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사이코패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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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짜릿해, 날 즐겁게 해봐, 친구"
그놈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호신용 최루액.
나는 유리병에 뚜껑을 열고 그놈에게 던졌다.
최루액이 얼굴에 퍼졌다.
"크악"
전기충격기를 사서 들어오고 싶었지만, 반입이 안 되었다.
꿩대신닭.
나는 체인 사슬로 만들어진 팔찌를 손목에서 풀었다.
촤라라랑
차가운 금속을 내면서 풀어져 내린 사슬로 칼을 쥐고 있는 손을 노렸다.
쉐에에액
퍽!
크악.
눈도 뜨지 못한채 비틀거리면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리를 벌려서, 적당한 타이밍에 다시금 휘둘렀다.
놀랍게도, 녀석이 체인을 손으로 잡아챘다.
'이걸 맨손으로 잡는다고?'
체인을 잡은 맨손에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건 좀 아프네."
최루액의 효과가 떨어지는 듯
녀석이 정신을 차려가고 있었다.
선수를 잡았을 때 끝내야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구매한 물품이 손에 끼워 넣었다.
너클
대물과의 싸움에서 자신감을 얻어서였을까?
본능적으로 너클을 장바구니에 담았었다.
한 손으로 내 체인을 피 흘리면서 잡은 녀석,
체인을 거칠게 잡아당기자 녀석의 몸이 이끌려 왔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철제너클을 낀 주먹이 놈의 턱주가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직!
철로된 돌출부가 놈의 턱을 가격하자,
그대로 놈의 턱이 뒤틀어졌다.
크악.
짧은 외마디 비명.
그대로 다시 숏어퍼로 옆구리를 가격하자
콰직!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갈비뼈와 너클의 충돌하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크헉
이겼다.
손으로 전해지는 맛!
확실히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괴하게 뒤틀린 턱을 녀석은 자신의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당겼다.
"뿌직"
기괴한 소리와 함께, 어긋났던 턱이 다시금 맞추어졌다.
소름 끼치지는 상황.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던 내 등이 다시금 차디차게 식어갔다.
뭐지? 이 자식 고통을 못 느끼나?
아까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하지만 여전히 서 있는 녀석이 입을 열었다.
"크크크. 역시 너도 보통은 아니구나.?"
녀석이 입안에서 씹고 있던 무언가를 뱉어냈다.
그러자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향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봐, 저 여자 얼마나 살꺼 같아?"
"뭐?"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해져."
"!!!"
내 눈이 자연스럽게 칠석이 누나에게로 갔다.
그것이 놈에게 답을 해준 모양이었다.
"크크크, 난 이만 사라질게. 시간 끌면 여자가 위험해."
젠장,
얼굴이 완전히 뭉개졌는데도 태연하게 원위치 시킨 놈.
과연 저놈을 이길 수 있을까?
무리였다.
"다음에 다시 해보자고, 친구."
"누구 마음대로 친구야!"
"화내지 말라고, 그보다 시간이 없을 텐데?"
녀석은 차분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리자, 동시에 놈은 바로 달아났다.
"정신이 드느냐?"
바닥에 쓰러져있던 여인을 흔들어 깨웠다.
"으으으. 도련님?"
"그래. 나를 기억하느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 끝났어."
의식도 돌아오고, 눈빛도 정상인 듯 보였다.
내가 꼭 껴안아 주자, 안심되었다는 듯 부들거리면서 흐느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놈이 거짓말을···."
위험하다는 위협은 도망치기 위한 거짓이었다.
멀리서 허준과 칠석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나"
"칠석아!"
남매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멀리서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형님, 별일 없으신지요?"
"다행히 큰 문제는 없다."
"어찌도 이리 무모하게 움직이셨습니까?"
"그러게, 사람 목숨이 달렸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구나."
바닥에는 그놈이 놓고 간 칼이 놓여있었다.
허준이 손으로 잡으려고 하는 찰나 내가 소리쳤다.
"멈춰!"
공익광고가 떠오르는 멘트.
그 소리와 함께 허준이 멈추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천으로 칼을 감싼 후 들어 올렸다.
어두웠지만, 칼에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은 명확하게 보였다.
"걸렸다 요놈."
"네? 무엇을 말입니까? 형님."
"준아, 손가락에는 자신만의 특이한 문양이 들어 있단다."
"네, 문양요?"
"그래, 그걸 자문이라고 한다."
"지문?"
"네 엄지손가락을 봐라."
내 말에 자기 엄지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보는 허준
"손가락에 지렁이처럼 꾸불꾸불 모양이 있지?"
"네, 형님. 당연히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그 모양은 하늘에서 준 것, 개인마다 모두 모양이 다르다."
"네, 그것이 참말입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
"아, 아닙니다."
"나중에 혹여 범인이 자백하지 않는 경우, 이것이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크윽! 형님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그리고는 양쪽 엄지를 들어 나에게 보여줬다.
나를 리스펙한다는 표현.
"너···. 그건."
"저번에 형님이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좋을 때 하는 손가락 표현이라고."
"내가?"
"네."
음.
뭐 그렇다면, 그런 걸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왔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요."
"신선도령님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살인귀와 싸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도련님, 어찌 이런 위험한 일을 혼자 하셨습니까?"
"칼도 버리고 도망갔다니, 도련님 검술이 대단하신 듯합니다."
"혹시, 검성이 회귀했다? 이런 거 아니십니까?"
'아니 거기, 검성은 너무 나간 거 같은데요?'
어허, 이 사람들이 정신없다고 아무거나 그냥 막던지네.
그래도 일단 한 생명 구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도련님, 혹시 범인의 얼굴은 보셨는지요?"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노인이 나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범인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잡히겠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멀리 놈이 도망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초록색 불빛이 멀리서 빛나다 사라졌다. 아마 저 인근을 찾으면 다음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허준아, 잠시 나 좀 보실 수 있겠느냐?"
"무슨 일입니까?"
"조용히 할 말이 있다."
허준과 나는 사람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까 칼을 주울 때 녀석이 씹다 뱉어낸 것을 꺼내 들었다.
그놈의 몸에 나던 시큼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검은 고체가 다소 역해 보였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잠시 주시겠습니까? 형님."
유심히 살펴보던 허준이 이내 알아챈 듯 말을 이었다.
"형님! 이것은 어디서 나셨습니까?"
"아까, 땅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이것은 앵자속(罌子粟)아닙니까? 설사나 마취 등에 효과가 있는 약재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앵자속이었나!
내 예상이 맞았다.
어려서 시골에서 보았던 이쁜 꽃.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배 아플 때 먹는 비상 상비약이라고 하던 꽃과 열매. 좀 더 크고 나서야 그것이 아편의 재료인 양귀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 펀치를 맞고도 도망칠 수 있었던 거군.'
다량으로 복용 시 마취용으로도 사용 가능한 것이 양귀비였다.
현대에도 마취와 진통에 쓰이는 모르핀의 원료로 쓰이고, 마약인 헤로인으로까지 가공된다.
그나저나, 그놈이 어떻게 양귀비를 알았을까?
아편이 중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분대를 사용하여 담배처럼 흡입하는 방식이 널리 유행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군대가 넘어와 주둔하면서 퍼지게 된다.
또, 일본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양귀비를 재배해 아편 생산지로 이용하기에 이른다. 일본은 1914∼1944년 조선에서 저비용으로 아편을 생산하고 대만, 관동주, 만주국에 수출해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이 아편에 중독되면 노동력에 문제가 생겨 오히려 강하게 규제하였다. 그런 이유로, 일제강점기에 아편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 아편이 퍼지지 않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그래, 약재지. 하지만, 중독성 심해 많이 사용하면 안 된다."
"네? 그런 내용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약이란 본디, 적정량을 사용해야만 그 효험을 볼 수 있는 것. 과하거나 부족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형님, 제가 그 점은 놓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의원인 저보다 어찌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알긴,
아편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중국이 역사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지.
"그것보다는 너도 나중에 꼭 아편의 위험성을 알리도록 하거라."
"네,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대화 때문이었을까?
원래는 동의보감에는 아편의 효능 및 처방법만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동의보감에는 이것이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 및 중독의 위험성을 자세히 기록해 마약의 무서움을 알리게 될 거란 걸 이 당시에는 몰랐다.
***
헉헉헉
조선의 부흥을 위해서 다음 산 제물을 찾았다.
계집년 하나를 죽이려 했는데, 끼어든 이상한 놈.
"크크크, 나만큼 미친놈이 있다니. 다음엔 꼭 죽여야겠어."
모습을 보아하니, 글공부나 하는 도련님 행색이었는데...
별로 위험한 느낌도 없는, 그냥 그런 놈.
내 앞에서 강한 척을 했던 놈들은 많았다.
하지만, 막상 나를 대면하고 무사한 놈들이 있었던가?
"쩝. 너무 쉽게 봤어."
그 요상한 놈.
갑자기 눈이 따가워지는 이상한 물을 뿌렸다.
코까지 막혀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지.
차디찬 쇳덩이가 날라와 내 손을 쳤지만,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 무엇에 당했는지도 몰랐다.
'뭐, 식칼이 없어도 드잡이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놈의 주먹에 이질적인 쇳덩이가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싸움에 능숙한 놈.
내가 너무 놈을 우습게 봤어.
"끄윽"
그 결과는 지금 옆구리에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거 자칫하면 위험할 뻔했어.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이동한 곳.
똑똑똑
문을 두드리자, 문 안에 사람이 물었다.
"누구냐?"
"조선에 떠오르는 태양을 위해"
끼익~
문이 열렸다.
"네놈? 당분간은 위험하니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크크크,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면서 자신이 당한 상처를 보여주었다.
"너를 이 정도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을 터인데, 여러 명이었더냐?"
"한 사람인데 강했어. 엄청."
"뭐라? 겨우 한 사람한테?"
"그보다, 너무 아파. 어떻게 좀 해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을 마친 후 나는 별당으로 이동했다.
별당으로 이동하던 중.
소담스럽게 자란 양귀비가 마당 가득히 있었다.
아직은 꽃봉오리가 피지 않았지만, 꽃이 피어오르면 얼마나 멋질까? 시뻘건 핏물처럼 붉게 피어오른 양귀비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짜릿할 텐데···.
나는 다시금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
"이놈 꼴 좀 보게나."
나에게 조선 혁명을 알려준 자. 그가 나타나자 사방에서 고개를 조아리면서 그를 응대했다.
"크크크. 나으리 죄송합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했다.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하다니, 내가 너무 자네를 맹신했구려."
지금 나를 조롱하는 건가?
"나으리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사내에게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냈다.
"허허, 지나가는 똥개를 구해줬더니 주인을 물려고 하는구나."
주변을 지키던 무사들이 칼에 손을 가져갔다.
"크크크. 나으리 집에서 기르던 개새끼도 한번은 봐주는 것 아닙니까? 기회를 한 번 더 주십시오."
"흐음···. 기회라."
고민을 하는 듯 턱수염을 연신 손으로 쓸어내렸다.
"좋다. 저놈을 데려다가 치료를 해주거라. 그리고 당분간 내가 말하기 전에 외부로는 절대 나가지 말도록."
***
- 작가의말
매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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