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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수선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무협

공모전참가작

심씀
작품등록일 :
2024.05.09 10:54
최근연재일 :
2024.06.21 23:55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28,715
추천수 :
667
글자수 :
307,356

작성
24.06.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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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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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25화. 웬만큼 멍청이가 여기 있었을 줄이야.

DUMMY

나는 이암이 동굴 입구에 무사히 떨어진 것을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면 되겠지.”


저 동굴 바위 밑엔 당연하게도 내가 숨겨둔 인연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인연단은 내가 이암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이었다.

나는 이암이 동굴로 기어들어 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걸음을 돌렸다.


“음?”


사합원으로 돌아가던 도중 팔에서 흘러내린 소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아까 이암과의 싸움으로 옷 곳곳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런 것과 달리 몸은 멀쩡했다.

이암의 칼날에 베이거나 찔린 자잘한 상처에서 피가 조금씩 새어 나오긴 해도, 별다른 무공도 익히지 않은 내가 무림인을 상대한 것치곤 멀쩡한 편이었다.

나는 저물계를 열어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련해 두었던 여벌의 옷을 꺼내입었다.

그리고 새 옷에 피가 묻지 않도록 이전에 만들어둔 회복용 단약을 삼켰다.


‘요단이 생겨서 그런가, 맷집이 좋아지긴 했어.’


맷집 정도가 아니다.

물론 이암의 무공이 그리 높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요단이 생긴 뒤로는 내 피부도 철갑을 두른 것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하긴 팔계도 나한테 그렇게 걷어차이고 미호한테 두들겨 맞는데도 멀쩡한 걸 보면 요단이 외공 방면으로는 특화된 모양이었다.

사합원에 거의 도착하자 밭쪽에서 라니와 팔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녀석들을 도와 밭일을 하기 전 내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결국 이암의 오해는 풀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암은 아직도 나를 마교도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뭐 인연단을 먹고 살아 돌아온 이암이 다시 내게 복수하러 오더라도 딱히 상관없었다.

오해는 그때 풀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혹시나 하는 걱정에 이암을 찾아 나선 나는 다시금 마주한 그에게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너······ 뭐 먹은 거 없어?”

“답지 않게 오지랖이 넓군. 죽어라.”


나는 또다시 내게 달려드는 이암의 발을 걸어 넘어트리곤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녀석의 상태를 살폈다.

약간의 영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웬만큼 멍청이가 여기 있었을 줄이야.’


이암은 인연단을 발견하지 못했다.


*


팔계가 의식을 잃은 채 밭 근처에 누워 있던 이암의 냄새를 맡고는 말했다.


[온몸에서 여독이 지독하게 풍기는군. 이 정도면 걸어 다니는 송장이나 다름없소.]


이암의 상처를 치료하던 나는 팔계의 말에 끄덕였다.

애초에 이암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건강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복수에 미쳐 마교를 찾아 이곳저곳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닌 결과이리라.

이암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자 라니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 인간은 선인님의 친구인가요?]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산짐승처럼 달려들길래 주워온 거지.”


[그럼 이제부터 친구가 될 예정이겠군요!]


그 말에 내가 라니를 돌아보았다.

라니는 평소처럼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이암을 내려다보았다.


‘친구라······.’


나는 이 사람과 친구가 될 생각은 없다.

그저 사정이 딱해 도움을 주려 했을 뿐.

그렇기에 치료가 끝나는 대로 이암을 다시 산속에 버려두고 올 생각이었다.

내가 이암을 어깨에 들쳐메자 팔계가 물었다.


[어디 가시오?]


“어디 가긴, 다시 원래 있던 곳에 두고 와야지.”


[의식도 없는 인간을 저 추운 산속에 버리겠단 말이오?]


“어. 무공을 익혀서 그런지 며칠 두고 봤는데 얼어 죽진 않더라.”


[흐음······.]


“왜 그래?”


느닷없이 한숨을 길게 토해낸 팔계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또 일손이 늘어난 줄 알고 말이오.]


팔계 이 녀석······ 벌써 후임 받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안타깝지만 팔계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라니와 팔계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누구를 또 들일 여유는 없었다.


‘애초에 우리는 화란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니까.’


나는 일전에 화란이 풍 노공과 마주쳤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화란은 풍 노공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 말은 즉 수도자인 화란이 범인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화란이 내게 잘해주는 건 나도 그녀와 같은 수도자였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화란은 연기기나 축기기도 아닌 무려 결단기다.

그리고 결단기 정도면, 더는 속세에 미련이나 흥미 따윈 없을 것이었다.


“그러지 말고 상처가 회복될 때까진 집으로 데려가 지켜보는 건 어떠냐?”


문득 고개를 돌리자 화란이 사합원쪽에서 걸어오는 중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예를 갖췄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천원산의 겨울은 혹독하다. 범인이 감당하긴 어렵겠지. 더구나 그자의 상태가 위중하다.”


우리는 화란과 함께 사합원으로 향했다.

나는 마루에 내려놓은 이암의 안색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피부가 하얀 게 아니라 아파서 얼굴이 창백한 것이었다.

이내 손수 이암을 진맥하던 화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몸으로 본산을 올랐다니··· 무슨 일을 겪었는진 몰라도 마음부터 육신까지 전부 썩어 문드러져 있구나.”

“······하면 인연단을 먹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나는 이암을 절벽에서 떨어트려 기연 동굴에 묻어둔 인연단을 주려 했던 일을 떠올리며 긴장했다.

당연히 의학엔 문외한이었던 나는 이암의 상태가 이렇게까지 좋지 않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암은 나름 무림인이었기에 겉보기엔 멀쩡한 편이었다.


‘어쩌면 이암이 인연단을 먹고 영력을 버티지 못해 몸이 터져버렸을지도······.’


거기까지 생각에 닿자 손끝이 떨려왔다.

운이 좋아 이암이 인연단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내 호의가 이암에겐 목숨을 앗아갈 횡액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걱정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화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대가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라. 그대가 만든 인연단은 영력을 품고 있긴 하나, 그 성질은 무공을 익힌 범인들의 내공과 유사하니 말이다.”


이윽고 이암의 옆에 놓인 칼을 응시하던 화란이 말을 이었다.


“범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자의 경지는 이류에서 일류 정도. 이와 같은 범인이 인연단을 복용한다면 체내에 오영근이 형성되어 오기조원이라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오기조원······.”

“다만 확실하진 않다. 어디까지나 내 예상일 뿐이니.”


나는 그제야 내가 만든 인연단이 얼마나 대단한 영약인지 알 수 있었다.

오기조원이란 무림인에겐 전설로 불리는 경지.

수도자인 우리에겐 겨우 연기 초기까지 밖에 효과가 없는 영약이라지만, 이암과 같은 범인들에겐 단숨에 오기조원에 이를 정도의 무상보물인 셈이었다.


‘이래서 화란이 범인을 멀리했던 거구나······.’


그제야 나는 화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평범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일생을 노력해도 닿을 수조차 없는 것들이었다.

살아가는 법칙 자체가 다르다.

그렇기에 언젠가 서로의 ‘평범’이 부딪힐 거고, 그렇게 반발력으로 영원히 멀어지게 되리라.


‘그래서 수도계에선 가장 밑바닥인 연기기조차 범인들의 세상에선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거겠지······.’


비로소 활자로만 존재했던 감각들이 체화되고 있었다.

내가 천원산 곳곳에 만들어둔 기연을 회수하고자 마음먹었을 때였다.


“하나 선택은 그대가 하는 것이다.”

“······예?”

“이자를 데려와 치료해준 것처럼, 인연단을 주는 것도 그대의 마음에 달린 일이란 의미다.”


화란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관통하는 직선적인 시선으로 내게 이야기할 뿐이다.


“이 범인의 심상이 이렇게 된 건 필경 고단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겠지. 그대도 이를 알고 이자를 도우려 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나누어라.”


다음 순간 화란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것이 그대의 수선(修仙)이지 않느냐?”


손끝의 떨림이 멎는다.

그렇다.

내게 수선이란 나눔이다.

그러나 그 나눔은 이기적이기에, 이 순간 망설이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을 돕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을 내리는 것도 나고, 그 선택의 책임을 감내하는 것도 나다.


“······.”


나는 눈을 감은 이암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본 이암의 표정은 분노나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들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도 웃는 법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아니, 잃어버린 딸과 함께할 때는 분명 웃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이 사람에게 나눠 주고 싶었던 건 복수를 이룰 힘이 아닌, 웃음이었다는 것을.

그 웃음으로 되찾을 삶의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만일 이 사람이 제가 준 인연단을 먹고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그때는 제 손으로 끝맺겠습니다.”


이것은 나의 각오다.

헤픈 위선을 남발하는 쾌락이 아닌 책임이다.

그렇게 내가 저물계에서 인연단을 꺼내려 할 때였다.


“······마교!”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킨 이암이 길에서 만난 고양이처럼 우리를 경계하며 구석으로 틀어박혔다.

이윽고 재빨리 자신의 칼을 낚아챈 그는 마당을 한 바퀴 구르곤 나와 화란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다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내 몸과 정신을 개조해 마교인으로 만들려 했군. 차라리 날 죽여서 시체를 모욕해라!”

“뭣? 아니 인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뭐라 설명할 새도 없이 이암이 담벼락을 넘어 도망쳤다.

나와 함께 마루에 덩그러니 남겨진 화란이 중얼거렸다.


“그대도 당분간 고단하겠구나.”

“······.”


아무래도 나와 이암은 인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


······라고 생각했지만, 그 뒤로도 나는 산책을 할 때마다 이암과 마주쳤다.


“그때 내게 뭘 하려고 했지?”

“치료해준 거 보면 모르겠냐? 그보다 우선 나는 마교인이···.”

“문답무용!”


당당하게 지 할 말만 하고 달려드는 이암.

나는 “그건 문답무용이 아니지 새끼야!”라고 답할 새도 없이 이암을 제압했다.

일단 우리 사이의 오해를 풀 필요가 있었다.

이암에게 인연단을 주는 건 그 이후의 일.

내가 뭐라 입을 열려던 순간 이암이 고양이가 앞발로 할퀴듯 내게 흙을 뿌렸다.


“더는 네놈에게 잡히지 않겠다!”

“······.”


그렇게 날 죽이겠다 덤비던 놈이 이젠 도망을 친다.

나는 이암이 떠난 자리를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세상만사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이 이렇게 많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다음 날부터 이암을 만날 때마다 절벽으로 유인했다.


“내가 과연 이 손을 놓을까, 말까?”


내 손에 멱살이 붙잡혀 절벽에 매달린 이암이 씨익 웃었다.


“당장 이 손 놓고 꺼져라. 마교도 놈.”

“그래.”

“엇? 잠깐···!”


나는 소원대로 이암의 손을 놓아주었다.

이암은 정말 내가 손을 놓을지 몰랐는지 당황하여 허우적거렸다.

애초에 놓지 말라고 애원해도 놓을 생각이었다.

이암은 동굴 앞에 떨어지자마자 익숙하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젠 아예 저길 집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와 씨······ 저 정도면 발견했는데도 이 악물고 무시하는 수준 아닌가?”


내가 만든 기연 동굴을 제집처럼 사용하는데도 바위 한 번 들춰볼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이럴 줄 알고 친절하게 바위에 ‘기연’이라고 새겨놓았는데도 말이다!


‘저 자식 혹시 글을 못 읽나?’


음, 그럴 가능성도 있다.

문맹률이 높은 게 또 이 세계관 아닌가?

나는 다음에 만나면 이암을 두들겨 패며 글부터 가르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


근처에서 나무껍질을 벗겨 먹은 이암이 동굴이 있는 절벽으로 돌아왔을 때, 절벽 근처에 못 보던 보자기가 놓여 있었다.

보자기를 펼치자 그 안에는 며칠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벽곡단이 들어 있었다.

이암은 주변을 살펴보고는 서둘러 벽곡단을 먹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 벽곡단이라니······ 이렇게 맛있는 벽곡단은 처음이군.’


벽곡단이라면 이암도 강호의 객이었던 시절에 질리도록 먹었다.

그러나 그가 아는 벽곡단은 물이 없으면 삼킬 수조차 없이 뻑뻑하고 맛도 없었다.

이암은 생각했다.


‘이렇게 날 길들이려 하는 거겠지.’


그런 소문이 있었다.

간혹 마교는 일부러 적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척 길들여 그렇게 마교도를 늘린다는 소문이.

그러나 이암은 굴복하지 않았다.

주는 건 받지만, 그렇다고 몸과 마음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마교는 복수해야 할 대상이다.

다만 마교라 하기엔 그동안 이암이 상대해 왔던 김준연은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정말 그놈은 마교인 건가.”


처음으로 그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암이 이 겨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도 그 마교도의 치료와 보살핌 덕분이었다.

이내 벽곡단을 삼킨 이암이 스스로 뺨을 쳤다.


‘정신 차려라.’


이 또한 수작이다.

다들 이런 수작에 넘어가 마교도가 되는 것이다.

딸을 생각해라.

그날 끌어안았던 그 아이의 온기를 기억해라.

이암은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다시 김준연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러나 한참을 돌아다녀도 오늘만큼은 김준연과 마주칠 수가 없었다.

문득 이암은 자신이 도망쳤던 사합원을 떠올렸다.


“······꿀꺽.”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솜털이 곤두서며 절로 긴장이 된다.

그때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김준연이 아닌, 그 옆에 있던 여인을 본 순간 자객이었던 그의 감각이 그토록 비명을 지르던 건 처음이었다.


‘우선 동태만 살펴보자.’


그 여인은 위험하다.

다시는 마주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이암은 김준연의 여부만 살펴본 뒤 바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합원 근처에 도착한 이암은 수풀에 숨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내다보았다.


‘저깄군.’


김준연은 여느 때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를 발견하자마자 칼을 뽑으려던 이암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닫곤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뭘 하는 거지?’


일단 보기엔 밭을 갈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

겨울에 웬 밭을 갈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작 이암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저건 벼와 보리가 아닌가? 이 겨울에 어찌······?’


김준연이 서 있던 밭에는 그 외에도 온갖 작물과 약재가 한가득 자라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추위에 자랄 수도 없거니와 기적적으로 자랐다 할지라도 모두 얼어 죽었어야 정상이란 말이다.


‘필경 마공이다.’


그래, 마공으로 이 겨울에 농사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렷다!

다음 순간 김준연이 곁에 있던 고라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추워? 음, 오늘따라 날씨가 춥긴 하네. 며칠 후에 또 화양현에 내려갈 거니까 그때 포목점 가서 옷 몇 벌 따듯한 거로 맞춰줄게. 팔계 너도.”


방금 저자가 뭐라 지껄였단 말인가?


‘짐승에게 옷을 사서 입힌다고······?’


이 굶주림으로 가득한 계절에 짐승을 거둬 키우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만한 일인데, 거기에 춥지 말라고 옷까지 사서 입히다니?

돈이 넘쳐 나는 것일까?

그래서 주체를 못 하는 것일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저건······.’


아무리 돈 많은 이들이라도 짐승에게까지 저렇게 신경 쓰진 않는다.

오히려 있는 이들이 더한다고, 저런 짐승 따위야 병들고 아프면 물건 갈아치우듯 새것으로 바꾸면 그만일 것이다.

하물며 마교도라면 더더욱.

일순 한 가지 가설이 이암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쩌면 저자는 마교인이 아닐지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암은 지금까지 품고 있던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저자가 마교인이 아니라면 나를 치료해주고 먹을 것을 나눠준 것도 전부 앞뒤가 들어맞는다.’


이윽고 걸음을 돌려 동굴로 돌아가던 이암이 중얼거렸다.


“지금껏 내가 착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슨 짓을······.”


김준연도 모르는 사이 이암의 오해가 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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