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사는게죄 님의 서재입니다.

재벌고 천재가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사는게죄
작품등록일 :
2020.07.20 10:55
최근연재일 :
2020.09.12 20:00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238,955
추천수 :
6,848
글자수 :
156,058

작성
20.08.18 15:00
조회
14,249
추천
221
글자
12쪽

001. 남을 위해 살았다.

DUMMY

[졸업생 대표. 윤호진.]


호명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입고 있는 게 교복이 아니라 양복이었다면, 모두가 성인이라고 생각할 만한 건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모두의 시선이 받으면서도 긴장한 기색 없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단상 위에 섰다.

그의 등 뒤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제17회 IPH ACADEMY 졸업식.]


저 멋들어진 영문을 풀어내면 이런 뜻의 이름이 나오게 된다.

사립 국제 고등학교.

제주도 세워진 이 학교는 일반적인 국제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이곳에 학생은 딱 2종류다.

천재 혹은 재벌.


“안녕하십니까. 윤호진입니다.”


듣기 좋은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영예롭고 영광스러운 자리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동아시아 최고 명문고의 졸업사를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학교는 굉장히 기묘한 곳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자본이 투입된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자본은 전부 각 나라의 재벌가에서 지불했다.

재벌가가 고등학교를 세운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는 재벌가 아이들을 위해.

둘째는 재능을 지닌 아이들을 선점하기 위해.

재능을 지니거나, 재벌가의 일원만 입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 덕분에 이곳은 특이한 이름으로 불렸다. ‘재벌고등학교.’


“제가 배우기로는 이런 자리에서 길게 말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애초에 졸업사를 듣고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졸업식처럼 모두가 서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고급 테이블에 둘러앉아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쟤가 그 소문의 윤호진이야?”

“어. 올해 최고 매물이라고 소문났던 걔 맞아.”

“그 정도야?”

“수석인 것만 봐도 알잖아.”

“하긴,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기 수석이면···.”

“제국그룹에서 난리 쳤던 거 기억나? 그거 쟤 스카웃 하려고 그랬던 거란다.”


재벌가 아이들이 그를 쳐다보며 품평하는데도 윤호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니 간단히 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천천히 졸업사를 이어갈 뿐이었다.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웠습니다. 이곳을 졸업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윤호진의 졸업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학생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는지, 모두가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졸업사는 최고의 성적을 받은 이가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늦게 끝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윤호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일찍 끝나서 좋으시면, 박수라도 부탁드립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호진의 센스있는 말에 강당에는 천천히 박수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저 녀석 진짜 괜찮은데?”

“말했잖아. 다들 노리던 녀석이라고. 나도 제국그룹처럼 움직였어야 했는데. 아쉽다 아쉬워.”

“일정을 30분은 앞당겨 줬는데, 박수 정도야.”


이윽고 절대 박수치지 않을 것 같던, 재벌가 아이들도 박수를 쳤다. 콧대높은 그들이 졸업식에 박수를 쳐준 것은 17회 졸업식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로써 졸업식을 마칩니다.]


이 졸업식과 함께 윤호진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


졸업과 동시에 제국그룹에 비서로 취업했고, 명함까지 나왔다.


[제국그룹 비서실. 윤호진.]


그 명함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후 그는 많은 것들을 받았다.

새로운 집, 차, 카드, 월급.

제국그룹은 그에게 엄청난 지원을 해줬다.


‘내 선택이 옳았어.’


재벌고에서 호진은 많은 천재를 만날 수 있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수석으로 졸업하긴 했지만, 때때로 재능의 벽을 느꼈다. 각 분야에 특화된 천재들의 재능.

그건 호진이 따라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사업을 준비하거나, 대학에 진학할 때 호진은 비서 취업을 받아들였다.

취업한 호진이 할 일은 딱 하나였다. 그룹 후계자인 최성문 보좌. 그는 호진과 함께 재벌고를 졸업한 동문이었다. 이제 막 20살이 그를 보좌할 일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변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재벌의 삶.

그와 함께 대학교를 다니며 사람들의 동경과 부러움을 깨달았다. 방학 때마다 해외를 누비며 더 넓은 세상과 더 큰 자유를 깨달았다.

물론, 그렇게 새로운 삶을 만끽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호진은 최성문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움직였다.


“수강 신청 부탁해.”

“과제 부탁해.”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


그의 잡다한 일을 도맡았다.

물론, 호진은 유능했다.


“나이스 호진! 역시 수석!”

“호진아 역시 네가 최고야! 뭐 하나를 해도 꼼꼼하다니까.”

“역시 시간은 호진이지.”


최성문은 언제나 호진을 높이 평가했고, 실제로 주기적으로 보너스와 월급이 상승하기도 했다.

대학교 때만 해도, 호진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변했다.


보좌는 군대까지 이어졌다. 호진은 최성문과 동반입대했다. 재벌로써 드문 결정이었지만, 왜 보냈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황제 병사.’


그는 이등병에 불과했지만, 별을 움직였다. 홀로 생활관을 쓰고, 어떤 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같은 부대 안에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호진의 역할은 최성문을 향한 악의를 받아내는 쓰레기통이었다.


“야 윤호진!”

“이병 윤호진!”

“씨발. 표정 봐라? 왜 재벌집 종놈 노릇하니까 너도 우리가 우습냐?”

“아닙니다!”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이새끼야?”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씨발. 60년대에 쓰던걸, 염병하고 있다. 왜 좆같냐? 널 보는 우리는 더 좆같아!”


최성문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호진도 함께 누리고 있었다.

그는 훈련을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했고, 언제나 성문의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우스운 건, 잠자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썼다. 생활관을 홀로 쓰는 건, 최성문뿐이었다.

이런 배치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악의가 호진을 향해 쏟아지게 만든 것이다.


“야. 종놈! 이게 군대냐! 이게 나라야!?”

“죄송합니다!”

“내가 너였으면, 훈련은 참석했다. 너도 존나하기 싫은니까 빼쳐 먹는 거잖아. 막 다른 세상 사는 줄 아는 거고, 안 그래?”

“죄송합니다!”


호진은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주말마다 그룹에서 호진을 면회했고, 보고서를 받아갔다.

웃기게도 이 악의를 받아내는 일조차 ‘보좌’의 영역이었다.

받는 돈을 생각하면, 바뀐 인생을 생각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고통쯤은 이겨낼 수 있다고 호진은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생긴 균열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


지옥 같은 군 생활이 끝나고, 다시 대학에 복학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최성문이 변했다. 군 생활을 하며, 호진은 그저 종놈이라는 걸 깨달은 것처럼.


“과제 해놔.”

“대리 출석 좀 해줘라.”

“시험은 내 것도 같이 봐라.”


최성문은 학업에는 흥미가 식었는지 모든 걸 호진에게 떠밀었다.

다행히 이건, 최성문의 지시였다. 호진은 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듣고, 대신 시험을 쳤다.

교수들도 그걸 알았지만, 군대에서처럼 최성문은 언제나 예외였다.

제일 웃겼던 건, 대리 출석하고 대리 시험을 친 최성문이 호진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였다.


“잘했어. 보너스 입금했다.”

“고마워.”

“야. 이제 말투도 좀 바꿔라. 내가 니 친구야?”

“감사합니다.”


그는 호진이 해준 것에 고마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성문이 고마워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다.

그걸 최성문은 군대에서 깨달았고, 호진은 여전히 몰랐을 뿐이었다.

그 뒤, 호진의 일과는 많이 변했다. 낮에는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저녁에는 최성문을 위해 운전했다.


“하. 문 열어.”

“예. 도련님.”

“얘 태우고.”


술에 취한 여자와 최성문을 호텔로 바래다주는 일. 고작 그 일을 위해 저녁 시간을 전부 최성문에게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불평할 순 없었다.

그게 바로 호진의 일이었다.


“시험은 이제 지시하지 않아도, 네가 쳐.”

“예. 도련님.”

“성적 유지는 당연한 거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진짜 괜찮은 패를 뽑았다니까. 알겠어 가봐.”


그에게 쓸모 있기 위해선, 학업과 보좌 무엇하나 놓치면 안 됐다.

호진은 악착같이 그 무엇도 놓치지 않았다. 남은 대학 3년 그가 만족할 만한 성적을 가져왔고, 충실하게 그를 보좌했다.

하지만, 호진만 열심히 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사건이 터졌다.

언제나처럼 클럽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수십 대의 경찰차가 그 클럽을 습격했다.

프라이빗 룸에서 여자를 성폭행하고, 마약 파티를 벌인 사건이었다.

재벌가의 자제들과 연예인은 물론이고, 최성문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 결과, 제국그룹이 움직였다.

회장의 명령하에 비서실 전체가 움직였다. 사고는 최성문이 쳤는데, 책임의 화살은 호진을 향해 날아왔다.


“윤호진. 책임져라.”

“예?”

“혐의만 인정하면, 나머진 우리쪽에서 정리해주겠다. 1년 7개월만 살고 나오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호진은 이걸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는 세계가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였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그가 살아온 성과는 모두 최성문의 차지였다.

그는 여전히 제자리였고, 아무것도 남긴 게 없었다.

그래서 비장의 수를 준비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녹음기. 이것으로 새 삶을 시작할 것이다.


“전과를 가진 채 도련님을 보좌하는 건 힘들 테니, 퇴직을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새 삶은 남을 위한 인생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바로 처리해주지. 퇴직금도 넉넉히 넣어주겠다.”


다행히 비서실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이건 실수였다. 퇴직이 처리되면서, 제국그룹은 호진을 완벽하게 잘라낼 수 있었다.


“모든 혐의를 인정하겠습니다.”


호진이 혐의를 인정한 순간, 마치 짜인 각본처럼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곧장 구치소에 갇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구치소에서 비서실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손에는 호진이 준비한 비장의 수가 들려있었다.


“녹음기를 준비하고 회사까지 나가고 싶다고 하면, 우리가 이럴 수밖에 없잖아. 회사에 남고 싶다고 했어야지.”


쉽다고 생각했는데, 정 반대였다. 그는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했을 뿐이었다. 완벽히 잘라내기 위해 틈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날 저녁 호진은 자살로 위장된 살해를 당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한 남자의 생명이 꺼지고, 후회만이 남았다.


***


호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래서 거길 왜 가겠다는 거야. 그 먼 제주도를 왜!”


화내고 있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말이 좋아 재벌고지. 종놈들 만드는 게 무슨 학교라고!”


엄마의 말대로였다.

자신은 종놈이었으며, 그림자 속에서 남의 인생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졸업할 때는 그게 최고의 선택인 줄 알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거길 도대체 왜 가.”

“비서로 취업할 생각 없어. 그곳에 최고들이 모이니까 가는 거야.”


내가 그곳에서 다시 한번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다시는 ‘비서’가 되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최고들을 모아서 나도 재벌이 돼보게.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 보게.”


재벌고를 발판으로 삼겠다.


“재벌고를 졸업해서, 최초로 재벌이 된 학생이 되고 싶어.”


내 인생을 살겠다.


“······우리 아들 다 컸네.”


그 순간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고.


[2008년 1월 7일]

[회귀 완료.]


엄마가 호진을 끌어안았다.


‘어?’


그제야 호진은 이게 꿈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2008년 1월 7일.

재벌고 입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겨울.

과거로 돌아왔다.


작가의말

부디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재벌고 천재가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38 20.09.13 3,671 0 -
29 029. 함께. +21 20.09.12 4,876 220 12쪽
28 028. 무대 공포증(3) +29 20.09.11 5,349 231 12쪽
27 027. 무대 공포증 (2) +14 20.09.10 5,924 219 12쪽
26 026. 무대 공포증 (1) +14 20.09.09 6,251 232 12쪽
25 025. 두 번째 프로젝트 가동. +36 20.09.08 6,612 270 12쪽
24 024. 두번째 프로젝트. +22 20.09.07 7,002 270 13쪽
23 023. 교감 (3) +28 20.09.06 7,190 285 14쪽
22 022. 교감 (2) +16 20.09.05 7,293 246 13쪽
21 021. 교감 (1) +20 20.09.04 7,416 250 12쪽
20 020. 수강 신청. +23 20.09.03 7,707 255 12쪽
19 019. 입학식. +14 20.09.02 7,767 252 12쪽
18 018. 시험이 끝나고. +16 20.09.01 7,840 241 11쪽
17 017. 입학 시험. +24 20.08.31 7,883 267 11쪽
16 016. 제자는 스승을 따라간다. +12 20.08.30 7,940 226 12쪽
15 015. 제주도로 떠납니다. +14 20.08.29 7,967 224 11쪽
14 014. 졸업식 +14 20.08.28 7,997 246 12쪽
13 013. 간파의 업(2) +11 20.08.27 7,994 225 12쪽
12 012. 간파의 업(1) +18 20.08.26 8,167 237 12쪽
11 011. 정장 할아버지. +13 20.08.25 8,444 229 11쪽
10 010. ‘소울’의 업? (2) +13 20.08.24 8,280 234 12쪽
9 009. ‘소울’의 업? (1) +13 20.08.23 8,777 222 12쪽
8 008. 커피가 맛있다. +8 20.08.23 8,971 219 12쪽
7 007. 味 다방 종업원(3) +9 20.08.22 9,074 234 12쪽
6 006. 味 다방 종업원(2) +10 20.08.21 9,269 216 12쪽
5 005. 味 다방 종업원(1) +7 20.08.20 9,743 213 12쪽
4 004. 인사(2) +11 20.08.19 10,098 234 12쪽
3 003. 인사(1) +5 20.08.18 10,900 223 12쪽
2 002. 카르마. +10 20.08.18 11,784 207 12쪽
» 001. 남을 위해 살았다. +20 20.08.18 14,250 22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