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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야성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가 신선세계에 떨어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찬야성
작품등록일 :
2024.01.06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8 12:53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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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6
추천수 :
76
글자수 :
17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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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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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승천단 - 9

DUMMY

삶을 살아오며 정의라는 말보다 위선이라는 정의를 훨씬 즐겨 썼지만 이건 위악을 넘어선 거악이지 않은가.



“용납할 수 없다.”


-뭐. 거지같은 기분은 이해하지만 이게 현실 아니겠냐. 기분 좀 풀어. 뭣하면 네가 강해져서 너만의 기준으로 저런 애들 다 죽여버리면 되잖아? 그러니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생각하고 나랑 닥치는대로 빨리 강해지는 법 좀 연구하자.



지금은 메제드의 쓸데없는 제안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발걸음을 빨리 하다 못해 이젠 숫제 뛰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니 이제껏 본 어떤 공동보다도 거대한 크기의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하나의 세계인 듯 끝을 모르고 솟아난 천장과 흙을 채워넣은 광활한 평원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선 인간들이 돼지처럼 조련당하고 있었다.



“뀌익. 뀌이익!”


“흐, 이 년 곧 폐기해야겠는데? 눈이 맛이 갔어.”


“에이. 그럼 폐기하기 전에 한 번만 나 좀 빌려줘.”


“꾸에에엑!”



한쪽에선 원숭이와 사람의 시체들이 분쇄기에 넣어진 채로 갈려 다짐육이 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선 지저인 임산부들이 팔과 다리가 잘린 채 그 다짐육을 받아먹고 있었다.


번견들은 사람의 머리통으로 공놀이를 하고 인육을 뜯으며 손에 닿는 여인들마다 가리지 않고 강간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거대하게 쌓아올려진 마천루 위에서 깃털부채를 부치며 히히덕거리는 일단의 사람들이었다.


마치 아래의 핏빛 세계와 달리 그들만 별세계에 있는 것만 같은 실풍경.


수십에 달하는 그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인육도 버섯도 아닌 채소와 소고기를 탐하며 아주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숫제 춤까지 추고 있었다.



“메제드. 은신술,”


-이미 걸었다.



나는 조용히 마천루로 다가갔다.


옆에서 갓 애기티를 벗어난 남자아이에게 벌레를 붙여 생식기를 먹어치우게 하는 것이 보였다.


또 그 옆에선 핏덩이를 유산한 여인을 분쇄기에 넣어버리는 번견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난 그들을 단죄하지 않았다.



마천루의 밑에 이르자 거대한 석조로 이루어진 기둥이 보였다.



“천둔.”



온 정신이 명료했다.


이렇게까지 내 인지가 또렷이 맑은 적이 없었다.


투쟁심도. 분노도. 어리석음도. 기쁨도.


어떤 감정도 내 눈을 흐리지 않는 그야말로 정명(精明)의 상태.



무엇이 선(善)이고 선(線)이란 말인가.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의지해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지이이이잉.



왼팔의 뇌기가 한계까지 압축되었다.


방전된 전류만으로 반경 십오 장의 돌들이 녹아내리고 대기가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부족했다. 한없이 부족했다.


거악을 가르기 위해서는 이런 정제되지 않은 분노로는 부족했다.



그래.



한 자루의 칼날.



압축되고 압축되어 마침내 세상을 담은 칼날만이 인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뇌신석이 우우웅. 하고 맑은 소리로 진동하더니 뇌신석의 힘이 칼날로 스며들어왔다.



-이 무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법보의 기운이. 그것도 원영기에 달하는 저리 거대한 기운이 네 의지에 따라 흘러들어온단 말인가.



온 몸이 타버릴 것만 같았다. 실제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메제드가 필사적으로 치유공법을 연달아 시전했지만 내 몸이 파괴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죽음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심장이. 폐가. 뇌가. 한계를 넘어선 전격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의지는 오직 강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강철을 벼리고 벼려내 마침내 칼날로 만들어냈다.



그 순간, 문득 존재할 리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어짐은 면면부절. 



검. 흐른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져 마침내 강줄기가 도도한 대하를 만나 굽어진다.



그저 담담하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한 폭의 검무를 춘다.



그렇게 누군가의 화려하지도 않고 파괴적이지도 않은 검무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잊고 있는 듯한 강렬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눈이 마주쳤다.



아.



노인의 수평선을 굽어보는 눈매를 보았다.



수천년의 세월이 스치워 강파르게 메마른 양 뺨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검무를 보고 있자니 그 느낌도 사라지고 시야도 사라지고 감상도 사라지고 감각도 사라져서 마침내 나까지 무너진다.



황홀한 무아의 세계.



검 속에는 지독하리만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살불살조라 했던가. 마침내는 나 자신마저 버려버린 지독한 무의의 세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로 목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일립속중장세계(一粒粟中藏世界)."



 


검무 속의 노인이 나에게 꾸짖는 듯 했다.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나니



마음 속에조차 물건을 버리지 못할진대



삼라만상을 어찌하여 검으로 두르겠느냐?



나는 답했다.



단 찰나만이라도 도를 얻을 수 있다면



바로 다음 순간 죽어도 좋소.



검.



나의 답검이 구름처럼 떨리더니 무수한 안개를 쏟아냈고



세계가 일변했다.





오늘은 드디어 천인교중 목여수라파에서 축기기 수도자가 나온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목여수라문의 연기기 12성 수도자인 목련운은 등천암로로 소소랑을 쫒는 임무에 자원하고 나서 단 하루라도 그날의 일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곳은 술도 향락도 수선에 필요한 재료나 스승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불모의 땅. 게다가 상계로 되돌아갈 수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던지.


심지어 중간에 그들이 쫒던 상대방이 겨우 축기기 3성의 경지로 축기기 4성에 달하는 자신의 선배를 죽이고 천인교라는 되도않는 종파를 만들어 수도자들을 지배했을 땐 목련운은 매일매일이 암울해 우울증이라도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기쁨의 감정이 흘러넘쳤다. 수만의 지저인들을 갈아마신 끝에 축기기 1성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여 경지를 수습하고 밖에 나서니 천인교의 모든 동도들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천라성녀인가 뭔가 하는 저 마녀 이외에 유일한 축기기 수도자가 목련운 자신뿐이니만큼 2인자에게 미리 엉덩이를 비벼두려는 속내가 뻔히 보였다.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원래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비정한 것이 수도계의 이치 아니겠는가.


하여 오늘은 자신의 이름으로 연회를 여니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연기기 수도자들이 축하를 위해 모였다. 그야말로 개교 이래 천인교의 최대 행사인 셈이었다.


그러나 정작 천인교의 수장인 소소랑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마녀는 절대로 그 고독 항아리에서 나올 수 없으니.


막말로 내가 축기기에 올라 나를 견제하려 대원승천단 곁을 떠나는 순간 내 수하인 연기기 수사 하나가 승천단을 빼돌려 도망가면 그녀로썬 대업이 무너지는 셈이다.


하여 나는 마음놓고 연회를 열어 그 귀하다는 산채나물과 등천암로에서 나는 희귀한 영약, 소고기 등을 베풀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돌연 연회를 즐기던 마천루 아래에서 거대한 힘의 응집이 느껴졌다.


설마 천라마녀가 여기까지 왔나?


목련운은 순간 위기감이 들었지만 아래에서 느껴지는 힘의 양은 고작 연기기 11성 정도였다. 그럼 그렇지. 그 쫄보년이 여기까지 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수하중 하나를 보내 꺵판을 치려 한 거겠지. 하지만 그렇게 둘까보냐.



 목련운은 곧장 자신의 공법인 목란백행시를 운용해 거대한 목벽을 쌓았다.


의외로 목속성의 공법은 등천암로에서 상당히 유용했는데 버섯과 동굴나무따위가 목의 기운을 상당히 짙게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목련운은 이 목벽이 상대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들! 저기 밑에서 웬 수상한 자가 우리의 연회를 방해하려 하고 있소.”


“우우. 누구냐!”


“필시 그 마녀의 짓이겠지. 채신머리 없기는 쯧쯧.”


“자자. 진정하시오. 그에 나 목련운이 축기기 1성에 오른 김에 실력 행사를 해보고자 하니 다들 구경이나 하시겠소?”


“그거 좋다!”


“목련운 도우 최고다!”


“하하. 별 말씀을. 그럼 다들 좋은 구경거리가 되시길 바라지요. 하앗! 대라목불여식벽!”



구우우우.



그러니 목벽 위로 눈알이 가득한 덩굴이 자라나 파랗게 굳었다.


이 덩굴은 목련운 자신이 5년여동안 키워낸 걸작으로 그 어떤 공격에도 불침이며 오히려 받아낸 힘을 튕겨내는 신비한 공능이 있는 식물이었다.



그때 마천루 밑에 있는 상대의 힘이 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겁이라도 먹고 도망가려는 것인가?



“우우. 꼬추 뗴라!”


“그러고도 네가 천인이냐!”



다른 연기기 수사들도 그걸 느꼈는지 성벽 밑의 괴한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개중에는 괴한을 향해 공법을 쏘아내려고 하는 수사들도 있었으나 목련운의 눈치를 봐 슬며시 공격수법을 집어넣고 욕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나 괴한은 그 모든 것에 아랑곳않고 무심하게 뇌전의 양을 줄여나갔다. 마치 꼬리를 말고 도망치려는 모양새였다.

목련운은 코웃음쳤다. 네가 이제 와서 그런들 절대 도망가지 못할 거다. 이미 내 식인식물들로 천라지망을 펼쳐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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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발리 왕 - 1 24.04.27 109 2 10쪽
21 천계(天界) - 7 24.04.19 133 0 9쪽
20 천계(天界) - 6 24.04.18 138 1 10쪽
19 천계(天界) - 5 24.04.15 131 2 9쪽
18 천계(天界) - 4 24.04.14 140 2 10쪽
17 천계(天界) - 3 24.04.13 155 2 12쪽
16 천계(天界) - 2 24.04.09 169 2 11쪽
15 천계(天界) - 1 24.04.09 180 2 11쪽
14 등천암로(登天暗路) - 12 24.04.08 170 2 11쪽
13 등천암로(登天暗路) - 11 24.04.08 164 2 10쪽
12 등천암로(登天暗路) - 10 24.04.06 17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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