알아본다면. 검을 꺼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하지.


‘남궁혁 격살은 불가. 최대한 빠르게 검왕을 확보해 들고 도망치는 것도.’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마주한 남궁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얼굴을 훑는 시선이 느릿했다.


“눈이.”


이윽고 남궁혁이 중얼거렸다.


“예쁘군. 흑색......아니. 옅은 자색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형님!”

“알았다, 동생아. 칭찬이다. 칭찬.”


손을 내저은 남궁혁이 뒤로 성큼 물러섰다.


삽시간에 친절한 표정을 지은 남궁혁이 고개를 까딱였다.


“의녀라고 했나. 가주님을 뵈러 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동생아. 네가 아니라 저분에게 물은 것이다.”


백연은 살풋 고개를 숙였다. 아직 변성이 지나지 않아 얇은 목소리였다. 굳이 기운을 끌어올려 목에 담을 필요가 없었다.


“예.”

“......흐음. 그렇군. 허나 조심하길 바라지. 가주님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하네. 그대가 얼마나 뛰어난 의술을 지녔는지 모르나, 상태가 호전되지 못하면 그대에게 책임을 물을지 몰라.”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남궁혁이 얼굴에 웃음을 걸치며 말했다.


“여봐라. 내 동생과 여기......의녀 분을 가주님께 모셔다 드려라.”


의외였다.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해주는 모습이 가벼웠다. 남궁산에게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할줄 알았는데.


‘자신이 있는건가.’


누구도 남궁산을 치료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감이 있다 하면 굳이 꽁꽁 감추고 있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의원들이나 같은 이들에겐 내보이는 것이 나을지도.


마기라는 것이 그렇다. 저들이 했던대로 아주 옅게 계속 흘려넣으면 극히 예민한 기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감지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원인 불명의 병환. 더해 남궁산은 본래 지병이 있다 했다. 남들의 의심을 사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럼 동생과 가주님을 잘 부탁하지.”


그를 향해 고개를 까딱 숙이는 모습. 행실이 가볍다. 어지간히 흥취가 오른 듯 했다. 만면에 웃음을 걸고 있는 것이 유쾌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듯 했다. 아니면 진심으로 즐겁거나.


남궁혁은 곧바로 돌아갔다. 한창 술을 걸치다 나온 듯 했는데, 이어갈 심산으로 보였다.


남궁유진과 백연은 한 하인의 안내를 받아 전각으로 걸음했다. 남궁세가 장원의 심처에 자리한 커다란 건물.


안쪽에 들어서자 짙은 약초향이 대기를 감돌고 있었다. 맡기만 해도 기운이 맑아지는 듯한 향취다. 값비싼 약초인 듯 했는데, 이리 아낌없이 태워대는 것이 남궁의 재력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이쪽입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더 안쪽으로 걸음하자 전각 내로 보이는 넓은 연못이 시야에 들어왔다.


원형의 구조를 지닌 전각. 안편을 따라 작은 정원이 존재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생각될 정도로 잘 가꿔져 있었다. 정원 위 탁 트인 하늘 아래로는 구붓하게 떨어지는 달빛이 연못에 담겨 있었다.


그 너머에 문이 활짝 열린 방이 있었다. 연못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이었는데, 안에 자리한 침상이 거대했다.


그리고 그 침상의 위에, 한 인영이 죽은 듯 누워 있었다.


“모쪼록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진맥을 보시겠다 하면 반드시 왼편 손목을 잡으셔야 합니다. 또한 탕약은 전각 저편에서 지으시면 되고, 다른 도구는 일러주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어째서 왼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님의 무공이 강대하여, 무의식 아래에 발현되는 기운이 있습니다. 제왕검형에 짓눌려 죽고 싶지 않으면 말씀 드린대로 해주십시오.”


말을 마친 하인이 물러서고, 백연과 남궁유진이 검왕에게 다가갔다.


백연의 눈이 침착하게 검왕을 살폈다. 두번째였다. 직접 마주하는 것은.


여전한 모습이었다. 침착한 외양의 중년 무인. 그 체구가 크다 할 정도는 되지 못하는 인물이다. 침상 옆의 협탁에 놓인 한자루 검조차 그러했다. 낡은 검집이 씌워져 있는 검이었는데, 겉으로 보아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허나, 그 기세는 아니었다.


‘무거워.’


이 전각 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피부를 짓누르던 기운. 대기를 압박해오는 거대한 존재감이 숨이 막힐 정도였다. 사방의 모든 기운이 검왕을 향해 빨려들 듯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구심점이 된 듯 했다.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이 남자는.


그야말로 제왕(帝王).


이렇게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도 그 기세가 드높은 것이다. 이게 약해진 것이란 말인가.


“......어떻게 할거에요?”


그를 힐끗하며 조용히 물어오는 남궁유진의 목소리. 백연은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혹시 위험해지면 도망가. 알겠지?”

“위, 위험한거에요?”

“만약을 대비하는 거지. 만약을.”


그렇게 중얼거리며 백연이 손을 뻗었다. 검왕의 오른편 팔목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궁유진이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말리려고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후욱.


백연의 기파가 거칠게 솟아올랐다. 몸에서 뻗어나온 적양공과 현음공의 기운. 삽시간에 달려나간 기운이 백연의 손바닥에 담겼다.


동시에 그가 검왕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 진맥하듯 그러모은 손.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를 향해 짓눌러 오는 거대한 기운이 있었다.


‘이런.’


경고가 허언이 아니었다. 검왕의 오른편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태산 같았다. 대기를 짓누르던 압박이 갑작스레 수천배는 늘어나 그를 짓이기려 달려들었다. 하늘이 내리누르는 힘이다. 즉시 기파를 끌어올려 저항하지 않았다면 뼈가 으스러졌을지도 몰랐다.


‘지금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사고가 가속했다. 무공을 펼칠때처럼 시간이 겹겹이 늘어났다. 검왕의 오른 팔목을 잡은 것. 일부러 한 행동이었다. 그가 기세를 강하게 뿜어내는 쪽이라 했다. 그만큼 기운을 감지해내기 쉬운 것이다.


으득.


아직도 소리치려 막 입을 벌리고 있는 남궁유진의 모습. 채 몇초가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 사이 그를 짓누르는 힘에 어깨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고통이 뇌리에 전해지기도 전에 알았다.


‘길어야 반의 반각.’


그 이상 버티면 그도 목숨이 위험하다.


백연의 기운이 거침없이 질주했다. 그의 예리한 감각이 곤두세워졌다. 동시에, 검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속에서 미미한 기운이 느껴졌다. 낮고 끈적한 기운. 그것을 발견한 순간 백연은 그쪽을 향해 기운을 뻗었다.


그때였다.


[누구더냐.]


쩌엉!


머리가 뒤틀리는 듯한 충격이 뇌리를 울렸다. 한순간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여전히 늘어진 시간 속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검왕?’


그와 같은 간극의 시간에 울리는 목소리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음성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아니, 빠른 것인가.


[재미있구나.]


재차 울리는 음성이 강렬했다. 골이 뒤흔들리는 기분에 백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육성으로 내는 목소리가 아니다. 의념이 말하는 것. 그 힘만으로 머리가 박살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들라. 허하겠다.]


세번째로 목소리가 울렸다. 한순간 시야가 늘어지며 온몸의 기운이 검왕에게 빨려들어가듯 당겨졌다. 손을 떼어낼 시간도 없었다.


그대로 그의 시야가 암전되고.


다음 순간, 다시 눈앞이 밝아졌을때, 그의 앞에 자리한 것은 쓰러진 검왕의 침상이 아니었다. 그를 말리려 손을 내밀던 남궁유진도, 달빛 아래 빛나던 정원도 아니었다.


“여긴......”


백연의 시야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 사방이 구름과 창공이었다. 그 위로 비죽이 솟은 산마루가 뾰족했고, 탁 트인 시야 너머 세상을 내려다보는 태양빛이 강렬했다.


그리고 그 위, 구름의 언저리에.


“겁 없이 내 몸에 손을 대는 놈이 있다니.”


중년의 남성이 구름에 발을 걸치고 서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도포 자락이 구름과 같이 새하얬다. 아니, 구름을 도포로 걸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디, 그 얼굴이나 한번 보자꾸나.”


검왕이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9 검왕(2) +7 23.07.28 7,529 136 15쪽
» 검왕 +8 23.07.27 7,630 143 16쪽
67 마기 +5 23.07.26 7,648 135 14쪽
66 금원방(2) +5 23.07.24 7,817 143 16쪽
65 금원방 +4 23.07.23 8,281 138 17쪽
64 용봉지회(9) +6 23.07.22 8,279 143 20쪽
63 용봉지회(8) +4 23.07.21 8,000 138 15쪽
62 용봉지회(7) +6 23.07.20 8,065 143 16쪽
61 용봉지회(6) +5 23.07.19 8,044 145 18쪽
60 용봉지회(5) +6 23.07.17 8,403 152 17쪽
59 용봉지회(4) +6 23.07.16 8,482 156 16쪽
58 용봉지회(3) +5 23.07.15 8,590 154 16쪽
57 용봉지회(2) +5 23.07.14 8,752 159 17쪽
56 용봉지회 +7 23.07.13 8,947 154 17쪽
55 남궁세가(4) +8 23.07.12 8,638 163 17쪽
54 남궁세가(3) +7 23.07.10 8,909 158 16쪽
53 남궁세가(2) +7 23.07.09 8,826 155 17쪽
52 남궁세가 +6 23.07.08 9,182 166 17쪽
51 칠룡(3) +7 23.07.07 9,091 169 17쪽
50 칠룡(2) +5 23.07.06 9,036 167 18쪽
49 칠룡 +6 23.07.05 9,717 167 17쪽
48 안휘행(3) +7 23.07.03 9,559 167 16쪽
47 안휘행(2) +4 23.07.02 9,660 169 16쪽
46 안휘행 +7 23.07.01 10,210 168 16쪽
45 암화(暗火) +9 23.06.30 10,216 179 18쪽
44 귀환 +8 23.06.29 10,293 174 18쪽
43 야장(2) +5 23.06.28 9,890 173 17쪽
42 야장 +6 23.06.26 10,077 170 16쪽
41 적화(赤花) (3) +9 23.06.25 10,029 172 16쪽
40 적화(赤花) (2) +8 23.06.24 10,196 169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