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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의 용사는 바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도양이
작품등록일 :
2021.01.09 21:33
최근연재일 :
2021.03.0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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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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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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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인생의 서막

DUMMY

지저분한 외투를 걸친 짐버르 아저씨는 이내 맥없이 쓰러지려고 했다.

팔에 미세한 떨림을 생생히 봤다.

얼마나 큰 전투가 있었던 것인가.

'당장 아저씨를 도와줘야 한다.'

"이트멀드 씨. 같이 가서 아저씨 좀-"

내가 다 말하기도 전에 이트멀드는 반쯤 일어난 상태였다.

"얼른 가서 도와드려야 합니다."

우리 둘은 곧바로 아저씨에게 달려가 축 늘어진 몸을 부축했다.

"허허. 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다 쓰러져가는 아저씨를 끌고 겨우 테이블로 데려올 수 있었다.


"아저씨. 얼른 식사하셔야죠. 이렇게 쓰러지면 안 돼요."

다행히 의식은 남아 있다.

아저씨는 신체에 힘만 떨어졌을 뿐이었다.

의자에 앉히고는 이트멀드가 입을 열었다.

"짐버르 아저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트멀드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만이 보였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떠돌이 생활을 했던 이트멀드.

가족의 정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 또래인 짐버르 아저씨에게 가족의 감정을 느낀 게 아닐까.

"우선··· 목을 축여야겠구먼."

이트멀드가 물을 졸졸 따라주자, 짐버르 아저씨는 물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제야 살 것 같구먼."


녹초가 된 아저씨에게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몸이 필요로 하는 연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

그에게는 음식이 급했다.

"여기요! 주문 바꿀게요!"

나는 급히 직원을 불렀다.

"한 명 더 왔으니까, 5명 배터지게 먹을 수 있게 만찬 준비해 주세요. 1명은 어린아이라는 걸 꼭 염두에 두시고요. 어린아이는 어른보다 적게 먹는 거 알고 있죠? 많이 남으면 남은 만큼은 환불해주셔야 해요."

연달아 얘기하자 주문받는 직원이 일순 놀라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어린아이인 것은 저도 보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이 좋았다.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안도감이 아니었다.

'배우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은 맹세하건대 거의 없었다.

단지 아저씨가 목숨을 부지하고 무사히 약속 장소로 왔다는 게 기뻤다.

소중한 인연. 잃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 일행과 아저씨 사이에는 우정이 싹텄다.


"짐버르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다친 거예요?"

세로드 또한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피 냄새는 안 나는 거 같긴 한데. 어떤 일이 있었던 거예요?"

세로드의 걱정이 이어지자, 짐버르 아저씨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얘기를 꺼낼 때가 왔구먼···. 55년 전. 유복한 집안에서 한 사내가 태어났다네."


드디어 짐버르 아저씨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그 장엄한 인생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55년이라는 긴 시간.

한 인물의 일생이 이 안에 다 들어있다.

살아오면서 재밌는 순간도 있었고, 슬픈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화났을 때도 있고, 지루했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사랑에 빠졌던 청년의 모습도 있겠지.


분위기에 압도된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거 말고, 오늘 일을 얘기해 줘야-"

세로드가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아저씨 얘기하잖아요. 좀 참고 들어요."

우리가 이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되어 보였다.

"우리 집은 화목했었다네. 성실하고 자상한 아버지,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 그리고 외동아들로 내가 태어나자 집안에는 웃음이 끊일 날이 없었지."

"내 이름 짐버르는 임신 3개월 때 이미 지었다더구먼. 그 뜻부터 굉장하다네. 베풀기 좋아하는 부모님은 그들의 자식 또한 베풀며 살기를 바랐다네. 쌓아두면 짐이 될 테니, 필요 없는 것은 남에게 버리라는 뜻이였지. 짐버르. 하하. 이해되는가?"

태어날 때 얘기로 시작했던 아저씨는, 말할수록 시점이 더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 아버지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네. 어머니와는 우물에서 만났다고 들었지. 아버지의 아버지 또한 농사꾼이었지."

가족들의 얘기가 재미있는지, 이트멀드는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태어난 후부터 얘기해주세요. 너무 길어질 것 같아요."

손등을 찰싹 때릴 것만 같았지만, 세로드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

"으응? 이 얘기가 있어야 다음 얘기도 이해될 걸세. 금방 끝나니 기다려주게."

"태어나기 이전 얘기는 최대한 간단히 말씀해주셔야 해요. 너무 길어지면 진짜 안 들을-"

탁-

아까보다 훨씬 약한 강도로 세로드가 내 손등을 터치했다.


"··· 그때 난 알아버렸네. 아버지가 얼마나 날 아끼는지 말일세. 내 인생 2살 때 얘기지."

아저씨의 기억력은 지나치게 좋았다.

'2살 때 기억이 보통 남아있나?'

지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부터 기억에 남는지 찾아볼 텐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그때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게야. 불효자가 따로 없었지. 미운 세 살 때의 얘기일세."

지나치게 진행 속도가 느렸다.

"진짜 빨리빨리 좀 진행해주시죠."


유복한 어린 시절이 끝날 때 즈음 식사가 나왔다.

"손님.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말씀이 길어지셔서 최대한 늦게 내왔습니다. 손님들께 방해되지 않게끔요."

늦게 가져와 놓고는, 직원이 고급 레스토랑을 방불케 하는 말솜씨를 자랑했다.


닭고기의 고소한 냄새가 군침을 돌게 했다.

먹기 좋게 빛을 내는 닭고기.

차갑게 식은 수프와 딱딱해진 빵.


하지만 배고픔은 불만조차 쏙 들어가게 했다.

"얼른 먹죠."

아저씨를 포함한 모두는 우걱우걱 배를 채웠다.

닭고기의 속살은 식었는데도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버터 향이 물씬 풍기는 빵도 배고플 때 먹으니까 정말로 만족스러웠다.

"여기. 맥주 네 잔 내오시게. 허허. 꼬맹이 신사한테는 시원한 음료수로 주고."


술을 먹기 시작하면, 가격이 확 뛰는 것을 알고 있다.

술을 한 잔 마시면, 안주를 더 시키게 되고, 또 술을 시키게 되고, 안주를 시키고, ···

점점 내야 할 돈이 많아지는 것이다.

식당에서도 술 많이 시키는 손님이 가장 환영이라고 들었다.

'술을 시키기 시작했다는 말은.'

아저씨가 제대로 한턱낼 모양이었다.


현실에서는 술을 거의 못 하는 나였지만, 샤인의 몸이 이 정도 술을 이기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럴 때 술 마셔 봐야지.'

두 동료는 기대가 큰 눈치였다.

"와. 술은 처음 먹어봐요."

"짐버르 아저씨 덕분에 먹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잔당 500cc 정도 되는 양이 나왔다.

"와! 음료수다. 짐버르 아저씨 최고!"

탄산이 가득한 음료수를 본 휴히파레는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음료수가 먹고 싶었을까.

한창 군것질 좋아할 나이니까, 달곰한 것을 달고 살 때였다.

돈만 충분했다면.


"자. 얼른 건배하세! 휴히파레도 같이 건배하자고. 허허."

쨍-

시원한 목 넘김. 구수한 보리 향. 약간의 알딸딸한 기분.

최고였다!

'이렇게 술이 맛있다니.'

"크으- 역시 이 맛일세. 허허. 마저 얘기해 보겠네."

"대체 오늘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겁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트멀드가 물었다.

"금방 도달할 걸세. 잠시만 기다려주게. 허허."


"··· 아내와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던 중에, 결국 일이 터졌다네. 비극적인 일이었지. 그놈만 아니었어도! 크흑. 그놈이 등장하고 나서, 아내가 날 떠났다네."

짐버르 아저씨의 감정이 격해졌다.

행복했던 삶이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대목.

아저씨의 대서사시는 핵심에 근접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었어요?"

맥주를 꿀꺽 한 모금 마시고는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도박이었지. 끝이 없더구먼. 전 재산을 탕진하고 집에 가보니, 아내는 떠났었다네."

"도박요?"

악당을 기대했지만, 아저씨를 바닥으로 이끈 것은 도박이었다.

전 재산을 다 쓰고 나서 아내가 아저씨를 떠났다.

평범했던 그는 길바닥에 나앉은 거지가 되고 나서야 무림 세계를 알게 된 듯했다.

어떻게 무림계에 입문했을까.

모든 게 그를 영입하려는 누군가의 계획이었던가?

"그 후는 어떻게 된 거예요?"

"음? 정처 없이 길에서 자고 있지. 보다시피 말이야."

김빠지는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대답을 회피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문파에 비밀 서약을 한 것인가.

술이 들어가니 나는 좀 더 과감해졌다.

"오늘 어떤 싸움을 하고 온 거죠?"

아저씨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일은 묻어뒀으면 하네."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일이 있을 테니까.

그게 특히 목숨을 오가는 중요한 일일수록.

이해와는 별개로 호기심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저씨가 오늘 겪은 참담한 일을 알고 싶었다.


"우리가 데려다줬던 그곳. 거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숨을 내쉬고는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숨길 수 없겠구먼."

아저씨는 한 곳을 응시하다가 숨겼던 비밀을 천천히 말해줬다.

"알다시피 그곳은 식당가일세."

당연히 식당가였지.

여러 식당이 모여 거리를 이룬 곳.

겉으로는 영락없는 평범한 식당가였다.

"거지라는 말을 듣고 나서 취직을 결심했네. 식당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간 거야."

"네?"

"뭐가?"

아저씨의 모습을 짐작해 온 나였다.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

"여관에 들어올 때 죽기 직전이었잖아요."

잠시 생각을 하던 짐버르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일하니까 힘들더구먼. 정말이지 죽을 뻔했다네. 식당 일을 만만히 볼 게 아니었어."

"식당에서 일하고 왔다고요?"

"파트 타임으로 열심히 일하고 왔다네. 허허."


믿기 힘든 얘기에 세로드에게 조용히 속닥거렸다.

"세로드 씨. 아저씨한테서 전투 흔적은 없어요?"

"네. 아까 식당에서 맡았던 냄새뿐이에요."

그러면서 세로드는 아저씨에게 뭔가를 물어봤다.

"취직한 곳이 어디예요?"

"인심좋은 삼겹집이야."

세로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샤인 씨가 취업하려다가 실패한 곳이요?"

"시도한 적 없어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깜빡했구먼. 샤인. 예전에는 미안했다고 전해달라더구먼. 식당 일을 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고, 오해 풀라고 말일세."


테이블에는 웃음꽃이 가득 폈다.

나는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라고 취직 안 된다고 해놓고···

아저씨는 바로 취직 시켜 주다니.

아저씨에게 밀린 것 같은 패배감이 살짝 들었다.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보기좋게 발개진 세로드가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 전설의 용사인데, 바닥에 박힌 도리깨도 잘 못 빼잖아요."


***

카운터.


계산하러 간 아저씨가 머뭇거리더니 손을 들었다.

"샤인. 조금만 보태주게."

그의 얼굴에는 민망함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돈이 부족한 상황인 것 같다.

'많이 먹긴 먹었지. 아저씨 혼자 내기는 무리였어.'

한턱내겠다고 단언했지만 낼 돈이 없다면 이것만큼 민망할 때가 없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것이다.

상처 안 받게끔, 그리고 상처 안 주게끔 조심해야 한다.

따뜻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사소한 곳에서 알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의 배려가 차이 나는 것이다.


"많이 나왔죠? 안 그래도 저희가 보태려고 했어요. 얼마 더 내면 돼요?"

"이거 민망허이. 7만 5천 원이 부족하구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짐버르 아저씨를 보자 코끝이 찡해졌다.

짐버르 아저씨는 지나치게 기가 꺾여 있었다.

그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힘겹게 살아오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허리 굽혀가며 일하고, 고객에게는 고개 숙이고, 집에서는 고장 난 물품 수리하느라 지친 아버지.

흰머리가 뒤덮였고, 등은 어느새 굽어 있었다.

못난 아들은 그걸 보면서도 게임만 죽을 둥 살 둥 했다.


"부담가지지 마세요. 정말 괜찮아요."

계산서를 스윽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7만 5천 원 나온 거 아니에요?"

계산서에 총금액이 7만 5천 원이고, 부족한 돈도 똑같다.

'아예 안 낸 거잖아···'

"낸다고 냈는데, 부족하구먼."

짐버르 아저씨가 눈을 끔뻑끔뻑 떴다.

"아니. 총금액이랑 못 내는 금액이 같잖아요."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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