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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수선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무협

공모전참가작

심씀
작품등록일 :
2024.05.09 10:54
최근연재일 :
2024.06.21 23:55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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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21
추천수 :
667
글자수 :
307,356

작성
24.06.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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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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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8화. 오랜만이다.

DUMMY

이암이 말했다.


“검과 달리 권은 오롯이 수련자의 육체적 능력만을 요구한다.”


내가 검에 재능이 없는 건 단순히 도구를 다루는 재주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너의 육체는 검보다 강하다. 태초에 인간이 검 같은 무기를 들고 싸우게 된 건 쇠에 수족을 의태해 육골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함이었지. 그러나 육골이 쇠보다 강하다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나에게 검이란 나무막대기와 다르지 않다.

물론 거기에 영력을 담고 휘두른다면 웬만한 보검보다 위력이 뛰어나겠지만, 굳이 나무막대기에 영력을 담아 휘두를 바엔 도검불침의 몸에 영력을 담는 내지르는 게 더 위력적일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네가 검술에 재능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


반복적으로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던 나는 이암을 노려보았다.

이암은 촌철살인을 시도하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내 자세를 지도하고 있었다.


“어딜 보는 것이냐. 한눈팔지 말고 주먹에 집중해라.”

“이······.”


뭐라 대꾸하려던 나는 끝내 말을 삼켰다.

나는 지금 배우는 처지이다.

그렇기에 이암이 내게 뭐라고 떠들든 그 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무엇보다 그는 무림인이었기에 나 같은 수도자보다는 무공에 관해 이론적으로는 최소 몇십 수 이상 뛰어날 터였다.

이암이 말을 이었다.


“권법이란 단순히 주먹을 내지르는 일이 아니다. 권에도 도(道)가 있다. 너는 그 도를 깨우쳐야 한다. 주먹을 단순히 적을 공격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너의 의지와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생각해라.”


나는 주먹을 멈추지 않으며 이암의 말을 곱씹었다.

이암의 말대로라면 권법이란 단순히 육체지력의 사용이 아니었다.

의지와 정신을 담는다.

그럼 의지는 뭐고 정신은 뭘까?


‘의지란 주먹을 내지르는 것.’


내가 뻗고자 마음먹었기에 근육과 힘줄이 뼈를 움직여 주먹을 움직인다.

그것이 의지다.


‘그렇다면 정신은······.’


나는 끝없이 허공을 가르는 주먹 끝을 응시했다.

모든 행위엔 이유와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주먹을 내지르는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이 주먹을 내지르고만 있는가.


‘공기를 파(破)한다.’


내가 그렇게 다짐한 순간 영력이 영맥을 따라 주먹 끝에 몰렸다.

이윽고 다시 내지른 주먹에.


파아앙!


굉음 함께 찢어지던 대기가 폭발했다.

그대로 굳어버린 나는 주먹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왜 되냐?’


나도 놀랐다.

그냥 한 번 시험 삼아 해본 것인데 진짜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기 위해 이암을 돌아본 순간이었다.


“어, 어, 어······.”


이암은 완전히 경악한 얼굴로 그저 ‘어’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이암이 평소의 진중한 얼굴로 돌아와 팔짱을 꼈다.


“그, 그것이 내가 말한 궈, 권법의 도다.”

“······.”


이암은 태연하게 말을 절었다.

아무래도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응시하자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은 이암이 말을 이었다.


“검술에 재능이 없다 하여 다른 무공에도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이처럼 각자에겐 저마다의 재능이 있다.”

“그래서 내가 방금 뭘 어떻게 한 건데?”

“너에겐 분명히 권법에 재능이 있다.”

“딴소리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너도 잘 모르지?”

“이처럼 앞으로 끊임없이 수련한다면 언젠가는 주먹으로 산을 부수는 것도 가능할···.”

“얌마!”

“······후우.”


내 말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독백만 이어가던 이암이 “내 살다살다 이런 괴물은 처음 보는군”이라며 중얼거렸다.

표정을 가다듬은 이암이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온몸이 육편이 되어 도처에 흩어졌을 거다.”

“······그 정도야?”

“그 정도다. 아무래도 넌 네가 지닌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듯하군.”


그리고는 칼을 뽑은 이암이 자세를 잡았다.

이암이 칼을 휘두름과 동시에 검풍이 일었다.

나를 스치는 검풍 속에서 이암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일류라 자부할 수 있는 나조차 검풍을 일으키는 것이 한계다.”

“······.”

“한데 너는 주먹에 기를 담았지. 그것도 모자라 그 기를 발산하여 터트렸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내가 가만히 고개를 젓고 있자 이암은 허탈하다는 듯이 칼을 거뒀다.


“넌 이미 내공으로는 삼화취정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앞으로 네가 할 일은 동작에 형을 갖춰 초식을 완성하는 것. 더는 내가 가르칠 것이 없다. 애초에 내가 권법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요컨대 이암의 말은 “하산해라”라는 의미였다.

나는 내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아까처럼 영력을 담지 않는다면 내 주먹은 그저 평범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공은 내공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무리 내공의 수준이 절정에 달한다고 한들, 외공의 수준이 삼류밖에 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빚어진 부조화가 반드시 걸림돌이 될 것이었다.


“더 가르쳐줘.”


내가 말했다.


“검이나 권이나 몸을 움직이는 얼개는 같으니까 너 정도 고수면 대충 다 알고 있을 거 아냐.”

“더는 내가 가르쳐 봤자 네겐 걸림돌만···.”

“하루종일 주먹만 내질러도 좋아.”

“······.”

“나한테 뭐가 부족한진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까 더 가르쳐줘.”


이암이 내 눈을 마주했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결심을 내린 듯 다시금 칼을 뽑았다.


“그럼 그 괴물 같은 권에 검을 담아보는 거로 하지.”


이암이 말했다.


“우선 쾌(快)부터 시작하겠다. 네게 어떤 보형과 투로가 적합할지는 그 이후에 결정하겠다.”

“부탁해.”


이후로 나는 이암의 지도를 받으며 권법을 수련했다.


*


라니가 마당 한편에 피어난 꽃을 발견하고는 해맑게 나를 돌아보았다.


[선인님, 이거 보세요! 진달래예요!]


창고에서 작물 포대를 정리하고 나오던 나는 라니의 곁으로 다가가 함께 진달래를 내려다보았다.

원래라면 앙상한 가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 어느새 진달래 한 송이가 어여삐 피어나 있었다.

나는 옹골지게 자라난 다른 꽃봉오리들도 둘러보았다.


‘벌써 봄이네.’


이암의 말처럼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고 있었다.

이암이 천원산에 온 지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그사이 나는 공법과 권법을 연마하며 지냈다.

이제 내 의식영역도 1장이었던 것이 2장까지 늘어났고, 연단술의 실력도 나날이 늘어 조만간 원영하수오 같은 영약을 이용해 축기단 같은 단약에도 도전해볼 예정이었다.


[라니 소저. 미호 선생이 기다리는 중이니 빨리 오행구족단을 챙겨서 들어오시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마루에 올라선 팔계가 라니를 부르고 있었다.

지난번 십만대산에 다시 다녀온 이후로 라니와 팔계는 소연결을 포함해 각자 지현결과 금강비법까지 배우고 있었다.

지현결(地玄訣)은 이름 그대로 토 속성과 음양지기 중 음기가 합쳐진 공법이었다.

화란의 설명에 따르면 지현결을 익히면 토 속성이 음화하여 요수인 라니가 더욱 빠르게 경지를 쌓을 수 있을 것이었다.

반대로 팔계가 배우는 중인 금강비법(金剛飛法)은 금 속성과 양기가 합쳐진 연체공법이었다.

요즘 들어 팔계가 등이 간지럽다고 투덜거리곤 하는데, 아마도 이 공법 때문인 듯싶었다.


[음, 더 구경하고 싶은데······.]


좀처럼 걸음을 옮기지 못하던 라니가 못내 아쉬워했다.

나는 그런 라니를 위해 진달래를 향해 법력을 발산했다.

그러자.


[와아!]


여물어 있기만 했던 꽃봉오리들이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어났다.

내가 라니의 등을 쓰다듬었다.


“봄이 오면 여기에 화단이나 만들까?”


[정말요? 좋아요, 헤헤!]


신이 난 라니가 폴짝거리며 팔계에게 뛰어갔다.

나는 녀석들이 미호에게 수업을 들으러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화란의 방으로 향했다.


“화란 님.”

“들어오거라.”


방문을 열자 무릎을 꿇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던 화란이 내게 몸을 돌렸다.

화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솔직히 화란이 무슨 수련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원영기에 이르기 위해 의식공법을 연마하는 것 같은데, 아직 축기기도 되지 못한 내가 그녀의 수련을 이해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무릎을 꿇고 앉자 화란이 입을 열었다.


“또 그자에게 무공을 배우러 가는 것이냐?”

“예.”


내가 외출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화란이 걱정하는 듯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이암을 찾아가기 전 그녀에게 따로 기별을 넣고 있었다.

화란이 불현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대도 어엿한 연기기가 되었구나.”


그렇다.

연기기 초기 극성이었던 나도 이제는 연기기 중기가 되어 있었다.

영약을 먹은 탓도 있지만, 지난번 칠정 중 세 번째 감정을 깨우친 덕이 더 컸다.

솔직히 내가 강해졌다는 체감은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의식공법이란 오행공법이나 연체공법과 달리 내 자산을 관조하여 참오하는, 즉 자아를 깨우치는 수행법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명천화연 같은 공법만을 익혀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리라.


“불편한 곳은 없느냐?”

“없습니다.”

“그럼 아픈 곳은?”

“아픈 곳도 없습니다.”

“잠시 손을 이리 가져오거라.”


내 진맥을 짚던 화란이 그제야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끄덕였다.

화란이 날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이유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천지쌍수가 되어서 그런 것이겠지.’


말이 좋아 천지쌍수지만, 이제 나는 요단이 생긴 덕분에 경지를 올릴 때마다 요족의 부작용까지 감내해야만 했다.

천족은 경지를 올리지 못한다고 갑자기 죽는 일은 없다.

하지만 요족은 다르다.


‘이제 나도 언제든 음양지기가 폭주해 몸이 터져버릴 위험이 있어.’


지금이야 연기기 중기 수준인 천족의 영력이 연기 초기인 지족의 음양지기를 억누르고 있다지만, 자칫 관리를 잘못한다면 요단의 음양지기가 법화단전의 영력을 앞지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화란도 그것에 관해 경고했다.


“다행히 음양지기가 잘 정돈되어 있구나. 하지만 언제 그대의 음양지기가 폭주할지 모르니 지도공법을 익혀 천족과 지족의 수행 균형을 맞추거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한데 언제까지 제가 음양지기를 조심해야 하는 겁니까?”

“결단기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니라. 다만 그대는 아직 연기기이니 가능한 조심하는 것이 좋다.”


나는 가만히 끄덕였다.

안 그래도 명천화연도 거의 다 익혔겠다, 슬슬 미호에게 지도공법을 배워볼까 싶었던 참이었다.


‘그나저나 한 번에 여러 개를 하려니까 죽을 맛이네.’


보통이라면 경지를 올리기 위해 나처럼 무식하게 수행하진 않는다.

더구나 연기기라면 의식공법과 본인의 속성에 맞는 오행공법 이 두 가지만 배우더라도 대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찰 것이었다.


“그럼 당분간은 미호에게 지도공법을 배우며 요단도 연기 중기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대와 아이들이 영약을 먹을 시기가 이제 하루 남았던가?”

“그렇습니다.”

“그대에게 영약이 있어 다행이구나. 이번엔 원영하수오가 아닌 음화시와 양화시를 반씩 섞어 먹도록 하여라.”

“각자 음양지기를 품고 있는 영약들이니 먹으면 요단의 수행을 올리기 더 수월하겠군요. 알겠습니다.”


화란의 말대로 지도공법을 익히는 것 외에도 내가 요단의 경지를 올릴 방법이 있었다.

법력을 수련할 때도 화란이 레시피를 알고 있던 오행구족단을 만들어 먹어서 망정이지, 만약 이러한 영약들이 없었더라면 난 아직도 팔계에게 폐물환목공이나 연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녀오거라. 저녁엔 그대와 함께 차를 마시며 한담이나 나누면 좋겠구나.”

“저녁 먹기 전까진 꼭 돌아오겠습니다.”


화란에게 미소로 화답한 나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네.’


앞으로 나는 축기기에 이를 때까지 소연결과 지도공법을 연마해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명천화연을 포함해 지난번 라니와 팔계의 공법서를 사러 갔을 때 함께 구매한 수엽호신법도 함께 익혀야 할 판이었다.

막말로 다시 수험생이었던 시절로 회귀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자.”


이 모든 게 언젠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이다.

지금 공법 수행을 게을리하고 영약이 기댄다면 나는 언젠가 홀로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걸음마다.

스스로 걸음을 내디뎌 열매를 따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었다.


“왔군.”


절벽에 도착하자 동굴 입구에 걸터앉아 있던 이암이 나를 향해 뛰어내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손목을 풀며 이암과 함께 전에 명천화연을 수련했던 공터로 향했다.

공터를 훑어보던 이암이 흘리듯 말했다.


“돌멩이들이 많아졌군.”


당연히 갑자기 없던 돌멩이들이 생겨난 건 아니었다.

원래 저기엔 돌멩이들이 아닌 바위가 있었다.

요즘 나는 바위를 상대로 권법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이윽고 바위 앞에 다가선 내가 자세를 잡았다.


“후우······.”


바위를 부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영력을 담아 주먹을 뻗으면 그대로 바위가 부서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내 목적은 바위를 부수는 것이 아니었다.


“시작해라.”


이암의 목소리가 이어진 동시에 나는 바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영력이 깃들며 매서워진 주먹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린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먹에 덧씌운 영력을 한곳으로 집중했다.


‘부수는 게 아니라 관통해야만 한다.’


나는 권을 검처럼 다루기 위해 이암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권의 성질은 기본적으로 파(破), 즉 부수고 깨트리는 것이다.

그러나 검은 다르다.


‘검이란 찌르는 것.’


그렇기에 검은 권과 달리 힘이 온전히 한 지점에 집중되어 있다.


‘내 주먹에도 그 성질을 담는다.’


이윽고 내 주먹이 바위를 두부처럼 뚫고 들어갔다.

이것을 위해 나도 그동안 주먹을 내지르고 또 내질렀다.

그리하여 완성된 하나의 점.

하지만 이것만을 위해 그토록 바위를 부숴댔던 건 아니었다.


‘······도화권법(桃花拳法)!’


사아아아아-!


영력을 법력으로 바꾼 순간 바위에 틀어박힌 내 주먹을 중심으로 일점에 모여 있던 기운이 폭발한다.

작은 파편이 되어 비산하는 바위 사이로 꽃잎이 흩날렸다.

나는 주먹을 거뒀음에도 여전히 내 주위에서 어지럽게 흩날리는 복사꽃잎들을 눈으로 좇았다.

겉보기엔 그저 여리고 나약한 꽃잎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저 꽃잎 하나하나에 법력이 담겨 바위도 갈아버릴 만큼 예리했다.

이것이 그동안 내가 이암과 함께 명천화연을 응용하여 만들어낸, 오직 나만의 권법이었다.


‘무공에 법력을 더한다. 이암이 아니었더라면 혼자 생각해 내는 건 불가능했을 거야.’


일전에 이암은 내게 말했었다.


-삼화취정을 넘어서 천화난추에 이른 네 경지라면 그 권은 절대 권으로만 끝나지 않을 거다.


이암은 내 명천화연을 천화난추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냥 또 오해했구나 하며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거기서 단초를 얻어 결국 무공과 법력을 합친 도화권법을 만들어냈다.

이름이 도화권법인 건 복사꽃이 특징인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암의 딸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훌륭하다.”


이암이 말했다.


“화산파의 매화검법 이후로 이토록 아름다운 무공은 네가 만든 그 도화권법이 처음이다.”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거지.”

“우리······ 그렇군.”


이암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동안 난 네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러니 그 권법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또 그런다. 이름도 벌써 네 딸의 이름을 따서 도화권법이라고 정했는데 말이야.”

“······.”


입을 꾹 다문 채 한동안 나를 응시하던 이암이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내 딸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도 된다고 했지?”

“뭣?”

“내 딸의 이름을 붙여 만들 건 도화권법이 아닌 도화도법이다.”


이윽고 칼을 뽑아 환의 궤적을 길게 그린 이암이 품에서 인연단을 꺼냈다.


“그러기 위해선 나도 이제 이 인연단을 먹어야겠지.”


놀랍게도 이암은 아직도 인연단을 먹지 않았다.

이암의 말로는 인연단처럼 엄청난 영약을 먹으면 운기조식으로만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었다.

여하튼 내 도화권법도 완성했겠다, 이암도 욕심이 생긴 것인지 이제 도화도법을 만들기 위해 인연단을 복용할 생각인 듯했다.


“그럼 내가 호법 서줄게.”

“부탁하지.”


나와 눈빛을 주고받은 이암은 망설이지 않고 인연단을 삼켰다.

눈을 부릅뜨던 이암이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고오오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운이 이암으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이암이 무사히 운기조식을 끝마칠 수 있도록 주변을 경계하며 호법을 섰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여기 있었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에 내가 뒤를 돌아본 순간이었다.


“오랜만이다, 연기기 수사.”

“······.”


결단기 수도자 백웅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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