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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죄 님의 서재입니다.

재벌고 천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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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죄
작품등록일 :
2020.07.20 10:55
최근연재일 :
2020.09.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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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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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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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2. 간파의 업(1)

DUMMY

호진은 정장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했다. 패션 할아버지의 빌라 바로 옆 동이라 집의 구조는 똑같았는데, 내부는 전혀 달랐다.


‘분위기가 전혀 다르네.’


패션 할아버지의 집이 모던함과 심플함을 극대화한 현대적인 느낌이라면, 이쪽은 정반대였다.

집 내부는 원목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고, 엔틱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런 분위기의 화룡점정은 할아버지의 서재였다.


“와······.”


호진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모습이 호진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서재의 벽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장이 높다 보니, 책장 맨 위에 있는 책을 꺼낼 때 쓰는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호진은 책장의 책들을 확인했다.

대부분 외국어로 적힌 원서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고 한글로 적힌 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범죄학]

[범죄 심리학]

[표정과 반응에 관한 행동연구]

[세계 공통 제스처 연구]

.

.

.

.

전문적인 냄새 풀풀 풍기는 책들이 책장에 가득했다. 그렇다고 서재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빔프로젝트와 예전에 사용했던 영사기 또한 한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뭔가 저걸 이용해서 배우는 건가?’


영사기를 틀어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정장 할아버지는 마치 수업하듯 호진에게 알려주는.


‘그런 게 확실해 보이는데.’


패셔니스트 할아버지와는 다른 의미로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끼익-.


그때 서재의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미안해요. 준비를 좀 했어요.”

“아니에요. 서재가 굉장해서 즐겁게 구경하고 있었어요. 범죄학이라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아직 한국에는 친숙하지 않은 학문이죠. 법학, 사회학, 심리학 등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범죄의 발생 이유와 예방 대책을 탐구하는 학문이에요.”

“중요한 학문이네요.”

“맞아요.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인 범죄를 해결할 학문이에요.”


호진의 대답에 정장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네! 최선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호기로운 호진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서재 밖으로 나가 카트 하나를 끌고 들어오셨다.

카트엔 종이 상자가 쌓여 있었고, 그 상자에는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상자를 골라봐요.”

“아무거나요?”

“예. 어차피 상관없어요.”


상관없다는 건 선택에 뭔가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호진은 신중하게 가장 위에 놓인 박스를 선택해 열었다.

한데, 안에서 나온 건 좀 이상했다.


[거짓말에 따른 반응 #27-사진 자료]


“펴보세요.”


호진이 그 책자를 펴자, 안에는 사진과 함께 설명이 적혀 있었다.


“자, 그 책을 시작으로 한번 쭉 살펴볼 거예요.”

“이거 하나만요?”

“아니요. 여기 있는 거 전부요. 사진과 반응을 외우는 거예요.”

“······예?”


어떤 교육일지 잔뜩 기대하고 있던 호진에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영상 자료를 보며 고풍스럽게 수업하는 그런 멋진 일은 없었다.

상자 안에 가득한 책자를 외우고 또 외우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대학원생들 가르칠 때가 생각나네요.”


교, 교수님?

그 씻지도 못하고 연구실에서 노숙하는 대학원생이요?


“외우고 있어요. 추가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고 올게요.”


처음으로 느꼈다.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정장 할아버지의 미소는 때때로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지옥이 시작됐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호진은 매일매일 정장 할아버지 댁에 들려, 자료집을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암기가 있기에 다행이지.’


그나마 다행인 건, 암기의 업이 있다는 것이었다. 암기의 업이 없었다면, 호진이 아무리 암기력이 좋다고 해도 이것들을 외우는 건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암기력을 한계까지 써먹은 덕분에 새로운 것도 깨달았어.’


안 그래도 암기력이 좋은 호진을 암기의 업이 도와주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무작정 외워서 때려 박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암기력이라는 건 단순히 외우는 것만이 아닌 거 같은데?’


머릿속에 깔끔하게 정리된 덕분에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끙끙거릴 필요가 없었다. 머릿속에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덕분에 쉽게 기억해 내는 게 가능했다.

외운 뒤에 머릿속에 저장되는 것도 암기력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잘 외워지면 좋은 일이었다.

딴 생각할 시간에 사진을 한 장이라도 머릿속에 쑤셔 넣어야 했다. 호진은 멈춰 있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봐야 할 자료집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확실한 건, 대학원생은 하지 말아야지.’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대학원생 경험은 사절이었다.

호진은 빠르게 자료집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직 지옥이었다.


***


이른 새벽 육거리.

할아버지 세 분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사장 할아버지와 패셔니스트 할아버지가 정장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거, 내 수제자 호진이는 잘하고 있어?”

“그걸 물어서 뭐해. 당연히 잘하고 있겠지. 내 수제자 호진이가 그걸 못하고 있으려고.”

“아니. 걱정되잖어. 저 영감탱이 생긴 것만 멀쩡하지, 자기 빼고 다 멍청인 줄 아는 영감탱이잖어.”

“걱정하지 말어. 저 영감탱이가 아무리 무식해도 대학원생 다루듯 했으려고.”

“그건 안 될 일이지. 또 책 수십 권 들이밀고 외우라고 했을 텐데. 그게 사람이 할 짓이여?”


할아버지 두 분은 질린다는 듯 정장 할아버지를 흘겨봤다.


“호진이를 시험해 봤다.”

“······이 미친 영감탱이가.”

“시험은 무슨 그건 학대지. 대학원생이니까 신고를 안 하는 거지.”


할아버지들은 진한 경멸의 눈빛을 담아 정장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한데, 정장 할아버지는 두 분의 눈빛에 개의치 않았다.


“원래 모든 학문을 배울 땐, 정석이 뭔지 맛을 보는 거다. 그게 힘들다면 좀 더 빠른 방법을 알려주려고 했다.”

“저, 저 말만 뻔지르르한 놈.”

“호진이가 안 도망간 게 용하다 이놈아. 어쩐지 요즘 우리 호진이가 피곤해 보인다 혔더니.”

“그래서 결과는 어찌 됐는데?”

“시장 상인들 얼굴을 다 외운 걸 보면 잘하고 있을 거 같긴 헌데.”


두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시험 결과가 어떤지 궁금한 눈치였다.


“기대 이상이다.”

“진짜?”


할아버지 두 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가(家) 네 기대 이상이란 뜻이지?”

“그래.”


두 할아버지는 정장 할아버지가 얼마나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길래?”

“외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게 뭐 특별한 거여?”

“특별하지. 외운 자료들을 소화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단순히 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써먹고 있는 거다.”


두 할아버지가 깜짝 놀랐던 것도 잠시.


“흠. 역시 내 수제자여.”

“그렇지. 이게 소울이지. 호진이가 괜히 내 수제자가 된 게 아니지.”


흡족한 미소를 짓고 호진이 자랑을 했다.


“흠. 이제는 내 제자도 되는군.”


거기에 은근슬쩍 정장 할아버지가 합류했다. 그 말에 두 할아버지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새벽 육거리 시장에 세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물론,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니었다.


“저 영감탱이들이!”

“내 말 했지. 저 영감탱이들 관상이 안 좋아. 말년에 고생할 영감탱이들이여.”


호진을 제자로 삼지 못한 두 할아버지는 웃고 있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거 큰일이여. 큰일.”


단순히 제자로 못 삼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르칠 거야 찾아내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가 놈. 아직 한참 걸릴 텐데, 호진이 2월 말쯤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

“맞어.”


호진은 얼마 후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제주도로 넘어간다. 그러면 제자로 삼고 싶어도 삼을 수 없었다.


“저 영감탱이들의 자랑질을 들어야 한다는 소린데······.”

“안 되지!”


셋이서 돌아가며 자랑을 해댈 텐데, 그걸 견디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방법을 찾아야지.”

“방법?”

“그려. 학교 가서도 괜찮은 그런 방법!”

“호오. 그냥 여긴 포기하고 학교에 간 뒤를 노리잔 말이지?”

“그렇지!”


호진을 제자로 삼지 못한 두 할아버지의 은밀한 모의가 시작됐다.


“이가야 저기 봐라. 스승도 못돼 본 영감탱이 둘이 쑥덕이는구나.”

“뭐!? 니들 각오혀!”

“스승이 뭐 그리 중요허다고!”


바로 옆에서 할아버지들의 열정에 불을 붙였다.


“각오해 이 영감탱이들아!”

“스승? 그건 아무것도 아니여!”


덕분에 모의의 사이즈가 더 커졌다.


***


호진은 최근 들어 묘한 감각에 휩싸여 있었다. 가장 먼저 이 감각을 느낀 건, 정장 할아버지가 건네준 박스를 반절쯤 봤을 때쯤이었다.

그 일은 분식집에서 일할 때 벌어졌다. 손님이 계산할 때, 지갑 꽂혀 있는 여자 사진을 본 게 시작이었다.


“형 지갑에 사진 여친이예요?”

“어, 어? 아 이거?”


형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어. 여친이야. 사귄지 3개월쯤 됐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룹명 ‘여친’이라는 아이돌 멤버의 사진이 확실했다.

애초에 호진의 질문은 사진 속 여자가 여자친구냐는 뜻이 아니었다. 여친 아이돌이냐는 질문이었다.


“예?”

“왜? 놀라워? 형 여자친구라고.”


그 순간 호진에 눈에 뭔가 보였다. 형의 표정과 자료집에서 봤던 사진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경직된 표정과 어색한 미소. 동공의 크기와 시선의 방향.’


그 모든 것이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손님은 높은 확률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여태까지 외웠던 것을 활용하는 건 전혀 색다른 감각이었다.


“선남선녀가 만나셨네요. 부럽습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손님의 모습에 호진은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너도 여자친구 생기겠지.”


그 손님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사라졌다. 이 작은 해프닝은 호진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효과가 있어.’


이 깨달음은 호진에게 영감을 주었다. 단순히 외우기만 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외우고, 활용해 보는 거야.’


호진이는 시장과 분식집에서 많은 손님을 만난다.

시험해 볼 기회는 충분했다.

호진이는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대화하는 동안 손님들의 표정에 집중했다. 이 작은 변화는 놀라운 시너지를 가져왔다.


“오늘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으세요? 몸이 안 좋으신 거예요?”

“피곤해서 그렇지 뭐.”


대화하는 상대가 거짓말하는지 안 하는지 느껴지는 건 당연했고.


“몸도 피곤해 보이시고, 다른 걱정도 있으신 거 같은데요?”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집중하는 호진의 모습은 마치 ‘경청’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아. 사실 새벽에 나오는데 와이프랑 싸웠어. 결혼기념일이······.”


덕분에, 모두가 호진이와 대화하는 걸 즐거워했다. 효과는 대화하는 상대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점점 빨라지고 있어.’


배운 걸 써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활용하기 때문인지 외우는 속도까지 덩달아 올라갔다.

작은 변화가 시너지를 내며,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카트에 실려 왔던 수많은 상자들을.


“할아버지. 다 봤어요!”


정복하게 만들었다.


작가의말

부디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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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5. 제주도로 떠납니다. +14 20.08.29 7,967 224 11쪽
14 014. 졸업식 +14 20.08.28 7,996 246 12쪽
13 013. 간파의 업(2) +11 20.08.27 7,994 225 12쪽
» 012. 간파의 업(1) +18 20.08.26 8,167 237 12쪽
11 011. 정장 할아버지. +13 20.08.25 8,444 229 11쪽
10 010. ‘소울’의 업? (2) +13 20.08.24 8,280 234 12쪽
9 009. ‘소울’의 업? (1) +13 20.08.23 8,776 2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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