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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의 용사는 바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도양이
작품등록일 :
2021.01.09 21:33
최근연재일 :
2021.03.0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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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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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좋은 곳

DUMMY

"짐버르 아저씨였군요. 잘 지내셨어요?"

"자네. 내 이름을 어떻게···"

이름을 불러주자 아저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깊은 감동을 느낀 얼굴이었다.

스쳐 지나갈 뻔했던 인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인연의 소중함을 알았다.

힘든 세상, 혼자 사는 것보다 어울려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다.

이름을 소개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때의 대화에서 엿듣고는 기억하고 있었다.


- 짐버르. 자네는 살면서 한 번도 돌려받은 적이 없지 않은가.


"샤인입니다. 이전에 여관에서 본의 아니게 들었어요."

"으음. 그랬구먼. 젊은 친구가 내 이름까지 기억하다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버르 아저씨는 되물었다.

"아까 돼지고기 맛집이라고 했는가?"

"네. 동료들이 배가 고픕니다. 맛있고 푸짐하면서 최대한 저렴한 곳으로 가르쳐주세요."

"잘 물어봤네. 숨겨진 맛집이 있어. 소문이 많이 나진 않았으니 손님들이 많지는 않을 거야."


대화가 길어지자 세로드가 못 참겠는지 다가왔다.

"저 배고프···다면서요. 샤인 씨. 음음! 아까 배고프다면서요. 이트멀드 씨도 배고프대요. 빨리 가요."

세로드가 내 팔을 조심스럽게 끌었다.

"호오. 동료를 아주 잘 뒀구먼. 무척 강해 보여. 거기다, 이 정도의 미인이라니."

세로드가 말도 안 되는 미모이긴 하다.

"샤인 씨. 이분은 누구세요? 아는 분이에요?"

"앗. 이분은."

"짐버르일세. 샤인과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야. 허허."

아버지처럼 푸근한 미소를 보이며 짐버르 아저씨가 악수를 청했다.

"아아. 세로드입니다. 샤인 씨랑 자주 어울리셨나 봐요?"

얼떨결에 악수를 하고는 세로드가 반갑게 물었다.

"무척 믿음직한 청년이야. 각박한 세상, 샤인만큼 괜찮은 청년도 보기 드물지."

나를 한껏 띄워주면서 짐버르 아저씨는 윙크를 살짝 해주었다.

세로드가 나를 보는 시선이 따듯해진 것 같다.

"나와는 동고동락하는 인연이지. 옛날에는 자주 어울렸는데, 요즘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잘 안 보였구먼. 샤인이랑 길바닥에서 자던 때가 재미있었지."

나를 띄워주느라 정신이 없는 짐버르 아저씨였다.


길바닥에 앉아서 졸고 있던 준 노숙인 아저씨.

아저씨의 집은 어디일까. 길에서 사는 걸까.

당장 내일이 걱정일 텐데도, 사랑을 베푸는 아저씨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거리를 같이 쏘다니며 밥도 빌어먹고 했는데 말이야. 그때가 엊그제야. 허허."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세로드에게 살짝 몸을 기울이고는, 아저씨 안 들리게 조심해서 얘기했다.

"세로드 씨. 뒷부분만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동고동락한 적 한 번도 없습니다. 잠도 길바닥에서는 거의 안 자고요. 밥도 안 빌어먹죠. 아저씨 혼자 그랬어요."

세로드가 못 믿는 눈치여서, 이유를 확실히 설명해줬다.

"아저씨가 잠이 덜 깼나 봅니다."


"맛집은 내가 안내해주겠네. 자. 어서 가자고!"

아저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내보다는 합류한다는 느낌이 가까웠다.

돈은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철칙을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이 돌려받는 날이라고 장담한 것처럼 보인다.

'여관 식당에서 쏘지도 않았는데.'


아저씨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 얘기했다.

"저. 짐버르 아저씨. 식당 가르쳐 주시면 알아서 찾아갈게요."

"으음. 그렇게 할 텐가?"

의외로 흔쾌한 대답이었다.

짐버르 아저씨는 손짓을 해가며 자세하게 가르쳐줬다.

"··· 거기로 가면 내가 말한 고깃집이 나올 게야. 허허."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볼게요. 자. 우리는 얼른 가죠!"


서둘러 이트멀드와 세로드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얼른 가야 해요."

뒤를 힐끗 돌아볼 때마다 짐버르 아저씨가 시선에 들어왔다.

멀어져야 하는데, 아저씨와의 간격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열 발자국의 거리.


휙-!


똑같은 열 발자국의 거리.


"아. 왜 따라와요?"

"나도 식사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시무룩한 아저씨를 못 따라오게 할 수는 없었다.

"대신, 계산은 분명히 따로 해야-"

세로드가 옆구리를 찔렀다.

"아오. 샤인 씨. 그냥 아저씨 것도 내줘요. 맛집도 가르쳐 주셨는데. 통이 커야죠."

눈을 치켜뜬 세로드는 무척 귀여웠다.

아름다운 사람이 귀엽기도 하다는 것을 안 순간이었다.

"헤헤. 지금 그 얘기 하려고 했어요. 아저씨. 계산은 저희가 할 거예요."

짐버르 아저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까 휴히파레도 밥을 못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세로드가 눈썹을 모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걱정마세요. 휴히파레는 충분히 얻어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빨리 데려와야죠."

"휴히파레의 구걸을 방해하는 걸 수도 있어요."

"잠깐 여기 있어요. 금방 찾아서 올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세로드는 무서운 속도로 사라졌다.


***


세로드의 손을 잡은 휴히파레가 보였다.

"와! 세로드 누나 최고. 나도 고기 먹는다!"

"하하. 욘석. 아직 밥을 안 먹었나 보구나."

"아까도 안 먹었다고 얘기했잖아!"

"그래. 앞으로는 제때에 먹고 다녀야지."

휴히파레의 머리를 푹 쓰다듬고는 세로드를 바라봤다.


꼬맹이를 찾아온 세로드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세로드가 또 바뀐 것 같다.

서양인의 오똑한 코가 더욱 오똑해졌다.

발갛게 생기 넘치던 입술은 더 빨갛게 변했다.


"세로드 씨. 자꾸 물어봐서 죄송한데. 어디 변하지 않았어요?"

"원래 이렇게 생겼거든요. 빨리 맛집 가요."

새초롬한 얼굴의 세로드였다.


***


[인심좋은 삼겹집]


"어서 오세요. 다섯 분인가요?"

"네. 제일 좋은 자리로 안내 부탁드립니다."


메뉴판은 단출했다.

[돼지고기 한 덩이 / 두 덩이 / 세 덩이]

맛집답게 돼지고기에만 집중한다는 얘기였다.

한 우물만 파온 장인의 솜씨가 기대됐다.


"정말 맛있는 곳일세. 젊은 친구들은 사족을 못 쓸게야. 하하. 얼마 만에 오는 건지!"

짐버르 아저씨는 침을 꿀떡 삼키며 극찬을 늘어놨다.

진짜 맛집을 찾는 방법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을의 토박이 아저씨가 좋아하는 곳은 무조건 맛집이라고 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뽀글뽀글한 머리의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여기 성인 4명에, 꼬마 1명이면 얼마나 시키면 되죠?"

"어? 그때 일자리 구하러 온 분 아니에요?"


생각났다.

여기는 내가 아르바이트 구하려던 식당 중의 한 곳이었다.

매몰차게 거절당했던 고난의 시기.

-우리 식당이 원하는 인재와는 거리가 좀···.


"그때 취직 시켜 달라고 왔던 분이잖아요!"

"아. 사람 잘못 보셨군요."

"호호. 그릇이라도 닦게 해달라고 빌었잖아요."

"다른 사람이겠죠. 주문 좀 받아주시죠."

"그래. 지금은 어디서 일하고 있어요? 받아주는 곳이 있었어요?"

집요한 아주머니는 주문받을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시침 뚝 떼는 것은 나도 자신 있었다.

"사냥하느라 바쁜 사람한테 무슨 말인가요?"

무시무시한 모닝스타를 슬쩍 보여주니 아주머니는 기가 팍 꺾였다.

"어··· 어? 죄송해요. 잘못 봤나 봐요."

"5명이서 먹을 정도로 얼른 가져와 주세요."


난처했던 상황을 자연스럽게 모면했다.

세로드 앞에서는 완벽한 모습만 보여야 했다.

나를 믿고 따르는 동료에게 초라한 과거를 들킬 수는 없는 법.

서로의 생명을 구해준 사이는 더욱 각별하니까.


"식당 일도 했어요?"

세로드가 신기한 눈치였다.

"저 같은 전사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죠."

"언제는 전설의 용사라더니, 식당 일까지··· 우헤헤."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느라 세로드가 입을 가렸다.

"안 했어요. 아까 아주머니가 잘못 봤다는 말 들으셨잖아요."

"갑자기 무기를 꺼내니까··· 크흡! 아주머니가··· 어쩔 수 없이···"

이트멀드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려는데, 이트멀드도 웃음참기 대회를 하고 있었다.

"무슨··· 전설의 용사가···"

크흡! 소리를 내며 세로드는 자꾸 얘기했다.

"식당 그릇을··· 우히힛."

눈치 빠른 세로드 때문에 난처해졌다.

"허허. 샤인도 힘들 때가 있었던 게야. 너무 놀리지는 말자고."

짐버르 아저씨는 나를 보며 살짝 윙크를 했다.

아저씨의 말 때문에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식당 아주머니가 예고도 없이 시작한 대화판.

한바탕 조용한 웃음이 지나갔다.


"자. 어서 들게!"

시무룩하게 수육 한 점을 들었는데, 맛은 정말로 좋았다.

"어. 되게 맛있군요."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는 게 일품이었다.

야들야들한 속살에 고소한 고기 맛이 새어 나왔다.

"샤인 씨. 침 좀 닦고 먹어요."

안쓰러운지 세로드가 휴지로 닦아줬다.

"휴히파레. 고기 먹고 체하면 약도 없으니까, 조금만 먹어."

"응. 조금만 먹고 있어."

휴히파레는 말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먹어댔다.

"세로드 씨. 입맛에 잘 맞아요?"

세로드가 후다닥 고기 3점을 놓았다.

"있으니까 억지로 먹는 거죠. 그래도 다들 잘 먹으니깐 보기 좋네요."

"이트멀드 씨. 가방에 넣으면 안 돼요. 나중에 못 먹어요."


***


식당에서 나온 후 터벅터벅 걸었다.


배가 부르자 휴히파레는 이제야 주변에 관심을 가졌다.

녀석은 기어코 대형사고를 쳤다.

정말로 소름 돋는 순간이었다.

녀석을 말렸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늦었음을 직감했다.


"어! 거지 아저씨다!"

휴히파레의 말에 짐버르 아저씨가 주변을 둘러봤다.

"응? 어디 말이냐?"


아! 내 잘못이었다.

휴히파레를 잘못 가르친 내 탓이었다.


휴히파레에게 예절 교육은 누군가는 해줘야 했다.

가족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다.

나중에 예의 없다는 얘기를 듣게 할 수는 없으니까.

어릴 때부터 확실히 도와줘야 한다.


우선 목걸이와 반지부터 하나씩 벗었다.

교육한다고 휴히파레가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체벌과 학대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 때가 됐다.'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쥐고 최선을 다해 꿀밤을 먹였다.

당시의 내 눈에는 혼꾸멍을 내주는 것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딱-!

"이놈! 거지 아저씨라니. 짐버르 아저씨한테 똑바로 쳐다보고 '잘못했어요' 어서 사과해."

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주려는 사랑의 매.

"아야! 왜 때려. 다 거지 아저씨라고 부른단 말야."

"욘석이 그래도!"


그 순간, 길바닥 한구석에 퍼질러 누워있는 모자 쓴 사내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플랜카드가 놓여 있었다.

[거지 아저씨 - 돈을 주세요]


"···"

"샤인. 자네··· 날 거지라고 생각한 거야? 내가 여관에서 호의도 베풀어줬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짐버르 아저씨의 눈이 글썽였다.

여관 식당에서 골든벨 울리지도 않았지만 말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형세는 짐버르 아저씨에게 기울고 있었다.

"거지로 보였다고 해도··· 틀린 말도 아니지."

탄식한 짐버르 아저씨는 과거를 하나씩 떠올리는 듯했다.

"참 굴곡 많은 인생이었어. 범인은 상상도 못 할 고난의 인생. 55년 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내가 있었다네."

아저씨는 호리병을 꺼내 목을 축였다.

식당에서 몰래 담아온 깨끗한 물.

"여기서 얘기하긴 민망하구먼. 저녁에 여관에서 보는 게 어떤가? 내가 대접하겠네."

아저씨에게 돈이 없을 것 같았지만, 사내 대 사내의 약속은 함부로 거절하기 힘든 뭔가가 있었다.

"··· 알겠어요. 대신 꼭 돈 내셔야-"

세로드가 옆구리를 콕 찔렀다.

"쪼잔하게 보이잖아요."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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