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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수선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무협

공모전참가작

심씀
작품등록일 :
2024.05.09 10:54
최근연재일 :
2024.06.21 23:55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28,722
추천수 :
667
글자수 :
307,356

작성
24.06.0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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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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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7쪽

30화. 잘 지내라.

DUMMY

나는 손끝에 소담스럽게 내려앉은 복사꽃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쿠웨엑!”


무릎이 절로 꿇린다.

입으로 피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더는 서 있을 힘이 없어 손끝 하나 까딱이지 못했다.


‘법력이······.’


방금 일격에 온 힘을 사용한 탓일까.

영력은 물론 음양지기까지 전부 소모해 체내가 진탕된 기분이었다.

백웅을 쓰러트리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 결과 백웅 역시 무사하진 못했다.


“······.”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누운 백웅은 흰자위를 드러낸 채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됐다.

이것으로 비무는 내 승리······.


“뭐야 씨발?”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기절한 백웅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이 허공에서 뭉치고 있었다.

머지않아 백웅의 육신이 흩어지고, 사람의 형상을 갖춘 물이 눈을 떴다.


[진천삼가 중 백씨세가의 부가주이자 창해자(滄海子)인 나 백웅이 너를 인정하겠다.]


울려 퍼지는 언령 속에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재탄생한 백웅이 나를 오시한다.


[하지만 내가 인정한 것은 너의 일수일 뿐, 네 모든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야.]


이윽고 거대한 수력이 나를 덮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숨을 참았던 나는 불현듯 기이함을 느끼곤 내 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백웅의 공격에 당했던 상처들이 회복되고 있었다.

백웅의 음성이 이어졌다.


“백 선자의 제자가 된 이상 절대 그녀에게 누가 되지 마라. 앞으로도 내가 널 주시할 거다.”

“······.”


백웅은 자기 할 말만 마친 채 물줄기로 변해 하늘로 솟구쳤다.

나는 백웅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곱씹었다.

눈까지 뒤집고 기절한 주제에 말도 많았다.


“······이암!”


나는 서둘러 이암을 살폈다.

다행히 나와 백웅이 비무를 했던 여파가 이암이 있는 곳까진 끼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나는 다시 한번 내 상태를 살폈다.

육신은 물론 밑바닥까지 소모했던 영력까지 회복되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백웅이 내게 사용했던 술법 때문인 듯싶었다.


“그래도 꼴에 결단기라고 약속은 지켰네.”


비둔술을 사용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백웅의 빈자리에는 두둑한 영석 주머니와 반지 케이스처럼 생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얼른 저물계에 집어넣고 이암의 호법을 섰다.


*


찰랑찰랑-


물로 변한 하반신으로 하늘을 헤엄치듯 백씨세가의 영역으로 날아가고 있던 백웅이 입술을 짓씹었다.


‘위험했다.’


복사꽃이 눈앞으로 흩날리던 순간, 중단전과 상단전을 해금해 경지를 축기기까지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그 순간 백웅의 육신은 수많은 살점이 되었을 것이었다.

물론 결단기에 이른 백웅은 금단이 깨지기 전에는 죽지 않을 터이지만, 그때 그가 느낀 감정은 명백한 두려움.

즉 죽음이었다.


‘상성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니었어.’


김준연의 속성은 목.

수도(水道) 공법을 익힌 백웅과 상생하는 관계라곤 하나 한쪽의 힘이 치우칠 정도로 커지더라도 절대 상극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백웅은 김준연의 공법이 마치 상극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법력을 운용해도 온몸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새싹을 없애지 못한 것이 그 증거였다.


“백 선자가 어찌 그놈을 제자로 들였는지 이해가 되는군······.”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그놈은, 김준연은 틀림없는 기재다.

만일 김준연이 화란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인물이었다면, 오히려 백웅이 김준연을 제자로 들이고 싶을 만큼 탐이 나는 인재였다.

그리고 결단기 수도자가 인정할 정도의 인재라면.


‘······놈은 앞으로 백 년 이내에 나와 같은 결단기에 이를지도 몰라.’


백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지영기를 가늠했다.

천영근자일지라도 축기단이 없다면 축기기에 이를 수 없다.

축기단을 먹거나 운이 좋아 기연을 얻어 축기기가 되었다고 한들, 결단기에 오르는 건 진정 하늘의 간택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모든 게 세계 자체에 천지영기가 극도로 희박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 원영기 이상의 수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세계였다.

그들이 속한 이 「세계」는.


“다녀오셨습니까.”


본가에 도착한 백웅은 평소와 다름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하던 가신을 뒤로 물렸다.


“당분간 날 찾지 마. 폐관에 들어갈 테니.”

“······예?”


놀란 가신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윽고 수련동으로 향하던 백웅은 상처가 생긴 소심한 자존심 위로 손을 얹었다.


‘천외천이 되는 건 반드시 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다짐 속에서 백웅이 들어간 수련동의 문이 굳게 닫혔다.


*


백웅과 비무를 벌인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이암의 호법을 서고 있던 나는 아침이 밝아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저물계에서 꺼낸 벽곡단을 씹었다.


“진짜 오래 걸리긴 하네.”


이암은 여전히 인연단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 운기조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우우웅-


주변 공기가 떨린다 싶더니 미약한 영력이 이암을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벽곡단을 급히 입에 집어넣자 영력이 이암의 머리 위로 휘몰아쳤다.

나는 점점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영력을 바라보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삼화(三花)······.”


적색, 청색 그리고 자색.

그 세 가지 색의 복사꽃이 이암의 정수리 위에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로부터 이암이 눈을 뜬 건 삼화가 그의 정수리에 깃든 순간이었다.


“환상 속에서 도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도화와 어울려 완전한 봄을 이루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암이 칼을 뽑으며 자세를 갖췄다.

그리고 시작된 춤사위.


사아아아-


칼날이 허공을 스칠 때마다 복사꽃이 피어났다.

나는 멍하니 이암의 검무를 지켜보았다.

시야를 아름답게 수놓는 복사꽃 속에서, 이암은 웃고 있었다.


“보아라.”


춤사위를 마치고 무릎을 꿇은 이암이 봄으로 물든 천원산의 풍경을 내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품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도화도법······ 도화회포(桃花懷抱)를.”


이 순간 마치 꽃잎이 아이의 형상이 되어 이암의 품에 안겨 있는 듯했다.

복사꽃이 흩날리는 소리가 마치 소녀의 웃음소리처럼 내 가슴을 간지럽힌다.

나는 사이 좋은 부녀의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이암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웃어라, 김준연.”

“······.”

“좋은 날이잖나.”


나는 이 세상에 남겨진 이암을 위해서라도 애써 웃었다.

칼을 거두고 돌아오던 이암에게 내가 물었다.


“근데 오기조원이 아니네?”


그렇다.

방금 이암이 달성한 경지는 삼화취정.

일전에 화란이 말한 대로라면 인연단을 복용한 이암은 오기조원이 되었어야만 했다.

물론 화란도 무공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기에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암이 답했다.


“만일 내가 절정경에만 이르렀어도 오기조원에 도달했을 거다. 하나 운공이 미숙하여 경맥을 완전히 뚫어내지 못해 인연단의 기운 대부분을 덜어내야만 했지.”


요컨대 이암의 말은 역량이 부족해 인연단의 영력을 전부 받아들일 수 없어 삼화취정에 그쳤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했다.

인연단의 영력을 대부분 뱉어냈다지만 그것만으로도 삼화취정에 이르다니.


“그럼 다음에 인연단을 또 먹으면 그때야말로 오기조원에 이르겠네?”


내가 위로하는 투로 말하자 이암이 고개를 저었다.


“네겐 미안한 말이지만, 더는 인연단을 복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엥? 왜.”

“앞으로 내가, 아니 우리가 걸어가야 할 계절이니까.”

“······?”


이암이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암이 말을 이었다.


“비록 너의 도움으로 맞이한 봄이지만, 그 계절만큼은 우리의 손으로 가꾸어나가고 싶다.”


이 자식 가만 보면 말을 아주 멋들어지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암의 마음을 이해했다.

동시에 이암을 믿었다.

아까 보여준 춤사위라면, 분명 이암과 도화는 앞으로 더 아름다운 복사꽃을 피워낼 것이었다.


“김준연, 그래서 말이다만······.”


평소처럼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온 이암이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런 이암에게 답했다.


“밥 꼬박꼬박 먹고 다녀. 또 굶고 다니지 말고.”


이제 이암과 작별할 시간이었다.

예정된 작별이었다.

나와 이암의 목표는 비슷하나 다르기에.


“그게 아니라,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응?”

“너라면 믿고 내 등 뒤를 맡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암이 답지 않게 콧잔등을 긁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거절할 말을 찾던 나는 솔직하게 웃었다.


“난 못가.”

“······그 사람 때문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정확히는 나 때문이지.”


나는 화란이 있을 사합원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생명이 솟아나기 시작한 천원산을 눈에 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낯설었던 곳이, 이제는 내 고향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네게 어떤 의미지?”


이암의 물음에 나는 화란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 그녀는 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도자였다.

언제 단약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었고.

매번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잘 보이기 위해 허덕였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그녀가, 화란이 얼마나 좋은 수도자인지.

그리고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나는 안다.

내가 답했다.


“은인(恩人).”


만일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화란이 아니었다면.

화란이 날 거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화란은 나의 은인이자.


“아마도 난 그분에게 평생을 보답해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거야.”


내가 지키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그런가······ 알겠다.”


이윽고 등을 돌린 이암이 그대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라.”

“잘 가라.”

“그리고 너는, 나와 달리 꼭 지켜라.”

“물론이지.”

“흥, 간다.”


그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는 이암과 작별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이암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딱히 아쉽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무림은 좁고, 이암이 마교나 흑도를 물리치고 명성을 쌓는다면 언젠가 녀석의 소식이 이곳까지 들려오게 될 테니까.

그러니 이암과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암과의 작별을 뒤로한 채 사합원으로······.


“······아.”


아아아아아!

잊고 있었다!!


“저녁 먹기 전까지 돌아가서 차 마시기로 했잖아 인마!”


화란에게 그렇게 약속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나는 사합원을 향해 짐승처럼 네 발로 달려갔다.


*


사합원에 도착한 나는 대문을 슬쩍 열어 분위기를 살폈다.

그때 마당에서 자신의 털을 핥고 있던 라니와 눈이 마주쳤다.


[엣, 선인님?]


“쉿!”


이윽고 내게 다가온 라니가 목소리를 죽이곤 물었다.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계셨던 거예요?]


“이암이랑 수련하고 있었어. 이암은 수련 끝나고 천원산을 내려갔고.”


[팔계 씨가 아쉬워하겠네요······.]


“그보다 화란 님은?”


[참! 지금 손님들이 왔어요.]


“손님들이라니?”


내가 화란의 방을 내다보자 라니가 말을 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랑 하얀 옷을 입은 여자였어요. 기세가 어찌나 어마어마한지 쳐다볼 수조차······.]


말끝을 흐리던 라니도 나와 함께 화란의 방을 바라보았다.

그때 화란의 방문이 열리며 라니가 말했던 여인 두 명이 마루로 걸어 나왔다.

그들을 살피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결단기 수도자들이다.’


백웅에게서 느꼈던 영력이 저 수도자들에게서도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흑의장삼을 입은 여자가 화란의 방을 향해 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아무리 산수라지만 어찌 도의를 외면하는 것이오!”


그러자 이번엔 백의장삼을 입은 여자가 흑의녀를 말렸다.


“유귀 님. 오늘은 이만 노여움을 풀고 돌아가 다음을 도모하시지요.”

“당장 놓아라! 내 지난번 저 수사가 우리 대유령명궁 제자들의 다리를 잘라 놓은 것도 참았는데, 이번엔 못 참는다!”

“그땐 유령명궁의 수사들이 먼저 백 도우에게 잘못을 범하지 않았습니까.”

“뭐라? 네가 지금 내 앞에서 감히 저년의 편을 드는 것이냐!”

“편을 드는 것이 아니오라··· 우선 가시지요. 이런 곳에서 유령명궁 궁주님의 체면을 스스로 깎아내리실 필요까진 없지 않습니까? 무색빙곡의 원주로서 궁주님과 유령명궁의 위신을 생각해 올리는 말이니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으으······!”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던 유귀라는 수도자가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윽고 유귀가 다시 화란의 방을 노려보았다.


“오늘만 내 동생이자 무색빙곡의 원주인 유설령을 봐서라도 참고 돌아가겠다.”

“가시지요. 돌아가서 저와 함께 다과라도 합시다, 유귀 님.”

“흥!”


함께 마당으로 내려온 유귀와 유설령은 각자 검고 흰 안개로 변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부엌에 숨어 있던 팔계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주변을 살피다간 나를 발견하곤 한걸음에 달려왔다.


[갔소? 그 무서운 귀신들이 갔냔 말이오?]


“귀신들은 무슨······.”


나는 몸을 벌벌 떨며 내게 안겨들려던 팔계를 문밖으로 던져버리곤 화란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 앞에 도착하자 우두커니 고개를 떨구고 있던 화란의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화란이 어딘가 슬픈 듯한 미소를 지었다.


“돌아왔느냐.”

“저··· 늦었지만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래.”


*


담소조차 없이 차만 홀짝이고 있던 나는 화란을 흘끗거렸다.


‘아까 그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들어보니 흑의를 입은 사람의 이름은 유귀로, 뭔 유령명궁이라는 곳의 궁주인 듯했다.

그리고 백의를 입은 사람은 무색빙곡의 원주인 유설령.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그 둘은 서로 자매고 유귀가 언니, 유설령이 동생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의문인 것은 각각 유령명궁과 무색빙곡의 수장들이 어째서 화란을 찾아왔냔 것이었다.


‘화란에게 물어보는 게 확실하겠지만······.’


도저히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도 화란은 차를 마실 생각도 없이 미지근해진 잔을 들여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싶었던 나는 문득 좋은 수가 생각나 화란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화란 님. 제 손바닥 좀 봐주시겠습니까?”


화란이 내 손바닥으로 눈길을 옮김과 동시에 법력으로 복사꽃 한 송이를 피워냈다.

이내 복사꽃을 응시하던 화란이 비로소 미소를 그렸다.


“어여쁘구나.”

“한 송이 더 만들어 드릴까요?”

“아니다. 이것이면 충분해.”


그리고는 복사꽃을 가져간 화란이 마침내 나를 마주했다.


“무공 수련은 잘 끝내었느냐?”

“제가 원하는 만큼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경지를 이뤘습니다.”

“백웅 그자는 잘 돌아갔고?”

“예. 저한테 한 대 얻어맞긴 했는데 어찌어찌해서 잘······.”


쑥스러운 마음에 대충 설명하던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겨우 은신부 정도로는 나를 속일 수 없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화란은 백웅이 나를 찾아온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나와 백웅이 비무를 했던 것조차 아는 눈치였다.

화란이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출수하지 않은 건 그대를 믿었기 때문이다.”

“······저를요?”

“그래.”


화란은 그 말을 끝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하긴 나도 천지쌍수가 되었으니 웬만해선 연기기와의 비무에선 비기면 비겼지 패배하진 않을 것이었다.

물론 지난번 비무에서 내가 이긴 건 절대적으로 백웅이 방심했기 때문이란 건 나도 안다.


“그보다 아까 그 수도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나는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


“지위가 궁주랑 원주인 걸 보면 평범한 수도자는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유귀와 유설령 말이냐.”

“그렇습니다.”


안색이 다시 어두워진 것도 잠시, 화란이 표정을 바로 하며 답했다.


“그들은 북해 일대를 다스리는 유리세가의 가솔들이다.”


북해?

내가 아는 그 북해를 말하는 건가?

내 의문을 읽었는지 화란이 설명했다.


“북해란 북쪽 끝 너머에 있는 땅이다. 이곳 사람들이 새외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지.”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무림 외에도 새외 같은 대륙들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새로운 의문이 생긴 내가 화란에게 물었다.


“하면 새외에 있는 수도자들이 어째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범인들과 달리 우리 같은 수도자들에게 나라의 경계는 무의미하니까.”

“아······.”

“여하튼 오늘 유귀와 유설령이 나를 찾아온 연유는 악연 때문이었다.”

“설마 유리세가의 마수가 이곳까지 손을 뻗은 겁니까?”


내 걱정과 달리 화란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말은 내 걱정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천마가 부활했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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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 내가 누구냐고? 24.06.18 305 9 12쪽
41 41화. 다녀오겠습니다. 24.06.17 297 10 15쪽
40 40화. 쫑긋쫑긋 24.06.16 359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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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받으시지요. +4 24.06.13 386 15 16쪽
36 36화. 돌아가자. +1 24.06.12 389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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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24.06.08 467 17 16쪽
31 31화. 찾 았 다. 24.06.07 496 12 13쪽
» 30화. 잘 지내라. 24.06.06 480 12 17쪽
29 29화. 덤벼. 24.06.05 476 15 15쪽
28 28화. 오랜만이다. 24.06.04 510 12 17쪽
27 27화. 춘식이가 누군데? +1 24.06.03 510 13 17쪽
26 26화. 언젠가 이곳에도 봄이 오겠지. 24.06.02 521 11 14쪽
25 25화. 웬만큼 멍청이가 여기 있었을 줄이야. +2 24.06.01 547 12 16쪽
24 24화. 죽을 힘을 다해 덤벼라. +1 24.05.31 572 1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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