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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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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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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60,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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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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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깽판칠 시간이다(3)

DUMMY

"딱 봐도 나 최종보스요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긴 한데. 진짜로 아가씨가 마지막 관문이야?"


약도를 보았을 때 50층에 위치한 방은 회장실 하나 뿐이었으므로 이 붉은 융단 너머, 복도의 끝에 있는 저 문이 바로 회장실으로 통하는 문일테지. 그리고 만화에서 나오는 닌자마냥 벽과 비슷하게 샌긴 보자기 같은 걸 덮고 숨이 있는 놈이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복도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있는 저 아가씨가 마지막 관문이라는 소리일 테고.


"...그렇습니다."

"흠. 여자를 때리고 싶진 않은데. 그냥 보내주거나 할 생각은 없지?"

"그건 불가능합니다."


묻는 말마다 단답으로 딱딱 대답하는 게 굉장히 일에 철저할 것 같은 아가씨다. 얼굴은 괜찮은데 저 얼음장같은 분위기가 사람이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할까?"


나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가볍게 스탭을 밟으며 몸을 풀었고, 여자는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뭐해? 준비 안 해? 내 쪽에서 먼저 갈까?"


상대가 여자라고 만만히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단 말이지. 게다가 그저 그런 경비원 중의 한 명이라면 밑에 있었겠고 말이야.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경시하는 버릇을 계속 지니고 있다가는 던전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제가 회장님께 하달받은 명은, 당신의 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역시 그랬나. 반전이 없는게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놀랐습니다. 검성이라고 불리웠던 자가 검 한자루 없이 이만큼 짧은 시간 안에 회장님이 계신 50층에 도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냥 잔머리를 굴린거지. 게다가 검을 잡으면 적당히로는 안된다고."

"잔머리입니까. 상황에 따라 최선의 답을 도출해내는 것도 헌터의 덕목 중 하나이지요."

"이거 아가씨같은 미인 칭찬을 해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군. 춤이라도 춰줄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야.

경비원 차림의 여자는 말없이 등에 메고 있던 장검 한 자루를 풀어 검집에서 뽑지도 않고 내게 던졌고,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단 여자가 던진 검을 받아들었다.


"응? 뭐야. 왜 무기를 줘?"

"저에게는 지금의 류진씨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의 100%를 확인해야만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헤에. 참 성실한 아가씨네. 그런데 진짜로 괜찮겠어?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검은 잡은 이상 적당히 해주는 건 힘들다고?"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말한 직후, 내가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에 여자는 서 있던 자리에 검은 깃털 같은 것만을 남긴 채 사라져 있었다.


"뭣!?"

"확실히, 제가 지금의 류진씨보다는 강하니까요."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이동한 여자의 목소리가 바로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신속하게 들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 내 등 뒤를 베었고, 내 등 뒤에 서있던 여자는 백덤블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빌리티인가. 상당히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네 아가씨?"

"...눈치 채는 게 빠르시군요."


어빌리티. 스킬과 마찬가지로, 마력을 소모해 사용할 수 있는 특정한 기술이다. 이것만 들으면 스킬과 다른 점이 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어빌리티와 스킬의 차이점은 바로 어빌리티는 타인과 중복되지 않는 고유한 기술이라는 점이 스킬과의 차이점이었다.


스킬은 던전에서 가끔 드랍되는 스킬 북을 얻거나, 레벨 업에 의한 스테이터스 상승을 통해 자동으로 해금되는 기술이지만 어빌리티라는 것은 좀 다르다. 어빌리티를 해금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존재하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클래스의 획득이다.


클래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직업을 가지듯이, 던전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헌터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과도 같은 것이다. 헌터들이 클래스를 획득하게 되는 경위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개는 생사의 기로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클래스가 해금되어 있더라...라는 경험이 대부분인지라 클래스를 가진 헌터들은 드물었다. 클래스를 가진 헌터들은 해당 클래스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어빌리티를 획득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근접 전사 계열의 헌터가 지휘관이라는 클래스를 획득하게 된다면 '지휘'와도 같은 어빌리티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얻게 되는 어빌리티는 스킬처럼 단순한 공격 기술이나 버프 기술도 있는 반면, 획득하게 되는 것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에 변화를 주는 독특한 어빌리티도 존재한다.


내 경우에도 클래스의 획득에 의해 얻게 된 어빌리티가 그런 경우였는데, 어떻게든 흉내낼 수 있었던 스킬과는 다르게 어빌리티라는 것은 아무리 기를 써도 흉내낼 수가 없었기에 내가 사용하는 스킬들은 어빌리티를 획득하기 전의 기본적인 형태들이었다.


아무튼 내 앞의 이 아가씨가 보여준 움직임은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스킬은 아니었으므로 분명히 어빌리티로 추정되었고, 내 추측이 맞았는지 아가씨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도 없이 이동하는 것으로 보아 아가씨는 암살자 쪽의 클래스를 가진 모양이군. 이거 까다로운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히 그 말대로 제 클래스는 은신과 암살 쪽에 특화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류진씨는 암습해 쓰러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확실히 기습으로 쓰러지면 실력 확인이고 뭐고 안되겠지. 그런 불리한 조건으로도 나보다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하는 건가. 이거 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기분인걸?


"제아무리 전설의 검성이라 한들, 지금은 모든 능력이 제약된 상태. 회장님께 듣기로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능력의 격차를 좁힐 순 없을 겁니다."

"글쎄.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뽑아든 검으로 상단세를 취했고, 아가씨는 언제 뽑아들었는지 모를 검은 단검 두 자루를 역수로 쥐고 몸을 숙였다.


"그럼, 갑니다."


그리고는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내 쪽으로 돌진하는 아가씨.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의 속도에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간신히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고, 아가씨는 암살자 특유의 높은 기량 스테이터스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몸을 놀리며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검과 검이 부딫히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마찰에 의한 불티가 여기저기로 튀었다. 아가씨는 암살자라면서 한 방 한 방 묵직한 일격을 날렸고, 워낙에 정직한 방향에서 들어오는 공격인지라 막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아가씨도 레벨이 제법 높은 헌터였는지 검에 실린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확실히 검에 실린 힘은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수준이군요. 이런 힘으로 어떻게 C급 던전 보스급의 몬스터를...?"

"거 보는 사람마다 약하다 약하다 거리면 듣는 내 기분은 별로 좋지가 않거...든!"


장검을 들고도 단검과 검을 맞댄 상태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나는 간신히 검을 뿌리쳐 몸을 뒤로 뺐고, 아가씨는 역수로 쥐던 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우선 힘은 확실히 불합격입니다. 그럼, 다음 시험으로 넘어가죠."

"시, 시험? 크윽!"


아가씨는 갑자기 기어를 변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배는 빨라진 속도로 단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검에 실린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다음 단계의 시험으로 넘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급격히 올라간 전투의 난이도에 나는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막아내는 것이 고작. 하지만 아가씨는 그런 내 한심한 모습을 보고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도 버티는 겁니까? 확실히 반응은 숙련된 헌터 못지 않군요. 스테이터스의 보조가 없는데도."


이번에는 아가씨 쪽에서 양손에 쥔 단검으로 나를 세게 후려쳤고, 간신히 아가씨의 일격을 막아낸 나는 뒤로 주르륵 밀려나며 신음을 삼켰다.


"어우. 살벌하구만."

"반응 속도는 합격입니다. 그럼 어디 이것도 버틸 수 있나 볼까요."


그렇게 말한 아가씨의 몸이 처음에 보았던 검은 깃털과 함께 사라졌고, 내 목 뒤로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크윽!"


빠르게 뒤로 돌며 뒤에서 갑자기 날아온 검격을 방어해냈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아가씨는 또다시 깃털만을 남기고 사라졌고, 이번에는 반대쪽 아래편에서 단검을 찔러오는 아가씨. 그 뒤로도 아가씨는 포착했다 싶으면 자꾸만 시야에서 사라지며 사각에서 단검을 휘둘러댔고, 막아내는 것조차 고역이며, 반격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 이거 확실하게 경비원 노릇이나 하면서 썩고 있을 인재가 아닌데? 아가씨 대체 정체가 뭐야?"

"...지금의 저는 회장님을 지키는 방패일 뿐입니다."


눈으로 쫓기도 힘든 엄청난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호흡으로 말하는 아가씨.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가씨의 검격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마치 검의 폭풍과도 같은 사방에서의 공격은 빠르게 내 체력을 소진시켰다.


"정말 굉장하군요. 설마 어빌리티를 사용했는데도 쓰러트릴 수 없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확실히 검성이라는 이름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군요."

"거...회장님이 내가 그 이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건 얘기 안 해줬었나?"


잠시 주어진 유예에 나는 숨을 고르며 대꾸했고, 온 몸에서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는 나와는 대조되게 싸우기 전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가씨는 단검을 등 뒤에 있는 홀스터 비슷한 것에 끼워넣으며 말했다.


"이쯤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류진씨. 회장님께서는 당신을 상처 없이 제압하라고 하셨습니다만...지금껏 검을 나눠본 바로는 당신을 상처 없이 제압하기는 힘들다고 생각되는군요. 솔직히 기대 이상입니다."

"헤에, 그거 고맙네."

"헌터로서의 능력이 제한된 상태에서도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헌터로서의 능력을 되찾은 당신의 강함은 짐작하기 힘들군요. 그러니 서로 쓸데없는 손실은 피하기 위해, 여기까지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아가씨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며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배려는 고맙지만, 난 욕심쟁이라서 말이야. 이 참에 회장님께 점수를 왕창 따 두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에 응한 거거든."

"점수...말입니까? 이미 당신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기까지 말한 아가씨는 다음 순간 등 뒤에 넣었던 단검을 다시 꺼내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취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하, 아가씨. 난 분명히 누누히 얘기했다?"


아가씨와 대화하는 사이에 천천히 검심을 준비하던 나는 조금 전에 검심을 완성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나는 한 자루의 연단된 칼날과도 같은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일단 검을 잡은 이상, 적당히는 못해준다고."


시험인지 뭔지 귀찮기 짝이 없는 과정을 안 해도 된다면 모를까, 일단 하게 된 일을 적당히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기왕 하게 된 거, 이왕이면 급제점을 따주겠다 이거야!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 한들, 절대적인 능력의 차이는..."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려고는 했지만, 나는 그걸 여유롭게 듣고 있어줄 생각은 없었고, 몸을 빠르게 쏘아보내며 처음으로 내 쪽에서 공세에 들어갔다.


"성질이 급하시군요. 일단 얌전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내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기는 했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가씨는 내 검을 튕겨내고 나를 향해 단검을 찔러들어오려고 했지만, 바로 기겁을 하며 단검으로 방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마치 튕겨나갈 궤도를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튕겨나오자마자 방향을 틀며 재차 공격을 이어나가는 검격. 아가씨는 급하게 다시 검을 튕겨냈지만, 나는 계속 전진하며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은 공격을 이어나갔다.


"흡!"


조금 전과는 완전히 반대가 된 상황에 아가씨는 이를 악물며 조금의 데미지는 감수한다는 듯이 내 공격은 무시한 채로 내가 단검을 내찔렀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한 대만 맞으면 골로 갈 게 뻔한 일격을 맞아줄 리가 없었다.

단 이 보. 나는 두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아가씨의 단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아가씨가 검을 찌르느라 발생한 빈틈을 놓치지 않고 아가씨에게 검을 휘둘렀다.


"크윽...!"


아가씨는 급하게 몸을 뒤로 뺐지만, 내 검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던 듯 아가씨의 검은 정장에 일자로 검상이 그어지며 너덜거리는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갑자기 움직임이 좋아진 거죠?"

"별 거 아닌 잔재주야. 자기 최면이라고 들어는 봤나?"


인간의 몸에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해명되지 않는 신비한 부분들이 존재했고, 아기가 마차에 깔렸을 때 어머니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같은 일이 가끔 발생하는 것과 같은 신비한 일들이 가끔 벌어지고는 했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기 최면을 걸어 몸을 일시적으로 각성 상태로 만드는 것인데 물론 헌터로 각성하기 전부터 이런 정신나간 짓거리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고, 검심은 그저 헌터 시절의 감각을 다시 일깨우려다가 우연히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이건 상상 이상이네요. 이제 저도 적당히 하지는 않겠습니다."

"살살 해 달라고. 난 일반인이나 다름 없는 상태잖아?"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아가씨는 다시 정체 모를 어빌리티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내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이미 대충 패턴을 기억하기 시작한 내 앞에서는 의미없는 짓이었다.


"여기쯤이군!"

"윽!"


아가씨가 사라지자마자 나는 내 시야의 사각으로 몸을 틀며 검을 찔러넣었다. 빙고로군.


"어, 어떻게..."


내 검에 실린 힘은 형편없었지만, 아가씨는 스스로가 돌진하는 힘에 의해 내 검에 어깨를 꿰뚫린 상태로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어빌리티를 간파당한 충격 때문인지 아가씨는 꽤나 충격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뭐, 대충 감으로 찍은 거긴 한데 말이야. 내가 어딜 보더라도 시야의 사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일부로 시야의 사각을 유도하면 되는 거잖아?"


물론 아가씨의 어빌리티가 그런 단순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을 경우, 애꿎은 곳에다 검을 내찌른 동작은 커다란 빈틈이 되었을 것이고, 아가씨가 그런 빈틈을 놓칠 리는 없으니 그대로 내쪽의 패바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내 어빌리티를 파악하고, 그런 결단을 내린 건가요."

"말했잖아. 반쯤은 찍은 거라고. 운이 좋았을 뿐이야."

"단순한 감에 모든 걸 내맡기고 검을 내지를 수 있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대체 어떤 전투를 반복해왔길래, 그러한 판단이 가능한 거죠?"

"뭐, 그냥 좀 험하게 구르다 보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부터 배우게 되는 법이야."

"...당신이란 사람은 보면 볼수록 알 수가 없군요."


아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제 패배입니다. 회장님께로 안내해 드리죠."

"엣. 그렇게 쿨하게 인정해도 되는거야? 아가씨 아직 더 싸울 수 있지 않아?"


헌터의 몸은 고통에 견디는 능력도 일반인보다 훨씬 월등하다. 그렇기에 스킬도 아니고 단순히 검에 살짝 찔린 정도로는 상처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헌터들이 대다수이건만 아가씨는 어째선지 빠르게도 패배를 선언한 것이다.


"제 목적은 류진씨를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류진씨의 능력을 시험한다는 목적은 이미 차고 넘치게 달성했습니다."

"그, 그래? 쩝...그 뭐냐. 일단 찌른 건 미안하게 됐어."


이제 몸이 좀 달아오르려는 순간인데 전투가 맥없이 종료되어 버렸고, 표출되지 못한 나의 투쟁심은 그대로 뻘쭘함이 되어버렸기에 나는 무안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젊은 처자의 몸에 상처를 낸 것에 대해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시작한 시험이니까요. 류진씨는 그것을 훌륭하게 돌파한 것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내가 악당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데."


젠장. 이겨 놓고도 이렇게 찝찝한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이다. 저 여자는 자기 실력에 자부심 같은 것도 없나? 나같은 거한테 지고도 분하지도 않은 건가?


"그럼 회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길."

"어, 지혈은 안 해도 괜찮아?"

"이미 근육을 조이는 것으로 지혈은 끝났으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가씨의 말대로 그녀의 어깨에서는 어느새 피가 멎어 있었다. 그, 근육을 조이다니. 진짜 보기보다 터프한 아가씨구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색한 표정으로 조금 전까지 싸움을 벌인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쿨한 태도의 아가씨를 따라 회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가의말

근육 조이기! 물론 실제로 효과가 있는 지혈법인지는 작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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