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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의 용사는 바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도양이
작품등록일 :
2021.01.09 21:33
최근연재일 :
2021.03.02 20:34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985
추천수 :
93
글자수 :
306,060

작성
21.01.09 22:07
조회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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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여관에서 깨어나다

DUMMY

6월의 더운 날.


피 말리는 대학생의 시험 기간이다.

'얼마 전 입학식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을까.

첫 시험 기간에 돌입한 나는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수능에만 집중했던 고등학생 때와는 다른 중압감이 다가왔다.

딱히 수능도 준비하진 않았지만.


열의 넘치는 새내기였던 나는, 과목을 엄청나게 신청했다.

'수업이야 다다익선이겠지' 생각했던 그때의 나를 만날 수만 있다면 뺨을 사정없이 때려줄 것이다.

첫 학기부터 26학점이라니!

매일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은 아예 출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 선택을 왜 아무도 안 말려준 걸까?'


새내기 동기들은 나의 시간표를 보고는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었다.

선배들도 열정 넘치는 대학생은 언제라도 환영이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맛있는 밥을 척척 사주었다.


그때가 진심이었는지 알 방법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캠퍼스 생활을 지옥으로 만들고, 계절 학기까지 수강하게 하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 못 이뤘던 성취의 기쁨.

대학교에서라도 느껴보자던 열의는 증발하듯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고등학생 때도 안 했던 공부를 대학교 왔다고 갑자기 할 리가 있겠는가.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입학식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신작 게임이 출시됐던 것이다.

게임 업계를 주름잡는 LS 엔터테인먼트는 출시하는 게임마다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받아왔다.

회사에서 5년을 넘게 준비해온 야심작 '어둠의 자녀'.

출시와 동시에 수업을 거의 나가지 않다 시피하고 지금처럼 이 게임만 붙잡고 하고 있다.


사실 게임이 출시된 이후, 책은 한 장도 펴보지 않았다.


레벨업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꾸역꾸역 레벨을 올리고, 강력한 장비를 맞추면서 최종 보스를 깨는 데 성공했었다.

처음으로 보스 사냥에 성공했을 때, 메시지를 무시했어야 했다.


[새 캐릭터를 만들고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모든 직업군을 정복할 시 다음 신작 게임이 무료!]


여기에 낚여서 '어둠의 자녀' 게임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얄궂게도 패치가 진행되면서 직업군이 계속해서 추가되었다.


궁수, 마법사, 성직자, 도적, 전사, 드루이드, ···


싱글 플레이밖에 되지 않아 오롯이 혼자만의 싸움이 된다.

친구와 즐길 수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시험 기간에는 으쌰으쌰 억지로 공부하기도 했을 텐데······.

게임에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지금 불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자취방 안의 세계에서는, 야비하게 활을 쏴대는 궁수 캐릭터와 마우스를 잡은 나만 존재한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순간 게임 화면에서 눈을 뗀 나는,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게임만이 존재하는 팍팍한 삶에서 여유를 되찾으려는 행위였을까?

[아침 9시에 시험 알지? 김한수 너 시험도 안 나오면 무조건 F 준대. 꼭 나와.]

아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보스전이었는데 한눈을 팔다니!'


잠시 안 본 사이에 용병이 쓰러졌다.

내 캐릭터 코앞에는 보스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엄청난 장신의 보스.

녀석은 활을 맞은 증거로 갑옷 곳곳에 손상된 흔적이 보였다.


'까딱 잘못하면 사망할 수도···'


목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용병은 고용하고는 몸빵에 올인했었다.

궁수는 데미지에만 몰빵을 한 상황.


야비하게 멀리서 활만 쏘려고 키운 캐릭터다.

다가오면 도망치고, 멀리서 때리고, 또 가까워지면 도망치고, 때리고, ···

좋은 신발에도 투자를 많이 해놨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엔간한 중급 몬스터의 발길질 한 번에도 체력이 절반 빠진다.


이번 한대만 스쳐 맞고, 살아날 수 있을까?

도망칠 수 있을까?

'제발! 제발!!'


내 바람은 헛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스쳐 맞았지만 캐릭터는 그대로 비명횡사.


'어둠의 자녀'에는 독특한 게임 법칙이 있다.

캐릭터에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즉 부활이란 게 없어서, 죽으면 그 캐릭터는 다시는 플레이할 수 없는 것.

현실 고증이라고 부르던데···


상황을 이해하자 머리가 띵- 어지러웠다.

어떻게 키운 궁수인데!

애써 키운 캐릭터가 순식간에 날라간 것.


'진정하고 찬찬히 생각해보자.'

컴퓨터 화면에는 최종 보스가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궁수가 쓰러진 후 미동조차 없자, 보스의 숨겨진 모습이 나왔다.

하품하고 몸풀기 체조를 하더니, 큰 무기로 캐릭터 시체를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급기야 퍼질러져서 낮잠까지 자는 게 아닌가!

심지어 깨어나더니 혼자 있기 무안한지 손으로 뒷덜미를 긁적이고는, 뭉그적대며 자기 천막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서도 빼꼼 고개를 내밀고 밖을 보더니 곧 천막 내의 전구도 불이 꺼졌다.


이런 것까지 리얼리티로 재연한 건가.


제작사의 디테일에 약간 감탄을 느꼈지만, 곧 궁수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로 엎어져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스 새끼 자고 있을 때 일어나서 도망쳐야 하는데···'

캐릭터가 죽었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 증거로 화면 아래쪽에는 [캐릭터가 사망했습니다. 다른 직업군으로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글자가 큼직하게 떠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키운 건데.

체력에 하나도 투자하지 않았기에, 잡몹들에게 수많은 목숨의 위협을 이겨내며 애지중지 키운 캐릭터 아니던가.

주마등처럼 눈앞에 천천히 캐릭터와의 1개월간의 짧은 추억이 떠올랐다.

연일 밤샘 행진이 겹친 탓일까? 무척이나 피곤하더니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아침 9시에 시험 봐야 하는데···.'

[예]를 누르고는 모니터 앞에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컴퓨터 화면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곧 그의 몸은 온데간데없고, 빈 의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철썩-! 철썩-!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11시. 체크아웃 시간입니다. 나오세요."

눈을 뜨자 낡은 옷을 입은 청년이 작은 한숨을 쉬더니, 나를 남겨두고 곧 방을 나갔다.


어쩐지 업신여기는 눈빛이었는데 내 착각일까?


벽부터 바닥까지 나무로 된 작은 방.

여기는 어딜까.

익숙한 방 구조인 것 같은데···.

창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보자 언젠가 와 본 곳 같다.

'여길 언제 와 봤더라···?'


쿵- 쿵- 쿵-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곧 못되게 생긴 중년 여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샤인! 빨리 나와. 오늘도 돈 안 주면 보안관한테 진짜 신고할 거야."

막무가내로 팔을 붙잡고 내려가는 중년 여성에게 끌려 1층에 내려왔다.

짧은 키의 아주머니는 카운터로 들어가더니 곧 자리에 앉아 9만 원을 요구했다.


내 키가 훌쩍 크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보다 왠지 훨씬 더.

유리에 비친 나를 보니 붉고 우락부락한 얼굴의 사내가 보였다.

어찌 된 일인지 앞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건 오랑캐?"

내가 알던 대학생 김한수의 얼굴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나저나 얼굴이 붉다고 해도···

왼쪽 뺨이 반대쪽보다 유난히 붉다.

'자세히 보면 손바닥 자국이 나 있는 것 같은데···'


아까 날 깨워주었던 젊은 청년을 바라보니 눈높이 차이가 확연했다.


난 깨달았다.


이 건물에서 내가 제일 크다는 것을.

그것도 거의 종업원들보다 두세 배는 크다.


"일부러 딴 데 보는 척하지 말고. 9만 원 내놓으라고! 3일 치 숙박비 9만 원!"

짧은 손바닥을 턱턱 흔들며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정말로 못되게 생겼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다기보단,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서 피가 솟구칠 인상.


"아주머니. 성함이 혹시 어떻게 되시죠?"

"어쭈. 이제는 정신병자 행세까지 한다는 거지? 토리 사장님이다. 이 자식아!"

여기는 혹시..

"음. 여기 가게 이름이?"

"이 미친놈. 네가 매일마다 묵는 올드 하퍼 여관도 말해줘야 하냐?"

나도 모르게 호탕한 웃음을 쏟아냈다.

'꿈속에서도 게임이라니 나도 참···.'

심하게 중독됐다는 걸 깨닫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곳은 올드 하퍼 여관.

초보 여행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는 귀중한 곳이다.

이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천천히 회복된다.

여기가 꿈에서 나올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방. 묘하게 익숙한 이유가 있었어.'


포션 값 아낀다고 다친 몸을 이끌고 들락날락한 곳 아닌가.

인간의 자연회복력은 실로 대단하다.

가만히 있으면 체력 회복이 너무 느리기도 하고, 부상이 심할 때 포션 안 먹으면 오히려 체력이 더 떨어지는데···

아! 순수 여관의 힘이었구나···


"야. 샤인 이 새끼. 어제 뭐 잘못 먹었냐? 미친 척하는 거야, 진짜로 미친 거야?"

토리 아주머니는 심각한 눈으로 옆의 종업원에게 물어봤다.

"음. 오늘 아침까지는 평소랑 다름없는 얼굴이었는데, 제가 확인해보죠."

침착한 표정으로 젊은 청년이 저 먼 치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올라서더니, 아주 익숙하게 뺨을 철썩- 때렸다.


아 시발. 얼굴에 시뻘건 자국이 이거였구나.


철썩- 철썩- 느릿한 리듬감으로 때리는데 꿈인 것 치고 묘하게 아파왔다. 아니. 그냥 아팠다.

"아주머니. 낼 돈 없습니다. 여기서 묵은 기억도 없고요."

진실의 말이었다.

이곳에 체크인했던 기억이 없다.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땡전 한 푼 만져지지 않았다.

상의는 맨몸, 바지는 누더기처럼 생겼다.

바지에 억지로 만든 주머니가 있는데, 고운 먼지밖에 없었다.


철썩-


"아. 그만 좀 때리시죠. 이제 저도 참기 힘드니."


상대방의 손을 제압하려고 팔로 막았다.

커다란 체격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내 팔과 상대의 손힘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막상막하였다.


'체급이 깡패인데, 이게 무슨···'


오리발을 당당하게 내민다고 생각했는지 토리 아주머니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지더니, 분노로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샤인 너. 또 돈을 안 내겠다는 거지? 이번엔 나도 못 참아. 가만있어. 보안관 번호가."

그러더니 전화기 주변에서 뭔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노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학교 시험이 생각난 나는, 카운터에 머리를 쾅쾅 박았지만 잠이 깨기는커녕 이마만 아팠다.

"어. 이 새끼 또 왜 이래?"


순간 나무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선글라스에 멋진 캐주얼 제복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디날브 보안관. 여기 왔습니다!"

"아니. 아직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하. 저야 항상 대기 중입니다. 마을의 안전은 온전히 제 책임이니깐요!"

이 마을의 유일한 보안관 디날브.

마을의 안전을 책임진다고는 하지만, 몬스터가 마을에 출입하는 일이 없으므로 위험한 상황은 없다.


단순 NPC로 큰 역할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바로 왔을까?


그는 준비해온 밧줄로 내 손목을 뒤로 돌려 꽉 묶었다.

베테랑 솜씨에 저항할 틈새도 없었다.

"아. 아파요!"

나를 데려가다가 몸을 돌리더니, 토리를 향해 윙크를 하며 사람 좋은 멋진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 토리 씨는 안심하고 편안히 쉬고 계세요."

그러더니 더 미련 없다는 듯 급하게 발로 문을 차고 나갔다.

뒤로 토리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멀리 들렸다.

"잡아갈 게 아니라 숙박비를 받아야-"


한바탕 소통이 지나가고, 토리가 입을 열었다.

"보안관 저 새끼. 샤인이 미친 짓 할 때마다 벌컥 나타나는데. 수상하단 말이야. 스토커 같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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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5 슈가씌
    작성일
    21.02.06 22:50
    No. 1

    처음 보는 작품인데 꽤 재밌네요!!
    저는 연재중인 작가입니다...!!
    다른 장르를 연재중이긴 하지만 많은 영감 얻고갑니다!!><

    찬성: 1 | 반대: 2

  • 답글
    작성자
    Lv.14 도양이
    작성일
    21.02.06 23:14
    No. 2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표지도 직접 제작하시고, 부러워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은색의왕
    작성일
    21.03.26 14:32
    No. 3

    26학점? 저게 가능한가? 복수 전공을 하면 저정도 학점 신청이 되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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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증발 21.02.15 21 1 11쪽
41 모든 일의 원흉 21.02.15 17 1 12쪽
40 승리의 기쁨은 부차적인 것 +2 21.02.13 26 2 11쪽
39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죠 21.02.12 24 1 11쪽
38 충격파 21.02.11 21 0 11쪽
37 장엄한 인생의 서막 21.02.10 24 0 12쪽
36 법 없이도 살 사람 21.02.09 23 1 12쪽
35 죽음은 언제든 찾아온다 21.02.08 23 1 13쪽
34 인심 좋은 곳 21.02.07 21 1 12쪽
33 신뢰로 똘똘 뭉친 사회 21.02.06 21 1 11쪽
32 전설의 용사입니다 21.02.05 21 1 12쪽
31 모험가의 향수 21.02.04 25 2 12쪽
30 주변과 차단된 공간 +2 21.02.03 3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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