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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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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763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4.01 19:04
조회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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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휴식(2)

DUMMY

"크흠. 어찌되었든 간에 옷은 고맙네. 잘 입을게."

"그래주시면 좋겠군요. 가급적이면 세탁 같은 것도 해 주시구요."

"세탁...이라. 뭐, 노력은 해 볼게."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내 뱃속에 거주중인 한 명의 거지가 난리를 피워대기 시작했고, 나는 주린 배를 문지르며 입맛을 다셨다.


"더 볼 일 없으면 이만 가봐도 될까? 오늘 하루종일 먹은 게 없어서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을 지경이야."


원래 오크들의 부락에 숨어있는 외신의 하수인을 빠르게 처리해버리고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리는 바람에 끼니 시간을 제대로 놓쳐버렸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두 군데나 되는 던전을 완전 클리어한 건가요. 정말로 류진씨의 전투 능력 하나만큼은...감탄을 금치 못하겠군요."

"그렇지? 자고로 한국인은 밥심인데 밥만 제대로 먹었어도 그 보라돌이놈 따위에게 용력의 전투 문신까지 사용할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피를 왕창 흘렸더니 그 때 이후로 배가 더 고파진 기분이다. 이거 집까지 가다가 배고파서 쓰러지는 게 아닐까 몰라. 만약 그렇게 되면 동사 확정인데.


"괜찮으시다면 저희 직원식당에서 식사라도 하고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직 정식으로 사원증은 나오지 않았지만 류진씨도 엄연히 저희 한성기업의 일원이니 괜찮을 겁니다."

"어? 그래도 돼? 그런데 돈 내야 되는 건 아니지? 이래뵈도 한성기업 본사에 있는 식당인데 만약 돈내는 거면 더럽게 비쌀 것 같은데..."

"...저희 한성기업을 뭘로 보시는 거죠? 직원 복지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일등을 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업이에요. 당연히 직원들의 식사는 전면적으로 무료..."

"이야호! 한성기업 만세! 이유신 회장님 만세!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세에상에! 밥이 공짜라니! 완전 땡잡았다!

나같은 거지들에게 공짜 밥이라는 것은 마치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기에, 나는 만세를 외치며 레어급 장비를 얻었을 때 이상으로 격한 기쁨을 표시했고, 신혜씨는 그런 나를 흉물스러운 걸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신혜씨가 한숨을 여러번 쉬는군.


"애사심이 깊어진 것 같아서 기쁘네요. 그러고보니 저도 아직 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안내도 해 드릴 겸 같이 가도록 하죠."

"오. 그럼 나야 땡큐지. 신혜씨 같은 미인이랑 같이 식사라니. 나도 제법 출세했구만."


식당의 위치 정도는 저번에 약도를 봤을 때 본 기억이 나지만 굳이 안내해주겠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고보니 유미씨한테도 고기 사준다고 했는데 영 만날 수가 없다. 오늘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당최 보이질 않는단 말이지. 내일은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이야~이거 기대되는구만. 그 한성기업의 직원식당이라."


최근 식사라고는 기본적으로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하고, 가끔 편의점에서 진상을 부려 털어낸 폐기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먹거나, 가끔 구걸에 성공하는 날 정도는 술집에서 안주를 씹는 호사를 누리는 게 내 평소 식생활이었기에, 정말 제대로 된 식사는 얼마만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기본적으로 무료로 운영되는 식당이니까요."

"흠. 역시 그렇겠지? 나야 뭐 뜨끈한 된장찌개 정도만 있어도 대만족이니까. 난 그렇게 입이 비싼 남자는 아니라고."


정말 예에전에 한번 가본 대학교의 학생식당 수준 정도는 되려나? 거기 된장찌개 맛있었는데. 좀 비쌌지만.

나는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얌전히 신혜씨의 안내를 따라 지하 1층에 위치한 직원 식당으로 이동했다.


-----


"이, 이게 다 뭐시여...?"


그리고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광경에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 세상에나 만상에나. 여긴 천국인가...? 이거 진짜로 공짜밥 맞아?"


나는 저번에 봤던 그 학생식당 정도를 생각하고 왔건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고급 호텔의 뷔페라고 해도 믿을 법한 호화로운 광경이었다.

방금 막 지었다고 해도 믿을 법한 깔끔한 외관, 그리고 돈을 아낌없이 들이부은 것 같은 고급진 인테리어.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군침돋는 냄새를 풍기며 진열되어 있는 끝을 모르는 음식들이었다.


"이, 이게 다 공짜라고? 진짜로 먹어도 되는 거 맞아?"

"거기 서서 뭐해요? 안 드세요? 배고프시다면서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신혜씨는 이런 풍경이 익숙한 것인지 이미 접시 위에 먹을 음식을 이것저것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 어...아, 알겠어. 지금 갈게."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지둥 배치된 그릇을 들고 배치되어있는 음식들 앞에 가서 섰다.


"그런데 이만큼이나 있으면 오히려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군..."


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평소엔 잘 먹을 일이 없는 고기류 위주로 음식을 접시에 골라담은 후, 이미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는 신혜씨 앞의 좌석에 착석했다.


"그, 그럼 잘 먹겠습니다."

"안 어울리게 왜 갑자기 존댓말인가요?"

"그, 그러게. 답지않게 좀 당황한 모양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마음을 추스르며 주변을 살폈고, 제법 시간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에도 제법 되는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제법 되는데. 이 많은 사람들한테 이런 음식을 다 공짜로 줘도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기는 해?"

"...회사의 경제 사정쪽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회장님께서 식비가 모자라다고 고민하시는 모습은 본 적이 없군요."

"그, 그렇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가져온 음식을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음...으으음!"

"...류진씨는 표정이 참 풍부하시네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쉬워서 좋긴 하지만요."

"아차. 나정도 되는 사람이 표정 관리도 제대로 못할 줄이야. 하지만 맛있는걸!"


직원식당의 음식들은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맛 또한 일류였다. 기본적으로 뷔페 형식이기에 대량으로 조리하는 것이 기본이인지라 일류 레스토랑의 고급 요리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지만, 정말로 고급 호텔의 뷔페 수준, 아니 그 이상은 되는 것 같은 맛이었다.


"이런 고급진 요리를 먹어보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빚이 꽤 많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의 의뢰로 받은 대금이 제법 되지 않나요? 그 정도라면 식사 정도는 제대로 챙겨 드셔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빚을 완전히 청산하기 전까지는 가급적이면 돈을 아끼고 싶어서 말이야. 뭐, 뒤늦은 자책 같은 거라 좀 청승맞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제게는 당신의 행동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도, 이유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일단은 걱정해준거지? 고마워."

"...한성기업에 고용된 헌터가 끼니를 제대로 못 챙겨먹어서 던전에서 급사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졌다가는 회사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이니까요."


여전히 감정을 알기 힘든 표정으로 농담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말을 하는 신혜씨. 확실히 그 말대로 되면 좀 없어 보이긴 하겠군.


"하하하. 그것도 그렇네. 뭐, 이곳의 존재를 알았으니 앞으로는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말이야."

"...그거 다행이네요."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식사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신혜씨는 잔반 없이 접시를 깔끔히 비우고는 냅킨으로 입을 훑으며 내 쪽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류진씨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해야 하나...조금은 실례일수도 있는 말이지만 상상 이상으로 식사 예절이 훌륭하시네요."

"어? 그런가?"

"네.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빈곤한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으시니까요."

"그거 아마 선입견 아닐걸. 당장 내가 아는 거지 아저씨 두 명만 해도 밥 먹을 때는 거기가 식당인지 전쟁턴지 헷갈리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말이야."


나는 밥 먹을 때만 되면 야차 같은 모습으로 돌변하는 덕구 아저씨와 춘삼이 아저씨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건 내쪽이지. 뭐, 밥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지는 꽤 됐지만, 이래뵈도 날이면 날마다 높으신 분들의 식사 자리에 불려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영 불편한 자리라 밥맛은 없었지만 말이야."

"아...그렇군요."

"이 회장님 같은 분들이랑 식사하는데 걸신들린 모습으로 밥 먹는 것도 좀 아니잖아? 아마 그때 버릇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모양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접시 위에 있던 마지막 한 점의 고기를 입으로 털어넣었고, 깔끔히 비워진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빈 접시는 어디 두면 되지? 한 그릇 더 먹고 싶은데."

"아. 접시는 그냥 자리에 두시면 식당 직원분께서 치워 주실 겁니다. 전 이제 배가 부르군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직 할 일이 좀 남아 있어서요."

"그래. 오늘 이렇게 좋은 자리를 소개해줘서 고마워. 아,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을 좀 해도 될까? 좀 염치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들어나 보죠. 뭔가요?"

"슬럼 쪽에 말이야. 나랑 신세가 비슷하고, 나랑 제법 친한 아저씨가 두 명 있단 말이지. 조금 전에도 말한 그 전투적으로 식사하는 아저씨들인데 말이야."


나는 슬슬 말을 꺼내며 신혜씨의 눈치를 살폈고, 신혜씨는 그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눈치보는 모습은 좋아하지 않아요. 류진씨와도 어울리지 않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해 주시면 좋겠군요."

"어, 응. 어쨌든 그런 아저씨들이 있는데 말이야. 그 아저씨들도 가끔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밥을 좀 먹을 수 있게 해주면 좋겠는데...안될까?"


밥을 먹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나던 아저씨들이다.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있는 정 없는 정 다 든 사이인데 나만 호위호식하기에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


내 말에 신혜씨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딱 잘라서 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원칙적으로는 외부인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면, 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는게 맞기는 하지만 말이죠...으으으음."


미간을 찌푸리며 제법 고심을 하는 신혜씨. 이거 제법 쫄리는데.


"역시...힘들겠지? 미안해. 내가 괜한 억지를 부려서."

"...아닙, 니다. 사실 류진씨 정도의 인재를 저희 회사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것보다 더한 요구라도 수용해드릴 각오가 있으니까요. 그 정도 일이라면 제 선에서도 수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신혜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긍정이었다. 게다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까부터 원칙, 원칙 거리는 걸 봐서는 내 요구 자체는 별 게 아니지만 일단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 고민을 했던 모양이었다.


"지, 진짜로? 고마워 신혜씨! 내가 답례로 다음에 밥 한 번 살게!"

"밥...말인가요."

"그래! 내가 아무한테나 막 밥 사준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거지한테 밥 얻어먹는 것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


지금은 거지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위치긴 하지만 말이지.


"...좋아요. 기껏 권유해주시는 거니, 거절하지는 않을게요. 그래도 가급적이면 저에 대한 감사보다는 이 회장님께 그 감사를 돌려주시면 고맙겠네요."

"하하하하. 그야 당연하지. 무려 이 식당...아니, 이 회사의 주인인데 말이야."

"...설마 저희 한성기업을 그저 밥이나 먹으러 오는 장소라고 생각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째릿 노려보는 신혜씨. 나는 살짝 찔리는 기분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아, 하하하...그럴 리가 없잖아? 내 소중한 직장인데 그걸 식당이라고 생각할 리가 없지. 아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동행인 건에 대해서는...담당자에게 말해두도록 하죠."

"어. 다시 말하지만 정말 고마워 신혜씨. 이 빚은 언젠가 꼭 갚을게."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신혜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접시에 음식을 받아와 즐거운 식사를 계속했다.


작가의말

뷔페...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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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던전의 버스기사(3) 21.03.22 444 6 13쪽
20 던전의 버스기사(2) +1 21.03.20 464 7 11쪽
19 던전의 버스기사 21.03.19 492 6 12쪽
18 경력 있는 신입(6) +1 21.03.18 481 6 15쪽
17 경력 있는 신입(5) 21.03.17 479 7 12쪽
16 경력 있는 신입(4) 21.03.16 465 7 14쪽
15 경력 있는 신입(3) 21.03.15 508 7 15쪽
14 경력 있는 신입(2) 21.03.14 535 7 14쪽
13 경력 있는 신입 21.03.12 560 9 14쪽
12 깽판칠 시간이다(3) 21.03.10 570 6 17쪽
11 깽판칠 시간이다(2) 21.03.08 606 5 14쪽
10 깽판칠 시간이다 21.03.07 652 10 13쪽
9 다시, 던전(9) 21.03.05 668 9 18쪽
8 다시, 던전(8) 21.03.03 702 8 14쪽
7 다시, 던전(7) 21.03.01 710 9 13쪽
6 다시, 던전(6) 21.02.26 780 9 13쪽
5 다시, 던전(5) 21.02.24 823 11 14쪽
4 다시, 던전(4) +1 21.02.22 919 11 15쪽
3 다시, 던전(3) +1 21.02.19 988 10 16쪽
2 다시, 던전(2) +1 21.02.17 1,191 19 14쪽
1 다시, 던전 +2 21.02.16 1,623 1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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