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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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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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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324

작성
19.04.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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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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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글자
9쪽

자금성 1)

DUMMY

열병식 열흘 뒤에 일본군 포로들은 귀환 길에 올랐다. 떠나기 며칠 전, 오오시마 소장의 전갈을 받은 나는 일본군 병영을 방문했다. 귀국을 앞둔 병영에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나를 맞은 오오시마 소장은 말없이 차만 마시다 뚜벅 말했다.

“신 상, 혹시 일본에서 공부해 볼 생각은 없는가?”

“ ... ?”

나는 묵묵히 오오시마를 응시했다. 쉽게 꺼낸 말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지만 앞날을 아는 나로서는 가볍게 응대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반 세기에 걸쳐 대륙을 휩쓰는 태풍의 눈이 될 일본, 그곳에서 할 일이 무엇일까? 군부의 하수인으로 중국과 조선을 핍박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과분한 호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이 좋습니다. 쇠락한 것들은 무너지고 새것들이 잉태되는 혼돈 속에서 보람을 찾고 싶습니다.”

“흐음, 일본은 배타적이란 뜻인가?”

“그건 어디나 마찬가집니다. 외국인이라면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요. 지금은 서세동점의 시대, 왕국들이 민주주의 국가로 바뀌는 과도기입니다. 저는 그 변화히는 시대를 현장에서 겪으며 지켜보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치열한 변화의 현장은 바로 이곳, 대륙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오시마는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 되었다.

“일찍이 신상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네. 명치유신을 겪으며 숱한 인재들을 보았지만 세상을 보는 혜안이나 스스로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 수양을 쌓은, 그것도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청년이.... 장래가 촉망되네. 그래서 지켜보고 싶다네. 떨어져 있더라도 연락은 하고 지냈으면 하네.”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감히 청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장군님의 지우知遇를 얻은 것은 평생의 영광입니다.”

오오시마 소장은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손아귀에 힘을 주며 잠시 잡고 있던 오오시마는 와락 내 어깨를 당겨안고 한동안 다독였다. 나는 그 순간 아버지의 정을 느꼈다. 새롭게 맺어진 인연의 끈이 진하게 느껴졌다.


군대에서는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이다. 너무 튀면 동티나기 마련이니까. 이번 경우가 딱 그랬다. 베이징에서 개선식을 거행하라는 황명이 이홍장에게 내려온 것이다. 열병식은 톈진에서의 1회성 행사로 끝난 게 아니었다.

이홍장이나 좌보귀에게는 무쌍의 영광일런지 모르지만 제식훈련이 지겨운 장병들에게는 '전혀 아니올시다' 였다. 결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열병식을 다시 준비해야했는데 이번에는 황실의 친람 행사라 더 긴장해야 했다.

귀환일자가 임박한 일본군 포로들은 빠질 수 밖에 없어 봉군 부대만의 단독행사였다. 열강 외교사절들을 초대하고 황실 가족들 또한 빠짐없이 참석한다고 했다.


부대와 함께 베이징으로 이동하던 센위가 다가오더니 말머리를 나란히 붙인다. 말이 흔들리는 박자에 맞춰 엉덩이가 씰룩씰룩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말 위에 엎드리다시피 매달려가는 나를 보더니 한 마디 한다.

“그러면 힘들어서 얼마 못 가.”

“아직은 참을 만 한데.“

“형 말고 말 말이야.”

“....!”

“등을 곧게 펴고 체중을 엉덩이 안쪽 좌골에 실어. 다리는 말 몸통을 껴안듯이 자연스럽 게 조이고, 고삐는 두 주먹 사이로 통과시켜 양젖 짜듯이 부드럽게 움켜쥐어야 해.”

언제 배웠는지 어린 녀석이 잘도 탄다.

하지만 지금 자존심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스승이 있을 때 얼른 배워야 한다.


“좋아. 잘 했어.”

“자꾸 떨어질 것 같은 데.”

“네 발로 걷는 동물은 모두 특유의 움직임이 있어. 형은 지금은 그 움직임에 적응하는 중이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적응될 거야.”

“맛만 보여주고 빼는 거야?”

“짧은 시간에 다 가르쳐 줄 수는 없지. 말머리의 흔들림에 고삐 쥔 팔의 움직임을 맞춰. 그러면 등과 허리로 이어지는 상체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말에 맞춰질 거야.”

당장 시키는 대로 했다. 맙소사...! 무슨 해독제 먹은 것처럼 한 방에 허리를 세우고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어때?”

“구불리 만두 값은 충분히 한 것 같네.”

“그럼 마화 값도 해 볼까?”

바싹 다가오더니 제 고삐로 내가 탄 말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끼럇 !

어어엇....!

말이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잡았던 중심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뒤에서 병사들과 작림이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센위의 외침도 들려온다.

“어깨를 낮추고 말한테 몸을 맡겨.”

얼른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그 날 다섯 번을 굴러 떨어졌다.


베이징에 도착한 날 저녁, 숙영지에 도착한 나는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허벅다리에서 시작된 뻐근함은 통증으로 변해 온몸이 아팠다. 누우나 앉으나 도무지 편치가 않다. 막사에 앉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센위가 허리춤에서 접은 유지를 꺼낸다.

“이걸 발라 봐.”

펴보니 박하냄새가 강하게 나는 하얀 연고였다.

“근육통 약이야.”

반색을 한 나는 당장 벗고 허벅다리부터 바르기 시작했다.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며 온 몸에 연고를 바르기 시작하자 센위가 문득 외면한다.

“저녁 먹고 다시 올게.”

평소와 달리 조그맣게 중얼거리곤 도망치듯 잽싸게 사라졌다.


그날 저녁 숙소를 찾은 센위는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다 불쑥 말했다.

“우린 펑요우朋友 맞지?”

느닷없는 말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여태 잘 지내던 녀석이 왜 이런 말을...?

“그러엄, 맞지.”

영혼 없는 대꾸에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럼 지금부터 들은 말은 비밀을 지켜줘야 해.”

“물론이지. 그럴게.” 끄덕였다.

하지만 꺼낸 말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숙친왕肅親王 선기善耆의 딸. 부친에게 야단맞고 집을 뛰쳐나왔다. 철모자 왕인 부친은 황실에서도 높은 신분. 이번 열병식에 황족들이 참석한다니 부친도 올 것이다. 게다가 황족들 대부분은 내 얼굴을 안다. 열병식에 나갔다가는 대번에 들통 나 집으로 잡혀갈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열병식에는 빠지고 싶어.”

맙소사! 이 녀석이 여자였단 말인가? 한 달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도 까맣게 몰랐다... 이리 멍청할 수가 ! 하지만 속은 건 나만이 아니다. 청군 장령들 모두가 다 마찬가지. 껄렁껄렁 걸어 다니는 모습 어디에 여자다운 구석이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예쁘장하기는 하다. 또 우공동모왕이 따르는 걸 보고 진즉 눈치챘어야 했다. 꼬맹이들이 사내자식을 그만큼 따르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게다가 열일곱 살이라니 ...! 기껏해야 열두어 살쯤으로 짐작했었다. 그럼 계속 반말하고 펑요우 朋友를 들먹인 게 진짜 맞먹으려는 수작이었단 말 아닌가? 그런데 친왕의 딸이라면 황족. 처녀 때는 꺼어거格格, 혼인하면 군주君主로 불리는 높은 신분이다. 그렇다면...

“음, 그럴 만도 하겠다.”

나와는 까마득한 차이.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펑요우朋友를 들먹인 건 오히려 나를 많이 봐준 셈 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용 놀이가 인기를 독차지한 데는 꼬맹이들의 역할이 컸다. 그들이 발랄하게 뛰놀 수 있었던 것은 따꺼와 함께였기 때문. 따꺼가 빠진 꼬맹이들만으로 톈진에서 보여준 발랄한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


센위도 내 의문에 공감했다.

“그럼 나랑 꼬맹이들이 이번 행사에서 빠지면 되잖아?”

턱도 없는 소리. 우공동모왕은 이미 봉군 부대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렸다. 장령들이 납득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우리는 대안을 찾아냈다.

“얼굴을 가리면 되지 않을까?”

“어떻게...?”

“가면이나 변장. 베이징은 경극의 도시야.”

“그럼 ?”

“경극 분장을 하자면 꼬맹이들도 좋아할 거야.”


다음 날, 꼬맹이들을 데리고 왕푸징 거리로 나섰다. 왕푸징은 왕가의 우물. 자금성 옆 황족거리로 물맛 좋은 우물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이곳은 조차지였다. 골동품상, 식당이 많고 오후부터는 포장마차도 열린다. 우리는 경극가면 가게를 찾았다.

장궤 노인이 꼬마들 좋아할 법한 가면을 골라 준다.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고 손댈 생각을 않던 센위가 물었다.

“혹시 분장사도 있나요?”

노인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당란, 당란当然, 가면도 그들 솜씨라오.”

센위가 내게 나직이 말했다.

“아예 분장을 하려구, 가면만 썼다가 혹시라도 벗어보라면 ... 낭패잖아?”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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