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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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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01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2.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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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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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다시, 던전(3)

DUMMY

저 멀리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은 언듯 보면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피처럼 붉은 피부에 털로 뒤덮인 산양의 다리, 거기에 이마에 달린 길다란 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악마와도 같은 모습을 한 그것은 몬스터였다.


"근데 말을 하네 저놈이?"


본래 몬스터란 인간과 소통을 하지 않는다. 자기네들끼리도 언어의 대화보다는 육체의 대화를 선호할 것만 같은 그들은 인간을 보면 우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일쑤였고, 그렇기에 눈앞의 존재는 이질적이었다.


"응? 당신은 또 누굽니까? 분명 인간의 무리는 넷이었고, 셋은 베었는데...어째선지 남은 건 둘이군요."


몬스터는 칼날처럼 길게 뻗어나온 손톱이 돋아나있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고, 나는 그런 몬스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몬스터 주제에 산수도 할 줄 아는군. 갈수록 신기한데."

"아, 아아...민지도 당한, 건가?"


듣자히니 방금 들린 비명소리는 민지라는 사람의 비명소리인 모양이다. 그리고 몬스터는 손톱에 묻은 피를 핥으며 말했다.


"네에. 그 여성분은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더군요. 가능하면 그 성대를 기념삼아 챙겨두고 싶었지만, 당신이 너무 빠르게 도망치는 바람에 그냥 두고 왔지 뭡니까. 후후후후."

"이, 괴물...!"


몬스터는 변태같은 말을 하며 기분나쁜 목소리로 웃었고, 내게 안겨 있는 여자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다, 당신이라도 빨리 도망쳐 주세요. 그리고 가급적 레벨이 높은 헌터들을 불러와 줘요!"


도와달라고 애처롭게 외칠 땐 언제고, 이제는 결연한 표정으로 눈물겨운 희생 정신을 발휘하려는 여자였다.


"후후후. 제가 그걸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당신들은 모두 여기서 제 장난감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어서요! 제가 시간을 버는 동안...!"


그렇게 말하며 왼손으로 낑낑거리며 왼쪽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며 여자는 나를 밀어냈다. 왼쪽에 검집이 달린 것으로 보아 본래 오른손잡이였던 듯 한데 오른팔의 상태가 저래서야 검을 휘두르는 것은 고사하고 검을 쥘 수는 있을지 의문이었기에 왼손으로 검을 잡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어이쿠. 제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 줄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하아...진짜 재수 옴 붙었네."


대체 세상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게만 이렇게 각박하게 구는 걸까?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신이면 제법 높으신 분이지? 음, 멱살까지는 무리더라도 탄원서를...씨발. 이 와중에 나란 놈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람.


"저기요. 그 몸으로 싸우려고요?"

"아, 아직 안 갔어요? 빨리 가라고요!"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몬스터와 눈싸움을 하고 있는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 참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희생 정신은 집어치우고 우리 솔직해집시다. 당신 살고 싶죠?"

"이 와중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좀 꺼져요!"

"거참. 욕은 하지 마시고. 대답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내 말에 여자가 완전히 열받은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며 외쳤다.


"당연히 살고 싶죠! 아직 시집도 못 갔는데 던전에서 죽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구요! 윽, 으흑."


말하다보니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여자. 차가운 도시 여자처럼 생겼는데 보기보다 감성적인 아가씨구만.


"그럼 말이야. 살려 줄테니 내 벌금 좀 대신 내주는 게 어때?"

"네, 네?"


얼빵한 목소리로 다시 물어보는 여자.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인데 저래도 되는 건가 싶다.


"내 사정이 좀 복잡해서 말이야. 그치만 뭐, 눈앞에서 사람 하나가 죽는 걸 방관하는 것 보다는 벌금 좀 물고 마는 게 낫지. 그, 조금은 아니지만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여자의 왼쪽 어깨를 툭 치며 교대하듯이 그녀 앞에 서고는 그녀를 돌아봤다.


"그런데 아가씨. 혹시 나만큼이나 가난하지는 않지? 내 벌금도 제대로 못 물어줄 정도면 내가 좀 많이 곤란한데."

"아, 아저씨! 앞에 보세요!"

"어이쿠."


소리도 없이 날아온 몬스터의 손톱이 쇳소리를 내며 내가 쥔 검과 충돌했다.


"엣? 어, 언제...?"


어느 샌가 여자의 검은 그녀의 손을 떠나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아까 소리 지를 때 미리 슬쩍해뒀지.


"이거 좀 잠깐 빌린다. 그나저나 아저씨라니 서운하구만. 난 꽃다운 나이 스물 여덟이라고."


선 조치, 후 보고의 모범을 보인 나는 검을 뿌리쳐 몬스터를 떨쳐내고는 그놈과 대치했다.


"음...검에 실린 힘은 형편 없는데, 감각은 제법 날카로운 듯 하군요. 완전히 빈틈을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냐? 니 공격이 너무 느려서 그런가보지."

"하하하. 약한 주제에 주둥아리를 놀리는 솜씨만은 일품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몬스터의 입가가 파르르 경련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 화났나보네?"

"...솔직히 말해서 그렇군요. 약한 주제에 입만 살아있는 것들만 보면 저는 찢어발기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폭력적인 사고방식은 좋지 않아. 침착하고 명상이라도 해보는 게?"

"닥치세요. 더 이상 당신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군요. 이만 죽으세요!"


몬스터는 그렇게 외치며 멀찍이서 손톱을 휘둘렀고, 그러자 새빨갛게 물든 몬스터의 손톱에서 새빨간 검기 같은 것이 내쪽으로 날아왔다. 손톱에서 나왔으니 조기라고 해야하나?


"위, 위험해요!"


척 봐도 맞으면 아픈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세로 날아오는 조기 비슷한 그것을 나는 그냥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엿차."


나는 몸을 비틀며 검신으로 조기를 받아내는 동시에 재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검을 뿌렸다.


"뭣!?"


그러자 날아오던 조기가 흐르는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내가 든 검을 타고 회전하며 몬스터에게로 날아갔다.

내가 반격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건지 멀뚱히 서있던 몬스터는 급하게 손톱을 들어 안면을 가렸고, 자기 손톱에서 날아간 조기는 방어한 손톱에 맞고 폭발해 손톱을 박살내버렸다.


"크아아악!"


손톱에 신경이라도 존재하는 것인지 몬스터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고, 깨진 손톱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신경이 있었나보네. 피까지 나는 걸 보면.


"어, 어떻게 한 거에요?"


내가 부린 재주에 여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어떻게냐고 물어도...이게 뭐시냐, 그 설명하기가 영 까다롭네."


워낙 오래 전에 배운 기술이기도 하고, 이제는 생각을 하고 몸이 움직인다기보다는 몸이 상황에 맞춰 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감각인지라 설명이 곤란했다.


"기술 이름 정도는 생각이 나는데 말이야. 그, 유수...뭐더라."

"새, 생각 난다면서요!"

"에이,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어, 저거저거 일어난다."

"요, 용서 못해...이 약해 빠진 놈이 어디서 잔재주를!"

"야야. 컨셉은 지켜야지. 너 존댓말 쓰는 컨셉 아니었냐?"

"닥쳐!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놀이는 끝이다!"


몬스터는 그렇게 외치고는 기를 모으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그러자 몬스터의 몸에서 딱 봐도 불길하게 생긴 시뻘건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러다 변신이라도 할 기세로군. 아님 계X권이라던가?"

"X왕권이요? 그, 그게 뭐죠?"


세에상에...요즘 애들은 그 전설의 만화도 모른단 말인가. 어느 샌가 파워 인플레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버린 기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기의 명작이라고 칭송받는 작품이었건만.


"그런 게 있어."


천천히 앉아서 그 전설의 만화에 대해 홍보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았다. 다행히 저 몬스터가 갑자기 삐쭉 솟아오른 금발머리가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어느새 몬스터의 손톱은 핏기조차 가시지 않은 채로 다시 돋아나 있었고, 몸에서 피어오르던 붉은 오오라는 손톱에 집중되어 있었다.


"후, 후후후...놀이는 끝입니다."

"어, 그 컨셉 계속 밀고갈 생각이냐."

"어디 한 번 받아 보시죠!"


몬스터는 내 말을 가볍게 씹어버리고는 내게로 돌진해 마구잡이로 손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빠, 빨라!"

"하! 쥐새끼마냥 잽싸기가 그지 없군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 될 것 같은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몬스터의 손톱이 허공에 붉은 궤적을 수놓았고, 나는 그 사이를 요리조리 몸을 비틀며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고 있었다.


"이야. 확실히 제법인데. 이 정도 수준의 던전에 어째서 너 같은 놈이 있는거지?"


이 던전은 슬럼 근처에 존재하는 정부의 관리를 받는 던전. 즉,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같은 거지도 멋대로 출입할 수 있는 거지만, 아무리 그래도 던전의 수준 정도는 사전 답사원에 의해 파악이 되어 있었다. 사전에 파악된 이 던전의 랭크는 E+. 최하급의 F-급 수준은 아니더라도 헌터로 각성한지 1년차 수준만 되어도 4인 파티 기준으로 무난하게 클리어가 가능한 던전이건만, 눈앞의 이 시뻘건 놈은 평상시 상태라도 C-급 던전의 보스 자리 정도는 꿰차고 있을 만한 놈인데 저 시뻘건 오라를 풍기는 상태를 감안한다면 랭크가 더 올라갈 것이었다.


"아직 주둥아리를 놀릴 정도로 여유가 있을 줄이야. 하압!"


한순간 몬스터의 손톱에 배인 붉은 오오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몬스터가 손톱을 십자로 교차하며 내 몸을 양단할 기세로 베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검을 흩뿌리며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흐하하하하! 도망쳐라! 쥐새끼! 어디까지고 쫓아가서 찢어 발겨주마!"


광소를 터뜨리며 피처럼 붉은 검무를 펼치는 몬스터. 형식도, 기술도 없는 난무는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그 빠르기만큼은 무시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하지만.


"어이쿠. 빈틈."

"큭!"


보통의 사람이라면 눈으로도 좇기 힘들 정도의 연격을 펼치는 몬스터라지만 일단 살아있는 생명체이니만큼 격렬한 동작 뒤에는 크게 숨을 들이키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게 된 단 한 호흡. 숨을 들이쉬기 휘해 공격이 살짝 느슨해진 틈으로 나는 검을 찔러넣었다.

회피에만 열중하는 것처럼 보이던 나의 돌발스러운 일격에 몬스터는 반응하지 못했고, 가슴팍에 틀어박힌 날카로운 장검의 감촉에 몬스터는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큭, 당신...대체 뭐하는 인간입니까. 검에 실린 힘은 형편 없는 주제에 이 전투 센스는 대체...?"

"아까부터 힘 약한 걸로 되게 뭐라고 하는구만. 그리고 나는 평범한 거지라고."


나는 검을 늘어뜨린 채 귀를 후비며 말했다.


"웃기지 마! 평범한 거지라고? 감히 내 앞에서 건방지게 여유를 부린 걸 후회하게 해주마!"


이번에도 삼류 악당스러운 대사를 뱉은 몬스터는 또다시 내게 돌진해올 거라고 생각했건만, 어째서인지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후, 후하하하! 이 공격은 피할 수 없을 거다!"


대체 뭘 할 생각인 건지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로 떠들어대는 몬스터는 네발짐승처럼 바닥에 손을 댄 자세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그러자 놈을 중심으로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놈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건!"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 듯, 내 뒤에 서있던 여자가 기겁을 하며 외쳤고,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 뭔가 아는 게 있어? 딱 봐도 범상치는 않아 보이는데."

"저건 위험해요 아저씨!"

"아니 그러니까 아저씨가 아니..."

"지금 그딴 게 중요해요!? 저 공격에 저희 파티의 탱커인 민준씨와 딜러 병민씨가 저항도 못해보고 가루가 되었다고요!"

"허. 그건 좀 위험한데. 아는 걸 자세히 말해주겠어?"

"지, 진짜로 위험한 거 맞아요? 왜 이렇게 침착한 건데요?"

"당황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지. 시간 없으니까 중요한 것만 간략히."

"네, 네! 그러니까, 우리가 저 괴물과 싸우다가 갑자기 저 상태가 된 몬스터를 민준씨와 병민씨가 공격했지만, 날이 들어가지 않고 튕겨나왔었어요."

"방어력이 올라간 건가. 번거롭군."

"그리고, 그리고 나서는...어느 순간 갑자기 붉은빛 섬광이 터져나오고는, 민준씨와 병민씨가 그만..."

"폭발한다 이거구만. 그러니까 저놈은 지금 시한 폭탄같은 상태다 이거지?"

"바로 그거에요! 저 상태에서는 공격도 먹히지 않으니 당장 탈출을!"

"그것도 나쁘진 않은 생각이지만 안되겠어."

"왜, 왜요! 아저씨도 무식하게 전진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꼰대에요!?"

"어허. 꼰대라니. 난 그런 근육돼지같은 사고방식,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런 취급을 해서는 곤란하지."


이제는 아저씨 아니라고 지적해주기도 귀찮았기에 그냥 좋을 대로 부르라고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약간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어떻게든 저놈을 박살내고 의문을 해결해야겠어."

"그, 그러다 죽는다고요!"

"그럼 아가씨라도 먼저 탈출해."

"으...미, 미안하지만 그럴게요!"


내가 제안한 거지만 막상 고민도 안하고 먼저 가버리겠다는 여자에게 살짝 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초면에 목숨까지 걸어줄 의리는 없는 게 당연하지만서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갈 거에요!"

"아. 가기 전에 잠깐만."

"또 뭔데요?"

"검집도 좀 빌려주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여자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검, 집이요? 그건 왜요?"

"저걸 베려면 어떤 기술을 써야하는데, 납도 상태에서 쓰는 게 손에 익어서 말이야. 딱히 칼집이 없어도 가능은 하겠다만, 익숙치 않은 상태로 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끝장인데 그럼 죽어서도 원통할 거 아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요!"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검집 하나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건지 여자는 급하게 허리춤에 메여있던 검집을 왼손으로 뜯어내 내게로 던졌고, 나는 여자가 던진 검집을 가볍게 낚아챘다.


"오. 칼만 볼 때는 몰랐는데 검집을 보니 이것도 제법 비싸 보인..."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여자는 다친 다리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진짜 잘 뛰네. 역시 헌터의 신체 능력이란."


저런 상태의 다리로 어떻게 몬스터에게서 벗어난 건지가 의문이었는데 저런 꼴을 하고서도 달리는 속도가 제법 나오는 것을 보니 저 여자도 아주 등급이 낮은 헌터는 아닌 모양이었다. 평균적으로 헌터의 랭크가 올라갈수록 부상을 입어도 활용할 수 있는 신체의 능력이 올라가니 말이다.


"이렇게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지 참."


나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시한 폭탄 상태인 몬스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대충 보니 조만간에 터지겠군. 이거 헛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오른손에 쥔 검집을 왼손에 든 검집에 집어넣고는, 크게 자세를 숙였다.

양 다리를 굳게 대지를 디뎌 하체를 고정하고, 허리를 돌려 몬스터에게 등이 보일 정도로 상체를 돌렸다. 왼손으로는 검집을 잡아 단단히 쥐고, 오른손으로는 칼자루를 쥐고 당장이라도 발도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언제라도 검을 출수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 나는,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느려지며 모든 것이 한없이 정지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간다.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지고, 나의 정신은 숫돌이 되어 마음의 형태를 변화시켜간다.

연상하는 것은 하나의 날카로운 칼날. 필요 없는 것을 조각내고, 깎아내어 한없이 예리한 상태로 마음을 연단한다.

필요 없는 모든 것들을 쳐내고 남게 된 것은 단 둘. 베어야 할 것, 베기 위한 것. 검심은 완성되었고, 나는 마음 속에서 벼려낸 단 한 자루의 검을 손에 쥔 채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작가의말

오늘도 배고픈 하루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고 선작과 추천을 해주시면 작가가 매우매우 기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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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던전의 버스기사(3) 21.03.22 444 6 13쪽
20 던전의 버스기사(2) +1 21.03.20 462 7 11쪽
19 던전의 버스기사 21.03.19 49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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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경력 있는 신입(5) 21.03.17 4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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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경력 있는 신입(3) 21.03.15 507 7 15쪽
14 경력 있는 신입(2) 21.03.14 535 7 14쪽
13 경력 있는 신입 21.03.12 559 9 14쪽
12 깽판칠 시간이다(3) 21.03.10 569 6 17쪽
11 깽판칠 시간이다(2) 21.03.08 606 5 14쪽
10 깽판칠 시간이다 21.03.07 651 10 13쪽
9 다시, 던전(9) 21.03.05 668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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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시, 던전(6) 21.02.26 780 9 13쪽
5 다시, 던전(5) 21.02.24 822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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