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9.07 18:10
연재수 :
355 회
조회수 :
1,781,514
추천수 :
35,576
글자수 :
2,638,749

작성
23.08.16 18:10
조회
7,908
추천
130
글자
24쪽

선택(2)

DUMMY

※※※



쿠구구궁!


대지를 따라 내려찍히는 자욱이 강렬했다. 드넓은 산길을 따라 내달리는 신형들. 다섯 줄기의 신형이 얽혔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산기슭을 따라 내달렸다.


천주산 남궁세가의 장원에서 멀어지는 방향이었다. 그 중심에서 가장 앞서 내달리는 이는 푸른 장포를 길게 늘어뜨린 거대한 덩치의 무인, 금원방주였다. 경공 속도가 덩치와는 전혀 다른 민첩한 속도였는데, 본래라면 다른 이들이 따라잡기도 어려울 만한 쾌속한 속력이었다.


그러나 그의 질주는 결코 제 속도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여덟 자루 남았어요.]


백연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전음.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시야 한켠 허공을 찢는 울림이 느껴졌다. 밤하늘 아래 이어진 한줄기 회색 선율. 악예린의 손끝에서 발출된 창이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담고 허공을 질주했다.


콰앙!


직후 앞쪽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강력한 충돌이 일어났다.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파가 유형화된 파문을 그리며 시야를 흔들었다. 그 너머에서 금원방주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먹을 휘두른다.


경공으로 달리면서 던져대는 악예린의 투창. 더없이 위협적이었다. 그 자신이 활대라도 된 듯이 연달아 어디선가 꺼낸 창을 던지는데, 그 일격에 전혀 오차가 없었다. 막대한 힘을 싣고 날아가는 창을 막아내기 위해서 금원방주는 어쩔 수 없이 권격을 뻗어야 했고. 그 결과.


“잡것아, 받아라!”


한순간 맨 앞에서 내달리던 금원방주의 신형이 느려졌다. 그 사이를 치고 들어가는 거대한 도가 월광 아래 번뜩였다. 팽가의 오호단문도. 다섯 줄기 기파를 휘감은 도가 굽이치며 강맹한 일격을 금원방주의 등허리 위로 찍어내렸다.


“건방진......”


찰나에 몸을 뒤집은 금원방주가 그대로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마디 사이에 끼워진 반지들을 따라 번뜩이는 기파가 일었다. 한순간 허공이 휘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더니, 펼쳐진 그의 손날이 그대로 도신을 가격했다.


쩌엉!


귀청이 깨지는 듯한 쇳소리가 터져나왔다. 찰나에 도의 옆면을 후려서 도격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무위. 비틀린 도격의 영향으로 자세가 틀어진 팽악의 가슴께가 그대로 금원방주의 앞에 노출되었다.


“죽어라.”


그그극.


허공을 움켜쥔 금원방주가 그대로 권격을 형성했다. 움켜쥐는 손아귀를 따라 유형화된 기파가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쯧.”


혀를 찬 백연이 그대로 가속했다. 응축시켜 두었던 기파를 한번 더 터트린 것이었다. 발바닥 용천혈을 따라 터져나온 기파가 그의 신형을 순식간에 팽악의 곁으로 밀어내고.


콰앙!


팽악을 죽이려 뻗어지던 금원방주의 권격을 얇은 검신이 저지했다. 낭창하게 휘어지는 여휘검의 모습. 표면을 따라 휘감긴 묵직한 수기가 금원방주의 주먹을 지그시 누르며 옆으로 흘려냈다.


일련의 교전이 전부 찰나에 일어났다.


금원방주가 도주를 시도하던 직후부터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가장 경공이 앞서는 금원방주를 막기 위해 악예린이 투창을 날려 속도를 저하시키고, 사이 사이 백연과 팽악의 공방이 얽혀든다. 내공과 힘을 아끼지 않고 투사해대는 질주였다. 끝자락에 뒤처져 따라오는 것은 단휘였다.


창백한 얼굴의 당소하는 쫓아오지 못했다. 입은 부상이 작지 않은 탓이었다. 그랬기에 달려가며 팽악을 불러냈다.


마침 펼쳐진 검왕의 제왕검형 권역 덕분에 날뛰던 수많은 무인들 중 절반 가까운 이가 기절해 있었다. 자연스레 적들의 수가 감소한 것이다. 더불어 퇴각하는 만금장의 무인들과 함께 사라지는 이들도 많았다.


이제 남궁세가의 장원은 가장 중요한 격전지가 아니었다.


검왕이 깨어난 순간 결정된 일이었다. 그곳에서는 늦든 빠르든 검왕의 손짓 하나에 모두가 제압될 것이 자명했으므로.


그런 이유로 다섯 무인의 질주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들은 금원방주를 죽이기 어려웠고, 그것은 금원방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실수하는 순간 금원방주의 주먹에 터져나가겠지만, 그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터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 검왕이 나타나면 금원방주 또한 무사하지 못할 일이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금원방주는 그들과 한호흡 이상 손을 섞지 않고 권격을 거두며 다시 회녕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세 자루에요.]


그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백연의 시야 저편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성도의 성벽이었다. 치솟은 벽이 더없이 단단해 보였는데, 그 문이 단단히 닫혀 있었다.


안휘 회녕의 성도. 아직 한밤인 것이다. 천주산쪽으로 열리는 후문 또한 굳게 닫혀 있었는데, 질주하는 다섯 무인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아니었다.


“흐읍!”


가장 앞선 금원방주가 그대로 성벽 앞에서 도약했다. 찰나 허공에 뻗어낸 손이 펼쳐지더니 그대로 성벽의 단단한 돌을 타고 틀어박혔다. 막대한 기파가 손을 휘감는 모습. 성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돌이 아니라 모래나 흙이라도 되는듯 손가락이 틀어박히는 모습이 놀라웠다. 동시에 그가 벽면에 한번 더 진각을 찍어내렸다.


쿠웅.


둔중한 울림과 함께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스스로의 팔을 지지대 삼아 몸을 재차 위로 날려보낸 것이다. 가볍게 움직인 그의 육중한 신체가 그대로 성벽 위에 착지했다.


거의 동시에 뒤를 따라 팽악의 신형이 도약했다. 비슷한 방식이지만 도를 벽에 꽂아넣어 몸을 던져올린 팽악. 금원방주에게 무섭게 따라붙는 모습이다.


“후우.”


곁에서 백연을 힐끗 돌아본 악예린이 질주하던 자세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회색 투창이 대기를 찢으며 날아가 성벽 중간 즈음의 틈새에 꽂혔다. 직후 성벽 앞에서 가볍게 도약한 악예린이 벽을 한번 밟고는 그대로 꽂아넣은 창에 발을 디뎠다. 낭창하게 휘어지는 창을 밟은 그녀가 성벽 위로 몸을 날렸다.


“백연아!”

“사형, 운연동공과 화신풍을 극성으로. 할 수 있지?”


한발 뒤늦게 도달한 단휘를 확인한 백연도 보법을 밟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사형. 동시에 두 소년의 몸을 따라 바람이 휘감겼다.


극성으로 전개한 운연동공. 삽시간에 바람에 휩싸인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백연이 그대로 도약했다.


수직으로 뻗은 성벽이었다. 무당의 제운종(梯雲縱)같은 무공이 아니라면 그냥 보법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형태. 표면의 돌들도 전부 매끈하게 갈려있다. 애시당초 보법을 사용하는 무인들을 상정하고 만들어놓은 형태다. 직전에 올라간 이들이 하나같이 벽에 무언가를 박아넣으며 간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닥.


두 소년의 걸음이 그대로 성벽을 내달렸다. 사뿐한 바람이 그들의 몸을 타고 휘돌고 있었는데, 응당 느껴져야 할 신체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운연공을 익힌 순간부터 느낀 공능. 몸이 가벼웠다. 그 자신이 바람이라도 된 듯이.


마치 허공을 밟는 듯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벽을 오른 두 소년이 찰나에 꼭대기에 도달했다.


“저기!”


그 순간 이미 금원방주는 안쪽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그의 거대한 신형이 그대로 성벽 안쪽으로 낙하해 질주하는 중이었다. 그가 향하는 방향.


백연은 그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성도 서편의 거대한 전각. 성벽 근처에 자리한 물건이다. 그들이 올라온 곳에서도 그리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있는 건물이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방향이었다. 그 자리에 달빛이 드리운 커다란 전각이 여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회녕부의 관할하에 있는 건물. 평시 엄중히 관리되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지금 질주하는 금원방주의 앞에는 그를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백연이 올라선 성벽에 응당 있어야 할 병사들이 없는 것처럼.


누군가 의도적으로 회녕을 비운 것마냥 조용했다.


“가자.”


백연의 중얼거림과 함께 네 인영이 그대로 낙하했다. 각기 보법 기파를 몸에 휘감은채 반바퀴 구르며 전각의 지붕에 떨어져 내리는 모습. 즉시 금원방주의 뒤를 쫓아 달린다.


삽시간에 대로가 소란해졌다. 거칠게 내달리는 경공 기파가 회녕의 길거리 사이로 휘몰아쳤다. 금새 곳곳을 따라 불빛과 등롱이 켜지며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펼쳐진 기감 사이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반응.


“이 무슨......어이쿠!”


어디 한 구석에서 비척이던 거지가 질주하는 백연의 신형을 보고 놀라 뒤로 나동그라졌다. 달리면서 시야에 슬쩍 담긴 거지의 허리에는 매듭지어진 끈이 달려 있었다. 개방도였다.


이렇듯 사방에서 보는 눈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원방주는 전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한 행동이다.


“비켜라!”


외침과 함께 금원방주의 손이 휘릭 움직였다. 멋모르고 나왔다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 찰나 백연의 눈에 금원방주의 앞에 선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젠장-”


미간을 좁힌 백연이 그대로 몸에 바람을 휘감았다. 화신풍 보법. 한순간 극성으로 전개하며 걸음을 내딛었다. 일순 세상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그의 신형이 쏜살같이 가속했다. 내공이 훅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감각이 선연했는데, 신경쓸 계재가 아니었다.


쩌적.


휘몰아치는 기파를 감은 금원방주가 질주하던 속도 그대로 권격을 내뻗으려는 순간.


“어딜.”


휘릭.


스스로를 쏘아보내듯 가속한 백연이 그대로 그의 권격 앞에 몸을 비집어 넣었다. 동시에 그가 왼발을 땅에 꽂아넣었다. 진각을 밟는 순간 대지에 꽃힌 발을 타고 반탄력이 올라왔다.


‘흘리면 안되는 일격.’


등 뒤의 사람이 일반인이라 하면 흘러나오는 기운의 여파만으로도 몸에 상해가 갈지 모른다. 정면으로 받아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순 그의 사고가 가속하며 반호흡에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쳤다. 길게 늘어진 자색 안광이 번뜩이는 순간, 여휘검은 이미 끝에 불꽃을 매달고 베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왼손으로 바꿔쥔 여휘검. 우하단에서 상단 사선으로 그어낸다. 왼발 진각을 내딛은 힘을 그대로 담은채였다. 발끝에 담긴 반탄력이 그대로 상체 회전과 함께 검의 파괴력으로 치환된다. 끄트머리에 매달린 불꽃이 연달아 가속을 더했다.


풀려난 적화검류의 불꽃이 팔을 비트는 순간 희끗하게 이지러지며 사선으로 그어지고.


쩌엉-!


권격이 허공에 멈춰섰다. 불꽃을 휘감은 검신에 막힌 것이다. 얽혀든 기파가 훅 얼굴을 향해 끼쳤다. 흩어지는 불꽃이 뒤편에 떨어지지 않게 몸에 바람을 일으켜 옆으로 흘렸다.


“빨리......!”


강대한 힘이 그의 왼팔을 칼과 함께 뭉개버릴 듯이 짓눌러온다. 여휘검을 쥔 백연의 팔이 살짝 떨렸다.


일그러진 금원방주의 눈이 희번득거렸다. 그 아래 깔린 감정이 짙었다. 두려움일까. 눈에 뵈는 것이 없다.


그가 버티고 있는 찰나, 한줄기의 바람이 그의 옆을 스쳤다. 가볍게 보법을 펼친 단휘가 백연 뒤편의 사람을 끌어안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찮은 것들이!”


금원방주가 노호성을 지르며 반대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백연은 그대로 검을 비틀었다. 검파에 힘을 주어 옆으로 비껴 베어내자 자연스레 힘을 겨루던 주먹이 미끄러졌다.


잠시 힘겨루기를 했다 해서 상대와 힘이 동등하지 않다. 단순한 축기량으로 적과 겨루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감각이 더없이 탁월하다. 일신의 힘을 키워도 그보다 강한 적을 만나 힘이 부치는 상황은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


그때마다 다시 내력을 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상황에라도 상대의 힘을 받아내고 흘릴 수 있는 무공이 필요했다.


강자와의 싸움. 언제나 위를 보는 것이다. 애초부터 자신보다 강한 이와의 생사결을 상정한다.


지금의 안법 또한 그리 만들어진 것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자색 안광 너머.


금원방주가 움직이는 방향이 훤히 보인다.


찰나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데 그것을 위로 흘려야 함을 알았다. 정면은 위험했다. 그랬기에 백연은 안법이 보여준대로 움직였다. 그의 감각과 안법 구결이 만들어낸 예지에 가까운 예측.


카앙!


허리를 틀면서 비껴낸 권격이 하늘을 격하고. 그대로 권격을 회수한 금원방주의 신형이 땅을 박찼다. 여전히 한합 이상을 겨루지 않는 모습.


한순간에 백연을 지나친 그가 그대로 전각을 향해 보법을 일으키며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새 짓쳐드는 악예린과 팽악의 신형이 금원방주에게 따라붙었다. 백연도 경력의 여파를 해소하며 바람을 둘렀다.


“사형!”


힐끗 돌아보자 조심스레 사람을 내려놓는 단휘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품안에 안긴 사람은 어린 아이였다. 일고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반짝이는 눈동자 안에 백연과 단휘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들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황급히 달려나왔다.


“아이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대협들!”


아이의 아비인듯 보이는 사람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백연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기파를 일으켰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금원방주와 악예린, 팽악의 신형이 어느새 전각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호, 혹 어디서 오신 분들인지라도......!”

“곤륜.”


백연의 눈길이 아이를 스쳤다. 꼬마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감출 수 없는 선망의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 퍽 순수한 아이였다.


“곤륜파입니다.”


말과 함께 그대로 땅을 박찼다. 뒷말을 바람에 남기고 단휘와 백연의 신형이 화신풍 보법을 타고 흩어졌다.


삽시간에 밝아진 회녕의 대로변. 허나 저편에 자리한 거대한 전각은 그렇지 못했다. 이 정도 소란을 피웠으면 관아도 난리가 날 법 하건만, 전혀 사람이 움직이는 낌새가 없었다.


그야말로 쥐죽은 듯 고요한 전각.


한순간 몸을 날린 금원방주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짝이 박살나며 그 안의 넓은 장원이 드러났다.


“어디냐!”


다급한 목소리가 텅 빈 전각 사이로 메아리 치며 울리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신형이 낙하했다.


[팽악. 지금입니다!]


살짝 떨어진 뒤편에서 들리는 백연의 전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도를 움켜쥔 팽악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일련의 추격전. 무뎌진 그의 감각을 짜릿하게 일깨울만큼 강렬했다. 감히 자기 자신을 장기말처럼 다루는 저 곤륜의 꼬맹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정도라면 어울려 줄 수 있었다.


처음 소년이 말했던 세 번의 신호. 부연설명 없이도 바로 알아들었다. 팽악 자신의 기감 또한 지금 절초를 날리라 외치고 있었다. 찰나 생각하는 바가 일치한 것이다.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그린 팽악이 음성에 내공을 실어 사자후를 내뿜었다.


“천한 하오문 잡것아. 받아라!”


키잉.


그가 손아귀에 잡힌 도를 비틀었다. 동시에 그가 익힌 심법의 파괴적인 내공이 세맥을 찢어버릴 듯이 강대한 힘으로 맥동한다. 타고난 신력이 없다면 첫 구결을 익히는 순간 세맥이 터져나가는 절세의 심법.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의 내력이 손끝에 잡힌 도에 흘러들며 날을 미친듯이 진동시켰다.


막대한 내력이 도신을 바르르 떨리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마치 곧 터져나갈 것 같은 벽력탄과 같은 진동이었다.


동시에.


그의 시야가 줄어들었다. 펼쳐놓았던 기감을 회수하며 눈앞의 금원방주에게 오롯이 시선을 꽂아넣었다.


건곤연환탈백도. 팽가의 신공절학인 도법의 상징은 지천을 울리는 검가와도 같은 소리와 끊이지 않는 무수한 연격이다.


아까 전 펼친 첫 초식은 전장 전체를 향해 힘을 퍼뜨리느라 그 파괴력이 약화되었지만, 지금 상대해야할 적은 눈 앞의 잡것 단 하나.


“맹호참마(猛虎斬魔).”


나직이 뇌까리며 도를 비틀어 휘두른다. 찰나 시선에 몸을 비틀며 권격을 준비하는 금원방주가 보였다. 한순간 열린 그의 몸을 노리는 권격. 팽악 자신의 속도가 아직 부족하다. 도법을 내치는 속도보다 상대의 권격이 빠른데, 팽악은 황급히 몸을 막으려 움직이지 않았다.


쐐액!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회색 줄기가 금원방주의 주먹 앞에 틀어박히며 권격을 한차례 약화시키고. 동시에 바람을 이끌고 나타난 소년의 손끝에서 묵직하고 차가운 기운이 휘몰아치며 권격을 받아낸다. 완벽한 방어.


언제부터 저놈들과의 합격(合擊)에 익숙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입매를 비튼 팽악. 생각을 흘리며 손을 휘둘렀다. 한순간 도신에 담긴 막대한 기파가 일점을 향해 그대로 낙하하고.


콰아아앙!


지천을 울리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일도(一刀)에 담긴 수십에 달하는 연격. 한번 한번이 전부 강격이었다. 가공할 파괴력을 담은 도법에 섞여든 음률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며 머리를 뒤흔든다.


직후, 허공에 날아오르는 붉고 푸른 잔향이 있었다. 뜯겨나간 장포의 조각과 핏물이 비산했다.


“......네놈들.”


백연이 손을 저어 먼지를 흩어냈다. 그 너머 전각 장원의 한 가운데. 이글거리는 눈동자의 금원방주가 서 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선 세 무인이 제각기 내공 기파를 가다듬으며 금원방주의 목을 노린다.


창과 도, 그리고 검.


그 사이에 선 금원방주의 어깨는 살이 한움큼 패여나가 있었다. 복부와 가슴께를 따라 길쭉하게 이어진 자상이 가득했다.


“여기서 죽이고 가야겠구나.”


으득.


금원방주가 이를 갈았다. 삽시간에 기파가 묵직하게 가라앉으며 대기를 짓눌렀다.


분노가 서린 눈을 받아내며 백연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형.’


그가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부탁해.’



※※※



타닥.


단휘의 걸음이 전각의 안을 내달렸다. 바깥 장원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폭음이 컸다. 대기를 짓누르는 기파의 충돌. 그 경력 파편이 휘몰아치며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칠룡. 후기지수라 하지만 이미 완성된 무인들이다. 자신의 사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중 셋이 힘을 합쳐 하나에 대항하고 있다. 절세 무인들의 힘겨루기인 것이다.


한순간 자신이 저들 사이에서 손을 섞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


그러나 그 기분과는 별개로 지금은 다른 해야할 일이 있었다.


전각에 도착하기 직전. 백연이 부탁한 일이었다.


-장부. 알지?


사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지금 이리 전각 안을 내달리고 있었다. 살아생전 관아의 건물을 이리 흙발로 뒤지고 다니게 될 줄은 몰랐거늘.


‘하지만 여기......’


그럼에도 이상하지 않았다. 건물 안의 구조가 왠지 모르게 익숙한 탓이었다. 이리저리 준비된 기관장치와 꼬아놓은 길들. 부러 벽의 위치를 바꾸고 방을 섞어놓은 흔적이 있었다. 극히 미미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이가 아니라면 절대 알아보지 못할 모습이다.


그리고, 단휘 자신은 이것들을 본 적이 있었다.


만금장 안휘지부라 하더니. 눈앞에 증거가 역력했다. 이런 구조는 만금장 외의 다른 곳에서는 본적이 없으니.


‘어째서 이렇지?’


머릿속을 맴도는 물음이 강렬했다. 그가 알기로 만금장은 관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니, 무림의 집단중에 관(官)과 가장 연이 깊은 집단을 꼽으라 하면 단연코 세가들일 터.


그들을 제외하면 구파에서는 소림이나 황실과 연락을 취한다. 민생 안정을 도모하는 황실은 정파 무림의 거두들을 움직임으로써 강호를 다스린다.


황실에서는 역모가 아닌 이상에야 군(軍)을 움직이지 않기에 군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지만, 당연히 사마외도의 무뢰배들은 척결 대상이다.


만금장도 그중 하나일 터. 하오문과 개방을 압도하는 정보력을 지닌 황실이다. 만금장이 위장을 하고 있다 한들 이리 파고들 수는 없는 것이다.


‘지부대인의 짓인가.’


가능성을 머리로 가늠하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만금장의 거래장부. 본디 제일 중요한 장부들은 각 지부의 지부장이 몸에 지니고 다니며 엄중하게 관리된다. 그러나 아까 그 만금장 무인의 말을 보아 금원방 장부는 그 정도로 관리되고는 있지 않을 터.


그렇다면 그것이 있을 위치는 예상이 가능했다.


단휘가 침착하게 걸음을 움직였다. 벽을 살짝 눌러 기관장치를 회피하고, 만금장 사람들이 평시 돌아다녔을 길로 걷는다. 익숙한 손놀림. 그는 몸에 새겨진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바깥의 굉음을 무시하며 돌아다니기를 한참. 단 한번도 선택한 길을 되돌아 나가는 일 없이 걷던 단휘의 눈에, 한 방문이 들어왔다.


“......여긴가?”


주변을 슬쩍 둘러본 단휘가 검을 뽑아들었다. 심호흡을 하곤 허공에 검격을 내치는 순간.


툭.


검신에 무언가 닿아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단휘는 그대로 몸을 숙였다.


피잇!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 사방에서 다섯 군데 방향을 점하고 날아온 쇠뇌의 화살이 아슬하게 단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맞네.”


입꼬리를 비튼 단휘가 손을 뻗었다. 장치된 다른 기관장치들. 대충 전부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하며 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후우.”


마침내 문 앞에 선 그가 가볍게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다른곳은 몰라도 이곳에는 기관장치가 없다. 한때 다른 지부에서 이런 방을 질리도록 왔다갔다 한 그였다. 당시에는 키가 작아 화살을 피하려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었건만.


끼익.


문이 열리며 방안이 드러났다. 은은하게 비춰지는 불빛. 벽면에 박힌 야명주(夜明珠)을 보고 단휘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데 돈을 바르는 것은 여전했다.


“장부가......여기 있나.”


책장을 따라 꽂힌 수많은 문서. 하나같이 두툼하게 쌓인 것이 제각기 다른 거래처와의 거래 내용이 적혀있는 물건인 듯 했다.


단휘의 눈썰미가 빠르게 그 주변을 훑었다. 만금장과 금원방. 최근까지 거래를 했을 것이다. 장부를 고쳐쓸 일도 많았을 터인데, 그리하려면 손에 쉽게 닿는 곳에 놓여있고, 새겨진 글씨가 새것이어야......


“이거군.”


한쪽으로 움직인 단휘의 시선이 조건에 맞는 장부를 집어들었다. 가볍게 펼치자 그 위를 따라 새겨진 이상한 문자가 보였다. 평시 사용되는 글자와는 전혀 다른 만금장의 암호.


미간을 좁히며 해석한 글자의 첫 내용이 금원방이라는 것을 확인한 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볼것이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전체를 해석하는 것은 불가했으니. 나머지는 완전히 시간을 확보하고 해석하면 될 일.


그렇게 단휘가 확보한 장부를 품에 안고 나가려던 때였다.


“음?”


문득 스친 그의 시선이 곁에 꽃혀있는 다른 장부를 보고 흔들렸다.


금원방의 장부가 꽂혀있던 위편. 먼지가 쌓인 낡은 책장 끝에 자리한 한권의 장부.


눈에 익숙했다. 독특하게 매듭지어진 끈의 끝자락. 기억에 선연하게 새겨진 모습이었다.


단휘의 아버지는 장부를 관리할때 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묶었다. 지금 눈에 들어오는 매듭은 분명 그것이었다. 헷갈릴 리가 없는 형태.


“이게 왜......”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단휘가 장부를 잡아당겼다. 스르륵 뽑혀나온 두터운 책. 그 무게가 엄청났다. 안에 쇳덩이라도 넣었는지. 한순간 팔이 훅 아래로 쏠렸다. 간신히 잡아당겨 책상에 올렸다.


표지에 새겨진 글자가 더없이 단순했기에 해석하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갈한 필체로 새겨진 글자의 뜻.


청해일지(青海日誌).


단휘가 홀린듯이 장부의 표지를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투두둑.


끈적한 무언가가 단휘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들어올렸다. 한순간 단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장부가 꽂혀있는 방 안. 천장을 따라 죽죽 그어진 붉은 선이 선연했다. 그떄까지 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동시에, 허공에 이어진 끈을 따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들이 있었다. 전부 시체였다. 짙은 혈향이 느릿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장 사방을 따라 핏물로 새겨진 복잡한 무언가.


직시하는 순간 알아차렸다.


함정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9 영물(5) +7 23.11.17 4,306 96 19쪽
118 영물(4) +6 23.11.15 4,168 99 15쪽
117 영물(3) +7 23.11.13 4,201 97 15쪽
116 영물(2) +7 23.11.10 4,364 96 18쪽
115 영물 +7 23.11.08 4,547 94 15쪽
114 네가 돌아올 곳(11) +5 23.11.06 4,377 99 17쪽
113 네가 돌아올 곳(10) +5 23.11.03 4,524 101 19쪽
112 네가 돌아올 곳(9) +7 23.11.01 4,473 92 20쪽
111 네가 돌아올 곳(8) +6 23.10.30 4,561 91 17쪽
110 네가 돌아올 곳(7) +7 23.10.27 4,683 91 20쪽
109 네가 돌아올 곳(6) +6 23.10.25 4,803 90 17쪽
108 네가 돌아올 곳(5) +7 23.10.23 4,873 99 16쪽
107 네가 돌아올 곳(4) +7 23.10.20 4,965 97 19쪽
106 네가 돌아올 곳(3) +9 23.10.18 4,931 100 20쪽
105 네가 돌아올 곳(2) +9 23.10.16 5,028 102 20쪽
104 네가 돌아올 곳 +6 23.10.13 5,193 105 16쪽
103 태청신공(太淸神功)(4) +8 23.10.11 5,258 102 18쪽
102 태청신공(太淸神功)(3) +8 23.10.09 5,052 111 16쪽
101 태청신공(太淸神功)(2) +8 23.10.06 5,129 116 16쪽
100 태청신공(太淸神功) +12 23.10.04 5,534 117 25쪽
99 네가 만든 마을(9) +7 23.10.02 5,205 107 24쪽
98 네가 만든 마을(8) +7 23.09.29 5,147 114 21쪽
97 네가 만든 마을(7) +7 23.09.27 5,134 108 20쪽
96 네가 만든 마을(6) +10 23.09.25 5,203 114 22쪽
95 네가 만든 마을(5) +8 23.09.22 5,292 107 19쪽
94 네가 만든 마을(4) +8 23.09.20 5,283 107 20쪽
93 네가 만든 마을(3) +7 23.09.18 5,520 105 24쪽
92 네가 만든 마을(2) +5 23.09.15 5,638 113 24쪽
91 네가 만든 마을 +5 23.09.13 5,892 106 18쪽
90 신강(4) +6 23.09.11 6,083 114 2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