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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수선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무협

공모전참가작

심씀
작품등록일 :
2024.05.09 10:54
최근연재일 :
2024.06.21 23:55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28,719
추천수 :
667
글자수 :
307,356

작성
24.06.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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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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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32화. 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DUMMY

아침에 일어난 나는 마당으로 향했다.

기지개를 켜고 우물에서 간단히 세수를 마치는 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번 달에 상단에 공급할 곡물은 다 채웠으니 오늘은 애들 데리고 소풍이나 갈까?”


햇살 좋고 바람도 선선한 게 소풍 가긴 최고의 날씨였다.

매일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면 사람은 병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눈싸움이나 소풍을 하며 정신을 환기하는 것도 수행의 연장선이다.

아직은 이른 봄이었기에 아침엔 쌀쌀했지만, 낮이 되면 또 따듯할 것이었다.

문득 마당을 둘러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어디 갔지?”


라니와 팔계가 보이지 않았다.

라니야 그렇다 쳐도 팔계는 매번 늦잠을 자기에 내가 깨워주지 않으면 온종일도 퍼질러 잘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이 아침 일찍부터 보이질 않는다.


‘연기기도 됐겠다, 녀석들도 이제 철이 들어서 시키지 않아도 밭일하러 간 건가?’


녀석들도 이제 자발적으로 일할 때가 되었다.

막말로 처음이야 내가 녀석들을 부려먹었지, 이제 함께 수행하는 처지라는 걸 녀석들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우으··· 선인님······.]


“큭··· 뭐, 뭐야?!”


천지를 뒤흔드는 울림에 머리는 물론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불현듯 밤이 오듯 내 주위가 캄캄해졌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곤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이었다.


“라니······?”


라니였다.

그것도 그냥 라니가 아니라 몸집이 태산처럼 거대해진 킹갓제너럴엠페러마제스티충무공진선 버전의 라니였다!


“이, 이게 무슨······.”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라니의 눈망울이 마치 달처럼 느껴졌다.

다음 순간.


[흐흐, 이제 선인이 쥐방울처럼 보이는구려.]


쿠웅, 쿠웅-


라니의 옆으로 팔계 역시 우주적인 몸집을 자랑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만 아연하여 바지에 오줌을 지릴 뻔했다.

라니가 천둥처럼 말했다.


[저 어떡하죠 선인님? 실수로 영초를 잘못 먹었더니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분명 팔계가 또······.”


내가 뭐라 답할 새도 없이 팔계가 말을 가로챘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일단 내 볼기 맛이나 보시오.]


“뭣······!”


쿠웅!


도망칠 새도 없이 팔계가 볼기로 내 몸을 깔고 앉았다.

팔계가 껄껄대는 소리가 벼락처럼 사방에 내리쳤다.


[내 볼기를 신나게 걷어찰 땐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 어디 선인도 한 번 당해 보시오, 흐흐흐.]

[팔계 씨! 그러면 못 써요. 그런데 선인님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네요?]


“컥······!”


나를 깔고 앉은 팔계도 모자라 라니마저 블랙홀 같은 콧구멍을 들이미는 광경 속에서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


“괴로워······ 괴로워······.”

“······.”


유설령은 침소에 누워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김준연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유설령이 곁에 서 있던 물귀신에게 물었다.


“정말 이자를 유귀 언니가 데려오라고 명한 게 맞습니까?”


[예에······ 그렇습니다아······.]


“허어··· 그보다 이자는 왜 괴로워하는 겁니까? 설마 납치할 때 저주문이라도 사용한 건 아니겠지요?”


[아, 아닙니다아······ 그냥 가위에 눌린 듯한데에······ 몽귀를 데려와 살피게 할까요오······?]


“아니라면 됐습니다. 이만 나가서 일 보세요.”


[예에······.]


물귀신이 발자국을 남기며 떠난 후.

다시 김준연을 내려다보던 유설령이 한숨을 흘렸다.


“언니께서는 다음 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이런 일을······.”


며칠 전부터 광증이 도진다 싶더니 결국 유귀가 일을 낸 것이었다.

그런 유귀를 유설령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유귀는 귀도공법을 익히기 시작한 이후부터 광증을 앓기 시작했고, 그 광증은 지금까지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등장한 유귀가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품은 채 유설령에게 다가왔다.


“어때? 이번에 내가 새로 구한 장난감이.”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뭐가 안 된다는 거니? 아하, 설마 넌 그 여자를 걱정하고 있는 게로구나?”


이윽고 손을 뻗은 유귀가 김준연의 뺨을 어루만졌다.


“내가 백천화 그것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고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으음··· 괴로워······.”

“그것이 오십 년 전에 내 머리를, 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머리의 절반을 날려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삼십 년 전에는 우리 대유령명궁 문도들의 다리 역시 날려버렸지.”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를······.”

“난 아직도 그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러니 이자는 그 대가···.”

“차라리 절 죽여서 시체를······.”

“이자는 아까부터 왜 이리 꿍얼거리는 것이야!”


짜악-


유귀가 김준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그대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그제야 깨어난 김준연이 아직 덜 깬 눈을 끔뻑거렸다.

유귀와 유설령을 둘러보던 김준연이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여기는 본 궁주의 유령명궁······.”

“아, 그럼 전부 다 꿈이었구나. 실례지만 물 좀 주시겠습니까?”

“이게 어디서 감히 본녀에게 명령을···.”

“죽다 살아났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알겠다. 기다려.”


너무도 간절한 김준연의 얼굴에 당황한 유귀가 저물계에서 꺼낸 잔에 물을 만들어냈다.

물을 개운하게 마시는 김준연의 모습에 안도하던 유귀가 이내 역정을 냈다.


“이노오옴! 주제도 모르고 본녀를 부려먹다니!”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정신이 없어··· 그보다 이 화과자 좀 드셔보시겠습니까?”

“으응······?”


얼떨결에 김준연이 건네준 화과자를 받아든 유귀가 우두커니 눈만 깜빡거렸다.

머지않아 화과자를 한 입 먹은 유귀의 얼굴이 밝아졌다.


“맛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주전부리는 처음이야!”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군요. 마침 제게 향이 좋은 약초가 있는데 차를 만들어 함께 드시면 더욱 맛있을 겁니다.”

“호오, 좋다! 좋아!”


어느새 유귀와 함께 차를 만들기 시작한 김준연을 지켜보던 유설령이 식은땀을 한줄기 흘렸다.


‘······의외로 유귀 언니와 죽이 잘 맞잖아.’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당연히 유설령은 모르고 있었다.

한때 김준연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완인간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사이 언제 어디서든 화란을 위해 저물계에 넣고 다녔던 화로와 주전자로 수령초를 우린 차를 만들어 유귀에게 내어주던 김준연이 주변을 살폈다.


‘여긴 유령명궁인가?’


김준연은 기절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어제 보았던 유령명궁의 궁주.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을 잡아먹은 귀신.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을 납치한 범인은 유귀가 가장 유력했다.


‘그나저나 어째서 나를 납치한 걸까······.’


이내 김준연은 그게 바보 같은 의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백웅이 날 찾아와 보복했듯, 유귀 역시 화란에게 보복하기 위해 날 납치한 거겠지.’


그렇다면 일단 유귀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김준연에게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격이 좀 격정적인 걸 제외하면, 유귀는 화란이랑 비슷한 스타일이다.’


스스로 본녀라 칭하는 말투부터 시작해 유귀는 화란의 열화판이자 흑화한 버전이라 판단한 김준연은 곧바로 자세를 바로 했다.


“혹 바둑을 좋아하십니까?”

“바둑? 난 그런 돌 놀음보단 시를 짓는 것이 좋다.”

“그럼 유귀 님을 위해 제가 시 한 수 읊어보겠습니다.”


다음 순간 주전자에 화령초를 몰래 집어넣은 김준연이 유귀의 잔에 차를 따랐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느닷없이 무슨, 오호라······.”


화령초의 영력이 우러나 붉게 물든 차를 한 모금 마신 유귀가 황홀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물의 변화를 곧바로 시로 지어내다니, 너는 시를 아는 자로구나······.”

“그저 귀동냥한 것으로 흉내 냈을 뿐입니다.”

“거기다 겸손하기까지. 네 이름이 뭐야?”

“김준연이라 하옵니다.”

“김준연······.”


끝내 유귀는 김준연에게 완전히 넋을 놓았다.

그 모습에 김준연이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하던 사이.


‘크, 큰일이야······!’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설령은 조금씩 일어나는 유귀의 감정변화에 하얗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이거, 분명 그거다! 당장 말려야만 해!’


유설령이 서둘러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좋다.”


말끔하게 비워낸 잔을 내려놓은 유귀가 김준연에게 선언했다.


“너를 본녀의 남첩으로 삼겠노라.”


유귀의 눈에 가득한 광증이 기이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예?”


방금 뭐라고?

남첩······?


“그리 기뻐할 것 없다.”


유귀가 말했다.


“이리 나와 통하는 이를 만나다니. 마침 본녀도 외로웠던 참인데 잘 됐어.”

“저는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아니 애초에 저는 그럴 생각이······.”

“여봐라! 당장 본궁의 모든 문도들과 귀신들을 모아 식을 올릴 준비를 하여라.”

“자, 잠시만요!”


나는 다급한 마음에 방에서 떠나려던 유귀를 불러세웠다.

처음과 달리 생글생글 웃고 있던 유귀가 나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느냐?”

“저는 남첩이 될―”


그때였다.


[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불현듯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유설령을 바라보았다.

유설령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하나 지금이라도 목숨을 건지고 싶다면 가만히 계십시오.]


“······.”


나는 유설령의 경고에 입을 꾹 다물었다.

한데 내가 도중에 끊은 말을 제멋대로 해석한 유귀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그리도 내 남첩이 되고 싶은 게냐? 서두르지 마. 본녀가 알아서 준비할 테니.”

“예······.”

“그럼 이틀 뒤에 보자꾸나. 설아 너도 따라와. 본궁의 귀신들은 화장하는 재주가 없으니 말이야.”

“예. 가시지요.”


유귀와 함께 떠나던 유설령이 나를 한 차례 돌아보고는 문을 닫았다.

문틈 사이로 유설령이 날 경멸하는 시선이 한동안 내 눈앞을 맴돌았다.


“하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긴 내가 오버를 좀 많이 하긴 했다.

결단기 수도자 두 명 앞에서 살아남으려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내뱉었으니까 말이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유귀의 남첩이 될 터.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어?”


반지가 없다!

다른 것은 그대로인데 우정의 반지만 쏙 사라진 상황.

머지않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결단기 수도자 정도면 나랑 화란의 반지에 법술이 걸려 있다는 건 바로 눈치챘겠지. 빌어먹을······.”


화란을 불러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도 사라졌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


‘자력으로 탈출한다.’


유령명궁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란의 말대로라면 유리세가가 북해를 다스린다고 했으니 북해 어딘가쯤엔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북해라면 신강과 그리 멀지 않다.

굳이 신강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납치된 나를 찾으러 오던 화란을 중간에 만나서 탈출하면 될 것이었다.


‘이틀 뒤에 보자고 했었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

구속된 것도 아니고 손발이 자유로운 지금이라면 탈출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방문을 연 순간.


[안녕하십니까. 저는 궁주님의 명으로 귀인을 모시게 된 수발귀···]


“흐, 흐아아아아!!”


[······귀인님?]


나는 목이 기린처럼 늘어난 귀신과 마주치자마자 혼절했다.


*


다음날.

유귀의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유설령이 한숨지었다.

창밖으로는 유령명궁의 문도들과 귀신들이 유귀와 김준연의 혼례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탁자에 올려둔 경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유귀가 물었다.


“어때. 이 유아의 손뼈로 만든 목걸이가 나랑 잘 어울려?”

“흠잡을 데 없으십니다.”

“그럼 새끼 박쥐의 두개골로 만든 귀걸이는?”

“······언니.”


순간 유귀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마주하고 있던 유귀에게 유설령이 애원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앞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려 이러십니까?”

“······겨우 몸종 하나 데려온 거로 뭘 그리 걱정해?”

“그 김준연이라는 이가 백천화의 몸종이 아닐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혹여 김준연이 백천화의 제자나 정인이라면―”


어느 순간 유귀의 어깨에서 튀어나온 반투명한 손이 그대로 유설령의 입을 틀어막았다.

눈길을 옮긴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유설령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뭐.”

“······.”

“그가 백천화의 제자나 정인이라면 뭐가 어쨌다는 게냐. 그렇다면 오히려 더 좋은 일이다. 그것의 소중한 것을 내가 빼앗았다는 것이니······!”


잠잠했던 광증이 다시금 피어오르기 시작한 유귀가 못 참겠다는 듯이 자신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무엇보다 김준연 그자, 근사하지 않느냐?”

“별로······.”

“그는 여느 남정네들과 다르다. 시를 알고 맛을 알지. 지금 같은 시대에 그처럼 도를 아는 사내는 흔치 않아. 그러니 내 것으로, 아아, 오늘 밤 내 것으로······.”


조금씩 힘이 실리던 손톱이 이내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피처럼 끈적한 황홀함에 젖은 유귀의 신음 속에서 유설령은 눈을 감았다.


‘광증이 유귀 언니를 전부 망쳐놓았구나······.’


유설령이 아는 유귀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유귀가 익힌, 유령명궁의 비술 중 하나인 음혼광마결 때문이었다.

음혼광마결은 죽음의 기운을 이용해 자신을 점점 귀화시키는 공법.

음혼광마결을 익힌 이에게 육신은 그저 껍데기일 뿐, 진정한 본체는 영혼 그 자체가 되기에 음기와 더욱 감응할 수 있어 폭발적으로 경지를 올릴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

이름에 광마(狂魔) 들어가는 것처럼 그 공법을 익힌 이는 음기에 미쳐 평생토록 광증을 앓아야만 했다.


‘······모든 게 이 세상 때문이다.’


유설령 역시 운이 좋아 결단기에 이른 순간 깨달았다.


‘이 세상은, 절대 평범한 방식으론 하늘 너머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원영기가 되기 위한 천지영기가 부족했다.

영약을 이용하려 해도 천지영기가 부족하기에 좋은 영약이 자라질 않는다.

유설령조차 어린 시절부터 기재라는 말이 귀에 박히도록 들으며 살아왔건만, 이 저주받은 세상에선 자신 정도의 재능은 범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결단기가 된 순간 그녀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유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남은 건 마도공법뿐.

그리고 마도를 선택한 대가는 혹독하고 끔찍했다.


“서툴러도 좋아. 오늘 밤 본녀가 이 세상의 쾌락 전부를 가르쳐 줄 것이니. 그러니 그자도 내가 기뻐하도록 노력해야 할―”

“이제 화장을 시작해야 하니 가만히 계시지요.”

“그래, 내가 화장하는 것을 깜빡했구나.”


입을 틀어막은 귀수를 스스로 풀어내고 다가온 유설령이 유귀의 의자를 자신에게 돌렸다.

그제야 잠잠해진 유귀도 유설령에게 얼굴을 맡겼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설아.”


평온한 얼굴로 유설령을 마주하던 유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가 만일 선을 넘는다면, 나를 막을 사람은 오직 너뿐이다. 알겠느냐?”


이 순간 유귀의 눈에 광증은 없었다.

간혹 유설령에겐 이런 순간이 있었다.

거짓말처럼 과거로 회귀한 듯한 순간이.

유설령은 언니를 위해서라도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감췄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잘 알아들었구나.”


다시금 광증을 되찾은 유귀가 천진난만하게 유설령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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