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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야성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가 신선세계에 떨어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찬야성
작품등록일 :
2024.01.06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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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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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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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발리 왕 - 5

DUMMY

나는 더 듣지 않고 작게 읊조렸다.



“천둔.”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을 무릅쓰고 번개다발로 뛰어드는 그 우정이 가상하구나! 나 또한 다르마(Dharma)에 벗어나지 않는 자. 라마와 같이 천년혈전에서 등을 맞대고 싸웠던 일이 기억나는구나. 내 그 점을 높이 사..]



발리 왕이 뭐라뭐라 떠드는 소리가 들렸으나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고오오.



나는 오로지 왼팔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에 집중했다.



선.



먹는다.



그것이 천둔의 의미.



나는 천천히 왼팔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따라 손을 그었다.



천둔이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다.



한 점으로 끌어당긴다. 압축한다. 그리고 힘의 장을 만든다.



그럼으로써 압도적인 존재의 업(業)을 거기에 기록한다.


그러면 그 존재의 인력이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겨 마치 모든 것을 탐식하게 된다.



우선 기록을 위해서는 관측이 필요하다. 품 속의 천둔지서가 우웅. 하고 진동했다. 나에게 손을 뻗으면 저 위대한 천상의 존재들을 엿볼 기회를 주겠노라고. 그들의 이름을 쓰되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노라고. 그것이 천둔이라고.


그러나 내가 봤던 존재중 가장 압도적인 것. 그런 존재는 정해져 있었기에 거절했다.


저 발리 왕 따위보다. 지금 내가 지닌 이 천둔의 힘보다. 어쩌면 이 세계를 만든 존재보다도 더.



머리가 지끈거렸다.



흉측한. 아니,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섬세한. 그리고 거친.



개념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사고 이전의, 존재 이전의 존재.



나는 힙겹게 왼팔을 내 오른쪽 눈에 갖다대었다. 최소한의 예우는 필요하리라.



콰직!



뽑힌 오른쪽 눈을 허공에 갖다댔다. 그리고 ‘눈’을 떠올린 순간.



팟.



갑자기 시야가 일변하더니 천지를 뒤덮은 뇌전도, 발리 왕도, 푸른 과일나무가 가득한 둔덕도 사라지고 등천암로의 차가운 동굴벽만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동굴 바닥에는 부서진 바즈라와 허망한 표정의 아홉째가 앉아 있었다.



뭐.. 지?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도우. 이건 대체..”


“나도 모르오. 분명 발리 왕이 그대를 공격하기에 합세하려 했건만..”


“...”



나는 아홉째가 저런 허무한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봤기에 조심스레 물었다.



“방금 그건 혹시 환상.. 같은 거였소?”


“아닙니다. 환상이 아닙니다. 발리 왕은 신혈의 적통을 이은 존재. 인간으로 따지면 대라신선보다도 높아 본인만의 세계를 창조해 그 안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방금은 우리가 그 발리 왕의 세계 안에 들어간 것 아닌가?”


“비슷하지요. 신선들의 세계는 영압이 너무 높아 저희같은 일개 수도자가 들어가는 순간 짜부라져 죽겠지만 방금 저희가 들어간 세계는 발리 왕의 수많은 분신들 중 하나가 만들어낸 것이라 괜찮습니다.”


“그렇게 죽을 둥 말 둥 맞서 싸웠던 존재가 분신이라. 허.”



알고 있었지만 입맛이 썼다. 이다지도 힘의 격차가 크단 말인가.



“네. 그조차도 저희를 시험하기 위해 봐준 것이지요. 수억의 분신 중 하나라고는 하나 신화적인 존재의 분신. 최소 원영기 정도의 경지는 됩니다. 만약 방금 마주친 발리 왕이 진심전력을 냈다면 저흰 초살(初殺)당했을 것입니다.”


“자네는 정말 모든 걸 알고 있구려.”


“솔잎가지의 향기가 마루까지 퍼진 덕이지요.”



-좋은 스승을 뒀다는 뜻이다.



메제드가 부연설명을 해줬으나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허탈함 때문이다.



아홉째와 나의 힘의 격차는 컸지만 대강 가늠이 갔다. 하지만 발리 왕과의 힘의 격차는 가늠도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그게 봐준 거라니.


그런데 그렇다면 더더욱 이 상황은 이상했다.


내가 천둔을 사용하자마자 왜 갑자기 등천암로가 눈앞에 나타났냔 말이다.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럼 대체 우린 왜 다시 등천암로로 돌어왔는지 아나?”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왕이 저흴 추방한 것인지, 아니면 시험에 시간제한이라도 있었는지..”



아홉째는 부서진 바즈라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바즈라도 부서졌으니 길을 다시 열 수도 없는 걸요.”


“아쉽지 않은가? 자네는 분명 거기서 얻어야 할 게 있던 걸로 보였는데..”


“괜찮습니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요.”



그러며 뇌신석을 들어 보이는 아홉째.



“원래는 두어 개의 뇌신석 정도만 뇌룡의 시험에서 충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발리 왕의 폭주 덕에 뇌신석 열다섯 개가 전부 충전되었으니 오히려 좋습니다.”


“열다섯 개?”



내 반문에 답이라도 하듯 뇌신석 다섯 개를 내 쪽으로 건네는 아홉째.



“본디 뇌신석은 열 개가 하나의 법보입니다. 각각 피독(避毒), 항마(抗魔), 금강(金剛), 수호(守護), 요격(邀擊), 불침(不侵), 뇌격(雷擊), 흡공(吸功), 방전(放電), 정심(正心)의 권능을 부여하는 법보입니다. 상성을 타긴 하나 굉장히 쓸모가 많은 법보이지요. 또한 뇌신석 10개가 전부 모이면 단 한 번에 한해 내부의 모든 힘을 소모하는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위력은 결단기 중기 수사의 일격과 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5개를 받으시지요.”


“그런 귀한 것을 대체 왜 내게..”


“받으시지요. 도우께선 저를 구하기 위해 사지로 다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울컥.



그 말을 듣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울대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그걸 토해내진 않았다. 이런 기분을 느낄 나이가 아닐텐데. 참 주책맞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뇌신석 다섯 개를 받아 원래 가지고 있던 뇌신석 다섯 개와 합치니 일렬로 공중에 뜨며 나를 호위하듯 빙빙 돌았다.



그 모습을 본 아홉째가 날 보며 말했다.



“잘 작동하는군요. 좋습니다. 그런데 도우, 오른쪽 눈은 도로 끼우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잃어버릴까 저어됩니다.”


“아.”



그제서야 나는 아직까지도 왼손으로 내 오른눈을 뽑아들고 있던 것을 인지하고는 도로 제자리에 끼워 넣었다.



그런데 눈을 끼워 넣자 머릿속에서 돌연 고함이 들려왔다.



[네이놈ㅡ! 감히 나를!]



-뭐야. 새 식구야? 설마 저놈..



[나를 어떻게 한거냐ㅡ! 대답해라!]



쿵쿵.



골이 울릴 정도의 고함에 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이 목소리는 분명 발리 왕의 목소리였다.



-아니, 이놈 대체 어떻게 열로 데려온거야? 이건 뭐 빛의 망치 든 할아범급 납치실력인데?



“하. 잠깐.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해라.”


“도우? 괜찮으십..”


“닥치라고!”



나는 머릿속에서 고함치는 발리 왕의 소음공해에 왼팔로 오른쪽 눈을 강하게 쳤다.


그러자 좀 조용해진 발리 왕.



주위를 돌아보니 아홉째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음, 도우. 괜찮으신.. 거 맞지요? 하하.”



뭔가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표정.


나는 급히 변명하려 했으나 왼팔로 머리를 강하게 친 탓인지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일을 다투는 일정이 있어서. 하하하···.”


“잠깐만. 아홉째 자네. 기다려 보게나. 아직 할 말이..”


“저는 이제 화룡의 시험을 보러 가야되는지라. 도우, 금방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무운을.”



그러고는 휑. 하고 사라져버린 아홉째. 어디로 갔는지 눈앞에서 기척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뻘쭘하다.


나는 괜히 발로 돌을 툭툭 쳤다.



“제길. 그러니까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그러고보니 아홉째는 내 왼팔을 보지 않았나?


분명 내가 무언가를 해서 원숭이 나라인 바나라에 진입하기 직전의 동굴로 돌아왔음을 봤을 터인데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떠난 셈이 되었다.



[크윽.. 기절? 이 몸이 기절했단 말인가?]



그때 또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발리 왕.


메제드는 눈치를 챙겼는지 가만히 있는 모습이었다.



[네놈! 내 영혼을 가둬서 나에게 고통을 느끼게 해? 감히..]



쾅!



[끄아아악!]



정신을 못 차린 듯 하여 오른쪽 눈을 한 번 더 때리니 찰진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는 아예 오른 눈을 도로 빼내어 짜그라뜨리고 던지고 튕기고 했더니 더이상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절대 원한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시끄러웠을 뿐이다.



한 시진쯤 후 오른눈을 들어 굴려보니 지친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제발.. 그만해다오. 견디기 힘들구나.]


“주세요.”


[주세요라니. 뭘 주라는..]




깡!



“존댓말.”


[끄으아악! 알, 알겠습니다! 그만해주십시오. 그만해주세요.]



그제서야 존댓말을 쓰는 발리 왕. 꼭 짐승은 쳐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나는 드디어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아 놈에게 물었다.



“너, 거기 왜 들어가 있는거냐? 그거 내 눈인데.”


[네? 그게 무슨 소리··· 잠, 잠깐! 말로 합시다. 아니, 해주십시오. 제발..]



살짝 위협하니 기겁하는 게 귀여워서 한 시진 정도는 더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수빈과 염아를 생각해 그만뒀다.



“아니 그니까. 갑자기 니가 왜 내 오른쪽 눈에 들어가 있냐고.”


[그거야 당신.. 아니 주인님께서 저와 제 세계를 이 눈에 넣으셨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해봐.”


[제가 본 건 주인님의 왼팔이 기이한 도형을 그리는 순간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했던 것 뿐입니다. 눈 떠보니 이곳에 갇혀있었지요.]


“기이한 도형이라니? 설명해봐.”


[음 그러니까.. 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외에 기억나는 건 없나? 그게 다야?”


[네..]



발리 왕의 말은 전부 진실.


아무래도 발리 왕에게선 더 얻을 게 없어 보여 나는 천둔지서를 펼쳐보았다.



천둔지서의 두 번째 장에는 이전과 같이 기이한 문자들이 적혀있었다.



이번엔 다행히 어느 정도 띄엄띄엄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존재의 인력이란 누구나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쉬이 알아채지 못하는 힘.


그러나 깨닫고 나서는 항상 주린 배를 붙잡고 온 세상을 먹어 자신의 허기를 달래게 되지요.


하지만 끌어당겨 먹어치우기만 하는 힘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소화를 해야죠.


소화를 하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공(空).


두 번째는 멸(滅).


세 번째는 도(道).



밀도를 높이면 관성이 붙게 될거에요.


해(解)를 무한히 쪼개거나, 지우거나, 따라가거나.


결과는 하나로 귀결되지요(歸宗).



그것이 두 번째 천둔의 의미에요.



책을 다 해석하자 이번에도 천둔지서의 문자들이 떠오르더니 오른쪽 팔에 깃들었다.



아마 두 번째 장의 저자는 첫 번째 장의 저자와 다른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도, 설명하는 방식도, 그 내용도 전부 느낌이 달랐다.



“메제드.”


-왜.


“네가 보기엔 이 천둔지서는 뭘 거 같나.”


-나도 몰라. 적어도 귀곡자가 말한 것처럼 술법서는 아니란 것만 알겠다. 오히려 신선이 만든 법보라 하면 믿겠어.



나는 말없이 왼팔을 들었다.


두 번째 천둔의 의미도 곧 알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왼팔에서 천둔의 힘을 끌어올리니 황금색 뇌전이 치지직 하고 비어져 나왔다.


천둔의 효능은 아니다. 그저 두 번째 장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아직 소화를 다 하지 못한 것이다.


격을 높여야 한다. 만혼귀주문도 좋고 천둔도 좋다. 힘을 끌어올리니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아홉째와 나는 원숭이 나라에서 튕겨져 나온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먹힌’ 것이다.


그래서 세계가 사라지니 아홉째와 나 또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온 것이고.


그러니 내 몸은 곧 세계인 셈이다. 천둔을 끌어올린 채 내면을 관조하니 수많은 원숭이들의 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떻게 이들을 소화해야할지 알 것 같았다. 또 어째서 귀곡자가 만혼귀주문과 함께 천둔지서를 줬는지도 알 것 같았다.


만혼귀주문은 영혼을 정련하고 제련하고 벼려내는 그 과정에서 영혼의 업을 받아들여 성장하는 공법.


헌데 어째서인지 여기 내 몸속에 나보다도 높은 경지의 요수 영혼들이 무수히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한 기연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남은 건 시간뿐이다.



그리고 칠 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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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대원승천단 - 4 24.06.17 79 0 9쪽
29 대원승천단 - 3 24.06.16 67 0 9쪽
28 대원승천단 - 2 24.06.15 84 1 9쪽
27 대원승천단 - 1 24.06.14 93 1 10쪽
» 발리 왕 - 5 24.06.12 66 1 12쪽
25 발리 왕 - 4 24.06.10 87 1 9쪽
24 발리 왕 - 3 24.06.08 74 1 10쪽
23 발리 왕 - 2 24.06.07 83 1 10쪽
22 발리 왕 - 1 24.04.27 108 2 10쪽
21 천계(天界) - 7 24.04.19 133 0 9쪽
20 천계(天界) - 6 24.04.18 137 1 10쪽
19 천계(天界) - 5 24.04.15 131 2 9쪽
18 천계(天界) - 4 24.04.14 140 2 10쪽
17 천계(天界) - 3 24.04.13 155 2 12쪽
16 천계(天界) - 2 24.04.09 169 2 11쪽
15 천계(天界) - 1 24.04.09 180 2 11쪽
14 등천암로(登天暗路) - 12 24.04.08 170 2 11쪽
13 등천암로(登天暗路) - 11 24.04.08 163 2 10쪽
12 등천암로(登天暗路) - 10 24.04.06 177 2 12쪽
11 등천암로(登天暗路) - 9 24.04.04 18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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