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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의 용사는 바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도양이
작품등록일 :
2021.01.09 21:33
최근연재일 :
2021.03.0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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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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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반지

DUMMY

세로드가 한참 뒤에 깰 거로 생각했는데, 예고도 없이 눈 뜨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진짜 깬 거예요···?"

화장품을 계속 덧칠하면서 물어봤는데, 세로드가 내 손을 붙잡았다.

"화장품을 이렇게 무식하게 바르면 어떡해요?"

세로드는 눈꺼풀을 잠깐 만져보고는, 엄청 묻어 나오니까 아랫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눈꺼풀이 무거울 정도로 발랐잖아요."

놀란 마음에 기푸 할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어떻게 된 일이에요? 깨려면 멀었다고 하셨잖아요."

속닥속닥 물어보니까 할머니도 속닥속닥 대답해 줬다.

"사랑이 세로드를 깨운 거야. 결국 사귀게 됐구먼. 축하하네."

"저희는 그런 관계가-"

세로드 못 듣게 속닥속닥 얘기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연인이 아니라 단순한 친구예요. 사랑은 무슨. 맞죠?"

차가운 목소리로 세로드가 딱 잘라 말했다.

깨자마자 약간 화난 것 같다.

아직 정신이 온전치 않을 테니, 조금씩 화를 누그러뜨려 줘야 한다.

이럴 때는 천천히 접근해나가는 게 좋다.

동면에서 깨어난 사람에게 말하듯이, 놀라지 않게끔 차근차근.

의식을 잃고 4일이나 잠들어 있었으니, 시간과 공간이 헷갈릴 것이다.

"세로드 씨. 세로드 씨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알아요?"

"어제가 3일째였으니까, 오늘은 4일이겠죠."

당연하게 말하는 세로드를 보니까 신기했다.

"어? 자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요?"

"어제 아침부터··· 당연히 저는 다 알아요."

약간 어눌한 것 같았지만, 세로드가 깨어났다는 게 무척 기뻤다.

"세로드 씨. 보고 싶었어요. 안 깨어나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세로드 씨 걱정에 모두 잠을 못 잤습니다."

동료애가 넘치는 현장이었다.

"흥. 저도 밤에 시끄러워서 잠 못··· 잘 수도 있었겠죠."

세로드는 언어가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듯했다.

화 풀어 주려고 준비한 선물.

"세로드 씨 주려고 준비한 선물이에요. 여기요. 눈꺼풀에 계속 바르면 멍이 가려져요."

방금까지 바르던 새 화장품을 건네줬다.

내용물을 거의 다 쓰는 바람에, 용기 내부가 거의 비어 있었다.

세로드가 기뻐할 줄 알았지만, 그녀는 화장품을 조용히 응시했다.

'인기 화장품이라고 들었는데, 세로드 취향이 아닌가?'

"흠······. 제인 씨한테 갔다 온 건가요?"

"네. 선물 준다니까 이거로 골라 줬어요."

"참 신기하네요. 제인 씨가 예쁘고 연약하니까 멍 가리는 화장품을 모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세로드가 눈을 큼직하게 뜨고서 말했다.

"하하. 아니에요. 제인 씨 눈꺼풀에 바르는 화장품으로 구해 온 거예요. 똑같은 거로요. 멍 가린다는 얘기는 안 했어요."

세로드의 눈초리가 칼처럼 매서워졌다.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될 거라고 기대를 약간 했었지만, 이 분위기는 조금 위험한 느낌이었다.

'겨우 화장품 하나로는 무리였나.'

이트멀드에게 빨리 반지 하나를 꺼내 달라고 했다.

호텔에서 주운 2개의 반지는 하나같이 영롱한 빛을 뿜었다.

"제가 준비한 예쁜 반지입니다. 세로드 씨 깨면 주려고 제가 쭉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지로 준비했는데, 샤인 씨는 화장품이면 충분할 거라고 하더군요."

"!"

'아. 또 뒤통수야!'

이트멀드가 선수를 쳤다.

이글이글 분노의 눈빛을 쐈지만, 이트멀드는 태연하게 세로드에게 빛나는 반지를 건넸다.

반지를 건네받은 세로드는 좋아할 줄 알았지만, 더 차가운 얼음공주가 되었다.

깨어난 이후로, 세로드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느낌이다.

4일 동안 그녀는 어떤 사투를 벌였던 걸까.

죽음 앞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절망과 싸운 것인가.

"이트멀드 씨가 반지를 보관해 왔단 말이죠. 저 주려고요. 팔려고 2개 주워 온 거는 아니고요?"

눈을 째리며 세로드가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이트멀드가 입을 벌린 채로 얼어붙었다.

"그···걸 어떻게······?"

"흥. 두 사람 거짓말만 늘었네요."

세로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건, 눈치가 더욱 빨라졌다.

주워 온 것도 알아내고, 2개라는 것까지 알아내다니.

'세로드는··· 말투만 듣고도 진실을 꿰뚫는 능력이 생긴 건가.'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꼬르르르륵-]


세로드의 배에서 허기진 소리가 들렸다.

"흠. 누군가 배고픈 모양이니 뭐라도 먹으러 가야겠네요."

"방금 소리는 세로드 씨 배에서-"

"시끄러워요."

세로드가 보라색 쌍꺼풀로 도끼눈을 뜨니까 무서워서 숨이 멎을 뻔했다.

후다닥 세로드 눈빛을 피했다.


일행 중에 환자가 있다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환자의 안전이 가장 우선이다.

의술을 익히며 살아온 기푸 할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세로드 씨는 이제 안전한 거예요?"

돌아가는 상황을 잠잠히 지켜보던 할머니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해. 적어도 내가 1개월은 더 지켜봐야 한다네."

"바깥에는 나갔다 와도 돼요?"

"깨어나서 다행이네만··· 깨어난 것과 움직이는 것은 다른 문제일세."

할머니는 현재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팔뼈가 박살 난 상태야. 붙으려면 멀었지. 외출은 위험하니, 방에서 먹도록 해. 샤인. 자네가 우리 몫까지 다 사 오게."

침대에 오래 누워서 신체가 굳었는지, 세로드가 양팔을 빙빙 돌렸다.

"할머니. 지금 세로드 씨, 팔 붙은 거 아니에요?"

"···"

침대에서 나온 세로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가 무릎도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흐아암. 누워 있는 거 진짜 힘들었어."

하품하면서 세로드는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기푸 할머니가 오래 고생해줬지만, 이제는 여관과 포션의 회복력에 기대면 될 때였다.

고마웠던 의사와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할머니.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제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이대로 환자를 저버릴 수는 없지."

기푸 할머니가 못내 아쉬운지 버티고 섰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 드릴게요.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1개월만 더 보살펴 주겠네. 대신, 딱 1개월이야."

할머니가 조금만 더 함께 지내겠다고 고집 피웠지만, 억지로 돌려보냈다.


***


"세로드 씨. 어디 가고 싶어요?"

"저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두 사람 좋아하는 곳으로 가요."

"아무래도 기름기 없는 음식이 좋겠죠···"

몸이 덜 회복됐는데, 고기를 먹으면 위장에서 거부할 수도 있다.

과한 영양은 해로운 법이니까.

야채와 과일, 가벼운 빵부터 먹이면서, 천천히 원래 식단을 되찾아야 한다.


세로드 방에서는 고소한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할머니가 고기를 좋아해서, 4일째 고기만 먹다 보니까, 이제는 고기가 지겨웠다.

"여관 식당에 야채 샐러드가 새로 출시됐어요. 그거 먹으러 가요."

"응. 알겠어요. 잠깐 정리만 하고 나갈 테니까, 샤인 씨랑 이트멀드 씨는 방에 가 있어요."

"혼자 할 수 있겠어요?"

세로드가 고개를 끄덕여서, 우리는 3층의 전용 방으로 돌아왔다.


"세로드 씨가 깨서 다행이에요."

내 말에 이트멀드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겨낼 줄 알았습니다. 역시 세로드 씨입니다."


***


1시간 후.


세로드가 조금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요?"

"혹시··· 쓰러진 거는 아니겠죠. 괜한 걱정일 겁니다."

포션을 끊임없이 마시고, 여관이 주는 회복 효과까지 받았으니까 별일 없겠지.

그래도 세로드가 무사한지 확인해야 했다.

아직 멍이 안 빠졌으니까, 우리가 모르는 부상이 또 숨어 있을 수 있다.


쿵쿵쿵- 소리를 내며, 우리 둘은 2층으로 내려갔다.


[똑똑똑-!]

"세로드 씨! 문 좀 열어 주세요."

노크하는데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열렸다.

산뜻한 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줬다.

예쁜 얼굴이 빼꼼 나왔다.

"헉!"

"왜요?"

볼 때마다 아름다운 세로드였지만,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은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아닙니다. 딴생각 좀 하느라고요."

이국적인 외모의 세로드는, 짙은 눈꺼풀에 보라색 빛을 띠면서, 더욱 몽환적인 느낌을 풍겼다.

"샤인 씨가 사 온 화장품. 하나도 못 가리잖아요. 자. 봐요."

눈이 불쑥 다가오자, 매혹적인 눈빛에 풍덩 빠질 뻔했다.

"이 멍. 어떻게 할 거예요?"

손으로 가리키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 어울리는군요."

"안 그래도 신경 쓰이니까, 엉뚱한 말 좀 그만해요."

세로드는 멍이 못내 거슬리는 눈치였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몇 번이고 곱씹어 봐도 멍이 신경 쓰이는지, 갑자기 주먹을 쥐더니 내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았다.

꿍-!

"아야! 왜 때려요?"

"샤인 씨 때문에 생겼잖아요!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정강이를 힘껏 발로 찼다.

아. 또 정강이인가.

누구도 단련할 수 없는 취약한 부위, 정강이.

"아야!"

발을 콩콩 뛰면서 통증을 이겨내는데, 세로드가 주먹을 힘껏 쥔 게 보였다.

'설마··· 또 때리려는 건가?'

"잠깐만! 아까 많이 맞고 왔단 말이에요. 제인 씨한테요."

세로드가 하얀 이를 드러냈다.

"아하. 진작 말하지. 저는 몰랐네요?"

그만하려는 것 같더니 제인은 그대로 주먹을 내리쳤다.

꿍-!

아픈 데만 골라서 맞다 보니까 기절할 뻔했다.

바닥에 앉아서 현자의 시간을 5분간 보내면서, 고통을 이겨냈다.

'그래도 제인보다 덜 때렸네.'

한 대 덜 맞아서 다행이었다.

"자. 이제 가죠."

일어나려는데 또다시 머리에 충격이 전해졌다.

꿍-!

"아야!"


***


계단으로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등 뒤에서 예쁜 목소리가 들렸다.

"여관 식당 말고. 예전에 갔던 식당에 가요. 샤인 씨랑 이트멀드 씨가 좋아했잖아요."

'고기는 안 내키는데······.'

"샐러드가 좋을 것 같아요. 세로드 씨한테 안 좋은 음식 먹일 수도 없고요."

"가까운 여관 식당이 좋을 겁니다."

"두 사람이 좋아하니까 거기로 가자고요."

냉각된 목소리에 흠칫 어깨가 떨렸다.

"아! 거기로 가는 게 좋겠군요. 얼른 가죠. 하하."


1층에 가니까 토리 아주머니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세로드! 언제 깼어?"

"어제 아침··· 부터 기억이 없어요."

다 회복된 것처럼 보여도, 세로드는 아직 말이 어눌했다.

세로드의 어눌한 모습을 보니까 코끝이 찡했다.

'늘 빈틈 없이 완벽했고, 상황 분석이 냉철했던 세로드였는데.'

"세로드 씨. 4일 전부터 기억이 안 날 거예요. 세로드 씨는 4일 전에 쓰러졌어요. 정신이 덜 돌아왔나 봐요."

어깨를 따듯하게 두드려주는데 세로드가 눈을 째렸다.

무서운 시선을 회피하면서 토리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세로드 씨 방에 침대 한 개는 빼 주세요. 방이 너무 좁아요. 저희 곧 돌아올 거니까 그사이에 꼭 빼주셔야 해요."

정중하게 얘기하고 우리는 여관 밖으로 나갔다.


디날브 보안관이 여관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여어. 샤인. 이트멀드. 어! 세로드 씨."

세로드를 발견하고는 디날브가 급하게 뛰어왔다.

"세로드 씨. 이렇게 깨서 다행입니다. 세로드 씨 걱정에 일이 손에 안 잡혔습니다."

디날브는 눈시울을 가볍게 붉히고는, 머뭇머뭇 얘기했다.

"세로드 씨 일은 곧 제 일입니다. 샤인에게 들었겠지만··· 치료비는 온전히-"

"저. 세로드 씨가 방금 깨는 바람에 얘기할 틈이···"

디날브에게 상황 설명을 하려는데, 세로드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 들었어요. 보안관님이 도와주려고 했는데도, 샤인 씨가 치료비 다 냈다고요."

'음?'

디날브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그게 아닌데···"

곧 나를 쏘아보면서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쏟아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세로드가 디날브를 보면서 꾸벅 인사했다.

"마음 써 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동료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식당에 가야 해요."

그녀는 앞장서서 사뿐사뿐 걸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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