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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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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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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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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용봉지회(6)

DUMMY

※※※



“백연은?”


연무장이었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의 시각. 대부분이 당일 대회를 마무리하고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던 단휘가 곁에 다가온 당소하의 기척을 느끼고 물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언제까지?”

“모른다.”


휘익.


바람 소리를 내며 베어지던 검격이 우뚝 멈춰섰다. 단휘가 매끄러운 손놀림으로 납검하며 당소하를 돌아보았다.


“또 위험한 짓 하러 갔나보네.”

“흐음.”

“하아.”


단휘가 한숨을 내쉬며 흩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모아 묶었다.


땀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턱선이 유려했다. 처음 봤을때부터 쾌활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녹림 채주와 검을 나눌때도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던 놈이 저리 담담한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당소하가 생각했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너네 둘이 며칠동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건 알았는데. 거 사형한테 말도 없이 휙휙 움직이네. 서운하게.”

“네 사제는 말을 안듣는 편 아닌가.”

“뭐, 그렇지. 제멋대로고. 하고 싶은대로 하고.”


머리칼을 푸른 비단끈으로 질끈 동여맨 단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얼굴에 미미하게 웃음기가 서렸다.


“처음부터 그랬어. 처음 본 사형들을 뒤지게 두들겨 패고......아참. 이건 비밀.”

“......뭐?”


당소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평소 하는 것을 보면 단휘를 꽤 챙기는 듯 싶던데.


“그때는 그럴만 했지. 그리고는 또 나가서 이것저것 하고 몇번 싸우고 오면, 뚝딱. 새로운 일이 생기고. 덕분에 장문인이 걱정에 편히 잘 날이 없으시다니까.”

“암화의 실력은 뛰어나지 않나? 어디가서 객사할 놈은 아니다.”

“그래서 더 문제지.”


단휘가 고개를 저었다.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움직임이 바람결 같았다. 온몸에 실린 기운이 백연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같은 심법으로 짜여져 있는 몸인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탓에 남들이 걱정한다는 생각을 잘 안하니까.”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하더군. 본인의 목숨도 계산하에 포함시키는 녀석이야. 냉정하다고 해야 할까. 무인에게는 좋은 자질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속이 타지.”


그렇게 말하는 단휘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있었다. 당소하는 그것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문파의 같은 배분들. 때로는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라고도 들었다. 무공으로 시작해, 목숨을 맡기며 이어지는 관계인 것이다.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할 사람인 백연을 두고 걱정하는 모습이 그와 같았다. 적어도 그의 시선에는 그래 보였다.


당소하는 저도 모르게 목덜미를 매만졌다. 암습을 당했을때 다친 위치였다.


그가 남궁유진에게 했던 말. 출가해 문파에 입문했어야 했다 했던가.


‘남말 하고 있었군.’


저도 모르게 미미한 부러움의 감정을 느끼며 당소하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도 혼자 움직인 걸 보니 뭔가 위험한 일인가본데, 저번에 그러지 말라고 사숙한테 혼났으면서 또 그러네.”

“아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거다.”

“만금장에 관련된 일인거야?”


당소하가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를 바라보는 단휘의 표정이 침착했다.


“알고 있었군.”

“애초에 처음부터 우리가 온 이유도 그쪽에 있었으니까.”

“처음부터라?”

“만금장이 용봉지회의 개최에 관련이 있다는 정보. 그걸 파헤치려고 온거야. 용봉지회의 참여는 둘째치고. 나도 그 이유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당소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안 말해줄 이유도 없군. 백연의 추측대로라면 남궁세가와 만금장의 연결이 있다. 그것을 명확하게 하러 녀석이 지금 움직였지. 잡아야 할 사람을 아까 찾아서 추적중이다. 추적에 방해된다며 나까지 떼어놓고 가던데.”

“그래?”

“그렇다. 네가 못 미더워서 혼자 간건 아닐거다. 그놈 성격에 너무 위험하다 싶었으면 애초에 너를 이곳에 데려오질 않았겠지.”


맞는 말이었다. 저번 청율의 이야기 이후부터 백연이 그 말을 의식하며 조금씩 행동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전 같았으면 이번 토벌도 본인이 단휘를 따라가거나 했겠지. 아무리 만금장을 추적하고 있다 한들 그랬다.


“곧 돌아올거다.”

“그래야지. 내일이 대회인데. 암화라는 별호까지 달고 나보다 성적이 안 좋으면 되겠어?”


단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당소하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녹빛 장포가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그러다 문득 그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다시 단휘를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궁금한 것이 있는데, 네가 방금 한 말. 너는 만금장과 무슨 관계가 있나?”

“있지.”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나?”


단휘가 검파를 쥐고는 여상한 말투로 답했다.


“과거에 내 부친께서 만금장에서 일하셨지. 그리고 죽임당했어. 그 이유나 흉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랬나.”

“이제 와서는 꽤 옛날 일이지. 그래서 묻어놓고 살고 있었는데.”


중얼거린 단휘가 차분한 시선으로 당소하를 응시했다.


“백연이 이번에 만금장을 언급하더라고. 내가 스쳐가듯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봐.”

“놈답군.”

“그렇게 되니 적어도 검을 겨눌 대상은 알고 싶어져서 말이야.”


청년이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충분한 설명이었다.


등 뒤 서편으로 붉게 물든 하늘이 서서히 암청색으로 덧칠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당소하가 머리를 쓸었다.


“술 한잔 하겠나?”

“그래도 되는거야? 너도 백연이랑 같이 내일이 대회잖아.”

“사형이나 사제나 칠룡의 일좌를 뭘로 보는지 모르겠군. 잔말 말고 한잔 하러 가지.”


말을 뱉은 당소하가 몸을 휙 돌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펄럭이는 녹빛 장포를 보며 픽 웃은 단휘가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



시야 가장자리를 타고 이지러지는 노을과 암청색 하늘의 연속이 선명했다. 동시에 눈앞을 따라 펑펑 터져나가는 불꽃의 연격이 사방을 짙게 물들였다. 흡사 노을의 불덩이가 지상을 따라 덧칠되고 있는 듯 했다.


붓자락은 백연의 검이었다.


“적화검류. 낙화(落火).”


허공을 거칠게 그어내던 횡격이 불꽃의 잔향을 남기며 뚝 꺾여 아래로 떨어졌다. 급격하게 뒤틀리는 공격의 변초에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뒤틀었다.


카가가각!


흑색 기운으로 점철된 검신이 간신히 불꽃을 막아서며 멈춰세웠다. 삽시간에 붉은 불꽃 사이로 뱀의 혓바닥 처럼 뻗어나온 검은 기운이 끈적하게 늘어졌다.


찰나의 순간, 검은 기운이 불꽃을 역으로 집어삼키며 검게 물들었다. 흑색으로 삼켜지는 불꽃의 모습이 섬뜩했다. 하지만 백연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진각을 내리찍었다.


콰앙!


제자리에서 내딛은 발끝을 따라 원형으로 불꽃의 파장이 터져나왔다. 벽력탄을 터트린 듯이 굉음이 울리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불꽃을 피해 사내가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여휘검에 달라붙는 검은 불꽃을 손목을 까딱여 털어낸 백연이 재차 보법을 밟으며 사내에게 따라붙었다.


그 모습에 사내가 움직이며 광소를 터트렸다.


“하, 하핫! 괴물, 괴물이야. 금안나찰을 죽였다는게 허언이 아니었어. 역시 너......!”

“아까부터 주절주절 시끄럽게.”


피잇-!


그의 발끝을 따라 이어진 불꽃이 재차 터져나왔다. 첫 걸음을 밟는 순간 반대편 걸음에 진기를 중첩해 쌓아둔 것이다. 연속으로 격발시킨 화기가 추진력이 되어 그의 신형을 앞으로 떠밀었다. 한순간에 사내와의 거리를 좁힌 백연이 검을 휘둘렀다.


카앙!


“크윽!”


이를 악물고 그의 검격을 막아낸 사내가 옆으로 튕겨나가듯 굴렀다. 나려타곤의 수법. 무공에 체면을 신경쓰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백연에게는 익숙했다.


때문에, 그의 연격은 쉼없이 따라붙었다.


캉! 카각!


간신히 백연의 공격을 막아내던 사내가 일순 가속했다. 쾌속하게 그의 옆을 치고 들어오는 검은 기운이 서린 검신. 삼연속으로 방어초를 펼쳐내다가 갑자기 공세로 전환된 일격이었다. 백연의 공격이 막 사내의 남은 한쪽 어깻죽지를 노리고 들어가던 참이었다.


‘젠장.’


백연은 사내를 왠만하면 살려서 잡아야 했다. 때문에 자신의 몸을 내주고 목숨을 취하는 것이 불가했다.


어쩔 수 없이 가볍게 뒤편으로 보법을 밟았다. 그의 신형이 뒤로 분절하듯 이동했다. 보법 화신풍의 성취가 이미 상승의 영역에 접어든 것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내의 검이 날카로웠다. 하지만 검이 베어낸 것은 허공뿐이었다.


직후 그가 한걸음 물러선 백연을 보며 웃었다.


“과연. 청해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 했을때, 먼저 의심했어야 했는데.”


재차 검을 내치려던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사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


“여전히, 여전히 강해. 하지만 전혀 다른데. 왜지? 왜? 붉은 불꽃이 아니었을텐데?”


툭툭 튀어나오는 말이 정신없었다. 죽립 아래로 드러난 눈이 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마기를 한번에 다량 섭취해 머리가 정상이 아닌 상태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말속에 섞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백연이 무심코 반문했다.


“너, 나를 아나?”

“알지, 알지. 알다마다. 근데 너.”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움직이며 검을 들어올리던 사내가 백연을 똑바로 응시했다. 한순간 느껴지는 안광이 섬뜩했다.


“죽었어야 했을텐데?”

“......무슨 소리지?”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이 사내,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다. 다른 누군가와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사내가 본 것은 아마 그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 이 몸의 주인이었던 꼬맹이일 터.


‘그러고 보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군.’


처음 이 몸에서 깨어났을때 들었던 이야기. 몰살당했다는 그의 가문.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의 말을 마주하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되살아나는 생각이었다.


헌데 지금 이 사내와 그것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이지.


“불꽃, 몰살, 자안, 놈들이 맡겼는데. 하지만 괴물이......”

“제정신이 아니네. 대답은 좀 이따 듣는걸로 하자고.”


중얼거린 백연이 호흡을 가라앉혔다.


사내에게 질문의 대답을 듣는 것은 뒤로 미뤄도 좋을 일이었다. 당소하가 건네준 독약도 있으니. 우선은 눈앞의 사내를 살려서 붙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약해.’


마기를 섭취해 본신 무력을 몇배는 강화시킨 상태임에도 그리 강하지 못했다. 본래부터 전투를 위해 무공을 깊게 익힌 자가 아닌 듯 했다. 만금장에서 왜 이런 사람을 보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아니지. 외려 혈령쌍귀만큼 강력한 일원이 많은 것이 말이 안된다.’


그들이 지나칠 정도로 강했던 것이지, 평균은 눈앞의 이 사내 정도면 훌륭한 것이라 볼 수 도 있었다. 더해 오히려 너무 강하면 검왕의 눈에 띌 수도 있는 노릇이니.


지금 백연에게는 좋은 상황이었다. 마기는 섭취한 양에 따라 사용자의 무력을 일순 극대화 시켜준다. 상대가 구파의 삼대제자 정도의 무력만 되었어도 상당히 고전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사내가 한번에 집어삼킨 마기의 양이 무식했다.


겉으로 뚝뚝 새어나오는 기운. 체내에서 전부 감당하지 못해 사내의 피부를 타고 검은 기운이 새어나올 정도였다.


‘빨리 끝낸다.’


가라앉는 호흡과 함께 백연의 혈맥을 타고 휘몰아치던 화염이 잦아들었다. 동시에 그의 의념을 따라 차가운 기운이 느릿하게 풀려나왔다.


“입만 남아있으면.”


중얼거리며 걸음을 내딛었다. 가벼운 발끝에 묵직한 수기가 내담겼다.


쿠웅.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 끝에서부터 원형으로 기파가 퍼져나왔다. 사방을 따라 느릿하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수기가 주변을 내리눌렀다. 한순간에 사방 대기의 기운이 그의 발끝에 모여들었다. 대해의 무게 앞에 제압당한 것이다.


“말하는데에 지장은 없겠지.”


투웅.


가볍게 발을 굴렀다. 동시에 성큼 뻗어나간 그의 신형을 타고 검이 휘어져 들어갔다. 묵직하게 대기를 가르는 수기의 검흔이 사방을 채우며 상대의 기운을 봉쇄했다. 기파를 일으키며 보법으로 도망가려던 사내의 얼굴이 일순 당황으로 물들었다.


“제왕......!”


본 적 없는 무공의 공능에 일순 제왕검형이라 착각한 듯 내뱉는 말에 당황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백연은 무시하며 검을 내쳤다. 사선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검이 사내의 방어를 뚫어내며 그 허벅다리를 단번에 베어냈다.


“끄아아!”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가 회전하며 검을 마구잡이로 내쳤다. 위협적이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스치기라도 하면 몸에서 마기를 몰아내기 위해 고생을 해야 했다.


백연은 사내의 검을 일일이 쳐내며 달라붙었다.


“다리도 한쪽 정도는 치워둬야겠군. 경공은 곤란해서.”


콰드득!


내공이 실린 화신풍 보법. 묵직한 수기로 뒤덮인 각법이 사내의 종아리를 짓이겼다. 동시에 안으로 베어오는 상대방의 검격. 여휘검의 자루에 내공을 담아 사내의 손목을 찍어 쳐내었다.


일련의 동작이 정형화 되지 않은 난투에 가까웠는데, 그조차도 초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유려한 몸놀림을 따라 주욱 늘어지는 암녹색 장포가 길었다.


지금 누군가 보면 당가 자제라고 착각하려나.


그런 생각을 흘리며 백연이 왼손을 내뻗었다. 손바닥에 휘감긴 기파가 강렬한 힘을 담고 그대로 사내의 하복부를 강타했다. 묵직한 장법이었다.


퍼억.


울리는 소리가 둔탁했는데,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사내의 얼굴을 무시하며 백연은 손을 접어 다시 한번 내쳤다.


찰나에 손을 따라 휘감기는 기파가 강렬했다. 나선으로 휘어들어가는 기운이 거칠게 회전하며 백연의 손에 모여들었다.


“자라.”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백연이 손을 내쳤다. 낙안권의 권격 경파가 짧은 거리를 무시무시한 힘을 싣고 짓쳐 들어갔다.


콰득!


섬뜩한 소리가 울리고, 이윽고 사내의 신형이 축 늘어졌다.


손을 거둔 백연이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머릿속이 조금씩 복잡해지고 있었다.


‘물어야 할게 많을 것 같은데.’


완전히 암청색으로 물든 하늘을 흘깃 쳐다본 백연이 사내를 들쳐업었다.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진득했지만 참을만 했다. 이 정도는 약과였다. 우선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는게 옳을 듯 싶었다.



※※※



“끄으으......”


낮게 울리는 신음 소리에 백연이 사내를 쳐다보았다. 근처에 자리한 숲속이었다. 주변을 따라 큼직하게 늘어선 나무가 가득했다.


그들을 타고 내리쬐는 달빛이 선명했다. 나무 사이로 흩어지는 빛으로도 앞이 충분히 보일 정도였다.


“일어났나 보네.”

“......여긴.”


사내가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반쯤 취한듯한 눈이 백연을 인지하고 흔들렸다. 허나 격렬한 반응은 없었다. 사내의 마기가 잦아들 때쯤 이미 독을 먹여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쯤 이성이 절반 정도밖에 없는 상태이겠지.


그 모습을 보며 백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부터 묻고 싶은게 몇가지 있어.”

“흐하......그래봤자다.”

“너한테 대답을 기대하는 건 아닌데.”


백연이 무심하게 말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달빛 아래에 번뜩이는 은빛 검광이 또렷했다.


“질문을 똑바로 들어야 할테니까 정신을 좀 차렸으면 좋겠네. ”


휘익.


“흐, 흐아악!”


사내가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허벅다리를 파고든 검신이 옆으로 뒤틀리며 뼈를 긁어냈다. 다리를 꿰뚫고 검을 박아넣은 백연이 사내를 응시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정신이 좀 들었어?”


사내가 나무에 기댄채로 백연을 노려보았다. 벗겨진 죽립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너무 존재감이 옅어 인식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본래 살수 출신이거나 그런 훈련을 받은 듯 했다.


백연이 무심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무엇을 물을지 순서대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지금의 여러가지 상황.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첫번째로 물어야 할 것. 한순간의 지체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선 하나 확인하지. 남궁산은 마교에 투신한 변절자가 맞나.”


간단한 물음이었다. 상대방이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수준의 물음. 이렇게 했을때 상대방의 호흡과 기도를 통해 그것으로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다.


보통 실력있는 살수나 무인이라면 그것마저 통제해 거짓으로 답할 수 있겠지만 사내는 지금 독을 먹은 상태. 반응이 정직했다.


“그건......”

“아니네.”


사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백연이 판별을 마쳤다.


‘다행인데.’


아마 아닐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짐 하나를 덜어낸 기분이었다. 당장 이곳에서 변절한 검왕을 상대할 일은 없게 되었으니.


잠시 사내를 살핀 백연이 다시 입을 천천히 열었다.


“두번째로.”


그의 시선이 사내의 눈을 응시했다.


“너희 만금장이 안휘에서 노리는 목표는 검왕 남궁산의 목숨이다.”

“하핫.”


사내의 웃음소리. 동시에 백연의 표정이 굳었다. 막연하게 의심하고 있던 가능성이었다. 이들이 노리는게 검왕이 아니라 하면 설마.


“......물음을 수정하지. 너희가 노리는 목표에 검왕도 포함이 되어있다.”

“나한테 뭔 짓을 한거지. 재미있는데.”

“이건 맞네.”


입매를 비튼 백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사내의 다리에 꽂힌 여휘검을 지긋이 내리누르면서였다. 불안한 감각이 계속 경고를 알리더니, 단순히 검왕의 목숨이 위험한 것 보다 더한 상황이 찾아올 줄이야.


백연이 천천히 의심하고 있던 한가지 가능성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혹 그렇다면 너희의 목표는 용봉지회에 참여한 무인들, 그들 전부인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백연은 입술을 짓씹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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