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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야성 님의 서재입니다.

검귀가 신선세계에 떨어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찬야성
작품등록일 :
2024.01.06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8 12:53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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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6
추천수 :
76
글자수 :
178,632

작성
24.04.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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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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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계(天界) - 2

DUMMY

스걱.


철퍽.



애원하는 모습 그대로 땅에 박제된 놈의 모습.


권토중래란 말이 있지만 이 수사와 썩 어울리는 성어는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얘 이름도 안 물어봤네."


-오태식이라 하지 않았나?


"그거 거짓말이었다."



나는 녀석의 시신을 대충 귀주문의 부패 술법으로 부식시켜 없앤 다음 저물대를 챙겼다.



-호오. 짭잘한데.



거기에는 놈의 것으로 보이는 중토가 담긴 호리병과 약간의 영석. 그리고 청파적이라 음각되어있는 피리가 들어있었다.



-영토. 그니까 영험한 흙이 담긴 항아리군. 특별한 것은 아니야. 그리고 이 피리는..



잠시 말을 고르는 메제드.



-말갛고 강파른 물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마 놈이 암습했다는 북해문의 수도자가 가지고 있던 물건같군.


"뭘 하는 데에 쓰는 물건이지?"


-공력을 담아 불면 지상에서도 파도를 부를 수 있는 물건이다.


"애매하네."


-효능은 그렇지. 하지만 이 피리의 재료가 상당히 궁금해지는구만. 이렇게까지 순수한 기를 지닌 법기라..



나는 둘 다 저물대에 챙겨넣은 뒤 메제드의 도움을 받아 시신의 흔적을 전부 지웠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저들의 은원에 관여할 텐가?


"아니. 놈들끼리 치고받은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운으로 수도자들이 자멸해 마을 안까지 들어오진 않았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또 일어나기 마련. 그러니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거처를 옮긴다. 이곳은 위험해."


-네 자식놈과 아내도 데려갈 거냐?


"자식도 아내도 아니지만 데려가야지."


-참 취향도 이상하구만. 도망갈 거면 혼자 가지.


"잠시 대피해있는 것 뿐이니 괜찮다. 저들의 은원이 결판나면 같이 돌아오면 된다."


-하긴. 이곳의 집에 연단실이랑 제령실도 설치해놨으니 버리면 아깝긴 해.



나는 그 길로 곧바로 집으로 갔다.


그러자 아이를 재우고 있는 여수빈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당장 마을을 떠난다. 짐을 싸라."


"염아가 아직 자고 있어요."


"깨워라. 반 시진 안에 채비를 마치도록."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옷부터 챙기는 여수빈.


이유따윈 묻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서 익숙한 강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일각도 채 되지 않아 비몽사몽한 아이를 업고 나온 여수빈.



"건포는 따로 품에 챙겼나?"


"네, 나리. 아이 것까지 달포치정도 챙겼어요."


"히잉.. 무서워."


"염아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엄마를 꼭 붙잡고 있으렴."


"딸꾹. 네.."



아이를 달래는 그녀.


나는 저물대에 나머지 살림살이와 집기들을 넣은 뒤 집을 나섰다.



"저흰 어디로 가나요?"


"미리 봐 둔 곳이 있다. 인적이 드문 은신처이지. 거기로 가 잠시 화를 피해있을 것이다."


"그럼 마을 사람들은요?"


"운이 좋길 바래야지."


"하지만.."



그새 정이라도 들었는지 망설이는 그녀.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는지 그녀가 말했다.



"아이를 재워주실 수 있나요? 중간에 울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물론."



나는 아이의 수혈을 짚어 깊이 잠들게 했다.


그리고 조용히 마을 입구의 나무 울타리를 치우고 긴 동굴 통로를 지나 마을 밖으로 나섰다.


목적지는 이전에 아홉째와 함께 왕을 죽인 적이 있던 원숭이 굴이다.


이제는 원숭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폐허가 되어버린 곳.


길을 알지 못하면 들어가기도 힘들고 막상 원숭이 굴에 들어간다 해도 미로같은 지형 때문에 쉬이 수색하기가 어려워 은신처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은신처까지의 대략적인 경로를 머릿속에 그리며 막 마을 밖으로 나왔을 때.


익숙한 얼굴 두 명이 동굴 통로 건너편에서 보였다.


대장장이와 그의 손녀였다.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드는 거구의 노인과 소녀.



"오! 여 씨 총각 아닌가. 하하. 부인도 안녕하시오. 오랜만에 뵙는구려. 흐하하!"


"언니, 오랜만이에요!"



그러자 여수빈이 쭈뼛거리며 답했다.



"반.. 가워요. 호호."



그런 그녀를 보고 가볍게 묻는 대장장이 노인.



"아니, 근데 편찮으시다 하지 않으셨나? 마을 밖에는 어쩐 일이람."


"아, 그건 말이죠."



나는 여수빈의 앞으로 나서며 순간 고민했다.


그냥 조용히 대장장이를 속이고 사라질 것이냐, 아니면 오지랖을 떨 것이냐.


전자는 마음에 걸렸고, 후자는 위험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방금까지는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나란히 손잡은 조손을 보니 무언가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대장장이에게도 소중한 것은 있으리라.



"사실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합니다."


"네에?"



그러자 깜짝 놀라는 손녀. 하지만 대장장이는 별 감정의 기복 없이 말했다.



"쩝. 솔직히 이곳이 팍팍하긴 해. 먹을 건 이끼 뿐이고 사람들은 매정하니.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게나. 이만하면 천국이야. 천인도 없고 요수도 없는 마을이 흔하진 않아."


"아뇨, 바로 그 천인들이 곧 근처로 올겁니다. 그래서 미리 도망가려고 하는 겁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돌변한 대장장이.



"천인들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나."


"천인과 요수가 싸운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마을 앞 석순동굴에 그 흔적이 남아있지요."


"그럼 마을은 지금쯤 난리가 났겠군. 근데 왜 사람들과 같이 가지 않고 혼자만 가나."


"마을 사람들은 아직 천인들이 왔다는 걸 모릅니다."


"뭣이?"



내 말에 의문부호를 뱉어낸 노인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설마 지금 자네 가족 혼자만 도망치려 하는겐가? 마을 사람들은 어쩌고! 이런 이기적인 족속 같으니."


"변명은 않겠습니다. 일단 천인들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 어르신께서도 몸을 피하시지요."


"일없다. 나 사는 건 내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네 살길 찾아 가거라."



그러고는 손녀를 품에 안고 나를 지나쳐 걸어가는 노인.


사실상의 결별 선언이었다. 마음이 헛헛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노인을 붙잡았다.



"어르신. 제가 아는 좋은 은신처가 있습니다. 차라리 거기에 마을 사람들과 같이 숨는 게 어떠십니까. 아니면 어르신과 손녀분만이라도.."


"놓아라."


"어르신.."



내 손을 떨쳐내고 그대로 걸어가는 노인.


노인의 품에 안긴 소녀의 작은 울먹임이 들려왔다.



"할아버지.. 표정이 무서워요.."



그리고 이어지는 노인의 혼잣말.



"외인은 바람같은 것. 내가 또 눈이 멀었구나.."



이내 두 인영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장내엔 나와 여수빈, 그리고 곤히 잠든 염아만이 남았다.



"가자. 갈 길 가야지."


"괜찮으세요..?"


"우린 할 도리를 다 했음이야. 남은 건 저들의 몫이다."



나는 노인이 걸어간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흙 철퍽이는 소리만이 동굴을 울렸다.



ㅡㅡ



그리고 이틀 뒤. 우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원숭이 굴에 도착했다.


거기서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틈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전과 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의 거대한 종유석이 보였다.



"으읍! 이게 무슨 냄새람."


"엄마. 코가 아파요. 훌쩍. 냄새가 안맡아져요."



그리고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감싸쥐고 구역질하는 여수빈.


염아도 빨갛게 변한 코를 연신 만져대고 있었다.


원인은 원숭이 굴 전체에 진동하는 지독한 썩은내 때문이었다.


나는 두 모자에게 3년 전 소소랑의 방에서 챙겨놓았던 피독주를 꺼내주었다.



“일단 이 구슬을 줄 테니 입에 품고 있거라. 독과 삿된 기운을 막아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자, 염아야. 이걸 입에 물렴. 삼키면 안 된단다.”



그러자 염아가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썩은내의 정체가 뭔지 알아보고 와야겠으니 잘 숨어있거라.”


“조심히 다녀오십사와요.”



나는 조심스레 예전에 아홉째와 왔었던 길을 따라 거대한 종유석의 중심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더욱더 짙어지는 역취. 단순한 배설물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아니나다를까. 근처에 다가서자마자 원숭이들의 시체가 보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는 원숭이들.


그 시체들에 한 가지 기이한 점이 있다면 몸에는 그 어떠한 자상이나 타박상따위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채 인형처럼 꼿꼿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


썩은내는 당연하게도 그 원숭이들의 몸에서 나는 시취였다.


그리고 그 빳빳하게 굳어버린 시체들을 지나 완전히 종유석의 내부로 진입하자 눈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건.. 기괴하군.


“무슨 의식이라도 치른 건가?”



종유석 내부의 거대한 공동. 그 안에서 수천 마리의 피부 없는 원숭이들이 수레바퀴 모양의 원진을 그리며 죽어있었다.


원진의 중앙을 보니 제사장으로 보이는 원숭이 열 두마리가 꼬리가 얽힌 채 죽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쥐왕(Rat king)같군.


“그게 뭐지?”


-쥐들이 꼬리가 얽힌 채 죽음을 맞이하는 현상이지. 주술적 흉조야. 주로 재앙과 관련된 주술의 매개로 쓰이지.


“누군가가 일부러 원숭이들을 죽인 뒤 꼬리를 얽어놓은 건가?”


-그건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들이 자의로 이렇게 된 것 같지는 않군.



메제드의 말마따나 여기에 있는 모든 원숭이들은 하나같이 원통한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전부 하나였다. 바로 아래의 땅바닥. 즉 지하다.


그때 돌연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휘이잉.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부릅!



아래를 내려다보던 원숭이들의 눈이 돌변하더니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쭈뼛하고 온몸의 털이 파르르 떨렸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사위를 감쌌다.


눈동자들. 눈동자들. 눈동자들. 온 사방의 눈동자들이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마주하자 벌레가 피부 밑을 기어다니는 듯한 충동이 느껴졌다.



“이건 대체..”


-조심해라. 상계가 아닌, 구닥다리 천계놈들의 냄새가 난다.


“천계라니?”


-하계의 나머지 반쪽, 너희 기준으로 서역이라 일컫는 지역을 관리하는 세계이지. 난 왼쪽 눈이라 자세한 건 모른다. 천계에 관한 건 오른쪽 눈 담당이라서.



그러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어 말하는 메제드.



-그나마 기억나는 건 우리가 신선을 목표로 수도를 행하고 있다면 놈들은 천사()가 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라는 것 정도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군.



천사라.


분명히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배화교의 강자들을 찾아가 검을 나눌 때 그들이 염불외듯 중얼댔던 말들 중 하나였다.



“내 기억상으로 그들의 술법은 그리 대단찮았었다.”


-무림의 심공처럼 술법 또한 수도의 부산물일 뿐이니까. 대단찮은 것이 당연하다.



무림의 심법이 수도의 부산물이라고?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여 그에 관해서 더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곧 들려온 기이한 소리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끼이익.



철과 철이 마찰되는 소리.


기관장치의 움직임인가 싶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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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발리 왕 - 4 24.06.10 8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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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발리 왕 - 2 24.06.07 83 1 10쪽
22 발리 왕 - 1 24.04.27 108 2 10쪽
21 천계(天界) - 7 24.04.19 133 0 9쪽
20 천계(天界) - 6 24.04.18 137 1 10쪽
19 천계(天界) - 5 24.04.15 131 2 9쪽
18 천계(天界) - 4 24.04.14 140 2 10쪽
17 천계(天界) - 3 24.04.13 155 2 12쪽
» 천계(天界) - 2 24.04.09 169 2 11쪽
15 천계(天界) - 1 24.04.09 18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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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등천암로(登天暗路) - 11 24.04.08 163 2 10쪽
12 등천암로(登天暗路) - 10 24.04.06 17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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