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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651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3.20 17:21
조회
461
추천
7
글자
11쪽

던전의 버스기사(2)

DUMMY

"저, 저기! 혹시 지금 혼자서 오크들의 부락에 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오크의 부락이라는 던전은 고블린에 비하면 신체능력이 우월하지만 그래도 역시 헌터에 비하면 별 볼 일 없을 정도의 몬스터인 오크라는 몬스터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오는 곳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놈들은 쓸데없이 성욕이 왕성해서 여성 헌터들을 보면 눈이 돌아가서 달려든다나 뭐라나. 남자인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지만.


던전 입구에서 죽치고 앉아있던 3인조 중 그나마 용기가 있어보이는 소심한 인상의 남자가 쭈뼛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가급적이면 파티를 짜서 들어가는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요?"

"아뇨, 딱히."

"으, 음..."


저 남자도 바보는 아닐테니 이게 거절의 의미라는 것 정도는 눈치를 챘겠지. 게다가 부탁하는 태도가 틀려먹었다. 모름지기 남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저런 식으로 비비 꼬아서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원하는 것을 얘기해주는 편이 서로간에 편한 법인데 말이야. 예를 들면...


"저, 저기! 저희가 파티원이 딱 한 명 부족해서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와 파티를 맺어 주셨으면 해요!"


그래. 바로 저렇게 말이야.

머뭇거리는 남자 대신에 나선 것은 순한 인상의 여성 헌터. 목소리는 좀 작았지만, 그래도 말하려는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는 것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흠. 곤란한데."


대충 내 눈앞에 있는 3인조의 힘을 가늠해본 결과, 이 작자들은 오크의 부락 정도라면 어찌저찌 클리어가 가능할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지만, 외신의 하수인과의 전투에서는 도움은 커녕 발목만 잡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음...생각해보니 그냥 버리고 가는 것도 문제잖아.'


조금 전에 들었던 이 던전에 관해서 흉흉한 소문이 돈다는 말. 그것은 아마 십중팔구 외신의 하수인이라는 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기에 발생한 소문일 것이다. 오크의 부락 정도 수준의 던전을 전전하는 헌터의 수준으로 외신의 하수인과 대적하기는 도저히 무리니까.

내가 여기서 이 작자들을 버리고 가버리면, 이 3인조는 아마 울며 겨자 먹기로 조만간에 3인 파티로 이 던전에 도전하겠지. 이 3인조가 외신의 하수인을 조우하기 전에 내가 그놈들 처치할 수만 있다면 그게 베스트지만, 만약 이 3인조가 나보다 먼저 외신의 하수인을 만나게 된다면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아예 생까고 지나갔다면 모를까 이렇게 말까지 섞었는데 죽어버린 모습을 발견한다면 꿈자리가 영 사나울 것 같단 말이지.


"귀찮지만...어쩔 수 없나."


결국 이 3인조가 나를 붙들고 늘어진 그 순간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내가 중얼거린 말을 들었는지, 3인조의 안색이 확연히 밝아지며 서로간에 하이파이브를 하기 시작했다. 거참 감정 표현이 풍부한 놈들이군.


"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안심하고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역시 3인과 4인의 안정성은 천지차이니까요!"

"그렇기야 하죠."


정말 재잘재잘 잘도 떠드는군. 헌터라기보다는 현장학습 나온 학생들을 보는 기분이다.


"그...아저, 아니. 헌터님은 검을 차고 계신 걸 보니 근접 전사 계열이 맞으시죠?"

"일단은 그렇습니다."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툭툭 건드리며 대답했고, 이런 별 거 아닌 행동에도 저 3인조는 자기네들끼리 기뻐하기 시작했다.


"우와! 마침 파티에 딜을 넣을 사람이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저희 파티는 탱커만 두 명에, 힐러가 한 명이거든요."


탱커 둘에 힐러가 하나라, 상당히 특이한 조합이다.

사람들이 헌터로 하나둘씩 각성하면서, 헌터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 성장 방향을 정하기 시작했다. 옛날의 게임 같은 곳에서는 힐러 계열의 직업은 귀족 취급을 받으며 우대받았다고 하는데...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았다.

파티의 맨 뒤에서 보조 계열의 마법이나 사용하며 전방이 밀린다 싶으면 잽싸게 후퇴해버리는 힐러들은 얌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타 계열의 배가 넘는 생존확률 때문에 늘 수가 많았던 것이다. 당연히 수가 가장 적은 것은 탱커 계열의 헌터. 던전의 최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넘겨야 한다는 위험성 때문에 하는 사람도 적은데 사망율까지 헌터 중에서 최고를 자랑하니 오래 살아남는 일 자체가 드문 초 희귀 직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파티에서나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은 전문 탱커였고, 근접 전사 계열의 헌터가 울며 겨자 먹기로 유사 탱커를 맡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파티는 특이하게도 그 귀하다는 탱커가 두 명이나 끼어있는 것이다.


"신기하네요. 요즘 퓨어 탱커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던데 두 명이나 탱커 지향이시고."

"아하하. 역시 그런가요? 아무리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누군가를 막 죽이고 그러는 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그렇다고 힐러 계열으로 가기는 또 싫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건만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남자 둘. 딱히 편견 같은 걸 가진 건 아니지만 역시 여자 쪽이 힐러였군.


"흠. 좋습니다. 그럼 바로 입장해볼까요."

"아, 그 전에 통성명부터 하도록 하죠. 제 이름은 남수진입니다. 여자 이름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하지만...일단은 남자입니다! 파티에서는 탱커를 맡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왼손에 든 방패를 살짝 들어올리는 남수진.


"저는 오민수에요. 마찬가지로 탱커구요."

"저, 저는 이다영이에요. 부족한 몸이지만 힐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각자의 소개를 마친 3인조는 내 소개를 기다리는 듯 초롱초롱한 시선을 이쪽으로 보냈고, 그 쓸데없게 티없이 맑은 시선에 살짝 부담을 느끼며 나는 대충 자기 소개를 했다.


"류진입니다. 보다시피 검사구요."

"류진씨라고 하는군요? 이름 멋있네요!"

"아. 고맙습니다."


남수진의 칭찬에 짧게 감사를 표한 나는 다시 던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는데, 그런 내 행동에 뭔가 뒤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3인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모으고 있었다.


"바, 바로 들어가시게요? 화이팅 같은 거라도 안 외치고요?"

"..."


진짜 얘네들 보고 있으면 던전에 대한 긴장감이 확 떨어지는 기분이다. 진짜 현장학습 왔나 화이팅이 뭐야 화이팅이.

어쨌든 좀 모자라 보이기는 했지만 의도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기에, 나는 좀 귀찮기는 했지만 그 세명의 장단에 적당히 맞춰 주고는 앞장 서서 게이트로 발을 내디뎠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저번과 같은 어두컴컴한 동굴 내부가 아닌 울창한 숲 속. 이 숲 안쪽으로 오크들이 머물고 있는 부락이 나타날 것이었다.


'어디 보자, 그 외신의 하수인이라는 놈은 어디에 숨어 있으려나.'


그런 거창한 이름을 달고 폼 떨어지게 냄새나는 돼지 머리들 사이에 섞여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모르긴 해도 아마 외신의 하수인은 오크들의 부락 안이 아닌 그 부락을 감싸고 있는 이 울창한 숲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이 던전을 한시라도 빨리 깨버리고 이 도움 안되는 애들을 먼저 내보내는게 안전할지도.'


능력도 어느 정도 되찾았겠다, 이 던전에 숨어 있는 외신의 하수인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뻘건 놈과 비슷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내 선에서 어렵지 않게 정리가 가능하겠지만 이 짐덩이들을 죽지 않게 하면서 싸워야 하는 건 조금 번거로울 수가 있었으므로 차라리 약간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자유롭게 혼자 싸우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위 말하는 버스라도 몰아야 하나?'


버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헌터 한 명이 실력이 떨어지는 나머지 파티원들을 데리고 던전을 빠른 속도로 밀어버리는 것을 말하는 은어였다. 지금의 내 수준에서 이 던전은 간단하게 클리어 할 수 있을 정도였기에, 잡몹들을 무시하고 바로 던전의 보스를 잡으러 간다면 10분 안에도 클리어가 가능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곤란한데.'


몇 번이고 말하는 거지만 지금 내가 활동하는 것은 불법. 이 회장님이 모종의 수를 써주기 전에는 던전에는 눈에 띄는 것은 금물이었다.

그리고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에 내 뒤를 따라 들어온 3인조는 감탄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감상평을 읊고 있었다.


"우와...분명히 동굴 같은 곳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긴 울창한 숲 속이네요?"

"분명히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게이트로 들어갔는데 숲 속으로 나오다니. 신기하네요."


진짜 말 하나하나에 초짜같은 티를 팍팍 내는 3인조. 이제는 던전이라고는 지긋지긋한 내 쪽에서 보자면 반응이 신선해서 재밌기는 하다.


"크흠. 경치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주위의 안전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 그, 그렇죠...죄송합니다."

"아니 뭐 죄송할 것 까지야."


결국 내가 정한 방침은 최대한 외신의 하수인의 출현을 경계하면서, 지나치게 수상해보이지 않을 정도로 던전을 빠르게 클리어하는것.

말은 거창하게 해놨지만 결국 상황 맞춰서 적당히 대처한다는 거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주, 주변엔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네. 벌레 우는 소리조차 안 들리는데..."

"아마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오크 놈들이 모여 있는 부락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일단은 D급 던전이니 함정을 조심하도록 하세요."


걸려봤자 별 위협조차 안되는 고블린 소굴의 함정과는 달리, D급 던전부터 정말 제대로 걸리면 즉사까지 가능한 함정들도 가끔가다 설치가 되어 있다. 떨어지면 밑에 창이 빼곡히 박혀있는 구덩이 같은거. 뭐, 그것도 아이템이나 스테이터스로 방어력을 높이면 통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류, 류진씨는 굉장히 던전에 대해서 빠삭하시네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레벨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제 레벨이요? 3인데요."

"3이요!? 그런데 D급 던전에 혼자서 들어가려고 하신 거에요?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잖아요!"


남수진은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의외로 내 레벨이 생각했던 것보다 낮다고 날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한발짝 나서며 하는 말이.


"여, 여기서는 제가 앞장 설게요. 이래뵈도 레벨은 어제 간신히 10을 넘겼으니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괜찮은데요..."

"아닙니다 류진씨. 여기서는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던전 클리어야 다음에도 할 수 있지만,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단순히 철없는 초보 헌터의 말치고는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는 말. 던전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부터 헌터의 목숨과 마석의 무게를 동일시하는 작자들이 판치는 현대 사회라지만, 아직도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던전에 들락거리는 헌터가 남아는 있었군.


작가의말

오늘은 분량이 좀 적군요...좀 더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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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경력 있는 신입(3) 21.03.15 506 7 15쪽
14 경력 있는 신입(2) 21.03.14 535 7 14쪽
13 경력 있는 신입 21.03.12 558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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