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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의 용사는 바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도양이
작품등록일 :
2021.01.09 21:33
최근연재일 :
2021.03.02 20:34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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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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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글자수 :
306,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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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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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전설의 용사입니다

DUMMY

***


모두가 지쳐갈 즈음.


"다 됐구먼. 젊은이가 이렇게 많은 아이템을 가져온 적은 처음 아닌가? 끌끌."

큰 역할을 해낸 노인이 흐뭇하게 얘기했다.

"어르신이 아니었으면 가치도 모를 뻔한 아이템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이 아이템을 느리게 감정하는 것은 좋은 점이 있었다.

'우리가 가져가야 할 아이템을 확실히 외웠다.'


동료들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의견 교환을 했다.

"아이템을 다 알아냈어요. 좋은 아이템은 우리가 가지고, 안 좋은 아이템만 팔려고요. 괜찮겠죠?"

돈 여유가 생겨서 버는 족족 안 팔아도 되는 때가 왔다.


"좋은 생각입니다. 샤인 씨."

담담한 이트멀드와 달리, 세로드는 약간 죄송한 눈치였다.

"할아버지가 잔뜩 기대 중인 것 같은데··· 좋은 아이템만 안 팔면 실망할 것 같아요."

대장장이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나는 안심의 말을 건넸다.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은 감정 자체를 좋아하는 겁니다. 대장장이는 아이템의 가치를 남에게 알려주는 것으로도 기뻐하는 거죠."


아이템을 만들고, 망가진 것은 수리하고, 모험가들에게는 판매하는 대장장이.

마음에 안 드는 아이템이 만들어지면 과감히 파괴하기까지 하는 직업이다.

아이템의 가치를 탐구하는 것으로도 이들은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아하. 그런 거면 괜찮네요. 감정을 좋아하는 분이셨구나."

대장장이를 이해했는지 세로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노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어르신. 아이템 수리도 몇 개 부탁드립니다."

"음. 아이템 상태가 말이 아니구먼."

노인은 걸레짝이 된 갑옷과 무기를 정성스럽게 수리해줬다.


"무기가 많이 낡았구먼. 이 도리깨와 도끼는 그리 좋은 무기도 아닌 듯하고. 단단한 모닝스타 하나로 교환해가게. 젊은이."

전투 경험은 거의 없는 노인이었지만 아이템을 보는 안목은 대단했다.

금속의 철구에 뾰족한 가시가 튀어나온 모닝스타.

휘두르는 도리깨와 달리 즉시 타격할 수 있는 위협적인 무기였다.

"좋은 무기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단해 보이는 모닝스타는 전투에 훨씬 강할 것 같았다.


이제부터 판매의 시간이었다.

적당한 가격으로 팔기 위해서는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정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아이템은 부르는 게 값이니까.

오랜 시간 거래를 해왔지만 늘 방심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거 다 해서··· 40만 원일세."

기대감으로 가득 찬 노인이 입을 열었다.

40만 원이라는 깔끔한 금액.


"어르신. 일부 아이템은 판매용이 아닙니다."

고급 아이템은 쏙 빼놓고, 나머지를 모두 노인에게 팔았다.

아이템 바구니를 한 아름 받은 노인은 곧 침울해졌다.

"이런 후진 것들 말고, 고급 아이템들은 안 파는가?"


주인장이라도 물건을 강매할 수는 없는 법.

팔 생각 없다는 손님에게 강제로 팔게 할 수는 없다.

원하는 것이 있어도 팔지 않을 자유를 건드릴 수는 없다.

"이 아이템은 꼭 필요해서요. 다음번에 좋은 아이템 가져오겠습니다."


***


무기 가게 밖에 나와서, 팔지 않고 도로 가져온 아이템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것들이 좋은 아이템이라는 거지?'

이미 다른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어서, 주인이 없는 아이템도 몇 개 있었다.

제리가 준 아이템보다 좋아 보이는 건 여기에 없었으니까.

아이템은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진 않았지만, 예전에 착용했던 누더기 같은 아이템과는 이미지부터 전혀 달랐다.


내 몫의 아이템은 튼튼해 보이는 어깨보호구, 한눈에 봐도 명품처럼 보이는 벨트.


반지와 방패를 얻은 이트멀드도 기쁜 기색이었다.

"방패까지 생기니까 점점 든든해집니다."

세련된 갑옷으로 갈아입은 세로드는 새 옷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적당한 갑옷이 없었는데, 가볍고 좋아요."

예쁘게 빙그르르 도는 모습을 보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샤인 씨. 목걸이랑 반지는 하나도 안 팔았습니까?"

의아한 듯이 이트멀드가 물었다.

"장신구는 좀 더 쓰고 팔려고요."


팔지 않고 일부러 그대로 들고 왔다.

하급 아이템이라도 장신구는 가치가 있다.

남들은 하나만 착용할 수 있는 목걸이, 양손에 한 개씩 착용 가능한 반지.

'나는 계속 착용하면 되니까.'

중복 착용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가장 아쉬웠다.


갑옷을 2개 착용하면 움직임이 어려웠다.

장갑은 2개 착용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무기를 쥘 수나 있을까 걱정된다.

신발 2개는 불가능할 것이다.

'무기를 3개 이상 들 수도 없는 법이고.'

결국 목걸이와 반지가 최선인가?


그러다가 노인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니 갸웃했다.


- 이 갑옷은 정말로 귀한 것이구먼.

- 어떤 효과가 있나요?

- 나도 모르네. 착용자만 알 수 있겠지.


- 오. 이 반지. 기억나는구먼. 무척이나 고급 반지일세.

- 좋은 효과가 있나요?

- 음? 그건 젊은이가 알아봐야지.


- 이 벨트. 무척 귀한 걸세.

- 어쩐지 빛이 나는 게 심상찮더군요. 무슨 효과가 있어요?

- 으음. 나도 모르지.


이 아이템들.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건 맞는데.

누가 봐도 고급스러워 보일 것이다.

명품을 안 써봤던 내 막눈에도 좋아 보이니까.

그런데, 효과를 모르는데 귀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지?

노인 눈이나 내 눈이나 똑같은 건 아니겠지.

묻는 족족 다 모른다고 하니 믿어도 되나 불안해졌다.

'도감에는 대체 뭐가 적혀있는 거야?'


- 어르신. 도감 좀 봐도 돼요?

- 가보는 함부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일세.


가게 안에서 힐끔 쳐다보니까 노인은 필사적으로 가리면서 치사하게 혼자만 봤다.

괜히 말했다가 경계심만 키워준 꼴이었다.

"안 가릴 때 몰래몰래 봤어야 했는데···"

두꺼운 책은 넘길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어났다.

몇십 년이나 됐는지 정말로 가보로 내려오는 것만 같다.

투박하게 그려진 아이템,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자가 언뜻 보이곤 했다.

언젠가 도감을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세로드가 목걸이와 반지를 착용해보라고 난리였다.

"진짜 신기할걸요. 같이 착용하면 달라지는 현상은 저도 이 아이템에서 처음 본 건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음. 아이템보다는 선물해준 것 자체로도 감사한 거죠."


호들갑을 떠는 세로드를 보자 약간의 기대감이 들었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길래 그러는 걸까?'


목걸이를 착용하려는데, 세로드가 눈을 큼직하게 떴다.

"어? 목걸이가··· 5개?"


세로드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정말이다.

아이템 중복 착용을 못 하는 것은 정말이었다.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은 예상한 일이었지만 막상 나만 된다는 게 거의 확실해지자, 마음은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나는 주인공인가?"

작게 중얼거리는데, 세로드가 도무지 이해 안 된다는 듯이 캐물었다.

"주인공이 뭐예요? 5개 어떻게 쓴 거예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잠시 생각하다가 몰래 가르쳐준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

"세로드 씨는 처음 봤겠군요.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만 가능한 거예요."

"특별한 운명이라고요? 그 운명이 뭔데요?"


'나도 모르는데···'


뜸을 들이다가 멋진 말을 찾아냈다.


"전설의 용사입니다."

그 말에 세로드가 길게 침묵하더니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그럼 전설의 용사는 뭘 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주인공이면, 여기서 뭐해야 되는 거지?'

여기서의 생활을 곰곰이 떠올렸다.

이트멀드 만나고, 사냥하고, 빚 갚고, 맛있는 밥 먹고, 세로드 만나고, ···

임무 따위는 알 리 없었다.

시험 전날에 밤샘 게임하다가 눈 떠 보니까 여기였던 것뿐.


내가 다짐한 목표를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자는 거였는데, 어느새 바뀌었단 말이야.'

강한 전사가 되는 게 목표가 되어 있었다.

전사의 본능은 나에게 강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동료를 찾으려던 건, 사냥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었는데.

'아니. 혼자는 외로워서였었나?'


딱히 주인공의 임무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못 찾은 건가?

간단하게 한 마디로 설명할 만한 게 없었다.


"돈 쉽게 벌고 여기서 행복하게 지내라는 건가?"

중얼거리는데 세로드가 생각을 마치고는 입을 열었다.

"전설의 용사는 말도 안 되고요."

"저 전설의 용사 맞아요."

말하면서도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형(異形)의 신체를 가진 사람이 정말 드물게 있다고 들은 적 있어요. 샤인 씨가 이런 케이스 같아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는 건가?'

"이형이라고요?"

"소문이긴 한데, 그 신체가 꼭 좋다고는 보장 못 한댔어요. 직접 본 건 처음이에요."

시무룩하게 있자 세로드가 아이템 착용해보라고 재촉했다.


"음. 별로 달라진 건 모르겠습니다."

반지를 착용했는데 거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목걸이를 넣는데 세로드가 신기하게 쳐다보며 얘기했다.

"와. 목걸이가 6개라니."

"어?!"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신체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훨씬 민첩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제 말 맞죠?"

그것 보라는 둥 자신만만한 세로드였다.

"이거 목걸이가 좋은 건가요?"

반지를 빼자 얻었던 능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두 개를 함께 착용하자 비로소 효과가 발휘되었다.


세로드는 내가 아이템을 꼈다 뺐다가 하는 걸 재미있게 구경했다.

"신기하죠? 그쵸?"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믿을 수 있는 사실.

하나하나는 약한 하급 아이템이다.

그런데, 두 개를 동시에 착용하면 강해진다.

나는 이게 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거··· 세트 아이템이잖아!'


모이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세트 아이템.

더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려면, 눈물 머금고 세트 아이템을 벗어야 할 때도 있다.

당장 세로드만 해도, 고급 목걸이, 빛나는 반지 때문에 이 조합을 포기했으니까.

'세트 아이템보다 고급 아이템을 착용하는 게 더 강력한 거겠지.'


그런데, 나는 사정이 다르다.

중복 착용이 무한히 가능하다.

혹여 최상급 아이템이 없더라도, 세트 아이템만 찾아내면 훨씬 세질 수 있다.


국도에서 느릿느릿 운전하다가 뻥 뚫린 고속도로에 들어선 것만 같았다.


'아! 개이득!'


몸에 가득 들어찬 활력이 부들대고 있었다.

폭발시켜보라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다.

이거면 파괴력도 확 높아지나?

온몸이 흉기인 전사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파괴의 신. 적수가 없는 세계 최강의 존재. 존재 자체가 무서운 전사.


"무슨 생각 하길래 그렇게 웃어요···?"

세로드가 심각하게 물어봤다.


세상의 지름길을 봤다는 생각에, 붕 뜬 마음이 잘 가라앉지 않았다.

남들은 어렵게 살겠지만, 나는 쉽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 아뇨.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저한테서 잠시 물러나 있어요."


될까? 되겠지?


발끝에 힘을 집중해서 바닥을 있는 힘껏 꽈앙 찍었다.


꿍-


"아이고!"

어마어마한 고통이 순식간에 발을 덮쳤다.

발가락에 모든 신경이 몰려있었던 건지, 차원이 다른 통증이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발이 받는 고통을 덜어줬다.

"뭐해요···?"

의아하게 묻는 세로드였다.

"아. 잠깐만요."

앉아서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자 진정이 찾아왔다.


땅땅한 바닥은 그대로였다. 흙만 날릴 뿐.

'아! 왜 안 파여?'

맨몸의 파괴력은 도무지 좋아질 생각을 안 한다.

무기 들면 그나마 공격이 세지는 것 같기는 한데.


사냥 경험이 쌓일수록 신체는 향상되고 있다.

체력, 몸놀림, 무기 다루는 능력 모두 좋아진다.

적의 움직임도 점점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파괴력만은 정말 느리게 향상되고 있다.


무한 아이템 착용으로 신체는 더욱 향상되었다.

목걸이가 늘어날수록 점점 체감되는 신체 능력.

하지만 파괴력만은 낮은 수준으로 증가했다.


무기가 없으면 파괴력은 정말로 약하다.


이때서야 내 몸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이건 페널티다!'

혼자만 너무 세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월등히 체력 높고, 아이템도 무한으로 착용 가능한 캐릭터.

데미지까지 세다면 균형이 안 맞는다.

흡사 게임의 버그 요소가 될 법한 캐릭터.

세상은 나에게서 데미지를 뺏어간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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