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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야성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가 신선세계에 떨어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찬야성
작품등록일 :
2024.01.06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8 12:53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603
추천수 :
76
글자수 :
178,632

작성
24.04.27 11:30
조회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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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발리 왕 - 1

DUMMY

스르륵.


허리의 옷고름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밤 또한 깊으리라.


꿈.


아홉째와 내가 동굴을 걸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분명 서로 이렇게 친하게 굴은 적은 없을 텐데, 어쩐지 낯이 익은 풍경이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영근이 없었습니다."


"영근이 없는데 어떻게 수도를 배웠단 말이냐?"


"만들어냈지요."


"만들어내다니? 아하. 영근을 만드는 특수한 영약이라도 먹었나보군?"


"아니요, 어떤 영약이나 영초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서부터 만들어냈습니다."


-말도 안 된다. 영근은 하늘이 부여해주는 것. 일개 범인이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영근이 없다면 범인이었단 얘기인데 그 상태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영근을 만들어냈다고?"


"맞습니다."


"호오. 그 방법이 궁금해지는데. 물어봐도 되나?"


"물론이지요. 누구나 마음 속에는 하나의 진리를 품고 있습니다. 그걸 깨달으면 될 일이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말이야 쉽지. 그걸 알았으면 지저인들은 전부 수도자이게?"


그러자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아홉째.


"불심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나 자신을 깨달으면 주변을 깨닫고 주변을 깨달으면 세계를 깨닫고 세계를 깨달으면 나를 깨달을 뿐이지요. 모든 것은 연결돼있으니(緣起)."


"그거 참 이상하군. 말해주기 어렵거나 힘들다는 건 잘 알겠네. 언젠간 나도 불심인지 뭔지를 깨달으면 좋겠군. 아, 그럼 이영근자가 되니 안되려나? 하하."


“하하하. 침묵을 알기 위해선 침묵을 다 써버려야 되는 법이지요.”


그러면서 어느새 술잔을 꺼내는 아홉째.


아. 기억났다. 종유석 동굴을 찾아가며 했던 말이었나.


이런 대화도 했었지. 하지만 술잔은 예정에 


이런 대화도 했었지. 하지만 술잔은 예정에 없었는데.


“그거 좋지! 다 써버리자고!”


“하하하하! 좋습니다. 호쾌하시군요.”


뭐 됐다. 마시고 죽으면 될 일이다.


술잔을 한 잔 두 잔 들이켜다 보니 아홉째의 눈이 점점 시뻘겋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자네 눈이..”


“하하하하하하하! 마시죠. 마셔!”


광소.


이윽고 시뻘겋게 변한 눈이 점점 부풀더니 펑 하고 터져버린다.


아.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술은 적당히 마셔야지.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두 눈을 잃은 아홉째가 소소랑을 쫒으며 헤실댄다.


대가리 꽃밭. 아홉째의 대머리에 오른쪽 눈에서 핀 꽃들이 우수수 펴있다.


눈. 눈. 눈.


거대한 눈.


오싹.


“허억!”


벌떡.


기함을 지르며 일어나자 여수빈이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가가(哥哥). 무슨 일이에요?”


“아니. 아니다.”


요즘들어 개꿈이 늘었다. 어제는 하늘로 올라가는 영혼들을 거인이 먹어치우는 꿈을 꾸더니만 꿈자리가 사납나보다.


연기기 2성에만 이르러도 잠을 자지 않아도 되지만 오랜 습관같은 것이라 잠에 들 때마다 이모양이니 원.


“잠을 아예 안 자버릴까.”


-에휴. 좀 깨어 있어라 게으름뱅이야.


“닥쳐.”


벌써 이곳에 온지도 8개월이다. 여수빈과는 부부의 연을 맺었고, 염아는 조금 더 자랐으며,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있었다.


-몇 번을 말하냐. 그거 천기를 읽는 거라니깐. 정확히 못 읽어서 악몽이나 불안감 따위로 나타나는 거야.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이냐.”


-방법 없다. 이 정도로 확실한 천기면 도망가면 도망친 곳에서 불운이 생길 것이요 가만 있으면 불운이 널 찾아올 거야.


“제길. 메제드. 너 은신 잘 한다매. 어떻게 공력을 빌려줄테니 숨겨주면 안 되나?”

-소용없다니까. 하늘이라고 하늘. 나도 하늘은 못 속여. 그냥 조용히. 그리고 단련하면서 지내라. 천살이나 지겁도 아니고 불안감 정도면 괜찮아. 네가 천기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경지는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답답하군.”


기껏 수사들간의 은원이 얽힌 일에서 발 빼려고 여기까지 왔건만 천기가 불운을 가리키고 있다니.


힘을 얻었어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무력감의 늪이 날 답답하게 했다.


연기기 7성에 오르며 하늘을 접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 무력감의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여기 버섯죽이라도 드셔요. 낭군.”


그 사이에 먹을 걸 마련해 왔는지 모락모락한 김을 내뿜는 음식을 가져온 여수빈,


“됐다.”


“그래도 아흐레째 식음을 끊으셨는데 이거라도..”


“됐다니깐.”


그러자 창백한 얼굴로 물러서는 여인.


너무 신경질적이었나 싶었지만 사고는 여수빈에 대한 미안함보단 불안감의 근원을 찾는 쪽으로 흘러갔다.


불운이 온다면 어떤 형태일 것인가. 사고? 폭발? 아니면 침입자?


아무래도 토전문의 수사라는 자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음마문의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소소랑을 쫒아 이곳에 들어온 연기기와 축기기의 수사들.


등천암로는 천인기가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대지이기에 가문에서 축출되거나 죽을 죄를 지은 축기기 수사들만이 들어왔다는 그의 말을 믿는다면 그리 위험할 요소는 없었다.


메제드가 자신하기로 특수한 공법을 익힌 수사가 아니라면 결단기 수사까지도 속일 수 있는 은신법진을 둘러놓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통행증’을 가지고 있다는 소소랑을 쫒느라 이곳을 발견한들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 또한 천영근자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잡아야 된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내 마음만이 문제인 건 아닐까. 불안함은 환상이다. 그래. 우선 여수빈에게 가서 사과해야겠다.


그녀의 창백한 안색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감정은 순간적인 것을.


겨우 꿈자리가 사나운 것 정도로 그녀에게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됐다.


부엌에 찾아가니 그녀가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는 여수빈.


나는 그녀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이 있음을 직감하고 만혼귀주문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눈앞에 나타난 뻥 뚫린 눈의 인간 형상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무영신보로 거리를 벌린다. 그런 뒤 강신본경으로 팔다리를 강체화한다. 마기제본술로 칼날을 쏘아보낸다. 혈음쇄마결의 저주를 엉겨붙게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들은 한 순간에 허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강체화된 팔다리는 무형의 장막에 막히고 기령의 칼날들은 갈갈이 찢겼으며 혈음쇄마결의 저주들은 곡성을 내며 스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눈앞의 존재를 직시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니 불안감의 근원이 직접 찾아온 것 같은데.


“반갑습니다. 두 분 다 오랜만이지요?”


거기엔 두 눈이 파내어진 아홉째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홉째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오른쪽 눈을 보더니 자기 눈을 잘 써달라며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그는 호의적인 모습과 별개로 다소 특이한 제안 하나를 해 왔다.


“저와 시험 하나를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시험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동빈 도우는 상계에 가보신 기억이 없으시지요?”


“그렇다. 그리고 굳이 가고 싶지도 않군.”


“이해합니다. 도우에게선 오로지 상승에 대한 순수한 집념만이 느껴지니까요.”


“그런가. 별 생각은 없다만.”


“고행을 하다 보면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없던가요?”


“있지. 수도를 쌓을 수록 알겠더군.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본질적인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야. 검을 아무리 휘둘러도 채워지지 않던 그 갈증도..”


부르르.


내가 잘게 몸을 떨자 아홉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해합니다. 저는 비록 상계와 하계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도를 쌓지만 그것 또한 하늘에 가까워지는 길이니 다를 바 없겠지요.”


“힘의 본질이란 그런 거지.”


“관성이지요. 도우께서는 차근차근 힘의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으니 언젠가 대성하실겁니다.”


“고맙네. 하지만 이대로 공력을 쌓는 것 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야. 무언가 더 있어야..”


“호오. 그렇다면 저와 함께 시험을 하나 보시지 않겠습니까? 동빈 도우께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무슨 시험을 말하는 건가?”


“용의 시험이지요. 상계와의 통행권을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등천암로를 빠져나간다라.


아홉째와 소소랑의 대화나 죽어가는 토전문의 수사에게서도 나왔던 주제였다.


대체 상계라는 곳이 어떻기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듣기로는 하계와도 궤를 달리하는 풍족함이 깃든 세계라던데.


하지만 난 지금의 삶에 만족했다.


“난 관심없네만.”


“하하. 도우께서는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아홉째는 품 속에 손을 넣더니 영롱하고 푸른 보석 하나를 꺼내보였다.


“이건 뇌신석이라 하는 물건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뇌승멸천문의 보물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힘을 잃은 예쁜 보석일 뿐입니다.”


“과연 힘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렇습니다. 힘을 잃었다 해도 법보는 법보. 이 상태에서 소지만 하고 있더라도 이 뇌신석이 주변의 뇌기를 전부 흡수해 주지요.”


아홉째가 품에 손을 다시 넣더니 힘을 잃은 뇌신석을 우르르 쏟아냈다.


도합 10개정도 되어보이는 양의 뇌신석들.


아홉째는 손에서 전기를 타닥타닥 튀기더니 뇌신석에 힘을 흘려 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빨려들어가는 전류.


“이건..”


“저희가 통과하게 될 시험은 발리 왕의 시험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선 인드라의 아들인 발리 왕의 시험답게 몰아치는 무자비한 뇌전 속에서 일주일여를 끝없이 나아가야 하지요. 참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요. 하지만 이 뇌신석이 있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저 조그마한 보석이 한 시진도 넘게 몰아치는 번개다발을 흡수할 수 있단 말인가?”


“맞습니다. 열 개도 필요 없습니다. 두 개면 충분하지요.”


“잘 알겠네. 하지만 나는 가족들을 두고 쉬이 떠날 수 없다네. 이해해주게.”


나는 눈이 빠졌음에도 여전히 인자한 아홉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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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대원승천단 - 3 24.06.16 67 0 9쪽
28 대원승천단 - 2 24.06.15 84 1 9쪽
27 대원승천단 - 1 24.06.14 93 1 10쪽
26 발리 왕 - 5 24.06.12 66 1 12쪽
25 발리 왕 - 4 24.06.10 87 1 9쪽
24 발리 왕 - 3 24.06.08 74 1 10쪽
23 발리 왕 - 2 24.06.07 84 1 10쪽
» 발리 왕 - 1 24.04.27 108 2 10쪽
21 천계(天界) - 7 24.04.19 133 0 9쪽
20 천계(天界) - 6 24.04.18 138 1 10쪽
19 천계(天界) - 5 24.04.15 131 2 9쪽
18 천계(天界) - 4 24.04.14 140 2 10쪽
17 천계(天界) - 3 24.04.13 155 2 12쪽
16 천계(天界) - 2 24.04.09 169 2 11쪽
15 천계(天界) - 1 24.04.09 180 2 11쪽
14 등천암로(登天暗路) - 12 24.04.08 170 2 11쪽
13 등천암로(登天暗路) - 11 24.04.08 164 2 10쪽
12 등천암로(登天暗路) - 10 24.04.06 177 2 12쪽
11 등천암로(登天暗路) - 9 24.04.04 18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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