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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야성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가 신선세계에 떨어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찬야성
작품등록일 :
2024.01.06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8 12:53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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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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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글자수 :
178,632

작성
24.04.0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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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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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등천암로(登天暗路) - 10

DUMMY


그때 상황을 보다못한 소소랑이 끼어들었다.


"임(壬) 도우. 아무래도 동빈 도우가 부상이 있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가 봅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하지만 아홉째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나에게 물어봤다.


"말씀해주시지요. 세계의 진실입니까, 나입니까?"


그러자 홀린 듯 내 입가에서 놀라울 정도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나다."


이건 금령제환충의 의지가 아니었다. 메제드가 잠시 손을 쓴 건지 아니면 아홉째가 무슨 신통을 발휘한 건진 몰라도 이번만큼은 내 신념을 담아 말했다.


"진실은 불변한다. 그리고 나는 변한다. 하지만 만변하는 것이 진리고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 또한 진리이니 진실 따윈 거적떼기보다도 쓸모 없는 게 현실이지. 삶의 터럭이나마 붙잡고 있더라도 아는 진실 아니던가. 그렇지?"

"실로 옳은 말씀이지요."


아홉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연 손을 눈에 가져다대었다. 단지 그뿐인 동작.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몸에 경종이 울리며 격렬한 불안감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뭐지?


그때.

아홉째의 금안이 붉은 빛을 뿜었다.

원숭이들의 동굴에서 봤던 것과 같은 빛깔이었다.


"케샤바(keshava)께서 하신 말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눈, 눈이 문제였던 거로군요."


푸콱!


아홉째의 손가락이 자신의 왼눈을 파고들더니 곧 왼쪽 눈알이 끈 떨어진 연처럼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비산하는 핏방울.

그는 스스로 눈알을 뽑아낸 것이다.


어?


나는 그 광경을 현실감 없이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홉째가 갑자기 제 왼눈을 파낼 이유가 뭐란 말인가?


"미혹에 홀리지 않길 바랐던 결과가 도리어 제 눈을 가리다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소소랑 또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아홉째의 뒤로 슬금슬금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기척을 죽이고 사각으로 물러나는 것이 기습같은 걸 하려기보다는 도망치려는 모양새였다.

그러더니 온몸이 시퍼런 벌레를 품속에서 꺼내는 그녀.

나는 그 벌레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저 시퍼런 벌레가 내 안에 있는 벌레와 공명하고 있음을 느꼈다.

금령제환충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것이 느껴졌다.​

안 된다. 저 푸른 벌레가 죽거나 멀어지면 나 또한 금령제환충에 의해 터져 죽을 것이다.

하지만 금령제환충이 몸의 통제권을 가져간 탓에 움직일 순 없었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눈에서 피를 흘리며 중얼거리는 아홉째.


"그렇군. 황룡금안(黃龍金眼)을 빼내니 이제야 알겠도다. 솔잎으로 코뚜레를 꿰어 다니니 눈앞의 도검조차도 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곧 소소랑이 동굴의 출구까지 다가가 저 푸른 벌레를 터뜨리고 도망치려는 찰나.


"그렇다면 그저 나를 믿을 뿐. 그대가 나보다 낫구려.."


아홉째가 넋두리를 하며 자신의 우안마저도 손으로 뽑아버린 뒤 터뜨렸다.

그러자 무언가 거대한 파동이 아홉째의 우안에서 퍼져나와 사방으로 퍼졌다.


슈우우우.


파동이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갔음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이상한 점이 너무 없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건.."


내 온몸이 치유되었다. 두통도 사라졌다. 금령제환충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공력 또한 한톨도 남지 않았지만 오히려 난 이 상태가 익숙했다.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육신만 남은 가장 순수한 무(武)의 상태.


소소랑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그녀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슬금슬금 도망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도 공력이 사라졌는지 그 속도가 매우 느리고 은밀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가 끌고 가던 이름 모를 여인의 세뇌도 풀렸는지 그대로 쓰러진 상태.

공력 없이 순수한 근력만으론 끌고가기 힘들었는지 낑낑대며 그녀를 업으려 하는 소소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녀를 아홉째가 불러세웠다.


"멈추십시오, 소 도우."


그러자 정말 꼭두각시처럼 우뚝 멈춘 소소랑.


"왜, 왜, 왜죠, 임 도우?"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는 그녀.

아홉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답했다. 양 눈에서 흐른 핏자국이 일그러지니 꽤나 공포스러웠다.


"그대는 나한테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군요."

"아니에요! 전 지금까지.."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절 속인 것에 대해선 유감이 없습니다."


그러며 손을 내뻗는 아홉째.


"다만 그녀는 놓고 가시죠. 아무 잘못 없는 범인에 불과하니."

"그, 그래. 알겠다. 그러니 그렇게 하면 날 쫒아오지 않겠다 약조해라."

"약조하지요. 다만 가지고 있는 축기단 네 알을 전부 파(破)하십시오."



그러자 저물대에서 단알 네 개를 꺼내더니 태우는 소소랑.

단알의 연기에서 몸서리쳐지게 끔찍한 기운이 느껴졌으나 아홉째가 손짓하자 연기가 전부 사라져버렸다.


​"자, 됐니. 이제 날 놔줄래?"


그녀의 말에 피칠갑 된 두 눈을 감으며 빙그레 웃는 불승.


"애초에 붙잡은 적이 없으니 놔줄 일도 없지요. 갈 길 가십시오."


소소랑은 멈칫멈칫 하더니 마지막으로 할 말이 남았다는 듯 아홉째에게 물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정말 둔천검을 포기할 생각은 없니?"

"소 도우도 둔천검이 필요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군요. 조사님의 유언인지라."

"그건 광인의 망언 아냐? 내가 네가 속한 사문, 그니까 뇌승문의 사조를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그분은 무리한 천통으로 머리가 뇌기에 오염되셨잖아."

"하늘의 이치에 닿은 것이지요."

"뇌승문의 사조께서 진실로 하늘에 닿았다면 어째서 승천하여 축신기에 이르지 못하셨지? 또 왜 뇌승문을 제 제자와 함께 부순 뒤 천뇌문으로 이름을 바꿨나."

"세계의 진실을 알고 하늘을 따르는 대신 그저 스스로를 따랐을 뿐입니다."


완고한 아홉째의 모습에 소해랑은 단념한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후. 그래, 그렇다 치자고. 하아. 어떻게든 네 곁에 기생해서 한 번 날로 먹어볼라 했는데 안타깝게 됐네."

"그것 때문에 저에게 접근했던 겁니까."

"응. 나중에 보자고. 네가 만약 둔천검을 얻어 용을 죽이고 나면 우리 또 협력관계가 될 수도 있잖아?"

"인연이란 기이하니 그렇게 될 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나도 당신에게 유감은 없어. 목적이 겹쳤을 뿐이지. 그러니 같은 연기기 12성끼리 이빨 드러내고 싸우진 말자고."


소해랑은 저물대를 열어 그 속을 보이며 말했다. 안에는 청색 벌레와 금색 벌레가 잔뜩 뒤엉켜있었다.


"난 용에 대한 건 아무것도 모르거든. 음마문의 비전도 이딴 벌레가 전부지. 이 등천암로에 들어온 것도 노괴들에게서 몸을 피하려고 그런 거지 정말로 난 너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때 돌연 아홉째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무언가 깨달은 듯한 아홉째의 표정.


"하하. 그런 것이였군요."


그리고 그런 아홉째를 보고는 뒷걸음질치며 튈 준비를 하는 소소랑의 모습이 보였다.

나 또한 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거, 아홉째 저놈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은데 나도 도망가야 되는 거 아냐?


"하하하하하!"


소소랑과 대화를 하던 와중 돌연 광소를 터뜨리는 아홉째.

두 눈에서 흐르는 피를 튀겨가며 미친듯이 웃는 아홉째의 모습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그때 도망치는 소소랑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중놈.."


동감이었다.

아홉째의 웃음 속에서 광기가 엿보였다.

생을 망치는 믿음, 신념과도 같은 단단한 광기가 아닌 예측불허한 넘쳐흐르는 광기같은 것이다.


-저 놈은 좀 정상인 줄 알았더니만. 쯧쯧. 수도자란 놈들이 그렇지 뭐.


나는 그에 급히 소소랑을 따라 출구로 도망치려 했으나 이름 모를 여인이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밟혔다.

구해야 되는가. 아니면 우선 몸을 피해야 하는가.

약간의 갈등이 내 발목을 붙들은 그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우르릉.


커지는 아홉째의 웃음에 동굴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출구가 무너져내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름 모를 여인이 있는 곳으로 가 그녀를 부축한 뒤 무너져내린 출구 쪽에서 밖으로 나가는 구멍을 찾으려 했다.

아홉째는 우리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홀로 광소를 터뜨리고 있는 상태.


사사삭.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냐?

'소리라니. 아홉째가 웃는 소리밖엔 안 들렸다만.'

-주위를 경계해라. 뭔가가 있다.


메제드의 말을 듣고 주변을 슥 둘러보니 눈알을 뽑은 채 웃고 있는 불승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근데 저 불승이 뽑아낸 눈은 어디갔냐? 왼쪽 눈은 꽤 높은 수준의 법기(法器)같아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사라졌는데?


'그거야 아까 바닥에.. 어?'​

나는 두 눈알이 굴러떨어진 장소를 다시금 확인해봤다.

오른쪽 눈알이 굴러떨어진 곳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저런 건 처음 보는데.


아홉째의 우안이 떨어진 자리에선 그 잠깐의 틈새에 눈알이 뿌리를 내리고 마치 식물처럼 자라고 있었다.

쉬이 보기 힘든 광경에 섬뜩함을 느끼고는 장내를 훑어 빠르게 아홉째의 왼눈을 찾았다.

하지만 왼눈은 어디에도 쉬이 보이지 않았다.


스스슥.


그때.


-천장이다!


위를 바라보니 방금까지 찾던 아홉째의 좌안이 나타났다.

하지만 아홉째의 왼눈은 기괴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인간의 눈알에 갑각류의 다리가 수없이 돋아난 모습.

심지어 그것은 천장에서 살금살금 기며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잠깐. 저거 지금 너한테 다가오고 있는데?

'메제드, 어떻게든 남은 공력을 모아봐라.'

-제길. 가지가지 하는구만.


아홉째의 좌안이 들킨 걸 눈치챘는지 마치 거미처럼 다리를 움직이더니 곧 내 얼굴로 도약했다.


-흐, 다행히 금령제환충이 터지며 남긴 공력이 조금 있어 긁어왔다.


'강신본경(降神本經) 쇄령각(碎靈脚)의 술.'


나는 간신히 공력을 모아 양 다리에 영혼 네 마리를 상신시켰다.

그런 뒤 마기제본술의 수법으로 영혼의 칼날을 날리려 했으나 좌안은 기령의 칼질을 재빠른 몸놀림으로 피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위기감이 찌릿. 하고 올라왔다. 위험하다. 죽는다.

머리가 핑 돌고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생사결의 감각이던가.


혼원신공도 없다. 혼원신공의 압도적 상위호환인 만혼귀주문의 공력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강신본경으로 강화한 양 다리의 각력과 수없이 사선을 넘어왔던 나 자신의 감각뿐.


나는 땅을 박차 아홉째의 좌안에게서 재빨리 떨어진 뒤 땅바닥에 떨어진 소해랑의 기검을 들었다.


역시 최후의 순간에 믿을 건 한 자루 검이구나.

아까까지 내 목을 겨눴던 칼날이건만 손에 쥐니 더없이 든든했다.


상단전은 포화상태. 공력은 없음. 허나 일말의 의지만은 남아있었다.


선천진기를 전부 소모해 추하게 죽더라도 차라리 검을 이고 산화하겠노라.


고오오오.


피부가 쭈글해져간다. 이빨이 빠져나간다. 안구가 수축한다. 허나 정신만은 또렷했다.


이내 마지막으로 검을 들어 상단세를 취했을 때.


돌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아홉째의 좌안이 나에게 쏘아졌다.


의념을 읽는다.


"합!"


그리고 의념의 경로로 검을 내지른다.


[사신류 이십육식(四神類二十六式) - 충천일도절(衝天一到絶)]


닿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앙!


아홉째의 좌안은 내 검을 그대로 부숴버린 채 메제드가 위치한 내 왼쪽 눈에 착 달라붙었다.


결국 공력이 부족했는가.


그 순간.


"...!"


파지지지직!


메제드가 자리잡은 내 좌안에서 어마어마한 전류가 흘렀다.


설마?


​하지만 아홉째의 좌안은 거미 다리로 끝내 전하의 방류를 견딘 모양.

놈은 다리만 까맣게 탄 채 이번엔 왼쪽 눈이 아닌 내 오른쪽 눈에 자리잡았다.


-하, 한계다.


끝인가.


패배라는 단어가 순간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돌연 마음이 고요해졌다.


졌으면 죽음을 받아들일 뿐.

오로지 그것만이 나의 삶이었다. 패배하지 않았기에 순간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을 따름이었다.

지금까지 무수한 승리자의 삶을 거두어들인 것과 같다. 이번엔 단지 내 차례가 돌아왔을 뿐이다.


나는 주름진 눈꺼풀을 감았다.

고요한 침묵이 나를 감쌌다.


그리고.


푸확!


세계가 일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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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발리 왕 - 2 24.06.07 83 1 10쪽
22 발리 왕 - 1 24.04.27 108 2 10쪽
21 천계(天界) - 7 24.04.19 133 0 9쪽
20 천계(天界) - 6 24.04.18 137 1 10쪽
19 천계(天界) - 5 24.04.15 130 2 9쪽
18 천계(天界) - 4 24.04.14 140 2 10쪽
17 천계(天界) - 3 24.04.13 155 2 12쪽
16 천계(天界) - 2 24.04.09 168 2 11쪽
15 천계(天界) - 1 24.04.09 180 2 11쪽
14 등천암로(登天暗路) - 12 24.04.08 170 2 11쪽
13 등천암로(登天暗路) - 11 24.04.08 163 2 10쪽
» 등천암로(登天暗路) - 10 24.04.06 17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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