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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야성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가 신선세계에 떨어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찬야성
작품등록일 :
2024.01.06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8 12:53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598
추천수 :
76
글자수 :
178,632

작성
24.04.0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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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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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등천암로(登天暗路) - 11

DUMMY




"...세요?"


환청인가?


시끄러운 벌이 앵앵거린다.

이래서야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나는 팔을 휘둘러 벌을 쫒아냈다.

그러니 잠시간 조용해졌지만 다시금 앵앵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찮으세요?"


아, 달콤한 휴식.

이대로 햇빛 속에 눕고 싶었다. 지평선엔 사자와 황금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 기울기를 눈으로 좇다가 이내 검을 들어..


"괜찮으세요?"

"으음.."


번쩍.

눈이 떠지고 차가운 물방울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한 여인.

나는 여인의 형상에 본능적으로 주먹을 쥐어 경계했으나 눈에 초점이 잡히자 주먹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 일어나셨군요!"


누구지? 아니, 그것보다 방금 나는 분명히..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손으로 온몸을 더듬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건 탱글탱글한 피부와 활력이 느껴지는 몸뚱어리뿐.

영문을 알 수 없어 속으로 메제드도 불러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심지어 주변엔 눈앞의 여인 빼고 아무도 없었다.

아홉째도, 소해랑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아홉째의 굴러떨어진 우안에서 자라난 꽃만이 방금의 일을 변증해줄 뿐이었다.


그렇게 난 내 멀쩡한 몸과 충만한 공력을 확인한 뒤에야 눈앞의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그 동굴의 계집?"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기억이 났다.

날 부르고 흔들어 깨운 사람은 동굴에서 아홉째와 내가 원숭이 왕에게서 구출한 여인이었다.


"대체.. 아홉째는 어디로 갔나."

"아홉째라니요?"

"그 불승 말이다. 널 원숭이 왕에게서 구한 사람!"

"아, 그분 말이죠."


그녀는 잠시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분은 눈을 뽑은 채로.. 마구 웃더니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진실.]


그때 머릿속에서 기이한 음성이 들려왔다.

마치 석관옹의 목소리와 비슷한 기이한 합성음.

동시에 내 눈앞의 여인에게서 황금빛 광채가 은은하게 서린 것을 보고 나는 문득 말했다.


"진실?"


내 눈앞에 있던 여인은 그것을 반문으로 받아들였는지 재차 변명했다.


"네, 정말입니다. 동굴 입구에 숨어서 보고 있었어요."

"왜 도망가지 않았지?"

"당신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시니까요."


[거짓.]


이번엔 여인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사라지더니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오른쪽 눈알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자의적으로 꿈틀거리는 오른쪽 눈알.


나는 문득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메제드.'


이번엔 대답하는 눈깔놈.


-왜?

'지금 내 오른쪽 눈, 설마 내 눈이 아닌 건가?'

-빨리도 알아챘구만. 맞아. 그 미치광이 불승놈의 눈깔이 네 우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박혀있단다.

'그럼 지금 들린 이 묘한 합성음도..'

-어. 저 우안놈이 말한거다. 자아는 없어보인다만 묘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설마 진실과 거짓을 판별해주는 눈같은 건가.'

-맞다. 심지어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법보인 듯 해. 아까 네 방어를 뚫고 들어온 걸 봐선 법보가 아니라 신기()수준의 물건인 것 같지만..

'신기라니?'

-신선들이 만든 법보를 말하는 거다. 유명한 물건으론 염마라문의 흑수범면()이 있지.


메제드에게 신기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려던 찰나, 여인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석고대죄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실언을 입에 올렸습니다. 사실은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생명의 은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저 혼자 도망가기엔 담력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천인님."


그러자 다시금 황금빛으로 물드는 여인의 신체.

나는 확신을 갖기 위해 질문했다.


"하나 물어보겠다. 혹시 지금 내 눈이 무슨 색으로 보이지?"

"왼쪽 눈은 검은색, 오른쪽 눈은 금안으로 보이나옵니다."


과연. 여인의 몸은 여전히 황금색이었다.

나는 이걸 좋아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그냥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좋은 게 좋은거지. 패배했으나 죽진 않았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는가?

아홉째 본인도 아니고 고작 그의 눈깔 하나에게 패배했단 사실이 입가를 쓰게 만들긴 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에이, 됐다. 너, 이름이 뭐냐?"


그러자 손을 벌벌 떨며 말하는 여인.


"소, 소녀는 여수린()이라 하옵니다. 천한 지저인 태생이지요."

"지저인? 지저인이 대체 뭐더냐?"

"수사님같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천인과 다르게 지저에서 태어나 석균()을 캐먹고 살아가는 천한 것들이옵니다. 감히 거짓을 입에 올린 것에 대해 부디 자비를.."


-끌끌. 이 등천암로()의 범인들이다. 밖과 다른 게 있다면 여기선 그나마 가축 취급조차 못받는 존재들이랄까.


"어쩌다 원숭이 왕에게 잡히게 된 거지?"

"제물이옵니다. 그분의 성욕을 풀어드려야 저희 마을이 살아남을 수 있기에 절 공물로 바친 것이지요."

"개같은 놈들이로군."


여인이 창백해진 채로 두려움에 몸서리치듯 떠는 모습을 보니 심히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아까는 몰랐지만 얼굴과 체격을 자세히 뜯어보니 열일곱도 안되어 보이는 숫제 어린애 아니던가.


"따라와라. 살 길을 마련해 주겠다."

"허.. 허억. 영광이옵니다, 천인님!"

"천인님은 됐다. 동빈님이라고 부르거라."


그러다 황송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예, 동빈님."


꿈틀꿈틀.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시야 한 구석에서 푸른 벌레같은 것이 움찔거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까 소해랑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그 벌레, 금령제환충이었다.

생각해보면 불승이 떠난 후 다시 와서 가져갔을법도 한데 음마문의 비기니 뭐니 한 것 치고는 너무 쉽게 포기한 느낌이다.


아무튼 나는 금령제환충을 집어 저물대에 넣었다.

몸 안에서 고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아홉째가 처음 나를 만졌을 때 내 안에 있던 금령제환충은 제거시킨 모양.


주위를 조금 더 둘러보니 불승의 오른쪽 눈이 떨어진 자리에서 눈알 모양의 식물이 하나 나와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조심스레 뿌리채 들어올려보니 갑자기 내 손바닥에 몸을 비볐다.

마치 애교라도 부리는 모양새.

나는 그 눈알에서 황금빛 광채가 서려있는 것을 보고 이놈을 어깨에 올렸다.

그러니 이번엔 내 오른쪽 눈에 가까이 다가와 몸을 비비더니 퐁 하고 작은 구슬로 변해버렸다.


나는 그것도 저물대에 넣고는 여수빈과 함께 주변을 돌아다녔다.


"와아, 이것좀 보세요!"


여수빈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곳을 보니 수십개의 아름다운 하늘옷이 천장을 수놓은 모습이 보였다.


"갖고 싶나?"


그러자 아까의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기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수빈.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이제야 좀 사람다운 표정을 짓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천장에서 하늘옷을 하나 꺼내다 주었다.


-전부 챙겨라. 연기기 12성급 수사가 만든 하늘옷이니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 옷은 여인의 것인데 나도 입어야하나?'

-그냥 입어라. 저것만 있으면 한두성급 위의 연기기 수사한테도 비벼볼 만 한 방어력을 갖출 수 있다. 범인에겐 강철 정도의 단단함밖에 안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소해랑의 하늘옷을 전부 챙긴 뒤 그 중 가장 단촐한 모양의 옷을 입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시꺼먼 무복으로 변해 온몸을 감싸는 의복.

크게 만족스러웠다. 음. 역시 검은 무복이 최고지.


-형상변환 술법이 걸려있었군. 으. 근데 니 진짜 패션센스 하나는 최악이다.. 무슨 김덩어리 덕지덕지 바른것도 아니고 어둠의 자식이 따로없어.

'암흑지자()? 그거 좀 멋지군. 나중에 가명으로 써도 되겠어.'

-프흡. 그래라. 가명으로 정말 딱이구만. 크하하하!


내 작명센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메제드.

나는 신나서 의복을 이것저것 만져보는 여수빈을 데리고 근처를 샅샅히 탐색하며 쭉 돌았다.

그러니 연단실로 보이는 곳에서 약간의 영약과 연단로, 마수들의 가죽과 뼈 따위를 얻었고 여러가지 자잘한 법기와 진법 설치에 필요한 깃발 등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 외에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아마 중요한 것들은 다 저물대에 넣어놓고 다니기 때문이겠지.

어짜피 연단에 대한 지식이나 수선법 등은 귀곡자가 전수해준 지식 속에 다 들어있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나는 아홉째와 소해랑이 살던 거점을 탈탈 털어먹은 뒤 그곳을 나왔다.


"저.. 여기 꽤나 지형이 험준해 보이던데 그냥 여기서 살면 안되나요?"

"안된다. 내 몸에 벌레를 심었던 그 마녀 기억나나?"

"아, 그 표독스러운 얼굴의.."

"소해랑이라고 하는 자이지. 그녀가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 재수없게 그년이랑 마주치면 우린 반드시 죽는다."

"알, 알겠습니다."


나는 그러다 어느 한 쪽에 생각이 가 닿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다만 마을로 돌아가고 싶으냐?"


그러자 결연한 표정을 짓는 여수빈.


"아니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사람으로 죽고 싶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생의 본질은 본디 방랑 아니겠는가.

살아있는 것들이 기억이라는 착란을 토해낼 때마다 먼지처럼 쌓이는 것이 업이거늘 누군가가 그 먼지를 조금 치우려 한들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기실 손가락질한들 상관 없는 일이다.

기화할수록 진해지는 것을 나라고 믿으면 될 일이니.


나와 여수빈은 그렇게 발 닿는 대로 정처없이 걸음을 디뎠다.


그리고 사 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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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발리 왕 - 2 24.06.07 83 1 10쪽
22 발리 왕 - 1 24.04.27 108 2 10쪽
21 천계(天界) - 7 24.04.19 133 0 9쪽
20 천계(天界) - 6 24.04.18 137 1 10쪽
19 천계(天界) - 5 24.04.15 131 2 9쪽
18 천계(天界) - 4 24.04.14 140 2 10쪽
17 천계(天界) - 3 24.04.13 155 2 12쪽
16 천계(天界) - 2 24.04.09 169 2 11쪽
15 천계(天界) - 1 24.04.09 18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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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천암로(登天暗路) - 11 24.04.08 164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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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천암로(登天暗路) - 9 24.04.04 18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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